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48. (삼정마을. 휴양림. 광대골. 부자바위. )

donkyhote 2010. 10. 29. 02:39

삼정마을



1, 선유정(仙遊亭)의 유래.
2. 함양 삼정마을 가는 길 풍경.
3. 라마교의 초야권 풍습.


'실상사' '영원사'와 고락을 같이 한 삼정마을.
고려 선종 불교를 대표하는 '삼정산 7 암자 길'.
삼정마을을 이해하려면 먼저 선종을 알아야 할듯

실상사 앞 만수천과 뱀사골 물줄기가 만나는 인월
삼거리 동쪽으로는 천왕봉이 손에 닿을 듯 한 풍경.
그 아래 산내면 입석리 넓은 들판에 자리잡은 실상사.

실상사는 만수천을 끼고
풍성한 들판 가운데 위치.

동으로는 천왕봉 남쪽에는 반야봉,
서쪽은 심원 달궁, 북쪽은 수청산

지리산 사찰 중 평지에 자리한 절은 실상사와 단속사뿐.
단속사터에는 석탑만 남겨져 있는데 실상사는 여전히 건재.
증각대사가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처음 지은 실상사

불심깊은 흥덕왕이 태자선광(太子宣光)과 함께 귀의한 사찰.
증각대사는 선종을 크게 일으킨 실상학파(實相學派) 제 1대.
그의 문하에서 제 2대가 된 수철화상과 편운(片雲)스님 제자들

실상사 보광전 범종에 그려져있는 일본 열도의 지도.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열도를 친다.
실상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問) 최초의 선문이다.

귀족과 왕실에 결탁해 타락한 불교에 반기를 든 선종.
9세기 신 지식인들에 의해 수용된 선종불교의 상징 사찰

달마대사가 갈대잎을 타고 중국으로 온 이래 꽃핀 선법(禪法)
신라 젊은 스님들이 배워와 둥지를 틀기 시작한 곳이 실상사.
실상사는 창건후 670년간 번창했으나 이조때 급격히 쇠퇴한다.

이조 세조 때 실상사와 적대관계인 종파에 의해 방화
모든 가람이 불타 200년 동안이나 농토로 경작되는 비운
이때 실상사의 선맥은 산내면 백장암에 숨어 법통을 유지.

이조 숙종 때 벽암(碧岩)대사와 침허(枕虛)대사에 의해 수복
순조 때 다시 사세가 기울었다가 의암(義岩)대사가 중수하였고
고종 무렵 다시 방화로 소실된 당우를 월송(月松)대사가 재건했다.

실상사는 초창기를 빼고 이조 박해에 시달려온 도량
그 가운데에서도 눈물겹게 명맥을 유지해 온 사찰이다.

현재 보광전, 약사전, 명부전, 칠성각, 선방들
아담한 규모지만 보광전터는 정면 30m, 측면 18m
홍척국사가 창건 당시에는 선종사찰 중 최대 규모.

'지금의 보광전은 그 위에 섬처럼 떠있는 건물.'

실상사 주법당 보광전은 1884년(고종 21)에 건축.
월송대사가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
건물 안 삼존상 중 본존불은 이조시대에 조성한 것.

좌우의 관음 세지 두 보살은
원래 극락전에 봉안되었던 것
월씨국(베트남)에서 들어왔다.

보물 35호인 실상사 석등

규모가 커서 석등에 불밝힐 때 돌사다리가 있고
지붕돌 귀퉁이마다 꽃모양, 받침돌에는 연꽃무늬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작품인듯.

......................영원사.....................
영원사는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한 사찰.
100칸이 넘는 선방에서 당대 109 명 고승을 배출
영원사가 그 위용을 잃게된 시기는 여수 반란사건

반란군이 진압군의 공격에 쫓겨 아지트로 삼은 영원사.
영원사는 군사 작전상 모두 불태워 없애버리면서 부터.
그후 1971년 중건하였는데 이곳에는 많은 부도들이 있다.

원당형 둥근 석탑이 5기, 대는 2층 탑신을 가진 조립형.
영원사 유물로 추정되며, 영암당탑, 설파당탑, 중봉당탑,
청계당탑, 벽허당탑, 청매탑등 고승들의 호를 딴 부도들.
.......................................................... 

'실상사 영원사와 고락을 함께 해온 삼정마을.'



1. 선유정의 유래.

삼정마을은 고려 시대부터 함양군에 있었다.
현재 하동군 의신마을 위에도 있는 삼정마을.
지리산 능선 상에서 의신마을로 내려가는 길목.

'염소목장 3가구가 사는 하동군 삼정마을.'
양정 음정 하정' 3 마을인 함양군 삼정마을.
지리산에 삼정마을이 두 곳이라 혼돈스럽다.

의신마을 위 삼정마을은 빗점골에서 유래.
빗점골은 삼정(왼골 산태골 절골) 합수부.
신라시대 빗점골 일대는 절골로 불리던 곳.

절골은 신라 화랑들의 미륵신앙 심신수련장.
고려시대 선종 불교가 성행하며 절골은 쇠퇴
함양 삼정마을은 고려 선종불교 사상의 근원지.

선유정은 그 혼돈을 막기 위한 정자.
삼정마을의 전설을 알려주는 곳이다.

