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106 (혼례길. 전통혼례. 궁합. 신랑 매달기. 신방 엿보기)

donkyhote 2011. 2. 28. 02:24


혼례길.



.............................................↖..화개재...~~..
.................................................토끼봉....단천골↘
반선.~~~~.~~~~~~.뱀사골....산장........목통골...↘*
........↖....................................삼도봉...불무장등...화개골(남난희)*.. *화개장터...*섬진강
...........↖............반야봉.........노루목...칠불사..(무학대사)..불일폭포..쌍계사..*혼례길.
..............↖...........................임걸령 샘터..........피아골 산장....연곡사...........


경남 전남을 가른 삼도봉 불무장등 능선이 주저 앉아 머문 곳.
경남 전남 주민들이 이웃이고 한동네에 사이좋게 모여 사는 곳.
2005 년 현재 여성 산악인 남난희가 평범한 생활인으로 사는 곳.

섬진강 기슭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10리 벚꽃길’로 알려진 화개골.
실제 거리 6km쯤 되는 이 길은 50~60년이 넘은 아름드리 벚나무들.
이 일대를 일컬어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는 <혼례 길>이라고도 한다.

꽃샘추위가 끝나고 나서 4월로 접어들게 되면
화개 벚꽃이 십리에 날려 화사하게 봄을 재촉
마치, 신혼여행 꿈길과도 같이 아름다은 꽃길.

연인이 두 손을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는 길.
그래서 수많은 연인들이 낭만적인 이 길을 찾는다.
사랑을 맹세하며 눈꽃 터널같은 꽃길을 걷는 연인들.

화개장터에서 화개골까지 이어진 '혼례길'.

혼례길의 또 다른 별명은 '사랑이 싹트는 거리.'
그 때문인지 진주 일대 연인들에게 데이트 명소.
화개장터에 차를 대고 쌍계사까지 왕복 두 시간.

쌍계사 주차후 화개골로 올라
내려올 때에는 동쪽 길이 좋다.

화개골 쌍계사 앞부터 길가에 줄줄이 전통 찻집.
그곳 찻집에서 그윽한 차향을 음미하는 것도 좋다.
입안 가득 번져오는 차향에 세속 때를 지우는 여유.

토끼봉 중턱 칠불사는 '허황후와 7불암' 전설의고향.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성불한 7 아들이 새겨진 칠불암.
혼례길은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이상적인 삶에서 비롯된듯

.............김수로왕과 허황후..............
189년 3월1일 향년 157세에 붕어한 허황후
백성들은 어머니를 잃은듯 슬퍼했다고 한다.

김수로왕은 왕후가 죽자 외로움을 달래며
슬퍼하다가 199 년 3월 23일 158세에 붕어.

온 나라 사람들이 마치 부모를 여윈 듯이,
왕후가 붕어했을 때보다 더욱 비통해 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10남 2녀를 낳았다.

맏아들은 거등왕, 차남 거칠군은 허씨.
어머니 성씨를 받았고, 7 왕자는 칠불사.
장녀 영안공주는 태사 배열문에게 출가했고
둘째 공주는 신라의 석 태자비가 되었다 한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이상형 부부.
백년 넘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부부.
이상적인 부부애가 배어있는 화개골 혼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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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벚꽃 개화기에 화개골에서 '화개장터 벚꽃축제'.

자세한 문의는 <www.hwagae.org> 하동군 문화 관광과.
하동에서 구례에 이르는 19번 국도 섬진강 변의 벚꽃길
벚꽃 절정기에 휘날리는 벚꽃의 향기를 맡는 재미가 각별.

한편 4월 중순 쯤이면 섬진강 하동포구에는 재첩 잡이.

섬진강 아낙들이 도수망으로 모래바닥 훑는 볼거리 정경.
화개골 쌍계사 근처엔 산골 민박집이 많고, 요즘엔 여관들.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산나물 겻들인 산채정식이 맛있다.

교통 88고속도로 남원 IC-19번 국도-구례- 토지-화개장터.
호남고속도로 전주 IC-17번 국도-남원-19번 국도-구례-화개장터.
서울남부 고속터미널 하동(구례 경유) 직행버스 1일 6회(09:10~18:30).

기차편은 서울역에서 구례구 역 이용.
구례와 하동에서 화개장터 가는 군내버스.
화개장터에서 신흥마을까지 30리가 화개골

지리산의 정기를 받고 대물림을 해온 야생차.
벚꽃이 연두빛으로 바뀌는 곡우(양력 4월 20일)
화개골엔 벚꽃향기 대신 햇차 향기가 마을에 가득.

차는 곡우전 거두는 장마 전,
찻잎은 5월 초~ 6월초에 딴다.

차의 기원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농사의 신’ 신농씨로부터 시작.

신농씨가 모든 식물의 맛을 보다가
독초에 중독되었을 때 찻잎으로 해독.

신라 흥덕왕 때 대렴이 당나라에서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후 널리 성행, 화개골에 차시배지 비석.

그곳 천년고찰 쌍계사에는 최치원이 지팡이 끝으로 썼다는 ‘雙磎 石門’
최치원 문장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인 진감선사 부도비 ( 국보 제47호 )
칠불사에는 한번 불 때면, 49일 온기가 지속된다는 온돌 ‘아자방’도 볼거리.

화개골은 사랑이 꽃피는 혼례 길로 더 알려진 데이트 명소.
혼례길은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부부애에서 비롯된 듯 싶다.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과 인도공주 허황후의 바람직한 결혼생활.

'장막에서 이틀간 '신혼의 밤'을 보냈던 두 사람.'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처럼 흥미로운 가락국 창건신화.
두 사람은 10 왕자와 2 공주를 낳고 10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사랑.
'백년가약'이란 말은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로멘스'에서 유래된 듯.



전통 혼례. 



옛부터 혼인을 가족 간 결합으로서 중요시한 우리나라
불교를 숭상했기에 관혼상제에서 불교적 의식이 많았다.
삼국시대에는 불교 화혼례(花婚禮)가 성행했을듯 짐작된다.

오늘날 전통혼례 풍습이 맨 처음 행해진 시기는 이조조 초기
양반 사대부만 행했으며 서민들에게 전래된 시기는 이조 후기

[의혼(議婚)]

양가가 중매인을 통해 서로 의사를 조절하고,
대례(大禮)를 거행하기 전을 의혼이라고 한다.

① 납채(納采):중매인을 통해 말을 전하고
신랑측 혼주(婚主)가 서식따라 편지 보낸다.
② 연길(涓吉):신랑집에 택일 단자를 보낸다.
③ 송복(送服):신랑집에서 예물을 보내는 것.
④ 납폐(納幣):신부집에 함보내기라고도 한다.


[대례(大禮)]

의혼 절차를 거쳐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행하는 의례.

① 초행(醮行):신랑과 그 일행이 신부집에 가는 것.
② 전안지례:신랑이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의례.
③ 교배지례:신랑 신부가 대례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절하는 의례.
④ 합근지례:신랑 신부가 대례상을 사이에 두고 술잔을 나누는 의식.
⑤ 신방(新房):신랑과 신부가 각각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신랑은 옷갈아입고 큰상 받은 후 저녁에는 신방을 꾸민다.
⑥ 동상례(東床禮):점심 전후 신부집 사람들이 신랑다루기.


[후례(後禮)]


혼례의 중심인 대례가 끝나면
신부가 신랑집에 오는 의식과
신랑집에 와서 하는 의례이다.

① 우귀(于歸):신부가 신랑집에 오는 신행(新行).
② 현구례(見舅禮):신부가 시부모 시가 사람들에게 절하는 폐백
③ 근친(覲親):신부가 시집살이후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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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혼례 풍습은 다양하다.
골짜기 산간마을마다 풍습이 다른 탓.
전남. 전북. 경남 3도를 아우른 지리산.

지리산 동쪽으로는 함양과 산청.
지리산 서쪽으로는 구례와 곡성.
지리산 남쪽으로는 남해와 진주,
지리산 북쪽으로는 남원과 순천.

동서남북이 전혀 다른 혼례 풍습.

지리산 일대는 한반도의 축소판.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축소판.
고대 동아시아 역사가 배여있는 듯.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혼례풍습.
우리나라의 혼례 풍습부터 알아보자.

