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114 ( 진주. 진주 난봉가. 쾌지나 칭칭나네. )

donkyhote 2011. 2. 28. 03:06


진주.



진주는 수만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삼한시대에 이르기까지
남강 유역 진주는 수천년 고도., 국내 최대 유적지.

'약 5천년전 고래잡이 유적이 있을 만큼.'

그외 남성동·이현동·유곡동에서 마제석기와 무문토기 등
신석기시대 말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친 유물 유적 발굴지.
진주는 한반도 고대사회 선사문명이 시작된 곳으로 추정된다.

'하여, 진주 역사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진주 역사....................
1995년 진양군과 통합시를 이룬 경남 남서부 도시.
역사·문화·예술·교육의 도시이자 경남 서부의 중심

문산읍·내동면·정촌면·금곡면·진성면·일반성면·
이반성면·사봉면·지수면·대곡면·금산면·집현면·

미천면·명석면·대평면·수곡면·본성동·주약동·
강남동·칠암동·망경동·동성동·남성동·인사동·

대안동·평안동·계동·중안동·봉곡동·상봉동·봉래동·
수정동·장대동·옥봉동·상대동·하대동·상평동·초전동
장재동·하촌동·평거동·신안동·유곡동·이현동·판문동
귀곡동·가좌동·호탄동 등 1개읍 15개면 32개 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본성동. 면적 713.08㎢,
인구 338,364(2003), 인구밀도 474.8명/㎢(2003).

삼한시대 소국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이곳에 있으며,
가야 영역이었다가 신라 세력권 거타주(居陀州)가 설치.

신라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청주(菁州) 총관.
757년(경덕왕 16) 9주의 하나인 강주도독부 대읍(大邑)
혜공왕 때 다시 청주로 바뀌었고 고려 초 강주로 개칭,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 정해군(定海軍) 절도사를 두어 산남도에 속했다.

1012년(현종 3)에 안무사로 고쳤다가 1018년에 진주목
이때 강성군(江城郡:丹城)·하동군(河東郡)을 속군으로,
사주현(泗州縣)·악양현(岳陽縣)·영선현(永善縣)·진해현
곤명현(昆明縣)·반성현(班城縣)·의령현을 속현으로 포함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

1392년 이조(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
1402년(태종 2) 이조시대에는 진주목으로 환원 유지.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일본과 치열한 전투
정치적·경제적·행정 군사적 요지이자 중심

1603년(선조 36) 경상우도 병마절도
사영이 창원에서 진주로 이전되었다.

진주의 별호는 진강(晉江)·청주(菁州)·진산(晉山)
1895년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진주부 진주군,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 도청소재지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파지산면 등 6개면을 산청군에,
북평면 등 7개면을 하동군에, 문선면 등 5개면을 고성군,
양전면을 진해군에, 상봉면 등 3개면을 함안군에,
적량면 등 2개면을 남해군에, 삼천포를 사천에 이관

1925년 이곳에 있던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되고
부산이 성장되자 진주는 예전의 지위와 위세를 잃어갔다.

그러나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계속하면서
1931년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 1939년에 도동면·거평면을 편입
진주읍이 부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에 부를 시로 고침에 따라 진주시가 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전국행정구역 개편
농촌 진양군과 진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진주시.

[자연환경]

소백산맥의 지맥이 시의 북부와 서부에 뻗어 있고
동남부 해안산맥에 험준한 산지는 없고 거의 구릉지

북·서부에는 천황산(364m)·망룡산(望龍山 : 442m)·
검무봉(劍舞峰 : 280m) 등이, 해안산맥이 뻗어 있고

동남부에는 오봉산(五峰山 : 525m)·영봉산(靈鳳山 : 395m)·
보잠산(寶岑山 : 439m)·봉대산(鳳臺山 : 409m)이 솟아있다.
시 중앙에는 월아산(月牙山 : 471m)·장군대산(482m)이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이 진양호를 이룬 뒤
시의 중앙을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곡류하여 낙동강에 유입,
덕천강이 하동군과의 경계를 따라 남동류하여 진양호로 유입.

그밖에 나불천·영천강·정수천·향양천 등이 남강으로 유입,
남강 유역에는 고도 20~30m 대상(帶狀) 범람으로 충적평야 분포.