...........인걸과 아미 선녀의 전설...........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토끼와 거북이가 용궁에 드나들었던 옛날.
방장산(지리산)기슭 마천면 삼정리 하정마을.

삼정 계곡은 벽소령으로 올라가는 계곡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한 곳.
지리산 계곡 중 경치가 아름답고 조용한 곳.

이곳에 인걸이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재산은 없고 그날 그날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행복하고 마음 편하게 지냈다.
인걸은 사냥으로 어머니를 봉양하며 사는데 만족했다.

그런데, 인걸이 사냥하러 다니는 길목에서는
매일 하루에 세 차례 아름다운 무지개가 섰다.
인걸은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늘 무심히 지나쳤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인걸은 무지개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하여, 그날은 무지개가 피는 곳으로 갔다.
그 무지개 뿌리 아래에는 자그만한 소(沼).

'그 옆에서 밥을 짓고 있는 아름다운 세 처녀.'

이 깊은 산속에서 여자끼리만 있는 것이 이상했다.
더구나, 인걸이 지금껏 한번도 겪지 못했던 황홀함.
총각 인걸은 여자와 함께 살고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마냥 바라만 보아도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

인걸은 이상야릇한 호기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얼마후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라 올라가는 그녀들.
인걸은 그때야 비로서 그녀들이 선녀인줄 알게 되었다.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진지상을 마련하는 선녀들.'

방정산 맑은 물로 밥을 짓는 옥황상제의 시녀들.
그 광경을 엿보는 재미에 매일 그곳으로 간 인걸.
인걸이는 사냥하고 오는 길에 매일 그곳에 들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그곳에서 본 놀라운 광경.'

그곳에서 날개옷을 벗고 목욕하는 선녀들의 자태.
그 눈부신 아름다움을 엿보며 넋을 잃어버린 인걸.
인걸은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 오르고 싶어졌다.

'저 날개옷을 입으면 옥황상제를 뵐 수 있을까?'

인걸은 선녀들이 있는 하늘나라에서 살고 싶었다.
옥황상제를 만나 무릎꿇고 통사정하고 싶은 심정.
인걸은 선녀들의 날개옷을 향해 살금살금 기어갔다.

그리고, 날개옷 중 하나를 몰래 집어들고 돌아섰다.
인걸은 가슴이 떨려 발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 없었다.
그순간 인걸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찢어진 날개옷.

'그 인기척과 날개옷 찢어지는 소리에 놀란 선녀들.'

선녀들은 저마다 날개옷을 찾아입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러나, 아미 선녀는 입을 날개옷을 찾지못해 쩔쩔맸다..
더구나, 수줍음 조차 가릴 수 없어 당혹해하는 아미 선녀.

'이미 옷을 챙겨입고 하늘로 올라간 다른 선녀들.'

그녀는 그곳에 홀로 남아 몹시 울며 안타까워 했다.
날개옷이 없는 아미선녀는 갈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찢어진 날개옷으론 하늘을 날 수도 없었다.

인걸은 어머니의 옷을 갖고와서 그녀에게 입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까운 움막으로 둘이 함께 왔다.
그녀는 할수없이 그 움막에서 며칠을 지내게 되었다.

'인걸이 감춘 날개옷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

인걸은 그녀를 가까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 역시 마음씨 착한 인걸이 차츰 좋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이 세상 어느 남자와도 만난 적 없던 탓이었다.

'한편, 그녀가 돌아올 수 없는 이유를 안 옥황상제.'

그녀가 인걸과 함께 지상에서 살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두사람에게 비단옷 세 벌과 쌀바위를 주었다.
두 사람은 움막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

'쌀바위에서 매일 먹을 만큼 쌀이 나왔기 때문.'

두 사람이 아들 하나, 딸 둘을 낳아 살던, 하늘아래 첫동네.
정자까지 짓고 아기자기하게 살던 그녀는 가끔 우울해 했다.
그녀가 살던 하늘나라가 문득 못견디게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인걸에게 날개옷을 보여만 달라고 졸라대는 그녀.
인걸은 그동안 몰래 감춰두었던 날개옷을 꺼냈다.
그리고, 찢어진 날개옷을 기워서 그녀에게 입혔다.

그녀는 그옷을 입고 모처럼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예전에 살던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인걸은 주먹으로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면서 후회했다.

'그러나,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
이미 업질러진 물이요, 쏘아버린 화살.
하늘을 보며 그녀가 돌아오기만 바랄 뿐.'

그후 인걸이는 날마다 세 자녀와 함께 문바위에 올랐다.
그곳에서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인걸과 세 자녀.
인걸은 세 자녀와 함께 그녀를 기다리다 지쳐 죽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벽소령에 솟아오른 커다란 부자바위.'

부자바위는 인걸과 세자녀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
바위가 되어서도 그녀가 오길 기다린 인걸과 세 자녀.

훗날 이곳 주민들은 마을에 선유정이란 정자를 짓고
쌍무지개 다리를 놓아 그녀가 되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미 선녀는 영영 그곳에 돌아오지 않았다.
...........................................................

'아미 선녀'는 왜 돌아오지 않았던걸까?'

