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스크랩] 지리산 이야기 - 42. ( 설날. 대보름. 다리 밟기. 한가위. )

donkyhote 2010. 10. 29. 01:59

 

설날. 

 


 

현대문명에 밀려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세시 풍습.

옛 세시 풍습을 볼 수 있는 삼남 지방의 산간마을.

아직까지는 비교적 옛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구례.

 

'우리 민족의 뿌리를 알게 해주는 세시풍습.'  

 

지리산 산간마을들은 우리나라 세시풍습의 보고.

현대문명에 밀려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세시풍습.

아직도 지리산 산간마을들은 옛 전통을 고수한다.


옛부터 우리 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었던 백의민족.
백의민족 줄임말 백민(白民)이 곧 백성(百姓)이었다.
하얀 옷을 즐겨입는 일백 성씨가 모인 우리나라 민족.

언제부터 흰옷을 즐겨 입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부여로부터 삼한, 삼국, 고려, 이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흰색을 신성시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흰색은 순색(純色)이라 하여 청정 순결 광명 도덕의 상징.
백의민족은 우리나라 민족정신을 뜻할 만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5행사상에서 흰색이 서쪽이라 금지해야 한다는 이론

1357년 고려 공민왕은 흰색 모시옷을 입는 것을 금지
이조 때 조식은 흰옷은 소복이므로 금해야 하다고 상소
1398년(태조 7) 이조시대에는 남녀 흰옷 착용을 금지령.

1401년(태종 1), 1425년(세종 7) 궁궐 안 흰옷 금지령.
1505년(연산군 11) 도성 안 여자들의 흰색 치마 금지령.
1738년(영조 14) 흰옷 착용을 엄히 금해 차츰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민족이 선호하는 흰옷.
하얀 속옷, 하얀 와이셔츠, 하얀 브라우스, 등등.
우리나라 전통 음식에서도 흰색은 무척 사랑받는다.

시베리아 벌판 바이칼 호수에서부터 이동한 민족.
백색 설원에서 태어나 백색 설원으로 돌아가는 삶.
떡국은 마치 우리 민족 근원을 알려주는 듯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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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적 설날 음식은 떡국이다.
떡국은 나이를 한살 더 먹는 것을 상징하는 세찬 음식.
설날에 흰떡을 끓여 먹는 것은 태양 숭배 신앙에서 유래

새해의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은 흰색의 떡을 사용한 것
떡국을 둥글 둥굴 써는 이유는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것.
설날에 찬 술을 마시는 이유는 봄을 맞이하는 뜻이 있다.


<설날음식>

쌀밥, 오곡밥 사골된장국, 사골우거지국, 떡국,
떡, 떡 만두국, 흰떡, 주악, 인절미, 수수 전병,
떡찜, 떡볶기, 약식, 꽃약과, 다식, 유과, 조과,

편육, 갈비, 족편, 전, 버섯전, 녹두빈대떡, 나물,
삼색나물, 볶음, 떡잡채, 사태떡찜, 쇠고기 찹쌀구이,
생치구이, 전복초, 밤초, 대추초, 김치, 동김치, 장김치,

수정과, 식혜, 사과, 배, 귤, 기타 제수용 음식.

구례는 옛날부터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여기는 고장.
우리나라 4대 명절의 으뜸인 설날에 관해 알아보자.

..................설날의 유래.........................
설날은 한해가 시작되는 첫날 음력 1월1일.
설은 '설다, 낯설다. 사린다 삼가한다'는 뜻.
또 섧다는 말로 '슬프다'라는 뜻도 담겨 있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 `여지승람'에 설날은 '달도일(怛忉日)
칼로 자르듯 마음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 해가 지나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의미로 보인다.

'한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 "서다"에서 유래.'

한해의 첫발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뜻 깊은 명절.
설날을 '삼가하는 날'이라 하여 집안에서 지낸다.
일년동안 탈 없이 지낼 수 있기를 신에게 기원한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새 옷인 설빔을 입고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을 드리는 차례를 지낸다.
그런 다음에 웃어른들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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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할 때 서로 행복을 빌고 덕담을 주고 받는다.
각종 세시기(歲時記)에는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깊은 설날.

..................설날의 민속놀이 및 풍습....................
<윷놀이>는 정월 초하루 부터 보름 사이에 명절놀이.
인도에서 시작, 실크로드 따라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윷놀이로 흉년이나 풍년 또는 전쟁의 승패를 점도 쳤다.

<고누놀이> 할아버지는 바둑,아버지는 장기,아이는 고누.
오목처럼 제 말이 나란히 셋 되면 상대말을 하나씩 떼내기.