남서부에는 홍수조절과 관개용수를 위해 1970년대 건설된 남강댐
인공호수인 진양호가 있고 연평균 강수량은 1,528.2㎜ 다우 지역


[산업·교통]

경지면적 160.1㎢(논 105.1㎢, 밭 55.0㎢, 경지율 22.5%).
남강 유역과 그 지류에 펼쳐진 넓은 충적지가 곡창 지대.
농산물로는 쌀·감자가 주로 생산되고, 딸기·참외·오이
수박 등의 고등채소와 과수·화훼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특히 평거동은 관상수 재배지이자 과수·화훼 중심지

집현면·금산면·대곡면 등을 중심으로
토마토·딸기·고추·오이 등이 많이 생산
서울·부산·광주 등의 대도시로 출하되고,

특산물로 집현면 대부분 인공 재배되는 산딸기가 있으며,
그밖에 배·복숭아·밤·단감 등과 목단·잎당귀 약용작물
대나무가 많아 예로부터 죽세품의 생산이 활발하다.

1970년 남강 댐 완공으로 관광자원 확보로 많은 혜택
광업은 1개의 가행광구에서 고령토가 생산되고 있다.

상평동·상대동 일원에 조성된 진주 상평 공업단지
1995년 2,276개소 제조업체 섬유공업과 기계공업들.

상업활동은 중앙공설시장·초전공설시장·서부공설시장·
중앙도매시장·도동사설시장 등의 상설시장 등이 중심

대안동·동성동 일부에는 점포 270개소 들어선 지하상가
1988년에 준공되어 도심 중심 상권형성 일익을 담당한다.

경전선이 시의 남부를 지나며, 남동부로 남해고속도로.
중심 시가지에서 방사상으로 하동·창원·산청·사천·
합천·고성·거창 등을 잇는 국도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도로총길이 663.1km, 도로포장률 85.8%이다(1995).

[유물·유적·관광]

용암사지부도(고려), 보물 제372호, 높이 193cm,
경남 진주 남성동에 있는 촉석루 및 김시민 동상

남성동·본성동에 걸쳐 있는 촉석성이라 하는 진주성
임진왜란의 3대첩 중 하나 진주대첩이 치러진 성이다.

이곳에는 남장대인 촉석루를 비롯하여
서장대·북장대 영남포정사문루 창렬사
의기사·호국사 등의 유적지 등이 있다.

망경동의 단성석조여래좌상(보물 제371호),
이반성면 용암리의 용암사지부도(보물 제372호)
수곡면 효자리의 진양효자리3층석탑(보물 제379호)·

남성동 국립진주박물관의 중완구(中碗口:보물 제858호)·
현자총통(보물 제885호)·차륜식토기(보물 제637호),
평거동 진주평거동고려고분군(사적 제164호)이 있다.

그밖에 본성동 김시민 장군전공비·촉석정충단비
쌍충사적비, 용암사지석불·청곡사3층석탑
옥봉동의 진주향교, 청곡사 대웅전·

상봉동 삼선암고려동종, 평거동 평거석조여래좌상
집현면 정평리 응석사대웅전.·사곡리 주자어류책판

지수면 압사리 동강선생문집책판,·
문산읍 상문리 두방암다층석탑
수곡면 원내리 고산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청곡사괘불 및 괘불함. 옥봉동 진주 옥봉 고분군
수곡면 원계리 이충무공 진배미유지
미천면 오방리 진양오방산조선조 고분군

수곡면 효자리 진양효자리조선조팔각형고분군
수곡면 원계리의 양정공하경복묘
금곡면 죽곡리의 남악서원
대평면 신풍리의 동산재.

특히 남악서원에는 김유신·최치원·설총을 봉안하고 있다.
진양호 일대를 비롯 많은 유물·유적들이 관광자원으로 이용
진양호는 경치가 수려하고 방대해서 낚시·뱃놀이 등 위락시설

금호지는 담수어 낚시꾼들의 발길이 잦으며,
금호정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절경을 이룬다.

진주성·촉석루·의기사·창렬사·의곡사·호국사·
연화사·비봉루·남강댐·석류공원·송림공원 등
관광업체 60%가 본성동·중안동·대안동에 집중.

[교육·문화]

국립진주박물관, 경남 진주시 남성동
경상남도 서부의 교육·문화의 중심지.

진주향교 남악서원·운강서원·임천서원·
옥산서원·광제서원·대각서원 등이 있었다.

국립종합대학인 경상대학교를 비롯하여
진주교육대학·진주간호보건전문대학·
진주농림전문대학·진주전문대학
학생이 전체인구의 23%를 차지.

1949년 영남예술제로 시작된 개천예술제
해마다 열려 각종 학술 발표를 비롯하여
등띄우기·불꽃놀이 등 다양한 민속 축제.

칠암동에 경상남도 문화예술회관,
남성동에 국립진주박물관이 있다.