..............고구려................
고구려는 데릴사위 혼례 풍습이 성행
신랑은 신부집 근처에다 집을 마련했다.
신부측 몫, 신랑측은 고기와 술을 보낼 뿐.

혼인한 부부가 자녀를 낳아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제야 처자를 데리고 본가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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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려시대 혼인은 근친혼이 많았는데,
귀족 계급일수록 그 현상이 심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왕실 혈통을 보전하기 위함이며,
골품제 신분사회를 중시하는 신라사회에서는
귀족 계급이 자기방어 수단으로서 정략적 결혼.

이러한 근친혼은 민간에까지 성행하다가
고려말 유교 영향으로 점차 금하게 된다.

삼국시대 결혼 풍습에 불교식 화혼례가 많았다.
특히 상류사회 품위를 지키려 불교식을 따른 듯.
<삼국유사>에 신라 결혼 풍습을 알 수 있는 기록.

"나는 하백의 딸 유화라고 합니다.
친구들과 노는데 한 남자가 오더니
자신의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라며
웅신산 아래 압록강 가 집으로 유인
정을 통한 후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중매없이 혼인한 것을 꾸짖고
나를 드디어 이곳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당시 일반적인 혼인풍속은 중매혼
자유 결혼도 가능했음을 말해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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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책 <<양서>>에 있는 기록.

동명왕 주몽의 아버지 탁이왕
아이를 밴 계집종을 꾸짖었다.
그 계집종은 다음과 같이 변명.

"하늘에 떠 있던 무슨 기운 하나가 제게 와서
계란만 해지더니 그 뒤부터 태기가 있었습니다."

계집종이 아이를 밴 설화를 분석하면
당시 남녀가 자유스럽게 만날 수 있고
성관계도 자유스러웠음을 말해 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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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위서> 고구려 전에 있는 기록.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며 음란한 풍속.
밤이면 남녀 여럿이 모여 장난을 치면서 놀며,
남녀 서로 아무런 귀천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수서> <남사> <북사>의 고구려 혼인풍속.

남녀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기며
음란한 짓을 하는 여자가 많다 하였다.

또 혼인할 사람이 있을 때는
서로 좋으면 당장 결혼을 하였고,
남자 집에서 돼지고기와 술을 보낼 뿐

만일 여자 집에서 재물을 받으면
딸을 종으로 팔았다고 비웃었다.

이러한 자유 결혼 흔적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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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일부다처제 혼인제도 기록.

"대무신왕(大武神王) 때 대신이었던 구도 등
죄지은 3 신하를 내쫓아 서민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백성들의 처첩과 재화를 탈취하였다 "

이 기록을 보면 일반인들도 축첩 풍속이 있었던 듯.
고구려 왕실기록에는 일부다처제의 풍속이 발견된다.

주몽은 부여에 있을 때 예씨와 혼인
아들 유리를 낳고 부여로부터 도망후
부여왕 딸과 혼인해 낳은 비류와 온조

주몽이 유리를 태자로 삼자
비류와 온조가 백제를 창건.

유리는 부인이 죽자 두 여자와 재혼
하나는 화희라는 고구려의 여인이고,
다른 하나는 치희라는 중국인 여인.

두 여인은 서로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질투
동서에 각각 궁전을 짓고 따로 거처하게 했다.
왕이 사냥간 사이에 화희가 치희를 내쫓았다.

치희가 원한을 품고 중국으로 가버리니
왕은 치희를 뒤쫓아가 돌아가자고 사정.
그러나, 치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돌아오는 길에 꾀꼬리 한쌍을 보며
치희가 그리워 <황조가>라는 시를 읊었다.

펄펄나는 저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짝을 지어 노니는데
외로운 이내 몸을 생각하니
나는 누구와 함께 돌아갈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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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예서제(豫壻制) 데릴사위 제도.
시베리아 퉁구스인과 일본의 아이누인ㆍ
북미 앨콩키인, 아프리카 파엘레인 공통

"고구려에서는 혼인을 약속하면
신부 집에서 작은 집을 지었다.

약속한 날에 해가 저물 무렵에
신랑감이 신부집 문 앞에 와서
자기의 이름을 대고 굻어 앉아
신부와 함께 자겠다고 청한다.

신부 부모는 처음에 대답을 하지 않다가
신랑이 두세 번 간청하면 마지못해 승낙
그리고, 미리 마련한 집에서 자게 하였다.

이때 신랑은 돈과 비단을 폐백으로 내놓는다.
신랑은 처가살이를 하다가 아이를 낳아 장성하면
비로서 신랑은 가족을 데리고 자기 본가로 돌아간다."

우리 말 가운데 '장가든다' 혹은 장가간다'는 말
처가집은 서옥으로 들어가는 풍속에서 유래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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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데릴사위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백제는 일부다처제 풍속과 여인들의 정절 설화
백제에서 품행이 뛰어났던 여인은 '도미의 처.'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는 구례현의 <지리산녀>

백제는 대방ㆍ일본과도 혼인 관계를 맺었다.
개루왕은 맏딸을 왜국 웅략천황에게 시집보냈고,

왕족 신립공주는 광인천황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그에게 시집가서 훗날 황후가 되어 환무천황을 낳는다.
의자왕의 아들 풍장은 왜국에 인질로 가 있는 동안에
다신장부 누이와 혼인은 백제와 일본 사이에 정략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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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천년 역사이라 더욱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라 사람들은 남녀의 차별을 크게 두지 않았다.

진흥왕 때 화랑 전신이라 할수 있는 원화제도
그당시 우두머리는 여자였고 그 아래로 화랑들
연애 기회도 주었고 자유결혼도 가능하게 했던듯

신라 여인들은 재혼과 이혼도 가능했던 듯.
신라 설화에는 열녀를 표창한 기록이 없다.

신라 왕실에서 공주가 재혼하는 일이 있었고,
도화녀는 남편 사후에 왕의 아들 비형랑을 출산.

처음 왕이 도화녀를 유혹했을 때
두 남자를 섬기지 않는다던 그녀.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
"되겠습니다."

신라의 경우 남자 쪽에서 혼수를 마련한다
옛 백제 전라도에서는 여자가 혼수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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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간다."
"장가 든다."
"시집 간다."
"결혼 한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널리 쓰는 말.
그 말만 들어봐도 짐작이 가는 풍습.
결혼이란 뜻은 같아도 풍습은 제각각.

"장가 간다."는 모계사회 풍습 말투.
"장가든다."는 고구려 풍습에서 유래.
"시집 간다."는 이조 유교사상 소산물.

모계사회의 집주인은 남성이 아닌 여성.
모든 재산의 상속권은 여성에게 대물림.
고구려 혼례 풍습은 모계사회로부터 유래.

"이조 중반 유교문화가 정착되며 남녀유별.
"시집 간다."는 말은 이조의 남성 우월 사상.

이조 초기에는 유교가 정착되지 않아 남녀평등
이조 중반에는 유교가 정착되며 여성의 지위 하락.
임진왜란 당시 남성이 많이 죽자 남성 우월론 팽배.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을 때마다 남성 우월사상이 팽배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남성우월 시기는 불과 300년 미만.
전세계적으로 나라가 평화로우면 남녀평등 또는 여성우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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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마다 다른 다양한 혼례 풍습.
지리산 자락은 한반도 풍습이 모여있는 곳.
아울러 고대 중국의 축소판 같은 지리산 자락.

하여,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혼례풍습을 알아보자.
아울러, 고대 중국 소수민족 결혼풍습까지 알아보자

...........고구려의 혼례 풍속...........
양가 부모의 승낙을 받아 약혼하면,
신부집 본채 뒤에 ‘사위 집’을 짓는다.

혼례 날 해질 무렵 신랑은 신부집 문 앞에서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큰절을 올린다.

신부와 함께 잘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면,
동네 사람들은 비로서 신부집으로 모여든다.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 싸인 신부집 문앞의 신랑.
두 번, 세 번 신부와 잠자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신부의 부모가 문을 열고 신랑의 간청을 허락하면,
신랑은 ‘사위 집’에 들어가 신부와 첫날밤을 보낸다.

신랑이 가져온 돈과 폐백은 ‘사위의 집’ 곁에 쌓아 둔다.
‘사위의 집’에서 아이를 낳고야 남편의 집으로 돌아간다.