참선과 고행으로 득도에 전념하는 선종 불교.
결혼하지 않는 비구 또는 비구니 스님들 종파.
'아미 선녀'는 신라 미륵보살 신앙의 상징인듯.


2. 함양 삼정마을 가는 길의 풍경.

장마비에 씻겨내리는 듯한 빗점골의 옛 상흔
개울 모두 대성골로 모여 흘러내리며 대성통곡
그 애통한 슬픔을 위로하듯 계곡을 감싸는 물안개

계곡 깊숙히 물살에 패여나가 깊숙이 드러난 속살.
여름날엔 날개옷을 벗어버린 선녀의 목욕하는 자태.
행여, 그 광경 볼 수 있을 것 같은 삼정마을 가는 길.

여름날 소나기에 흠뻑 젖으면 인적 없는 듯한 삼정마을
주민은 보이지 않고 삶은 감자 냄새와 물안개 자욱한 곳.
골목 잎구 큰바위 가장자리에는 담장이 넝쿨로 덮혀있다.

'마치, 오지마을의 적막한 외로움을 속삭이듯.'

삼정마을은 삼장산 아래 있는 하늘아래 첫동네.
지리산 태극종주 주능선 S자 형태의 한 가운데.
주능선에서 흘러내린 수많은 지맥들이 모이는 곳.

그 지맥 중 지리산 전망대 '남부능선과 중북부능선'.

두 능선은 지리산 허리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남부 능선은 삼신봉 청학동으로 흐르는 외지리(外智異)
중북부 능선은 삼정산을 포함한 내지리(內智異) 전망대.

'남부능선은 잘 알려졌지만 중북부 능선은 생소한 편.'

삼정산을 포함한 중북부능선은 7암자 순례길로 알려진 곳.
중북부능선은 독립된 삼정산 능선 산줄기로서 알려져 왔다.

설악산은 흔히들 내설악 외설악으로 구분해 부르지만
지리산은 내지리 외지리 개념으로서 불려지지 않는다.
구태여 구분한다면 내륙쪽은 내지리 해안쪽은 외지리.

지리산 속내를 깊숙한 곳까지 볼 수 있는 삼정마을.

중봉·천왕봉·촛대봉을 이어 반야선경·노고단·만복대
지리산 파노라마 영봉들이 사방으로 감싼 곳이 삼정마을.
천년 불교 역사를 간직한 7암자를 말없이 품고있는 삼정산

중북부능선 남북으로 화개동천과 만수천,
만수천은 천년고찰 실상사 앞으로 흐른다.

한쪽으로는 크고 널따란 망대골을 빚어내며
또다른 쪽으로 와운골과 뱀사골을 품은 능선.
삼정산은 경남과 전북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이 구간을 등반하려면 우선 마천면 삼정마을
마천면 도마마을,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기점

삼정마을에서 벽소령도로 따라 도솔암 거쳐 삼각봉
삼각봉에서 가까운 연하천 산장 일박도 산행의 묘미.
7암자 순례는 조용한 산사 실상사 일박도 권할만 하다.

예사롭지 않은 창건일화를 갖고 있는 영원사(靈源寺)

첩첩산중 정남향에있는데 공비토벌때 불탔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복원돼 지금 겨우 사찰 면모
불타기 전까지 100칸 아홉채 건물로 웅장한 규모.

신라 경문왕때 금강산에 영원암을 세웠던 영원대사

젊은 시절 8년 토굴 수도후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수도처를 전전하다 산에서 만난 낚싯대 드리운 노인.
그 노인의 말을 듣고 다시 토굴로 들어가 2년 더 수도.

'마침내 득도(得道)한 영원대사가 세웠다는 영원사.'

이곳 주민들은 그 노인이 문수대성이라 믿는다.
영원사 창건후 수많은 고승들이 수행 득도한 곳.
서산·청매·사명·지안·설파상언·포광등 109명

'삼정마을에서 영원사까지 꼬불꼬불 닦여진 도로.'

인근 도솔암은 영원사의 속암이자 청매스님 수도처.
영원사와 함께 전란 중 잿더미가 되었다가 최근 재건.
영원사에서 3km 거리로 삼각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영원사에서 삼정산 정상 못미쳐 삼거리 오른쪽 상무주암.
영원사에서 1시간 도보거리이며 삼정마을에서 오를 수 있다.
보조국사 지눌 수도처로서 사찰이라기보다 호젓한 별장 같다.

상무주암에서 오솔길을 따라 20 여분 걷다보면 문수암(文殊庵)
볼품없는 듯한 작은 암자지만 정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
암자 뒤편에 있는 커다란 바위 서쪽에 있는 천인굴(일명 천용굴).

임진왜란 당시 인근 마을 주민들 1,000 여명의 피난처.

다소 과장된 규모지만 결코 예사로운 바위굴은 아닌듯 싶다.
동굴 입구의 바위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가 퍽이나 인상적.
문수암에서 다시 10여분 걸어 내려오면 삼불사(三佛寺)가 있다.

비구승이 지키고 있는 삼불사는 두메산골 고향집 같다.
삼불사를 마지막으로 계속 이어지는 불적은 잠시 멈춘다.
견성골 아래 도마마을을 지나면 약수암을 거쳐.. 실상사.    