대표적 민속놀이로 줄다리기와 소싸움·유등놀이·
오광대놀이·연날리기·널뛰기·윷놀이 등이 있다.

유등놀이는 집에서 만든 여러 가지 모양의 등에다
불을 켜고 밤에 시내를 돈 후 남강물에 띄우는 놀이

설화

〈비봉산과 봉의 알자리 전설〉·
〈나막신장이날전설〉·〈처녀골전설〉·
〈순천봉전설〉·〈돌팔매꾼 조씨 전설〉·

〈운돌전설〉·〈정온전설〉·〈강목발전설〉
〈손씨팔룡전설〉〈효불효교전설〉
〈송자에 패한 풍신수길전설〉·
〈용두산전설〉〈선돌전설〉등

민요

〈쾌지나칭칭나네〉·〈의암요〉·〈댕기노래〉·
〈그네노래〉·〈진주난봉가〉·〈사랑노래〉·
〈장개노래〉·〈삼삼기노래〉·〈권주가〉·

〈바느질노래〉·〈지신밟기노래〉·〈모심기노래〉·
〈달풀이〉·〈시집살이 노래〉·〈어랑타령〉·
〈장모타령〉·〈사위노래〉·〈부모노래〉 등.

현재 종교기관은 개신교 교회 152개소,
천주교 9개소, 사찰 121개소,유교 교당 1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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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선사 문명 진원지로 추정되는 진주.'

제 4 빙하기 말, 약 만년전 동아시아에서 분리된 일본.
대륙 끝과 이어진 육교가 사라지고 크게 4개섬으로 분리.
일본의 1만 2,700년전 다양한 토기문화는 세계 최초로 간주.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구석기 유적이 고르게 분포.

일본의 첫 원주민은 남북 두 방향에서 육로따라 이주.
그들이 쓰던 타제석기와 뼈 연장은 점차 세련되어졌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생지는 바이칼 호수 일대.

인간의 선사시대 문명은 강 하구에서부터 발달한다.
하여, 진주는 고대 선사문명 진원지일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에서 동떨어진 일본보다 앞선 진주의 선사문명.

제주도 구석기 유물은 중국 북경 유물과 거의 일치.
울산 반구대 암각의 BC 3천년전 고래잡이 그림 유적.
한반도 포경 및 선사문명은 고대 중국보다 앞선 흔적.

'지금부터 진주 일대 선사문명 흔적을 살펴보자.'

수정봉·옥봉의 산등성이와 상봉동·중안동의 언덕에
가야시대에 유력한 정치세력들의 고분 군이 모여있다.
지리산 일대 선사시대 고대 문명 근원지로 알려진 진주.

'진주- 통영 고속도로로 가까워진 고성 통영 거제.'

중부고속도로 연장선인 진주-통영간 고속도로(47.9㎞)
남해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라 의미가 크다.
이 도로의 종점인 통영은 한려해상국립공원 시작되는 곳.

여기에서 불과 2㎞거리에 거제도가 있다.
거제 거쳐, 부산 가덕도와 연결되는 연륙교
거가대교(2007년 예정)가 생기면 환상의 바닷길.

통영 고성, 사천 지나 2003년 개통된 창선- 삼천포 대교
2010년 개통 예정인 남해-여수를 잇는 한려대교가 놓이면
전라도와 경상도를 바닷길로 내달릴 수 있는 세상이 열린다.

남강댐 건설후 부산까지의 뱃길이 끊어진 진주.
남강댐 건설로 1/3 땅이 물속으로 잠긴 대평면.
진주는 이제야 끊긴 옛 뱃길이 육로로 환생한듯.

'이 도로 개통으로 가장 덕을 본.. 고성, 통영, 거제.'

♡ 고성

남한 북단 강원 고성에서 정남쪽 끝에 있는 고성.
경남 고성이 관광지로서 알려진 것은 불과 20년전.
공룡이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면서부터다.

대표적인 곳이 하이면 덕명리의 상족암이다.
생김새가 밥상(床) 다리(足)와 닮아 상족암.

수억년에 걸쳐 형성된 층암단애가 시루떡 재듯 채곡채곡
그렇게 만들어진 바위가 곳곳에 무너지며 만들어낸 동굴
여기에 공룡의 발자국 화석까지 있어 신비감은 일어난다.

상족암~ 실바위(6㎞구간) = 2,000 여 공룡 발자국.

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공룡 발자국은 상족암이 유일.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공룡 발자국을 늘 볼 수 없는 점.
밀물 때 공룡 발자국이 바닷물에 잠겨 썰물때 관람 가능.