고구려에서는 형이 죽으면 형수를 동생이 아내로 삼는다.
이런 결혼 형식은 부여, 흉노 등 북방 민족 사이에서 공통.

데릴사위 제도처럼 혼전 동거하는 풍습은 매매혼(교환혼) 흔적.
미개 종족 간에는 며느리를 얻을 때, 자기 집 딸이나 누이를 제공

이 교환혼의 발달된 형태가 노역혼으로 일정 기간 노동력을 제공
그후에야 신부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 데릴사위 제도.

딸, 아들이 혼기에 임박했다는 것은 노동력으로 경제적 가치를 의미
혼례는 노동력을 주는 것이라, 그 대가로 첫 아들을 낳을 때까지 봉사.
전통 혼례장소가 신부집, 또는 신부집에서 사흘 간 머물고 친가에 오기.

혼전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재물 보내기, '장가 간다.'
처가살이의 유물이고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형사취수혼'은 씨족 사회에서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결혼 관습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여자가 다른 씨족에게 재혼하면 재산과 인적인 손실.
그것을 막고 인구를 늘리려고, 홀로 된 형수의 부양하는 풍습이 관례.

유목민은 이동하는 생활이라 배우자를 구하기 어려웠다.
'형사취수혼'은 20세기 초까지 화전민에게 남아있던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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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민족은 옛부터 혼례를 관혼상제 통과의례로 중시.
통과의례란 출산, 성인식, 혼례, 장례식의 의례를 말한다.
한반도의 혼례는 두 가문의 결합 및 부부를 인정하는 의례.

삼국시대에는 불교식의 화혼례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혼례가 체계화되고 형식과 격식을 갖추게 된 것은 이조시대.
고려 말에 주가의 '가례'를수용하며 그 바탕을 다지기 시작했다.
혼례 의식이 서민에게까지 확산된 시기는 이조후기로 보여진다.

.............................이조의 혼례 풍습..................................
이조 중기에는 이미 예서가 한글로 번역되어 보급되기도 했다.
이조 후기 사대부 양반가를 중심으로 유교식 혼례 절차가 성행.

<사례 편람>은 구한말 사대부들이 규범으로 여겼던 의례 예서.
의혼, 납채, 납폐, 친영으로 혼례를 구분한다는 절차가 씌여있다.
실제 혼례 절차 관행에서는 의혼, 대례, 후례, 등으로 나누어진다.

의혼은 중매인 통해 양가 조율에서 대례를 치루기 전까지 절차.
남자 16세~ 20세, 여자 14세~ 20세를 혼인의 적령기로 보았다.

납채는 중매인 통해 신랑측이 신부측에게 청혼서 전달하는 절차.
연길은 신부 측에서 신랑 집에 택일단자를 전달하는 `혼례의 절차.
납폐는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예물 송복 패물 혼서지를 보내는 절차.

대례는 의혼 절차를 거쳐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행하는 모든 의례.
신랑 측이 신부 집에 가서 기러기(목안)를 전하는 의식인 전안지례.

교배지례 = 신부집 마당에서 신랑과 신부가 마주보고 절하는 혼례 의례.
합근지례 = 신랑이 신부와 술을 나누고 신부 족두리를 벗기는 신방 절차,
신랑 다루기 = 신부 측 젊은이들이 하는 동상례 등은 모두 대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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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洞房)................................
신혼부부가 첫날 밤을 보내는 동방은 동굴 동(洞)을 쓴다.
진시황 폭정을 피해 화산(華山)으로 도망친 아방궁의 미녀.
삼고낭은 옛 애인 심박(沈博)이라는 書生과 함께 야반 도주.
산속 동굴에서 나무가지로 향을 피워 천지신명을 주례로 혼례

그곳 바위 아래에 있는 동굴을 신방 삼아 첫날 밤을 보냈다.
원래는 신부 집의 방을 뜻하지만 지금은 신혼부부가 사는 방.
신방에 화촉을 밝혀 놓는것을 화촉동방(華燭洞房)이라고 한다.

신랑은 사모관대를 벗고, 신부측이 마련한 두루마기로 바꿔 입는다.
'관대벗김' 후 신부와 간단히 술을 나눈 다음 족두리와 예복을 벗긴다.
이때 신방 창호지를 뚫어 엿보는 풍습을 '신방(新房) 엿보기'라고 한다.

신방 촛불은 입으로 불면 불길하다 하여 신랑이 옷깃으로 끈다.
첫날밤을 보낸 아침 신방에는 잣죽이나 떡국을 들여보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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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들의 다양한 결혼 풍습................
중국인은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이 수천년 간 뒤섞여 형성.
중국의 총 면적은 960만㎢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약 44배.

이 영토의 2/3는 중국 인구 6%인 55개 소수 민족의 영역.
94% 한족을 제외하면 풍속, 종교, 혈통, 언어가 각양각색.

55개 소수민족의 분포를 보면, 동북 내몽골 지역에 7개 민족
(조선족, 몽골족, 허쩌족, 만주족, 다워르족, 원크족,어 룬춘족)

서북 지역에 14개 민족(후이족, 투족, 빠오안족, 위그르족,
키 르기즈족, 뚱쌍족, 싸라족, 위꾸족, 하사크족, 백러시아족,
타타르족, 씨 버족, 우즈베크족)과 서남 지역의 25개 소수민족

티베트 족, 러빠족, 이족, 하니족, 리수족, 라후족, 칭뽀족, 아창족,
누족, 두룽 족, 미아오족, 뚱족, 겔라오족, 먼빠족, 치앙족, 빠이족,
다이족, 와족, 나씨족, 푸랑족, 떠양족, 지노족, 푸이족, 수이족 (25족)

중남동 지역에 9개 민족(장족, 무라오족, 징족, 리족,
야오족, 마오난족, 투쟈족, 써족, 까 오산족)이 있다.

이들 소수민족의 결혼과 장례 풍습은 각각 다르다.
<티베트족>은 장남이 결혼하면 그 형제가 동시에 결혼
한 여자를 공동의 아내로 공유하는 '형제 일처제'의 풍습.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연장자인 맏형 만 아버지가 되며,
동생들은 전부 리로이(삼촌)로 부르는 기이한 결혼 제도.

<러빠족>은 남편이 사망하면 그 부인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
반대로 부인이 먼저 사망할 경우 남편은 부인의 자매와 재혼.
<하사크족> <원크족> <두룽족> <미아오족> <위그르족> 공통.

<나씨족>은 운남성의 리지앙 유역에 살며 독특한 결혼풍습.
남자는 밤에 처가에서 아내와 동침후 새벽에 혼자 귀가한다.
혼자 식사를 한 뒤 다시 처가에서 노동에 종사하는 생활풍습.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가에 아무 때나 출입할 수 없다.

운남성 린창, 푸롱, 쓰마오지구의 <와족> <리후족>은 모계사회.
모든 재산은 여자에게 상속되며, 자녀도 어머니 성씨를 따른다.

대륙의 남방 지역에 사는 <뚱족, 푸이족, 야오족, 칭뽀족> 등등.
여자는 혼인후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 친정에서 결혼생활을 한다.
이 가운데 뚱족은 제삿날에만 자기 아내를 잠시 시댁에 데려간다.

<푸이족>은 결혼 당일 신부가 신랑집에 가서 인사만 하고 돌아온 뒤
친정에서 생활하며 신랑집에 들러도 남편과 같은 방을 쓰지 않는다.

<미아오족, 칭뽀족, 나씨족> 거주 지역에서는 약탈혼 풍습.
약 1,000여 년 전 북방의 말갈족은 신부를 약탈한 혼례풍습.
바로 이러한 약탈 혼례 풍속이 남방 지역 민족에게도 남아 있다.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부모의 동의없이 색씨를 납치해 와 결혼.
딸이 납치된후 신랑감이 마음에 들면 중개인을 통해 결혼을 승낙
처가에서 반대하면 처녀를 돌려보내고 돼지 두 마리를 잡아 바친다.

운남성 <푸랑족> 여성은 젖가슴이 보일듯 동여맨 통치마 전통복.
기혼 여성은 상의를 입고, 미혼 여성은 통치마만 입는 풍습이 있다.
<푸랑족> 여성은 이빨에 새까만 칠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여긴다.