<제기 차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놀이.
발을 한번씩 딛고 차는 `맨제기' 그리고 '양발차기'.
제기차는 발을 땅에 딛지 않고 계속 차는 `헐렁이'

<널뛰기> 큰 명절에 성숙한 여자들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정초에 널을 뛰어야 발에 가시가 밖히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여, 외출이 자유롭지 못해 운동부족인 여성을 위한 놀이

<팽이치기>는 겨울에 사내 아이들이 얼음판에서 많이 했다.
당나라에서 삼국시대에 한반도로 들어와 일본에 건너가 '고마'.

<세배 돈> 안방마님이 몸종을 친척, 지인에게 보내 새해 문안인사
문안 받는 집에서는 세배상을 한 상 차려주며, 세뱃돈을 주던 관례.
오늘날은 자녀들이 일가친척, 지인에게 부모 대신 문안인사를 한다.

<복조리> 정월 초하룻날 아침이나 섣달 그믐날 밤 자정(子正)이 지나,
대로 엮은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데, 이 조리를 <복조리>라고 한다.
<복(福)을 쌀을 이는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풍속

<야광귀(夜光鬼) 쫓기> 설날 밤에 신을 잃어버리면 그해 운수 흉(凶)
귀신이 자기 발에 맞는 신을 신고 갈까 봐 신을 방안에 들여 놓는다.
밤에는 불을 모두 끄고 일찍 자며,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귀신 쫓기.
귀신이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함.

<연날리기>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가 본격적인 시기.
그해의 재앙이나 못된 액을 연에 실어 날려보낸다는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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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 정월 대보름.....................................
옛부터 한 해의 첫 만월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우리나라.
보름달은 여성의 성욕이 가장 극에 달하는 시기 라는 믿음.
대보름은 여성의 사랑 고백이 허락되는 일년 중 유일한 하루.

설날부터 대보름날까지는 세시 풍속도 다양하고 먹거리도 풍성하다.
대보름을 상징하는 음식은 약밥이고 쥐불놀이가 인기 있는 전통놀이
아이들이 나이 만큼 볏단 끈을 풀어 태우며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다.

밤 깊어지면 아이들은 밥과 나물을 훔쳐 비벼 먹는 풍습이 있었다.
훔쳐갈 밥을 장만해 두어도 아이들은 닭서리까지 하다가 경을 쳤다.
보름에는 오곡밥, 두부, 취나물, 콩나물 등등을 먹었고 아침에는 찰밥

<귀밝기 술> 대보름날 새벽에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기.
<부럼깨기> 호두 은행 잣을 깨물며 피부병 나지 않게 해달라 빌기.

<달집 태우기> 낮에는 윷놀이 판, 저녁이면 마을 동산에 올라 달맞이
동쪽 하늘에 뜨는 달을 맞이하여 "달 봤다." 외치고 절하며 소원 빌기.
그런 다음 장작, 볏짚, 대, 솔가지로 높이 쌓아 만든 달집에 불사르기

<액연(厄鳶) 태우기> 겨우내 날리며 놀던 연을 줄끊어 날려보내기.
연에다 '액(厄)'자를 써서 띄우다가 해질 무렵 그 연줄을 끊어버린다.
액운을 멀리하고 태우기 위함. 이날 이후 연을 날리면 상놈이라 호통.

<남녀 줄다리기> 여인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남정네들이 져주기.
대보름달과 대지는 여성의 상징이기에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양보했다.
<다리 밟기>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 수표교 같은 다리를 밟기

<쥐불놀이> 남자들이 논두렁에 불을 질러 쥐를 없애 그해 풍년을 바라기.
이때 여자들은 손으로 빈 방아를 찧으며 쥐가 없어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먹거리>부럼, 약밥,차조인절미,·나박김치,·고사리,·시래기,·호박·가지·취나물
쌀에 콩,·팥, 등을 섞은 오곡밥은 3 집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이웃과 나눴다.

<개 굶기기> 보름달을 보고 밤새 짖을 개를 미리 굶겨서 허기져 못짖게 하기.
여름철 개밥에 파리 끼는 것을 막고 그 해가 개가 병 걸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
"개가 보름 쇠 듯 한다"는 말은 즐거워야 할 명절에도 굶어야 하는 신세란 의미.

<탑돌이> 대보름날은 '발렌타인 데이' 같은 연인의 날.
남녀가 탑을 돌다가 마음 통하면 사랑을 나누던 축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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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밟기. 



음력 정월 보름에 행하는 세시풍습 중 하나.
자기 나이 만큼 다리를 왕래하는., 답교놀이.
사람의 다리(脚)와 물위 다리(橋)는 같은 음.