물때 시간 문의처: 상족암군립공원 (055)670-2201~4.

회화면, 동해면 남쪽 해안, 영형면 계승사 경내,
개천면 옥천사 부근 곳곳에 5,000 여 공룡 발자국
충무공 격전장 당항포 해전관 일대도 공룡 유적지.


♡ 통영

통영은 간식거리로 유명한 충무 김밥이 탄생한 곳.
1995년 통영군과 충무시 두 지역이 통영시로 통합
충무 지명은 사라졌지만 충무 김밥 브랜드는 건재.

통영은 산양, 욕지, 한산, 사량 등 4개 섬이 장관.
양념장에 버무린 무와 쭈꾸미는 인기 높은 술 안주
밥 따로 반찬 따로 포장이 충무김밥 트레이드 마크

70 년전 충무김밥을 만든 원조들은 모두 작고했고,
뚱보할매김밥, 소문난 3대 할매김밥 등이 가업 계승.


♡ 거제

거제는 제주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해안선 길이(386.6㎞)는 제주도(308.32㎞)보다 길다.
꼬불꼬불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가 여행의 멋.

특히 섬 남단에 자리잡은 홍포 - 여차 드라이브 코스
대ㆍ소대병도를 비롯한 섬연봉들과 함께 환상의 조망권.
거제 포로수용소 공원, 청마 유치환 생가, 외도, 해금강

버려진 섬에서 관광 농원으로 변신한 외도
드라마 '겨울 연가' 촬영지로 인기 높은 곳.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해금강(명승 2호)

선착장 : 장승포, 와현, 구조라, 학동, 도장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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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일출 감상후 중산리로 하산하면, 거치는 진주.
대부분 진주역에서 기차표 구입후 시간에 쫓기듯 귀경길.
시간이 있으면 목욕, 짜장면 아이스크림으로 피로를 달랜다.

'어차피. 진주에 들르게 되면, 명소 탐방도 좋을 듯..'

진주는 임진왜란 왜군이 한반도 점령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이어진 남강의 합류지점이 진주이기 때문.
낙동강 하구에는 부산항이 있고 섬진강 하구에는 여수항이 있다.

진주는 한반도에서 왜군을 방어하기 어렵고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하려면 꼭 필요한 요충지.
진주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 총사령부가 주둔한 곳.

진주는 경남도청이 있던 곳
아라 가야의 도읍지였던 곳.

백제 거열성이던 진주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고 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 '9주 5소경제' 실시로 강주로 개칭.

그 뒤 혜공왕(惠恭王) 때에 청주(菁州)로 개칭하였다가,
고려 초 강주로 환원후 940(태조 23)년에 진주라 고치고,
983(성종 2)년에는 12목(牧)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이조 한때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진주목(晉州牧)으로서 서부 경남 일대를 관할하였다.


"전국 인재의 반은 영남이요,
영남 인재의 반은 진주 출신."

이런 말이 공공연할 만큼 진주는 교육 도시.
진주향교는 고려 성종 6년(987)에 창건되어,
국자감에서 경학 및 의학박사를 파견해 교육

이조 태조 7년에는 문묘를 창건하고,
성균관에서 훈도, 교관, 교수 등 파견
수많은 인재들이 공부하고 문과에 급제


진주는 문화예술 도시.

국보인 청곡사 영산회괘불탱을 비롯
보물 7점, 천연 기념물 2곳, 사적 2곳,
중요무형문화재 1개, 도유형문화재 24점,
도무형문화재 5개, 도기념물 11점, 민속자료 1점,
도문화재자료 28점 등이 있고 무형문화재도 많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주검무,
진주삼천포농악과 진주한량무, 포구락무,
교방굿거리, 장도장, 연관장 등이 있다.

진주성 안에 위치한 국립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유물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보물 제637호인 차륜식토기, 제858호인 중완구,
보물 제885호인 현자총통을 비롯하여 비격진천뢰
등등 3,5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최초 전문박물관.

'진주는 우리나라 호국충절의 고장.'

임진왜란 임진년(1593) 제1차 진주성 전투.
임진왜란 3대첩(三大捷) 중 하나로 진주성대첩
다음해 진주성 전투는 논개의 죽음이 알려진 싸움.

임진년 제1차 진주성 전투는 1592년(선조 25) 10월 5일
왜군 2만명과 진주목사 김시민이 지휘한 3,800명의 전투
왜군은 6일간 치른 대접전 끝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후퇴.

계사년 제2차 전투는 1593년 6월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령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우키다 히데이에 왜장이
37,000여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진주성에는 3,400명 병력과 민간인 7만여명 뿐.