떠홍(德雄)지역에 사는 <칭뽀족> 미혼여성은 바지기혼 여성은 치마.
<하니족> 여성은 머리를 세 가닥으로 땋으면 미혼 두 가닥이면 기혼.
<수이족>은 세 가닥으로 땋아 두 줄로 묶고 조개 껍질 구슬 장식모자.

<빠리족 나씨족, 치안족> 여성은 오른쪽 가슴이 살짝 보이는 웃옷.
치피오는 두루마기와 유사하고 그 속에는 가랑이 부분이 터진 바지.
팬티는 입지 않고, 머리에는 여러 겹으로 만든 터번 을 쓰고 다닌다.

특히 빠이족 부녀자들은 깨끗한 블라우스에 알록달록한 조끼와 앞치마
머리에는 자수한 리본을 꽂아 정결하고 말쑥한 모습으로 맵시를 부린다.
양 어깨에 해와 달을 수놓은 망토에 울긋불긋 어깨띠를 두른 나씨족 여성
미혼 여성은 은구슬 모자 옆에 조개로 만든 길다란 장식품을 달고 다닌다.

운남성에 사는 <와주족>의 주식은 옥수수와 빨간 쌀이다.
빨간 쌀과 온갖 향료를 넣어 죽도 밥도 아닌 수분이 많은 밥.
그 밥에 돼지 피를 붓고 고추와 부추를 썰어 넣은 ‘홍생(紅生)국.

운남성의 린창, 쓰마오, 추슝 지역에 사는 다이족의 주식은 찹쌀.
이모작의 물벼 농사로 수확한 찹쌀은 품질이 우수해 명성이 높다.
이들은 대나무통에 찹쌀과 물을 채워 지은 찰쌀밥에 반찬은 '난미'
‘난미’라는 간장은 게살과 땅콩을 갈아 만든 다이족만의 노하우 식품.

다이족이 정력 강장제로 즐겨 먹는 것으로 쥐고기 요리가 있다.
‘하우즈’란 쥐를 키워 새끼를 낳으면 40일 동안 꿀과 물을 먹이고
40일이 지나면 청죽사 독과 물을 20일간 먹인 후, 말린 귀한 요리
몸이 약한 사람이나 정력이 약한 사람만이 먹는 귀한 약으로 취급.

<먼빠족>은 장방형 가옥에 살며 일처다부제 결혼 풍습이 있다.
티베트 자치구와 청해성에 거주하며 '투장판'이란 토담집 가옥.
화장실은 집옆에 있는데, 대부분 용변 후 보드라운 나뭇잎을 사용.

이들은 7-8평쯤 되어 보이는 좁은 공간에서 주거 생활을 한다.
중간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은 거실이고 오른쪽은 주방 겸 식당

봄이 되면 가축과 양떼를 몰고 긴 유목 생활을 시작 한다.
봄, 여름 , 가을 3계절은 초지에서 울긋불긋한 텐트형 가옥
겨울이 오면 가축을 이끌고 투장팡 토답집 가옥으로 돌아온다.

일처 다부제로 살아가는 가옥 한쪽 모서리는 주방 겸 도살장이고,
그 아래 다섯 남자의 침실, 여주인 침실은 야생 표범 가죽이 깔린 방.
여주인의 지시에 잘 따라야 부인의 잠자리에 불려 갈 수 있다고 한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한 사람의 부인이 5명의 남편을 데리고 살지만
한번도 남편들끼리 다툼이나 부인의 말을 거역하는 법이 없다는 점.
정부는 일부 일처제를 권유하지만 이들 민족은 일처 다부제를 고수

<이족>처럼 전통 씨름을 즐기는 동북 지방에는 우리 동포인 조선족
몽골족, 타타르족, 카자흐족, 키르기즈족, 씨버족, 라후 족, 위구르족
< 나타모>란 몽골어로 오락(씨름, 경마, 활쏘기, 양젖 짜기)이란 경기.

나타모에서 최고의 승자가 되면 구경꾼들이 말젖을 뿌려 준다.
<키르기즈족>과 <위구르족>은 승자가 구경꾼 중 부인으로 선택
위구르족은 일부 다처제이라 승자는 여러 부인을 거느릴 수 있다.
마을 처녀들은 이날을 위해 예쁘게 몸단장을 하고 간택을 기다린다.

<뚱쌍족>은 아내에게 손님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는 풍습이 있다.
이들은 남자 손님이 오면 집에 여자만 남겨 놓고 남자들은 가버린다.
“집을 비워 줄테니 손님은 나의 아내들과 재미있게 보내길 바랍니다“

“나는 밤새도록 사원에서 여러분과 나의 처들을 위해 기도하고 왔다“
다음날 아침에 주인은 손님이 성의를 무시한 것에 알면 섭섭해한단다.
그들은 전통 이슬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들 풍습에 따라 신앙 생활

이슬람 교도처럼 신앙 고백, 예배, 단식, 희사, 순례를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백산파(白山派) 이슬람교를 믿는 민족은 율법에 따라 신앙 생활

후이족, 위그르족, 하사크족, 타지크족, 타타르족, 키르기즈족, 우즈베크 족
이들은 비교적 정통적인 신앙 생활을 하며 철저하게 규율을 지키는 신앙생활
단식 기간인 9월 한달은 성행위도 하지 않고 순례 때에 메카(사원)를 순례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에 가면 반드시 청진사(淸眞寺)란 사원이 있다.
중국의 대표적 이슬람 사원은 꽝쩌우에 있는 광탑사, 씨안의 청정사,
북경에 있는 청진사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카바‘이다.

이들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정치, 경제, 문화, 정신 면에서 큰 영향
이들 민족의 전통적인 풍습과 습관이 점점 종교습관으로 바뀌었다.
돼지고기, 피, 죽은 동물은 일절 먹지 않는 종교적인 습관을 따른다.

그러나 뚱쌍족, 싸라족,빠오난족이 믿는 흑산파 이슬람교
그들 본래의 원시적인 종교와 뒤섞여 있는 풍습들도 많다.
이슬람교는 당나라 때 아랍 상인들이 중국에 전파했단다.

원나라 때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아랍 민족들이 대거 중국으로 이민
특히 실크로드에 살고 있던 후이족, 우구르족, 하사크족, 키르기즈족,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타타르족, 뚱쌍족, 싸라족, 빠오난 족(10 민족)

중국인은 불교 도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
중국인 대부분 무신론, 인간과 하늘이 조화를 중요시.
중국인의 종교 가치관은 대인관계를 위한 수단에 불과.

중국은 다양한 종교 풍습 및 소수민족이 공존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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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일대는 우리나라 속의 역대 중국 축소판.
티벳고원에서 황하강 양자강 하류에 이르는 영역.
한반도 조상 뿌리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티벳.

'티벳고원은 한민족에게 뿌리깊은 영혼의 고향.'

.....................첫날 밤에서 무덤까지 혼례의 길.......................
신혼부부가 첫날밤에 '화촉을 밝힌다'는 말은 성적 결합을 상징.
촛불의 하얀 빛은 동정과 순결의 상징, 촛대는 남근, 촛불은 여성.

촛불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상징한다.
촛불은 지상에 사는 사람의 뜻을 하늘에 전하는 매개체
이 때 촛불은 신단수, 솟대, 탑 등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혼례(昏禮)에 ‘날 저물' 혼(昏)자는 음양 결합의 상징이다.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봉황은 용과 함께 왕을 상징하는데
혼례복에 봉황 문양은 결혼날만큼은 황제나 황후임을 상징
국가에서도 이날 만큼은 사모관대 사대부나 임금복장을 허락.

혼례 때 신부 혼수감 속에는 요강은 필수조건처럼 따른다.
요강 속에 찹쌀을 넣어가는 관습은 찰떡같은 부부금슬 믿음.
거울은 남녀의 정표로서 깨진 거울이 다시 둥굴게 만남을 기원.

혼례날 신랑의 파란 부채나, 신부의 빨간 부채는 동정의 상징.
부채를 거둠으로 동정을 주고 받는다는 상징을 나타내게 된다

남자 20세 성인식에서 갓을 씌우는 관례(冠禮)의식이 혼례.
상투를 틀고 갓을 씌우는데, 상투나 갓은 성인 남자의 상징.
여성 15세 전후 머리를 올려 쪽짓고 비녀 꼽는 계례(竺 禮).

