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심원계곡.........노고단 산장...왕시리봉.......*문수골
.....↖............성삼재 ................................*산수유마을.지리산 온천
.........←.....차일봉................화엄사.........*구례
...............
구례 10경
1. 섬진 청류
2. 피아골 단풍
3. 반야봉의 낙조(落照)
4. 노고단의 운해.
5. 산동면 '산수유꽃 군락(群落)’
6. 산동면 원촌마을 ‘수락폭포’
7. 130km ‘섬진강 벚꽃길’
8. 문척면 ‘오산과 사성암’
9. '노고단 설경’
10. ' 천년고찰 화엄사’
.......................
구례 10경(十景) 外 널리 알려진 곳들
수락폭포. 원촌(院村) 마을. 서불 흔적.
<수락폭포>
산동면 원촌마을에서 4km 거리, 수기리에 있다.
여름이면 높이 15m 폭포 물맞이 인파로 붐비는 명소.
신경통, 근육통, 산후통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난 때문.
피서철에는 전국에서 버스를 대여해 찾아올 정도.
여름에는 너무 많은 차량이 몰려와 주차장이 협소
찾아가는 길.
1. 구례 - 수기리 버스(06:00~18:50, 1시간 간격/45분 소요)
2. 서울 - 대전 - 전주 - 남원 - 동림교 - 송치리(승사교 앞)-
19번 국도 - 밤재터널 - 5.2km - 산동 교차로 진입 - 수락폭포
3. 부산 - 남해고속도로 - 120km - 하동 - 19번 국도(12km) -
하동읍 - 19번 국도(36.5km) - 구례 IC - 19번국도 남원방면(15km)
- 산동 교차로 진입 - 4.0km - 수락폭포
4. 광주 - 호남고속도로 - 곡성(9.5km) - 곡성읍 -
17번국도(15㎞) - 압록 - 17번 국도(8㎞) - 구례구역
- 18번국도 - 5.5km - 구례IC - 19번 국도 남원방면(15km)
- 산동 교차로 진입 - 4.0km - 수락폭포
<원촌(院村) 마을>.
원(院)은 이조 때 교통요지에 세운 국립여관(國立旅館)
전국도로를 <대> <중> <소>로 나눠 각 요로에 세운., 원
인가가 드물어 행인통행이 불편한 곳에 세운 원.. 두가지.
순천에서 구례, 곡성 남원, 장수, 무주, 충북 영동
원촌마을은 옛부터 2등급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
하여, 옛날 남원부사가 묵어갔다는 순시비가 있고
마을뒤 논에는 옛날 원사가 있던 흔적이 출토된다.
이 원 주변에 취락을 형성한 것이 오늘날 원촌마을.
<서불 흔적.>.
지리산 동쪽 끝이 산청 함양 이면, 서쪽 끝은 구례.
구례는 지리산 종주의 들머리이자 날머리 거점이다.
구례는 지리산 북쪽 남원과 남쪽 진주를 이어주는 곳.
'진나라 서불이 500 동남동녀와 들렀던 구례.'
구례 서시천은 서불(徐市)을 잘못 읽어 유래된 지명.
남해군 이동면 양아리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진 글자.
'徐市題名刻字' 가로 50㎝, 세로 100㎝..크기의 문자.
진나라 서불이 이곳에 새긴 동양 최고의 화상문자.
지리산(삼신산) 불노초를 찾으러 왔던 서불의 흔적.
서불은 동자 5백명과 함께 남해를 거쳐 구례로 온듯.
해금강 거제도 우재봉 아래의 ‘서불과차(徐市過此)
진시황에게 불로초를 구할 수 있다며 이곳에 온 서불.
서불이 동남동녀 3천명과 함께 머물렀다는 전설의 고향.
'서불은 두 번에 걸쳐 우리나라를 찾아온 흔적.'
우재봉 해안 절벽에 배위에서 새겼다는 서불과차 글귀.
지금은 오랜 풍화작용으로 지워져 흔적만 남아있을 뿐.
지금은 약초가 많은 섬이라 하여 ‘약초섬’이라는 지명.