6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이 전개되어 공방전 끝에,
6월 29일에 진주성이 함락되고며 7만 민관군이 순절한다.

진주성 내에 김시민 장군 등 39분의 위패를 모신 창렬사
순절한 여러 장수들과 병사들의 충의를 새긴 촉석정충단비,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기사, 김시민 장군 동상,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 7만명의 충혼을기리는 제단
촉석루 밑 남강 가에 의기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의암사적비,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순국한 바위인 의암 등의 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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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댐 이전에는 남강을 거쳐 낙동강따라 부산까지 이어진 뱃길.
한반도 고대국가로부터 전통적인 찬란한 문화가 맥을 이어온 진주.

남강댐 건설로 1/3 땅이 수몰되기 전까지 대평면은 무우밭.
몸매 늘씬한 처녀 각선미를 뺨치게 희고 곱다는 대평 무우.
'대팽 무시'는 맛이 좋아 우리나라 김장시장의 상등품 대접.

1962년 남강댐( 길이 975m, 높이 21m) 건설로 사라진 무우밭.
그 탓에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유적지까지 댐속에 수몰.
현실적으로 선사시대 유적지를 발굴할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경남도청이 있을 때까지는 활기찼던 진주.
1925년 부산으로 경남도청 이전후부터 침체
옛부터 한양에서 천리길이라 자주적이던 도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중앙집권 간섭에서 벗어났던 곳.
임진왜란 당시에는 조정의 무능을 백성들이 꾸짖던 고장.
관리들 피난길을 막아서고 함께 싸우자던 진주의 백성들

1200 년 고려 신종 때 권리를 찾던 민초들의 항쟁.
1862년 이조 철종 때 민초들이 탐관오리들을 처단.
진주기생답게 8명이 무관 옷을 입고 춤추는 '팔검무'.

'진주는 <충절, 정의, 기백>이 살아있는 고장.'

진주는 명소가 많고 전통적 풍류 문화도 살아있는 곳.
이조 여인들의 수난을 대변할 기생의 애환이 가득한 곳.
진주 기생을 통해 전통 풍류문화의 고장을 재조명해 보자.

우리나라 역사상 의기의 본보기로 알려진 진주기생.
그녀들이 남긴 시는 우리나라 여성 고대문학의 주류.
논개와 산홍, 승이교, 풍류시인 강혼, 선유락 배따라기. 



진주 난봉가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살이 3년 만에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실 것이니 진주 남강 빨래가라" - 중략

진주 옛 여인들이 부르던 서사 민요 중 하나.

가난한 시집에서 남편도 없이 하는 시집살이
남편 진주낭군은 첩을 데려오고 아내를 외면
결국 진주 여인은 목을 매 자살했다는 이야기.

"첩의 정은 3년이요 본처의 정은 100년인데
너 그럴 줄 내 몰랐다" - 진주 낭군의 탄식 -

여인들이 겪는 시집살이 고통과 염원이 담긴 민요.
봉건시대 여성들은 봉건윤리관과 노동에 의해 속박
시집 식구들의 구속·학대·모함 등에 시달려야 했다.

밤을 지새우며 삼을 삼을 때, 물레질할 때,
베를 짤 때 등 길쌈 노동요로 많이 부른다.

길쌈은 힘들지 않으나 지루하고 단조로와
가사가 서사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민요의 내용 중 잠이 많다, 일을 적게 한다,
행실이 안 좋다, 심지어 음식을 훔쳐 먹는다
등등의 이유로 구박하는 것이 형상화되어 있다.

"가마 타고 시집 가서 벙어리로 삼년 살고
장님으로 삼년 살고 귀머거리로 삼년 살고
석삼년을 살고 나니 미나리꽃 만발했네"

시집살이 신세를 잘 보여주고 있는 민요.
시집살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박함

"못할레라 못할레라 시집살이 못할레라
열새무명 열폭치마 눈물받기 다썩었네" 



쾌지나칭칭 나네. 



삼국시대 선진 철기문명을 갖고 있었던 신라인
쇠방울과 꽹가리를 울리며 주변 부족들을 점령.
쇠방울과 꽹가리 소리만 들려와 혼비백산 도주.

진주의 기상이 담겨있는 민요., 쾌지나칭칭나네.
쌍 도끼 아비 父..부계사회 민요,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나네>

"하늘에는 별도 총총
쾌지나칭칭나네

강변에는 잔 돌도 많다
쾌지나칭칭나네

솔밭에는 공이도 많다
쾌지나칭칭나네

대밭에는 마디도 많다
쾌지나칭칭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