삼정마을에서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은 마을 중간에 있다.
'벽소령으로 오르는 작전도로'는 왼편으로 크게 휘어진다.
여기서 계속 작전도로를 따라 10 여분 걷다보면.. 이정표.

이 지점에서 오른쪽은 벽소령으로 오르는 작전도로
왼편 숲속 작은 길은 잠시 후 경운기 길로 이어진다.

길따라 계속 가면 왼쪽에..이현상 최후 격전지
오른쪽으로는 '이현상 아지트'로 길이 갈라진다.
왼쪽에는 최후격전지를 알리는 이정표와 간판 3개.

이정표 정면 나무밑으로 보이는 계곡이 산태골
우측 능선 너머가 이미 지나 올라왔던 왼골이다.
별바위 지나 삼거리 앞을 가로막는 도솔암 암자.

벽소령 작전도로 끝은 벽소령산장 가는 길.
벽소령산장에서 세석평전 방향으로..부자바위.
벽소령 임도 공사로 파괴된 선유정 전설의 고향.

'아미선녀를 기다리던 인걸과 세 자녀의 모습.'


삼정마을은 양정 음정 하정' 3 마을로 나뉜다.
양정(陽丁)마을은 고려 때 양지정쟁(陽地停莊)
장(莊)은 고려시대의 특수한 행정구역을 지칭.

고려부터 이조 때까지 많은 농토를 소유한 사찰
승려가 아닌 주민들이 전답을 소작으로 경작했다.
하여 주민들은 사찰에 세미를 바치며 어렵게 살았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영원사가 소유한 삼정마을 전답.
통일신라 당시 대사찰이었던 영원사는 부유한 사찰.
삼정마을은 영원사 덕을 입고 사는 주민들이 많았다.

'그 주민들의 집단촌이 고려시대에는 양지정쟁.'

고려시대 음정(陰丁)마을은 음지정쟁이라고 불렀다.
음지에 위치한 취락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뜻의 지명.
음지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는 '비린내골'이라 한다.

'그 아랫마을 '선유정 전설'과 연관이 있는 지명.

아미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살다가 날개옷을 찾은 뒤
남편 인걸과 3 자녀를 두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골짜기.
인걸과 세 자녀가 아미선녀를 애타게 기다리던 비린내골.

비린내골 따라 올라서면 더 오를곳 없는 곳이 부자바위

인걸과 세 자녀를 버린 아미선녀를 탓해 비리내골.
빨치산과 토벌군 피비린내가 진동했기에 비린내골.

아랫 마을 하정(下丁)마을의 고려 때 지명은 아래정쟁.
세 마을 중 제일 아랫 쪽에 위치하는 장(莊)이라는 뜻.
마천면의 마을들은 삼정산 자락 사찰들과 관계가 깊다.

'특히, 삼정마을 하천변 소나무 숲속에 있는 선유정.'

선유정은 아직도 인걸과 세 자녀의 넋을 위로하는 정자.
쌍무지개 다리를 놓아 아미선녀가 내려오길 기다린 정자.
아직도 삼정마을 주민들이 아미 선녀를 기다리는..선유정.

짙은 구름사이로 천왕봉과 중봉이 아득한 음정마을.
영원령 삼거리에서 약 20분 내려서면 만나는 삼거리.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올라서면 굳게 잠긴 도솔암의 문

'수행 중이라 외부인 출입을 삼가해달라는 뜻.'

이조 억불정책으로 사라진 삼정산 일대 옛 사찰들.
동학혁명, 여순반란 사건, 반란의 역사 등으로 수난.
오늘날 삼정산 7암자 순례길로서 겨우 옛 명맥을 유지.

'삼정마을 전설속 선녀들은 비구니 아니었을까?'

이조 억불정책으로 사찰들과 함께 폐허가 된 삼정마을.
불교 종파 통폐합 및 사찰 수 제한으로 갈곳없던 승려들
비구는 관노로.. 비구니는 관기로.. 붙잡혀갔던 이조시대.

지리산 북쪽은 남원으로.. 지리산 남쪽은 진주로..
꽃다운 비구니는 한양 궁궐의 궁방비 또는 궁궐기생.
고려 때 귀한 신분인 승려가 이조 때는 천민으로 전락.

'이조시대 억불 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

연산군과 중종 때 과거에서 승과를 폐지 및 종단 폐지.
심지어 사찰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폐찰.
승려들을 강제 환속시켜 관노와 궁방비(宮房婢)로 삼았다

궁방비(宮房婢)란 국가 왕실 왕족 왕비족 소유의 노비
궁방전(宮房田)은 국가 왕실 왕족 왕비족 소유의 토지.
왕실 소요 경비와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법 제도.

불교탄압이 극에 달할 무렵 인종이 즉위 1년 만에 서거
뒤를 이어 제13대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다.
1545년 어린 명종의 모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실권 왕후는 경기도 광주 '봉은사를 선종의 본사로 하여
주지에 보우를 임명하고 양주 봉선사를 교종 본사로 하여
주지에 '수진'을 임명해 양종, 승과, 도첩제도 부활시켰다.