폐백시 대추는 여자에게, 밤은 남자에게만 주기도 했다.
대추는 여자가 한 씨만 받아 자식을 낳으라는 상징적인 뜻.
밤은 남자가 한 배에서만 여러 자식을 낳으라는 상징적인 뜻
대추는 꽃 하나에 열매 하나만 달리고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다

대추는 남성고환 상징이고 다산을 뜻하는 과일.
하여, 폐백시 대추와 밤을 신부에게 던져주는 것
임신을 빨리 하라는 바램이 깃들어있는 과일이다.

'잔치국수는 장수 백년해로를 바라는 전통 혼례음식.'

성주 단지의 소금을 먹고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는다는 믿음.
소금은 생명력의 상징이며, 소금장수 정력이 왕성하다는 俗信.
오이 가지 해 별 용 학 황소 도끼 석웅황 훤초 수탉 등은 아들 꿈
복숭아 ·구슬 ·꽃 ·열매 ·뱀 ·금붕어 등은 딸 꿈이라고 해몽을 한다.

부인이 난산할 때, 남편 상투를 잡고 분만하면 순산한다.
부인 배에 남편 아래 속옷이나 그 띠를 감아주어도 순산.

그러나, 새색씨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시댁에서 쫓겨난다.
하여, 이조시대엔 온갖 비방을 동원해 아이를 낳으려 했다.

기자암은 성기(性器) 모양, 성교(性交) 형상, 말 또는 거북 모양.
공알바위 속으로 던진 돌이 들어가면 임신한다는 믿음의 여근석.
말바위에 여자가 올라타 성교 동작을 취하면 잉태한다는 붙임바위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산동리 팔왕마을 민속자료 14호, 15호 남근석.

남근석은 생명, 견고, 불변, 생산, 창조, 신성, 장수, 남성의 상징.
묘소의 석물, 탑(塔), 석불(石佛), 비(碑), 모두 남근석과 관련있다.
옛부터 석불 망부석의 코를 가루내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
한반도의 석불 및 마애불상의 콧날이 성한 것이 없을 만큼 민간 신앙

비문의 남성과 관련된 자(子)·남(男)·문(文)·무(武)·인(仁)·인(人)·예(禮)
·지(智)·용(勇)·검(劍)·필(筆) 등의 글자가 마모된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강원도 울진 지방의 기자암에는 색다른 제례 풍습'

계곡에 목욕후 마른명태와 7~9번 씻은 쌀밥위에 실타래를 얹고 재배.
실타래 실끝을 기자암에 묶고 부인의 하복부에도 연결해 동여 묶는다.
그리고, 임신하기를 기원하여 어떤 영감이 느껴질 때까지 밤새도록 치성.
여성이 길일을 택해 절한 후 쓰다듬거나 올라타 배를 대고 비비기도 한다.

아들 많은 집 부억칼을 훔쳐 만든 여성의 패물 '작은 도끼'.
여성 아래 속옷 허리끈에 묶어 지니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
달걀 껍질을 꼬챙이를 꿰어 출입문 위에 걸고 기원하면 득남.
우물가에 토란심기 뜰에 대추 석류나무는 자손번창 기원풍습.

아이가 태어나면 백일 또는 돌 잔치를 치뤄 무병장수를 기원
'실'은 국수와 함께 속성이 길기 때문에 수명장수를 상징한다.
아기의 첫옷 '배냇저고리'는 약한 피부를보호하려고 손 바느질.
장수를 바라는 마음에서 단추대신 '7 겹의 흰실 끈'으로 만든다.
'돌옷의 허리에 매어주는 긴 돌띠'는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

우리 민속에 정월 첫 묘일(卯日)은 장수를 기원하는 날이다.
남녀 명주실 옷고름 옷 풍습은 무병 장수를 바라는 민속신앙.

산 사람은 동쪽이 상석, 죽은 사람은 서쪽이 상석이다.
남북은 북쪽이 상석, 남녀는 남자, 문무관은 문관이 상석.
신위와 묘지의 시신은 남편이 서쪽이고 부인이 동쪽이다.

환갑은 갑(甲)이 60년 만에 한바퀴 도는 날의 생일.
수를 다한 것이고 그 이상 사는 것은 덤으로 여겼다.

환갑날 부모님께 아들은 2번, 여자는 4번 절을 올린다.
그 이유는 환갑은 생의 끝을 뜻하므로 제사 때처럼 절한다.
제사상과 같은 이유는 인생의 끝이며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진갑은 갑(甲)의 시작이다. 하여 진갑 상은 돌상처럼 차린다.
반함은 불린 쌀을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시신의 입에 떠넣는 것

이것은 죽은 자가 저승까지 갈 때 먹을 식량을 상징한다.
쌀을 떠넣을 때는 시신의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가운데 3곳

첫술은 “백석이요”, 둘째 “천석이오”, 셋째 “만석이오”라 한다.
다음에 동전도 세 조각을 내어 “백량, 천량, 만량”이라고 한다.
이 동전은 사자가 저승까지 가는 노자(여비)를 상징하는 것이다.

수의의 흰색은 밝음과 영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혼불멸을 상징한다.
수의는 죽음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 탄생을 상징하는 의복.
흰옷은 저승길을 밝게 비추어 환생에 도움주는 길잡이가 된다고 여겼다.
흰색은 고결, 순결, 순수의 상징이며 밝음, 영원불멸, 재생을 뜻하는 색상.

혼기 찬 처녀 원귀를 ‘손각씨’
총각이 죽은 원귀를 ‘몽달귀신’

결혼 못한 처녀 총각은 생에 대한 미련 때문에
죽어서 산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른다고 믿었다.
하여, 미혼 남녀를 부부로 맺어주는 허혼례(虛婚禮)

혼백 결혼식을 통해 이승의 한을 달래준다는 의미
성인이 되게 해주어 맺힌 한을 달래주는 뜻이 내포.

처녀가 손각씨가 될까 염려되면 남자옷을 입혀 엎어서 묻었다.
그리고, 가시나무를 관 주위에 넣어 원귀도 나올 수 없도록 봉쇄.
처녀 시신에 남자의 옷을 입히는 것은 남성과 간접 접촉으로 위로.

거꾸로 엎어 매장하는 것은 다시 일어나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가시나무를 넣어 가시에 찔려 출입 못하게 봉쇄하는 것과 같은 의도.
또는 네거리 길목에 처녀 시신의 머리에 채를 덮어씌워 묻기도 했다.

이는 귀신이 체구멍을 헤아리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잊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세다가 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느라 잊어버리란 뜻.
원귀가 계속 숫자만 반복 헤아리며 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 의도.

총각이 생전에 좋아하던 처녀를 못잊어 죽으면 악귀.
승천하지 못하고 그 처녀에게 붙어 괴롭힌다는 믿음.
이럴 땐 처녀 쪽에서 무당굿을 통해 한을 풀어주었다.

장례식이나 고인을 추도하는 제사에는 향을 태웠다.
옛부터, 양반 종가 집에는 뜰에 으례 향나무가 있었다.
혼례의 길은 촛불에서 시작되어 향의 연기로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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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혼례 제도를 보면, 부여에서는 일부일처제였고,
옥저에서는 돈받고 혼인하는 매매 결혼했던 기록이 있다.
고구려 혼례제도는 모계 씨족시대로부터 풍습으로 보인다.

고려를 거쳐 이조에서는 유교의 가르침에 의한 혼례 절차.
서구문화 영향으로 예식장 혼례 또는 간소화된 전통 혼례.
지구촌에서는 혼례풍습이 나라마다 이색적이라 흥미롭다.

................결혼과 처녀성에 대한 풍습...................
여자가 부족한 사하라 사막 '워오다베족'의 결혼풍습
총각은 곱게 치장하고, 처녀들 앞에서 온갖 아양을 떤다.
노래 부르고 온갖 교태를 부리다가 힘들어 혼절까지 한다.

1년에 한번 '제론볼' 축제 기간에만 결혼이 이루어지는 탓.
이때 처녀에게 간택되지 못하면 일년을 또 기다려야만 한다.

사흘간의 축제 중 남자는 50~60명씩 무리지어 얼굴에 분과 연지
귀고리 ,팔찌, 목걸이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여자들에게 온갖 아양.
워오다베족 처녀들은 키와 눈이 크고 애교가 많아야 이상형 남자.

