경북 안동 ·의성 등지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에
부녀자들이 하는 민속놀이.
기와밟기라고도 한다.
단장한 젊은 여자들이 공주를 뽑아
자신들의 허리를 굽혀
그 위로 걸어가게 하는 놀이로,
놀이 지역은 금남(禁男)의 지역으로 선포된다.
놋다리밟기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공주와 함께 청주를 거쳐
안동지방에 파천(播遷)하였을 때,
마침 개울을 건너게 되었는데
마을의 소녀들이 나와 등을 굽히고
그 위로 공주를 건너게 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놀이는 정초부터 시작하여
상원야(上元夜)에 절정을 이루는데,
상원날 저녁 젊은 여자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에
마을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놀이가 시작된다.
우선 모두 일렬로 늘어서서 허리를 굽힌 뒤
앞 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안고
미리 선발된 공주를 등 위로 걸어가게 하는데,
공주는 노래 소리에 맞추어 느린 걸음으로 전진한다.
이때 공주가 쓰러지지 않게 양 옆에서
시녀 두 사람이 손을 높이 들어 잡고 부축한다.
공주가 등 위로 지나간 사람은 다시 앞으로 가서
허리를 굽혀 열이 끊이지 않게 한다.
경우에 따라 놋다리패는 몇 개나 있어
서로 만나기도 하고
길을 비켜주면서 밤늦도록 즐긴다.
노래를 부르는 순서는 맨 앞에 선 창립(創笠)들이 선창하면
뒤에 따르는 사람들이 후렴을 받아 하는데, 노래의 곡목은
시집살이 노래 ·베틀가 등 다양하다.
창립은 40∼50대의 손자와 외손자를 본,
인생의 복을 다 갖춘 부인들만이 설 수 있다.
이 날 창립의 위엄은 대단해서
금남의 지역을 얼씬거리는 남성이 있으면
혼을 내어 쫓아 버리거나 뺨을 때려도 무방하였다.
이 놀이의 특징은 대보름날 보름달 아래서
부녀자들이 놀던 놀이라는 것과,
조선시대의 엄격한 사회제도에서도
여성이 남성을 쫓아내고 놀이를 즐겼으니,
여성 해방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구(器具)의 사용은 없고
옷도 평상시 그대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