그러나, 명종 21년(서기 1565) 문정왕후가 돌아가자
유학자들은 왕후 신임을 받던 보우를 주살하라고 상소
명종은 어머니의 신임을 생각해 제주도로 귀양 보냈으나

결국 보우는 제주목사에 의해서 사살되었고
이듬해 양종 승과 도첩제도는 폐지되고 만다.
승려 지위가 땅에 떨어지자 산속으로 숨은 사찰.
......................................................

영원사 가는 길은 마치 영화에 나올 법한 오솔길의 연속
산행후 송알마을에서 함양행 버스를 타고 오다가.. 인월.
그곳 목욕탕에서 땀을 씻고 남원 구례를 경유해 하동 도착.

'삼정마을은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전설의 고향.'



3. 라마교의 초야권 풍습.

라마교는 티벳 몽고에서 성행한 대승불교의 밀교(密敎)
모든 악(惡)을 제거한다는 종교로서 7세기경 시작되었다.
8세기 중엽 인도에서 티벳 네팔 몽고로 퍼진 불교의 일파.

불교 역사를 보면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까지 약 500년,
초기 대승에서 다시 약 500년을 지나 밀교(密敎)가 성행
이것을 금강승(金剛乘)이라 하며 지상 최고 지위를 차지

'금강경이 티벳으로 들어가 부흥하게 된 라마교.'

라마교는 15세기 초 종객파(宗喀巴)가 나와 종풍을 쇄신.
교세를 크게 높아지며 법계는 대대로 다라이라마가 된다.
라마승은 소매가 없는 붉은 옷을 입기에 일명 홍교(紅敎)

불교에서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라마교에서는 <옴마니 파데흠>을 주송(呪誦)
'침묵의 소리' '연화금강(蓮花金剛)이란 의미.

라마교 예배용 불화(佛畵)를 탱화(幀畵)라 한다.
오묘한 우주 이치를 그린 만다라 여래상(如來像)
관음보살상, 수호존(守護尊), 분노존(憤怒尊) 등.

만다라는 모두 사각에 중심원(中心圓)을 그린 그림
사각은 사방세게 또는 자기원형(自己原形)을 뜻하며
중심원은 핵(核: 도 또는 진리)을 뜻하는 명상 도구

'만다라 앞에서 진언(眞言)하면 부처가 된다는 믿음.'

현재 티벳 불교 다라이 라마가 미국에 망명 중이며,
교세가 약화되었지만 중국 원나라 무렵에는 융성했다.
다라이 라마는 '웃어른' 또는 '선생(先生)' 이란 뜻말.

13세기 원(元)태조 징기스칸이 국교로 삼았던 라마교

교권신장, 특권 승려층의 무도한 횡포로 국가경제 파탄
정신적 타락과 음란한 습관 때문에 원나라는 폐망의 길.
당시 혼전 신부는 라마승과 동침해 순결을 바치는 관습.

'라마승이 초야권(初夜權)을 갖는 종교적 풍습.'

당시 풍습으로는 아직 어린 처녀에게 첫날밤 성교육.
그러나 원나라는 '마지막 왕' 순제의 난음으로 패망.
라마교는 한때 성(性)을 찬미하며 난음까지도 행했다.

밀교는 성(聖) 아닌 성(性)을 숭배했지만
난음(亂淫)은 원래 라마교 참뜻이 아니다.

밀교는 성(聖)과 속(俗)을 구분 않는 고대 신앙.
우주의 모든 생명은 태초의 호흡으로 이루어지고
그 호흡은 인간의 깊은 곳에서 나온다는 관념으로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의 중심은 곧 성기(性器).

우주의 긍국적 창조의 원리를 모(母)에서 찾었으며,
양력(陽力)을 부정하고 음력을 최고 에너지로 인식
다산 숭배를 목표 삼아 남녀 성교를 중요시한 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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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마을의 선녀 전설은 고려말 라마교 영향인듯.
고려때 융성한 삼정마을 불교문화는 이조때 쇠퇴.
삼정산 일대의 사찰들도 그무렵 거의 폐찰이 된듯.

 

 

 

휴양림




광대골이라는 넓고 커다란 계곡이 있는 지리산.
벽소령 군사도로에 가려져 알려지지 못한 비경.
지리산 자연 휴양림 완공으로 가장 각광받는 명소.

광대골은 뱀사골과 한신계곡 사이의 큰 물줄기.
덕평봉 형제봉 삼정산이 둘러싼 '넓고 큰 골짜기'
벽소령 북쪽 10여 지류가 모이는 곳에 있는 휴양림

광대골 가운데 삼정산 지류 방면에는 영원사 상무주암 등
불적들이 많아 벽소령 군사도로 못지 않은 도로가 뚫려있다.
삼정마을에서 영원사 입구까지는 삼정산 등산로로 잘 알려졌다.

광대골은 삼정산 불적들과 벽소령도로 등
인위적으로 조성된 일부분은 잘 알려진 반면
계곡 깊이 숨겨진 비경은 베일에 가려졌던 셈.

광대골 수많은 지류 가운데 벽소령 부근 비릿내골에
대규모 자연휴양림 조성 공사가 1994년 착공 후 개장
산림청은 국민의 정서 함양과 보건 휴양을 목적으로 운영.