일단 화장을 마친 남자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
처녀들 앞에서 키가 더 커보이게 발뒤꿈치 들고 눈동자도 돌린다.
사막의 살인적인 햇빛과 모래 바람을 맞으며 사흘 내내 춤을 춘다.

'총각 50명이 선을 보여도 처녀는 겨우 20 명 정도'.

사흘 간 간택받지 못한 총각은 짐꾸려 고향으로 돌아간다.
여자들에게 간택된 남자들은 축제의 현장에서 함께 하룻 밤.
성관계 없이, 서로 많은 대화를 통해 부부가 될 수 있을지 탐색.
뜻이 맞으면 결혼날을 잡고 신랑 측이 신부 측에 혼인 비용 전달.

결혼식까지 온갖 특권을 누리던 새색시는 첫날밤 어려운 고비.
워오다베족은 신랑 삼촌이 남성 목제 성기로 신부 처녀성 검사
이때 신랑은 문밖에서 기다려야 하며, 신부는 알몸으로 대기한다.

신랑 삼촌은 목제 성기로 신부 처녀막을 파열하여 확인하는 의식.
처녀성 확인은 첫날밤 힘들지 않도록 도와 주는 역할이라고 여긴다.
워오다베족은 처녀의 순결에 대해 엄격하므로 가문에서 확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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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담에서 바둑두던 마적도사
개울가에서 소피보던 마고할미.
마적도사가 베필이라 여긴 그녀.

둘 사이의 8딸은 훗날 8도 무당.

법우화상과 '제석천녀의 딸' 선녀.
스님과 무당 부부의 우리나라 원조.
스님은 불경을, 선녀는 무속을 전수.
백무당에서 8도의 무당으로 퍼진 8딸.

천왕성모와 스님이 만나 결혼해 낳아 기른 8딸
8도 무당이 되고 세째 딸은 하동 백무당의 원조.
무당은 모계사회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였다.

지리산 일대는 우리나라 모계사회 진원지.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전설 속의 이야기.
백제 근초고왕 전까지 존속했던 모계 풍습.

근초고왕 이후 남자 성씨를 따른 부계사회
당시 백제는 부여 씨 계열 귀족이 정권 장악.
중국 부여와 한반도 백제는 뿌리가 같은 계열.

'중국 부여, 백제, 일본은 부여 씨 민족.'

고인돌은 부여 계열 민족의 이동을 뜻한다.
부여 민족은 흰옷을 즐겨입는 모계사회 풍습.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도 전라도 옛 백제권 영역.

'혼례풍습도 옛 중국 부여 민족과 유사.'

유교를 숭상하고 신선놀음 풍류를 즐겼던 민족.
간통죄를 매우 엄하게 다스린 중국 부여와 백제.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법률적으로 엄격한 간통죄.

중국 부여 귀족층에서는 축첩제도가 성행.
부인들 간에 질투하면 죽여 산에 버릴 정도.
한반도 백제에서도 귀족 계층은 축첩제도 성행.

지리산 일대는 고대 중국 패망 왕조들의 정착지.
당나라의 고구려 유민 분산정책 흔적이 많은 삼남.
지리산 일대는 고려 초 귀화한 발해 유민들 정착촌.

고려 말 한때 세계의 4/5를 정복했던 원나라
원나라를 통해 고려 말에 들어온 각국 유민들.
지리산 일대는 우리나라 속의 고대중국 축소판.

'지리산 자락마다 다른 다양한 혼례풍습.'

결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
우리나라에서는 출신 지방과 가문을 중시.
옛부터 집안 기둥 하나 뽑을 만큼 허례허식.

'빚더미에 오를 만큼 결혼식 후유증.'

옛부터 과부 보쌈이 성행했던 삼남지방.
지리산은 보쌈 연인에게 사랑의 보금자리.
신분격차를 넘어서 안방마님을 보쌈한 머슴.

'의외로 궁합이 잘 맞는 안방마님과 머슴.'

늘 흠모만 하던 마님을 가까이 모시어 기쁜 머슴.
허구헌 날 독수공방 신세보다 차라리 행복한 마님.
이조 축첩제도 폐단으로 빚어진 이색적인 혼례 풍습.

이조시대 신분격차를 극복할 수 없었던 연인.
지리산은 축첩제도 신분 격차도 없었던 이상향.
예나 지금이나 지리산 깊은 산속은 사랑의 도피처.

'정한수 한그릇 떠놓고 단둘이 올리는 결혼식.'

지리산 일대에는 옛부터 다양한 혼례풍습이 공존.
워낙 다양한 성씨 가문이 모여살기 때문인듯 싶다.
하여, 지리산 일대의 색다른 혼례 풍습을 살펴보자.

'오늘날 신부 면사포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여자를 어망으로 납치해 혼인한 북유럽 바이킹.
신부의 면사포는 바이킹의 어망에서 유래되었다.
즉, 면사포는 유럽 바이킹이 사용한 어망의 상징.

'서양의 면사포는 영국 어망에서 유래.'

'여자아이가 울면 자루귀신이 잡아간다,'는 옛말.
이웃마을 여자를 자루에 넣어 도둑질하는 약탈혼.
우리나라에서 신부 면사포의 유래는 약탈혼 자루.

'용감한 자만이 미녀를 찾이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해오는 약탈혼 격언이다,
약탈혼은 전세계 4/5를 정복했던 원나라에서 비롯.
원나라에 80 여년간 지배를 받았던 고려 당시 풍습

'동양의 면사포는 원나라 자루에서 유래.'

고대부터 신분의 상징이나
종교적 목적으로 쓴 면사포.

'백색 웨딩 베일(wedding veil)'

13-14세기경 부터 널리 사용했다.
하여, 오늘날 널리 대중화 되었다.


.......
국수.
........


혼례 음식 및 여름철 더위를 피하는 음식.
쌀가루나 밀가루로 사리로 뽑아 만든 음식.
중국·일본·베트남 등 젓가락 문화권 음식.

국수국물은 고깃국물·조개국물·새우국물 등
장국이나 동치미 각종 채소 국물을 쓰기도 한다.
고깃국물을 만들 때에는 시원한 맛이 나야 제 맛.

국수꾸미는 삶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
고기와 무·김치·생나물 등의 채소꾸미도 쓴다.
냉면 더운국수 회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볶음국수

이조 최고의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달걀을 밀가루에 섞어 반죽해 만든 칼국수
꿩고기 삶은 즙에 말아서 쓴다."고 했고,

〈시의전서 是議全書〉에는

"탕무를 넣은 고기장국에 국수를 토렴하여 말고
잡탕국에 웃기를 얹는다[溫麵法]"는 기록이있다.
하여, 국수는 오래전부터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혼례 때 국수는 월남국수와 유사.
월남과 우리나라 음식문화는 무관하지 않은 듯.

'오래 살고 싶으면 국수를 먹어라' -속담.

생일, 회갑연, 결혼식 등 특별한 날 먹는 국수
음식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긴 까닭에 '장수'의 뜻.

또 결혼식날 잔치 국수를 대접하는 것도
부부의 결연이 오래 이어지길 기원하는 뜻.

국수는 한나라 때 밀이 중국에 들어오고
여기서 얻은 밀가루를 '면(麵)'이라하고,
면으로 만든 제품을 '병(餠)이라고 했다.

이 밀가루 제품이 남송시대에 크게 유행되어
오늘날 중국 북부에선 떡무리인 '병'을 즐겨먹고
남부에선 국수무리인 면을 즐겨 먹는 풍습이 생겼다.

<고려사>나 <고려도경> 등에 국수가 고급 음식이요,
제사때 주로 쓰이며 절에서 만들어 팔았다는 기록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국수문화가 전래된 듯 보인다.

그러나, 밀이 귀해 상류층 사람들만 즐겨 먹었다.
따라서, 국수는 제사, 잔치 등 특별한 날의 음식.
혼인잔치에 국수를 내는 것은 바로 고려시대 풍습.

이조시대에는 국수가 대중적인 음식으로 정착.

중국에서는 '국수를 늘인다'고 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국수를 빼거나 뽑는다' 한다.
그것은 국수를 만드는 과정이 다르기 때문.