제주도 서귀포 정방폭포에도..徐市過此(서불과차).
2500년전부터 진나라와 교류가 있던 곳.
제주도 서귀포, 거제도 해금강 남해 일대.
서불의 발자취들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남해 구례는 지금도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관문.'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구례구 역을 자주 찾게된다.
그러나, 그곳을 갈때마다 정작 구례는 지나치게 된다.
결국, 자주 찾아가면서도 구례에 관해 모르고 돌아온다.
'구례에 한번 관심 갖고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구례 지명의 유래..................................
백제 시대에 권력다툼으로 우정이 멀어졌던 두 정승
그 중 한 친구가 물러나 구례 봉성산 기슭에 살았다.
남은 한 친구인 정승도 뒤늦게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
옛 친구와 얼싸안고 상견례 취했다 하여
예(禮)를 구(求)한 고장이라 하여.,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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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등 사찰이 많은 고장.
임진왜란에는 승병 본거지, 현대사에서는 이념 및 사상 전쟁.
반란의 역사에 휘말린 빨치산 역사의 증인들이 많이 살던 구례.
<토지면> 산간 주민들은 공비에 협조한 죄목으로
당시 죽임을 당했거나, 강제부역을 강요 당했거나,
또는 토벌군에 의해 강제로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
평화로운 삶을 구하려던 산간마을 주민들
전쟁과 이념은 너무도 집요한 불행의 그림자
아직도 반세기 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은 듯.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부터 1955년 5월까지
이미 고령화 된 '토벌군과 빨치산 산증인들'
당시 여순반란사건 주력부대였던 14 연대가 빨치산이 된 이유.
동족 간 싸움을 피하려다가 빨치산으로 몰려 죄 없이 죽어갔다.
이젠 그 억울한 누명도 벗겨주고 억울한 혼들도 달래야 할 시기.
전남 북동부 끝에 있는., 구례군(求禮郡).
지리산국립공원을 낀 명승고적이 관광자원.
산지의 원예농업과 관광산업이 주된 수입원.
구례읍·간전면·광의면·마산면·문척면·산동면·
용방면·토지면 등 1개읍 7개면 69개 동리가 있다.
군청소재지는 구례읍 봉남리. 면적 441.71㎢,
인구 30,600(2003), 인구밀도 69.1명/㎢(2003).
청동기시대 이후의 유물들이 발견되는 유적지.
삼국시대에는 백제 구차례현(求次禮縣)이 설치.
757년 구례현으로 개칭후 곡성군 영현이 되었다.
고려 때 1018년 남원부에 예속되었다가
1143년(인종 21) 감무를 두어 독립되었고
이조 초에 군현제 개편에 따라 현감을 파견.
1499년(연산군 5) 주민들 역모로 남원에 합병
1507년에 복구한 적이 있고 별호는 봉성(鳳城).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군이 되었으며,
1896년에 전남에 소속 1906년 행정구역 정리
고달면·중방면·외산동면·내산동면·소아면
남원 5개 면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확장되었다.
1914년 고달면을 곡성으로 ,
현내면·가사면을 구례면으로,
문척면·간전면을 간문면으로,
소의면·방광면을 광의면으로,
용강면·중방면을 용방면으로
토지면·마산면·외산면·내산면은 그대로
1932년에 내산면·외산면을 산동면으로 합하고,
1946년 간문면을 문척면과 간전면으로 나누었다.
1962년 구례면을 읍으로 승격했다.
소백산맥의 한 줄기인 지리산이 뻗어내려 험준한 산지.
구례 북동부와 남서부는 반야봉(1,732m)·노고단(1,507m)·
만복대(1,433m)·고리봉(1,248m)·따리봉(1,127m)·도솔봉(1,123m)
구례 중부와 서부는 천마산(654m)·깃대봉(691m)·요강바위산(546m)
섬진강은 구례 남부에서 지리산과 백운산을 끼고 굽이 돌아
하동군 화개를 거쳐서 남해로 흘러들며, 구례의 젖줄은 서시천
서시천(西施川)은 만복대에서 발원하여
구례분지 중앙부를 통과 섬진강으로 유입.