산림청 남원영림서 함양관리소는 32개 시설물을 이미 설치
삼정마을에서 2개의 도로망을 구축해 놓는 등 마무리 단계.
포장도로가 끝나는 삼정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2개 진입로

하나는 마을 못 미쳐 계곡건너 이어지며
다른 하나는 마을을 돌아 연결되어 있다.

대규모 주차장과 야영장이 만들어졌으며
휴양림 안에는 야외학습장, 삼림욕장 등의
시설물이 있어 피서와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아울러 벽소령 꼭대기까지의 가벼운 산행도 가능해
광대골은 여름철 지리산 최고의 명소로 발돋움했다.

 

 

 

광대골 (벽소령 계곡)



.......................................................... ..선비샘~~.......대성골
..........................................↙..............벽소령 산장.........↘
.................... ..................↙............. 형제봉......................↘
..............................광대골.............. 삼각고지.........무당골~~~원대성....대성리
.................................................~~연하천 산장..............↗
..........................................↖...... 총각샘~~............빗점골
.............................................↖..화개재...~~..
.................................................토끼봉...........↘


광대골은 일명 '비린내골'이라 할만큼 빨치산 격전 유적지.
좌익 우익 어느 편도 들 수 없었던 양민들까지도 학살된 골.

빨치산들이 인민재판을 벌려 양민들을 즉결 처형한 곳.
토벌대가 산죽밭 비트 속 빨치산까지 찾아내 사살한 곳.
동네 사람들이 오랫동안 계곡 물을 입에 대지 못했던 곳.
매일 흘러내린 핏물이 멈춘 후에도 피비린내 진동하던 곳.

'2005년 빨치산 마네킹을 세워놓은 관광지.'

지리산 능선에서 산밑 동네로 가는 좁다란 길로 접어든다.
희미한 사잇길이지만 암갈색의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바닥.
처음에는 걷기에 괜찮다 싶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후회막급.

산죽과 잡목이 뒤엉켜, 길 바닥이 보이지 않고 나무가 빽빽.
어제 내린 비로 숲이 온통 축축하고 발걸음마다 미끈거린다.
지름길을 찾다보니 급비탈 내리막에서 발과 몸이 따로 논다.

몸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뚱이가 쏟아지고 발이 끌려간다.
그러면서 발 아래 뱀이 밟힌 것 같은 두려움에 머리가 쭈뼛
두 손으로로 길섶의 풀과 잡목을 잡고 허우적대며 헤쳐간다.

질척거리는 흙을 밟고 쭉, 미끄러지는 순간 찢어진 손바닥.
엉겹결에 가시나무를 움켜쥐어 비탈에서 나뒹구는 꼴은 모면
그러나, 발걸음마다 점점 더 이 곤두서고 등골이 쭈뼛해진다.

급비탈은 느긋해질 줄 모르고,눈앞을 스치는 거친 잡목 숲.
눈을 찌를지도 모를 가시나무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젖은 등산화가 꿀럭거리고 바지 가랑이가 허벅지에 감긴다.

이 때 저만큼 눈앞에 보이는 등산로에 긴장감이 풀린다.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순간 나타난 남자 마네킹 2개
헤지고 얼룩진 옷에 붉은 칠한 붕대를 감은 빨치산 마네킹.

손에 카빈소총과 따발총을 들고 모자 쓴 쪽은 부러진 다리
산죽 밭에 나뒹구는 그 다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빨치산 산죽 비트 안내 간판은 마네킹과 좀 떨어진 곳에 있다.

......................안내 간판.......................................
‘빨치산 루트를 찾아 주신 등산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빨치산 사건의 현장입니다. 이곳에는 빨치산들이 토벌대의 추적을 피해 울창한 산죽들 사이로 몸을 피해 은신하던 산죽비트, 바위비트, 굴비트 등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가는 빨치산 사건의 비극을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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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들이 굶주린 배를 안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간 길.
그 길을 잠깐 내려오며 죽을둥 살둥 한 내가 한심하다.
비가 쏟아지던 어젯 밤, 민박집 아저씨가 들려준 이야기.

"저 건너 계곡 이름이 뭔지 아세요? 비린내골이죠.
빨치산들이 인민 재판과 즉결 처형을 한 곳이고요,
토벌대가 늦게까지 빨치산들을 찾아내 사살한 곳이죠.

동네 사람들이 오랫동안 계곡 물을 입에 대지 못했지요.
매일 핏물이 흘러내렸고 물에서 비린내가 진동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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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진동할 만큼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간 비린내골.
지리산 계곡들 중 각광받을 비경을 품은 채 잠자던 광대골.
광대골은 뱀사골과 한신계곡 사이 10 여개 지류가 합쳐진 계곡.

덕평봉 - 벽소령 - 형제봉 - 삼각봉 - 덕평봉 - 강청마을 뒤 오송산
아울러, 삼각봉에서 삼정산(1225m)을 연결하는 지맥 사이의 계곡이다.

광대골은 임천강으로 흘러 강청리에서 백무동의 물줄기와 합류한다.
광대골의 많은 지류와 능선 사이로 벽소령 군사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그 탓에 광대골은 비경을 품고도 등산객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대부분 비포장 군사도로를 등산로 삼아 벽소령을 오르내렸을 뿐.
그 아래 원시림과 어우러진 광대골의 비경을 지나치게 된 것이다.