중국에서는 반죽을 잡아늘이는 납면법으로
우리나라는 착면법으로 바가지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빼거나 뽑아서 찬물에 받아 굳혔다.

'우리가 가장 즐겨 먹는 냉면은 착면법 면식.'

물에서 건진 면이기에 국수라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메밀이 흔하여 메밀국수가 많았고
밀국수가 우리나라에 흔해진 것은 1900년대 후.

녹두국수, 감자국수, 칡국수, 당면 등 다양한 국수.
지역적으로는 북쪽에선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냉면,
더운 남쪽에서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온면과 국수장국.



궁합.



궁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다.
오븐에 볶은 뜨거운 감자 깊숙히 스며든 치즈
겻들인 우유는 BC 3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음식.

'부추와 보글보글 끓인 된장국도 찰떡 궁합.'

냉면과 식초, 살얼음과 동치미.
찹쌀떡과 콩가루가 만난 인절미.
숙취 해소에 좋은 우거지 선지국

생선회와 초고추장. 찐고구마와 김치.
조개탕과 쑥갓. 소주와 오이.홍차와 레몬.
수정과 속의 잣 곶감. 삼계탕 속의 잣 인삼.

프림 설탕 커피에 겻들인 삶은 달걀 맛.
뜨겁고 진한 커피에 겻들인 치즈 한조각.
기름진 돼지고기와 새우젓의 절묘한 조화

함께 먹으면 궁합이 맞지 않는 음식들.
도토리묵과 감, 미역과 파.산채와 고추.
겉보기와 다르게 도통 어울리지 않는 맛.

'남녀 사이에도 찰떡 궁합이 있는 듯.'

궁합을 보기 시작한 최초 유래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였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오랑케 흉노족이 강성할 무렵.
흉노적 왕이 한나라 왕을 협박하며 공주를 달라고 강제청혼

한나라 왕은 여러 신하와 함께 묘책을 강구하게 되었는데
당시 청혼을 거절하기 위한 술책으로 내놓은 대안이 궁합
신랑신부 출생 생년월일시를 보아 길흉을 점치는 혼인의례.

신랑집에서 사주 단지를 보내오면,
신부집에서는 사주로 궁합을 본다.

띠에 나타난 동물의 자연적인 생활 습성
그것으로 미래의 길흉을 점치는 혼례의식.
신랑신부 사주를 오행에 맞춰 점치는 궁합.

12지(支)에 따른 '겉궁합'과
오행에 따른 '속궁합'이 있다.

궁합을 보는 법은 연(年)·월(月)·일(日)·시(時)에서
각각 천간(天干) 지간(地干)을 찾아 오행 궁합을 찾는다.
시속(時俗)에서 속신 남녀 궁합 길흉 도표는 다음과 같다.

길흉을 평가하는 방법은 간지를 보아서 남과 여를 대비
'월·화·수·목·금·토'를 대비하여 좋고 나쁨을 결론.

男金女金× 男水女火○ 男金女木× 男水女土○
男金女水○ 男火女金× 男金女火△ 男火女木○
男金女土○ 男火女水× 男木女金× 男火女火×

男木女木× 男火女土○ 男木女水○ 男土女金○
男木女火○ 男土女木× 男木女土× 男土女水×
男木女金× 男土女火○ 男水女木○ 男土女土○

男水女水○

제주도 지방 가문에 따라서는 혼인성립의 결정적인 역할
궁합이 나쁘면 양가는 서로 결혼하지 않는 것이 당연지사.
요즘은 궁합을 덜 중요시하지만, 여전히 궁합은 결혼 절차.

신랑 신부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첫날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신랑 매달기.



동상례(東床禮)라는 신랑 매달기 놀이는 혼인 풍습.
신랑이 신부 집에서 혼인 첫날밤 또는 3일 안 재행 날.
신부 측 일가친척 또는 동네 사람들이 신랑다루기 일종.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는 옛 혼례 풍습중 하나.

일제 치하에서 신식 예법으로 바뀌어 사라졌던 풍습
속초에서는 왁달계 계원들이 '사위단다'며 신랑 매달기.
동상례는 '사위를 맞는 신부집에서 대접하는 예의'란 뜻.

"처녀 훔쳐간 도둑의 발크기를 잰다" 며 신랑 호출.
홀치기를 하여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며
"처녀를 훔쳐간 죄가 크다''며 신부까지 부르라 시킨다.

장모가 음식과 술을 대접하면, 신랑 매달기 놀이는 끝.
함팔기, 신방엿보기처럼 지나치면 예의에 어긋나는 놀이.
옛부터 관혼상제 통과의례 중 하나로서 중시한 혼례 풍습.

통과의례란 출산, 성인식, 장례식, 등 거쳐야하는 의례
혼례가 보다 체계화되고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이조시대
고려 말 주가의 <가례>를 수용하며 밑바탕을 다지기 시작.

지배 계층의 예절로 규정되어 시행된 이조 초기 풍습
일반 서민의 예절로 확산된 것은 이조 후기로 보인다.
이조 중기에 이미 예서가 한글로 번역되어 보급되었다.

사대부들은 의혼, 납채, 납폐, 친영으로 혼례를 구분
실제 관행에서 의혼, 대례, 후례, 등으로 나누어진다.
남자 16세~ 20세, 여자 14세~ 20세를 혼인의 적령기.

양가가 중매인을 통해 의견을 주고 받도록 한다.

남자측에서 여자측에게 청혼서를 전달하는 ''납채'
신부측에서 신랑집에 택일단자를 전달하는 ''연길'

신랑측에서 보내는 예물 송복, 패물. 혼서지 등등.
함에 넣어 보내는 ''납폐''가 모두 의혼에 속한다.

대례는 의혼 절차후 신랑이 신부집에서 행하는 의례
신랑과 그 일행이 신부집으로 처음 가는 예절을 초행,
신랑이 신부집에 기러기를 전달하는 의식인 전안지례,

신랑과 신부가 마주보고 절하는 의례인 교배지례,
신랑과 신부가 서로 술잔을 나누는 의식인 합근지례,
신랑이 신부와 술을 나누고 신부 족두리를 벗기는 신방,
신부집 측근들의 신랑다루기 동상례 등이 대례에 속한다.


대례가 끝나면 신부가 신랑집으로 오는 의식
신랑집에 신부가 와서 행하는 의식들을 후례.

신부가 시집으로 오는 혼례 절차가 우귀,
신부가 시집 식구들에게 절을 하는 현구례,
신부가 시집살이하다가 첫 친정나들이.. 근친.

목안(나무 기러기)는 동북아시아 공통 풍속.
동상례 현구례 신랑다루기 폐백은 고유 풍속.

조혼 풍속으로 신랑은 나이가 어린데
신부는 3 ~ 4세 연장일 경우가 많았다.
하여, 신방을 엿보는 풍속이 생겼다 한다.

첫날밤 치루는 절차를 문밖에서 알려주기.
신부가 첫날밤 도망치지 못하게 신방 지키기
신방 엿보기는 조혼에서 비롯된 풍속인듯 싶다.




신방 엿보기.



혼인 첫날밤은 신혼부부가 치루는 의식 중 하나.
부부 일심동체 과정을 확인하는 의식 신방 엿보기.
가까운 친척들이 신부를 지키려 신방을 들여다본다.

'문지방에 구멍 뚫고 뚫어지게 엿보는 눈길들.'

은장도를 지니고 정절을 목숨처럼 여기던 신부.
'남녀칠세 부동석'이라 신부 얼굴도 몰랐던 신랑.
사주단자 교환 후 혼례날에야 합방을 위한 첫날밤.

첫날밤 신부는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어머니 당부.
신부는 신랑이 아프게 하자 참다 못해 고함 쳤단다.
신부가 아프다 외쳐도 문밖에서 그러려니 했던 어머니.

"첫날밤에는 그렇게 아프단다. 참아라."

다음날 방안에 신랑은 도망쳤고 신부는 죽어 있었다.
신랑이 옷만 벗긴 것이 아니라 신부 가죽까지 벗긴 탓.
하여, '신방 엿보기' 풍습이 생겼다는 유래가 전해 온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이조에서는 조혼이 성행.
하여, 나이 어린 신랑이 첫날밤 신부와 합방이 서툴렀다.
오줌싸게 신랑을 첫날밤부터 지붕에 올려 놓기도 한 신부.