자신의 나이 만큼 다리를 밟으면 한해 동안 무병.
다리의 병을 피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크게 성행.
남녀노소 모두 나와 정월 보름달을 즐기며 어우러졌다.

풍물패도 동원되어 신명을 돋구었고, 행사가 매우 풍성.

서울의 수표교나 광교의 다리밟기, 송파 다리밟기,
함흥 만세교 답교놀이 등 전국 어디에서나 행해졌다.
정월 보름달 다리밟기는 원래 그해 풍년을 기원한 놀이

고려시대 남녀가 다리 위에 모여 밤새도록 다리밟기.
심지어는 법관이 그것을 금지하고 체포하기까지 했다

정종실록에는 "정월 보름경 13일부터 3일 동안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해 숭례문과 흥인문을 열고
시민들이 성 밖으로 나가 다리밟기하는 것을 허락"

일제강점기까지도 전국에서 행해지다가
1945년 8·15해방 이후 거의 소멸되었다.

다리밟기는 이조시대 <동국세세기>에 상세히 기록.

'…장안 남녀들이 온통 저녁 종소리를 들으려고
열운가(지금의 종로네거리)로 몰려든다. 종소리를
다 들은 다음 흩어져서 여러 곳의 다리로 가서 산책

밤을 새워 행렬이 끊이지 않는 답교놀이.

이러한 다리밟기 풍습은 임진왜란 당시 사라졌다가
서울 광교와 수표교에서 다시 성행했다는 최남선 기록.

'…장안의 남녀들이 종가로 모여들어
보신각의 저녁 종소리를 듣고나서
각곳에 있는 다리로 흩어져 가서
밤새도록 다리 위를 왔다갔다 하였다.

서로를 어깨와 다리가 부딪힐 정도로 붐비면서
날나리와 장고를 울리고 시를 읊기도 하며
물에 비친 달을 보며 1년 동안에
좋은 일이 있길 빌었다.'

당시 보쌈이 성행했던
청계천 광통교와 수표교

먹고 살기 어려운 과부를 자루 속에 넣어 약탈
역시 홀몸인 홀아비와 동침을 시키는 과부 약탈

일부종사(一夫從事)로 개가(改嫁)가 불가능하고
재력없는 과부와 홀아비를 구제한 초도덕적인 풍습.

총각을 커다란 가죽 자루에 담아 약탈,
신원을 숨긴 채 여인과 합방시키는 풍습.
청계천 광통교나 수표교에서의 납치 사건

....광해군 때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정덕년이라는 유생이 과거를 치루러 한양에 올라와
친구를 만나고 올 때 광통교에서 나타난 장사 네 명
유생은 가죽주머니에 보쌈당한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유생이 보쌈에서 풀려나왔을 때는 어느 규방.
예쁜 규수가 다소곳 유생을 반기며 맞이했다.
그날밤 유생은 규수와 한 이불 속에서 하룻밤.

새벽을 알리는 파루(罷漏)의 북소리가 들려오자
규수는 일어나 사라지고 유생은 다시 보쌈 신세.
보쌈에서 풀려나니 전날 밤에 납치되었던 그 곳.

이조시대 정월 대보름은 여성에게 성이 개방된 밤.
여성이 밤새 다닐 수 있는 일년 중 유일한 하룻밤
이날은 밤늦게 광통교 수표교에서 총각 약탈이 성행.

여성의 사주팔자에 살이나 액운(厄運)이 끼었을 때
단명 운이 있을 때 외간남자와 합방하면 액막이 설.
총각 또는 유생을 강제로 보쌈해 살풀이 하던 풍습.

혼자 살기 어려운 과부를 위해
총각을 보쌈하는 풍습도 있었다. 




한가위.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이고 우리말로는 '한가위'.
한 = 正, 가위 = 中心(가운데) 즉, 정 가운데란 뜻
추석의 유래는 약 2천년 전 신라 유리왕때 부터이다.

'가위' 란 신라 유리왕 때 길쌈 놀이인 '가배'.
'길쌈'이란 신라시대 실 짜기 시합을 의미한다.

한가위 한달 전 6부 신하의 부인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는 경연대회
한가윗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음.
그 갚음을 '가배'라 했고 훗날 '가위'란 말로 변했다.

유리왕은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살기를 바래
'도솔가'를 지어 부르게 했고,여러 일거리를 만들었다.
그가 일으킨 산업의 한가지로 유명한 것이 길쌈이었다.