그 반면 광대골 가운데 삼정산 지류 쪽은 천년고찰 영원사와 상무주암
그 외 불적들도 많아 삼정마을에서 영원사 입구까지 도로가 잘 뚫려있다.

결국 삼정산 불적들과 이어진 벽소령도로는 잘 알려진 반면에
그 계곡에 숨겨진 비경은 군사도로 탓에 인적이 끊겼던 셈이다.

광대골이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산림청에서 조성한 자연 휴양림.
광대골 142ha 면적에 6억원 사업비를 들여 32 개 시설물을 이미 설치.
삼정마을에서 2개의 연결 관광도로 망을 구축해 놓은 마무리 단계이다.
휴양림에는 대규모 주차장, 야영장, 야외학습장, 삼림욕장 시설물이 완공.

자연휴양림과 벽소령산장 건립을 계기로 군사도로 재활용 문제 대두.
현재 일부 등산객이 마천에서 지프형 택시를 타고 벽소령까지 오른 뒤
지리산 산행에 나서는 점과 영원사까지 차량을 쉽게 운행하고 있는 사실
벽소령 도로포장으로 광대골을 관광 상품화 시키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절제된 개발이 우선이란 마음.'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올해 벽소령에 대규모 산장건립 예정
광대골의 발원지인 벽소령 산장은 향후 인파가 몰릴 것 같다.
광대골의 자연휴양림과 벽소령산장 건립을 계기로 우려되는 점

'광대골은 뱀사골과 한신계곡 사이의 큰 물줄기.'

덕평봉 벽소령 형제봉 삼각봉 오송산
그리고, 삼각봉 삼정산을 잇는 골짜기.
넓고 커다란 골짜기란 뜻이 담긴 광대골.

벽소령 북쪽 10 여개 지류를 하나로 만들어
임천강으로 흘러 강청리 백무동 지류와 합류.

광대골 가운데 삼정산에서 흘러내리는 지류에는
삼정산의 영원사와 상무주암 같은 불적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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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커다란 골짜기' 광대골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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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골 찾아가는 길.>

함양 시외버스공용정류장에서 삼정리행 완행버스
하루 6회(7:30, 10:50, 13:20, 15:30, 18:10, 19:40)

삼정리에서 함양으로 나가는 버스편도 6회
(7:00, 9:00, 12:00, 14:50, 17:05, 19:10)

남원에서 삼정리로 가려면 인월이나 마천까지 직행버스
마천에서 완행버스를 갈아타거나 영원까지 택시를 대절
마천에서 영원사까지 택시 요금은 약 2만원 정도이다.

영원사에 이르는 길은 거의 모든 구간이 시멘트 포장
마천에서 지리산 자연휴양림까지의 택시 요금은 8,000원
도마마을에서 택시를 호출하여 마천까지는 3,500원 정도.

삼정리 능선 산행시 승용차 이용은 생각해볼 필요 있다.
일단 마천에 주차 후 삼정리까지 버스나 택시가 편리하다.


숙 식

삼정리 음정마을에서는 이용할 만한 산장이 없다.
야영 공간도 없고 굳이 야영할 필요없는 당일 코스

삼정리 음정마을에 매화골 가든 음식집 또는 민박집 6 곳.
반면, 하산길인 도마마을에는 음식점 민박 집이 전혀 없다.

실상사 입구에는 식당과 상가가 여럿 있고
마천에는 그런 대로 일반 식당들이 몇 군데.
삼정리 산행시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부자 바위.



삼정마을로 내려가는 작전도로가 있는 벽소령.
그 길목 지나 벽소령산장으로 가다보면 큰 바위.
낙석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아버지와 세 자녀 형상.

지리산종주 중 이곳을 지나 항상 가슴이 조마조마.
도로에는 각이 날카로운 거대한 낙석들이 뒹구는 곳.
바위벽 균열이 심해 언제 무너질지 모를만큼 위태롭다.

벽소령 도로 공사 때 마천 공병대 병사들이 몇명 사망.
아직도 그곳 지나는 등산객이 압사할 위험성이 있는 곳.
균열이 심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이곳 바위벽이 '부자바위'.

이 부자바위는 <인걸과 아미 선녀>에 관한 전설의 고향.
아버지와 세 아이의 모습과도 같아 부자바위라 하는 곳.
하정마을 앞 솔밭 근처 누각 선유정과 연계된 전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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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어떠한 전설이 깃들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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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下丁)마을은 '아래정쟁이'라고도 부른다,
세 마을중 아랫쪽에 위치하는 장(莊)이라는 뜻.
마을형성 과정에서 사찰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곳.

선유정은 이 마을 사람들이 지어놓은 정자이다.
죽은 넋을 위로하고 선녀가 다시 오길 기다리며
쌍무지개 다리를 놓았다는 뜻에서 선유정(仙遊亭)

하정마을은 마천면 삼정리에서 벽소령으로 올라가는 계곡
벽소령 계곡은 지리산에서 가장 위치가 높은 지점에 위치
계곡 물이 깨끗하고 인적이 없어 호젓한 계곡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나무꾼 인걸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도 하며 살았다.