밤새 지붕위에서 울다가 떨어져 다치기도 했던 신랑.
혼인 첫날 밤부터 어린 신랑 버릇을 가르치려던 신부.
이조시대 대부분의 신랑 신부는 혼례날이 첫만남이었다.

사주단자 교환후 웃어른 뜻대로 혼인한 탓.
하여, 첫날밤 도망가는 신부도 많았다고 한다.
평소 이웃에 정분을 주고받던 옛 남자에게 도망.

신부의 야반도주를 막으려던 풍습.
첫날밤 신방 엿보기 혼례풍습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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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이 신부의 족두리를 벗기는 첫날밤 의식.
몽골에서 신부의 족두리는 여성의 정절을 상징.
남자가 족두리만 만져도 그녀의 정절을 범한 행위.

'족두리를 만지고 책임지지 않으면 곧 죽음.'

전국 어디나 쪽두리봉은 매우 위험한 곳.
목숨이 오락가락 할 만큼 위태로운 바윗길.
족두리봉은 무조건 위험한 곳으로 알면 된다.

....................족두리.....................
검은 비단으로 겉을 싸고 안은 딱딱한 종이와 솜
그 꼭대기에 칠보 장식을 해서 아름답게 꾸민 것.
원나라 공주가 고려에 시집올 때 쓴 이후로 유래.

지금도 예장용 족두리는 몽골의 사부녀(士夫女) 외출용 모자
신라 복식 산호주(珊瑚珠) 꾸러미의 도투락댕기도 몽골풍이다.

족두리는 광해군 때부터 겉은 검정 비단, 안은 자주 비단으로 싸고
속을 비게해 머리 위에 썼으며 우리나라 민간 풍속으로 정착되었다.
영조·정조 때 가체금지령이 내린 이후 성행했으며 근대 이후 혼례용

족두리의 종류에는 장식이 없는 민족두리,
호화로운 장식 꾸밈 족두리, 상례용 흰족두리
.................................................

첫날밤 신방 지키기 풍습은 몽골에서 유래.
약탈혼이 성행했던 몽골에서의 첫날밤 의식.
첫날밤 신부가 도망 못가게 밤새도록 지키기.

약탈당한 부인을 되찾으려는 전 남편을 방비.

몽골족 연인은 언덕위에서 공공연하게 정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 임을 알린다.
원나라 지배 하에 고려에 들어온 몽골 풍습.

과부 보쌈은 원나라 약탈혼에서부터 유래.
언덕 위에서 대낮에 벌리는 연인 간 정사.
청산별곡 쌍화점 등 퇴폐적인 고려 속요들.

몽골어에서 유래된 "야호"는 '가느냐’라는 뜻.
몽골에서 택시 기사에게 '야호’하면 고개를 끄덕.

인두, 송골매, 올가미, 바른쪽, 조랑말 등은 몽골어
조랑말은 '조르멀’, 얼룩말은 '알락머르’라 부른다.
토끼는 '톨라이’, 눈은 '누트’, 망치는 '만치’ 등.

미숫가루는 '미스가라’콩가루에 섞은 버터와 우유
돌하르방과 유사한 '훈촐로’서낭당과 비슷한 '오보’

실뜨기, 공기놀이, 굴렁쇠 굴리기, 씨름,
몽골 여인이 즐겨 쓰는 머리수건, 고수레,
신방 엿보기와 신랑 다루기, 활쏘기, 말타기

약탈혼이 성행했던 몽골족 원나라 풍습.
영역다툼에서 이기면 족장의 부인을 강탈.
징기스칸은 여러 부인을 거느린 몽골의 영웅.

원나라 지배 하에서 유래된 몽골 성풍속.
원나라 몽골족 군사들의 약탈혼에서 비롯
한편, 몽골족의 가부장 제도는 엄격한 편.

여러 부인들 간에도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본부인 중심으로 하는 엄격한 가부장제도.
이조시대 축첩 가부장 제도는 몽골의 풍습.


덧 말.

우리나라 혼례 풍습은 곧 지리산 일대의 풍습.
지리산 일대는 한수 이남의 중심에 위치한 때문.
신방 엿보기 풍습이 그 사실을 가장 잘 대변한다.

동상례(東床禮) '신랑 매달기'는 전통 혼례풍습.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혼인 첫날 또는 처가집에 오는 첫날.
처가 친척들이 모여 신랑 다루기 놀이.

구한말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한 혼례 풍습.
신부 친척들이 신랑의 한쪽 발을 묶어 잡고
북어로 발바닥을 때리며 웃음 잔치를 벌린다.

동상례(東上禮)란 사위맞는 처가에서 대접하는 예
처녀 훔쳐간 도둑 발크기를 잰다며 신랑 발 홀치기
신랑을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며 신부를 부르라 호통.

대체로 장모가 음식과 술을 대접하면 그만둔다.
함팔기, 신방엿보기 신랑 매달기 등의 혼례풍습.
지나치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 악습이기도 했다.


.......
꽃잠.
........


신랑 신부가 혼인 전까지 지키는 동정과 순결.
연애 결혼이든 중매 결혼이든 복잡한 결혼절차.
결혼식을 끝내고 단둘이 멀리 떠나는 신혼 여행.

신혼 부부가 몹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날밤.
몹시 서먹서먹하면서도 부끄럽고 쑥쓰러운 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만큼 서툰 밤이기도 하다.

.................꽃잠......................
경상도 남자와 여자가 신혼 첫날밤을 맞았다.
신랑이 신부 배 위로 올라가자 신부가 묻는다.

"뭐할라꼬예?"
"넘어갈라꼬"

몇 차례 그러는 동안 새벽녁 날 샐 무렵.
신랑이 마지막인 심정으로 한번 더 시도.
이번에도 안되면 아예 포기할 비장한 생각.

"뭐할라꼬예."
"넘어갈라꼬."

이제나 저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부.
너무나 서툰 신랑의 첫날밤에 지친 신부.
밤새도록 기다림에 지친 신부가 속삭인 말.

"고단할텐데 쉬어가이소."
................................

결혼후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
세상이 떠내려가도 모를 만큼 편하고 깊은 잠.

"은궐이 유난히도 아름답던 그밤의 꽃잠."

황진이가 서경덕을 사모하며 깊은 긴 겨울밤에
명주이불을 휘감고 몸부림쳤던 일을 묘사한 글.

은궐(밝은달)
꽃잠(첫날밤 잠자리)


사라져 가는 옛말.

그린내(연인)
꽃무리(불타는 사랑)
옴살(마치 한 몸같이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

다솜(사랑)
의초롭게(부부 사이에 정답게)
가시버시(아내와 남편)
비나리(축복의 말)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친지들을 초대해 집들이 한다.

집들이(갓 이사한 집이나 신혼집을 보여주는 일).
잡알이(새집을 인사 겸 구경삼아 찾아보는 일)

새내기(새색시)
신랑(새내기)

첫날옷(신부가 결혼하는 날 입는 옷)
이바지짐(결혼 예물)
풀보기(새색시가 혼인후 시부모를 뵙는 예식)

....................................
....................................

신혼부부에 관련된 우리말은 참 아름답다.
꽃잠은 첫날밤 새색씨 순결을 상징하는 말.
첫날밤 잠자리에 명주 수건을 깔았던 옛 풍습.

'행여, 꽃잠 흔적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배려.'

처녀막은 질 입구를 가리고 있는 얇은 근육 조직.
질 입구를 둘러싼 주름 조직에 난 지름 2cm의 구멍.
한 달에 한번씩 그 사이로 생리혈이 흘러 나오는 통로.

일반적으로 처녀막은 처음 성교할 때 파열되지만,
매우 약한 조직이라 성교 이외의 상황에서도 파열

자전거를 타다가 장애물에 심하게 부딪힌 적 있거나
승마를 오래 한 여성이라면 처녀막이 파열됐을 가능성
처녀막은 질 외부의 세균이나 박테리아 감염을 막아준다.

이조 시대 궁녀를 뽑을 때는 의녀들이 처녀막 검사.
'금사(金絲)' 처녀막이 온전한 여자만 궁녀로 선출.
이때 의녀가 검사 기록에 남긴 글이 무척 흥미롭다.

'금사마단(金絲未斷, 금실이 아직 끊기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