유리왕은 길쌈을 장려하려 6부의 부녀자들에게 내기.
왕이 지어준 도솔가를 부르며 밤을 낮삼아 열심히 일.
왕비 및 궁중 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리왕이 판결

이긴 편에서는 환성을 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진 편은 그동안에 별미 음식을 마련해 이긴 편을 대접.
송편, 기름에 지진 고기, 전 등 갖가지 별식과 밤, 대추,
머루, 다래, 배 등이 마련되면 모두 둘러앉아 함께 즐겼다.

둥근달이 떠오르면 갖가지 놀이를 즐기며 밤을 보냈다.
서라벌에서는 이 날을 가배라 일컬었고 신라의 큰 명절
달의 고마움에 감사하고 달을 위해 만든 반달 형태 달떡.

한가위 올게심니는 풍년에 감사하고 명년 풍작을 비는 놀이.
밭고랑을 기는 행위도 소박한 다음해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
소놀이, 거북놀이,농악, 씨름, 강강술래, 원놀이, 가마싸움

추석에 조상무덤에 가서 무성한 잡초 베어주기가 벌초.
추석 새벽에 사당을 모신 종가집에 모여 고조까지 차례

강강수월래는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놀던 단순한 춤
고대 원시사회 부족 구성원들 간에 단합을 위한 공동 축제.
강강수월래 놀이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학익진 전술로 발전.

명량해전 때 충무공이 거느린 전선(戰船)은 불과 12척
이에 비해 왜선(倭船)은 3백 50여 척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과부적이라 충무공은 아낙네들을 모아서 군복을 입히고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산봉우리를 돌게하는 위장술을 사용.
이때 아낙네들이 산봉우리를 돌며 불렀던 노래가 강강수월래
군사들도 뒤섞여 불렀던 계기로 임진왜란 후 전국적으로 발전.

추석날 차례를 마치고 난 뒤 알맞은 시간에 소놀이.
먼저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농악대가 풍악을 울린다.
상쇠의 선도에 따라 한바탕 풍악과 함께 소놀이 시작.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뒤집어 씌우며
뒷사람은 새끼줄 꼬리를 달고, 앞사람은 막대기 두 개 뿔
소 흉내를 내며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은 부자집을 방문한다.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
그 대문 앞에서 외치면 주인이 나와 일행을 맞이한다.
소를 앞세우고 앞마당에 들어가 풍악 울리고 노래와 춤

주인집에서는 술과 떡과 찬을 차려 모두에게 대접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참 놀다가 다시 다른 부자집으로 간다.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다니며 해가 질 때까지 어울려 논다.

소놀이를 할 때는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상머슴으로 뽑아
소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하며 다음해 풍년을 기원.
선머슴 노고를 치하하고 포상하는 뜻에서 소에 태우는 영광

올게심니란 벼, 수수, 조 등을 기둥 대문 위에 걸어두기.
올게심니 곡식은 다음해 씨앗 또는 떡을 해서 사당에 천신
올게심니란 다음 해에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이다.

밭고랑 기기는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 놀이.
아이들이 밭에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 만큼 밭고랑을 긴다.
이 때 어른이 밭둑에 놓고 간 음식은 몸에 부스럼 방지 목적.

이날은 설날,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
추석이 오면 여름 더위도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
추석 무렵엔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하다.

추석이 오면 농사일도 거의 끝나 갈 무렵이고
남쪽에서는 햇곡식이 나오고 풍년을 즐길 시기.
객지에 나돌아 다니던 식구도 다 고향에 모인다.

오려송편·박나물·토란국 송이국·고지국이 추석음식.
추석은 옛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나라의 큰 명절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 지내고 ,이웃과 나눔.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는 명절.
"일 년 열두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에는 아침을 먹은 후 조상 산소에 성묘를 하러간다.

'추석은 즐겁운 날인 동시에 감사를 잊지 않은 날.'

햅쌀밥 짖고 송편 빚고, 술도 빚어 신도주(新稻酒).
조상께 수확의 기쁨을 알리는 행사가 추석 차례이다.

새옷 차림으로 차례를 지내고 음복하고,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은 다음에 성묘.

추석날 남자들은 씨름판에서 힘 겨루고,
여자들은 널뛰기를 하고 저녁에는 달맞이.
식구들은 평상에 앉아 둥근 달을 보며 담소
남쪽 지방에서는 강강술래를 부르며 춤 춘다.

주, 과, 포, 탕, 적, 혜, 나물, 침채(김치), 청장.
정해진 굽이 있는 제기에 담아서 제사 상을 차린다.
제기 위치는 가풍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차린다.

출처 : 산사모산악회
글쓴이 : 선경나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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