'인걸이 사는 곳은 하늘아래 첫동네 외딴 집'

비록 재산은 넉넉하지 않아도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살았다.
그는 산짐승을 사냥해 어머니를 봉양하며 사는 것만으로 만족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그런데, 그가 다니는 길목에서 날마다 세 차례씩 무지개.

그는 호기심에 끌려 이상하게 여기며 그곳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무지개 뿌리 아래에서 세 여인을 보았다.
계곡 소(沼)에서 정성껏 밥짓고 있는 모습들이 참 아름다웠다.

'깊은 산속에서 여인들끼리만 밥을 짓다니 이상한 일..'

지금까지 이렇게 고운 여인들을 본적이 없었던 인걸.
그녀들은 옛날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하늘나라의 선녀.
인걸은 이렇게 예쁜 여인과 살아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흐뭇했고 황홀함에 젖어 들었다.
그녀들의 밥 짓는 자태를 바라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느덧, 밥상을 차려 들고 무지개 따라 하늘로 날아갔다.

인걸은 그녀들이 옥황상제의 시녀들인 사실을 알았다.
어느덧 인걸에게는 그녀들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
그러던 어느날, 인걸은 더욱 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무더위를 참지 못해 소에서 목욕하는 선녀들..'

백옥같은 피부에 날씬하고 고혹적인 자태의 몸매
선녀들의 눈부신 자태에 인걸은 마음을 빼앗겼다.
인걸은 난생 처음 묘한 황홀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목욕하는 선녀!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을까?'

특히, 인걸 마음을 사로잡는 한 선녀의 아름다운 자태.
옥황상제를 만나서 선녀와의 결혼을 허락받고 싶은 충동.
인걸은 날개옷만 입으면 옥황상제를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

날개옷 하나를 훔치다가 돌부리에 걸려 찢어진 옷.
그 소리에 놀란 선녀들은 황급히 자기 옷을 찾는다.
선녀들은 옷을 입자마자 서둘러 하늘나라로 날아간다.

너무나 놀라 허둥거리는 선녀들의 당황한 얼굴 표정.
다른 선녀들과 달리 홀로 남아 슬퍼하는 선녀의 모습.
인걸이는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옷을 가져다 입혔다.

옷이 없어 그 자리에 남은 선녀의 이름은 아미(阿美).
인걸은 홀로 남은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인걸의 집에서 두 사람은 행복한 며칠을 지냈다.

'멀리 바라보기 보다는 가까이에서 더욱 고운 아미.'

난생처음 여자와 함께 지낸 인걸과 남자를 알게 된 아미.
아미는 인걸이 나무꾼이지만 착하고 늠늠해서 싫지 않았다.
남자 존재조차 몰랐던 아미와 여자를 몰랐던 인걸과의 사랑.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

그후 옥황상제는 아미와 인걸이 같이 살도록 허락하고
각각 3벌의 비단옷과 쌀이 나오는 '쌀바위'를 하사했다.
쌀바위는 벽소령의 임도 도로공사 때 묻혀 버렸다고 한다
인걸과 아미는 1남 2녀를 낳고 하늘 아래 첫동네에 살았다.

'현재, 하정부락 앞 솔밭 근처에 있는 '선유정'이 그곳.'

아미는 인걸과 함께 살면서도 하늘나라가 몹시 그리웠다.
아미는 인걸에게 날개옷을 되돌려달라고 날마다 애원한다.
그 모습이 측은해 인걸은 숨긴 날개옷을 돌려줄지 망설인다.

'설마, 아이 셋을 두고 아미선녀가 하늘로 날아 올라갈까?'

그러던 어느날, 인걸이 아미에게 날개옷을 돌려준다.
아미는 날개옷을 받자마자 하늘나라로 날아 올라간다.
그후 인걸과 세 자녀는 아미를 기다리다 지쳐 죽고 만다.
훗날 4 부자가 죽은 곳에서 솟아오른 큰 바위가 부자바위.

하정부락 앞 솔밭 근처에 있는 누각 '선유정'
선녀가 되돌아오길 바라는 마을사람들의 염원.
끝끝내 선녀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전설의 고향.

'부자바위가 안타깝게도 파괴된 때문일까?'
'아니면, 광대골의 자연환경 훼손 때문일까?'
'이젠 선녀가 사라져버린.. 하늘 아래 첫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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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바위는 현재 낙석위험이 많은 곳이다.
여기 저기 뒹구는 큰 낙석의 바위덩어리들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를 만큼 매우 위태롭다.
따라서, 전설의 고향으로서 가치도 상실했다.

전설이 발붙일 곳도 없이 파괴된 부자바위.
그러나, 전설의 소중함을 알리려 여기 소개.
파괴된 전설의 고향이 경각심을 일으키는 곳.

1996년 개장된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가족 휴양지
부자바위가 파괴된 후 그 안에 '선유정'은 전설의 고향.
지리산 자연 휴양림에서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숨쉰다.

인근에 백무동과 칠선계곡, 벽소령이 있고 남원 실상사,
산청 대원사, 하동 쌍계사, 구례 화엄사, 지리산 온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