그밖에 북부 산지에서 발원한 연곡천·신도천,
남부 산지 효곡천·수평천이 섬진강에 흘러든다.
구례군은 큰 산과 하천, 평야를 골고루 갖춘 지형
구례군 중앙에 하천을 끼고 형성된 분지는 토양이 비옥
기후는 산간 내륙이라 한서 차가 심하고 비가 많이 온다.
구례읍 신월리에서 나는 배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토지면 문수리를 중심으로 하여 고랭지채소가 재배된다.
산동면 일대의 산수유 열매는 타이완으로 수출하고 있다.
한편 섬진강 황어는 구례의 명물.
구례장은 과거 목기시장으로 유명.
전라선이 구례와 순천 경계선 섬진강 따라 달리며,
순천시 구례구역에서 국도를 통해 구례 군내로 연결.
19번 국도가 남원을 거쳐 88올림픽 고속도로와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순천과 하동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된다.
화엄사 관광도로가 있고 남원으로 연결되는 88올림픽 도로
구례군 내에 선사시대 유적으로 고인돌이 100 여기 이상 있으며
마산면 냉천리 돌도끼, 대산리·용두리·중방리 토기가 각각 출토
화엄사·연곡사·천은사 등 사찰 내에는 각종 유물·유적들이 보존.
유교 문화재로는 구례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황현을 배향한 매천사우(梅泉祠宇:전남 문화재자료 제37호),
남악사), 임진왜란 때 전사했던 7인을 모신 석주관 7의 사묘
윤문효공신도비(尹文孝公神道碑:보물 제584호),
방호정(方壺亭: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2호),
김완장군전승유허비(전라남도 기념물 제50호)
설화로는 화엄사 각황전 복원에 얽힌 전설
사도촌전설, 온두동전설, 지리산에 얽힌 전설
민요는 노동요인 〈상사소리〉·〈상여소리〉·
<지경 다지는 소리〉〈상량소리〉와 〈육자배기〉
구례의 민요는 하나같이 애닯고 슬픈 음률.
고대사회부터 수없이 전란을 겪은 때문이다.
하여, 우리 민족 애환이 가장 깊게 담긴 민요.
<상사소리>
메: 어어이 여어허 여허어 여루우 사아앙 사아아 뒤이여
받: 여어이 여어허 여허어 여루우 사아앙 사아아 뒤이여
메: 여보시오 농부님네 요 내 한 말 들 어보소 아나 농부야 말 좀 듣소
한 일 자로 쭉 늘어서서 입구 자로만 모를 심세
받: 어어이 여어허 여허어 여루우 사아앙 사아아 뒤이여
메: 남훈전 달 밝은디 순임금의 놀음이요
학창의 푸른 도솔이 산신님의 놀음이요
오뉴월이 당도허니 우리 농군 시절이로다
패랭이 꼭지에다 계화를 꼽고서
매화라기 춤이나 추어보세
받: 어어이 여어허 여허어 여루우 사아앙 사아아 뒤이여
<자진 상사소리>
메: 어이 여 여허 여허루 사 앙사 뒤여
받: 여이 여 여어 여허루 사 앙사 뒤여
메: 나렸단다 나렸단다 암행어사가 나렸단다
받: 여이 여 여어 여허루 사 앙사 뒤여
메: 충청도 중복장은 요지가지가 열려 있고 적벽강 추야월은 아그데 다그네 열렸네
받: 여이 여 여어 여허루 사 앙사 뒤여
<육자배기>
민요 판소리에는 무속적인 요소도 들어있고
충·효·열녀 같은 유교적인 관념도 있으며,
신선 사상이나 불교적 관념도 깊이 배여있다.
판소리 음률에는 육자배기 토리만 있는게 아니고,
'추천목'이나 '경드름'과 같은 경기도 민요의 선율,
'메나리조'와 같은 경상도 민요의 선율도 들어 있으며,
심지어는 한시의 시창이나 시조·
가곡성(시조창 같은 사대부 성악)
염불과 같은 불교 음악도 들어 있다
“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몰려 들어온다.
우장을 두르고 지심 매러 갈거나,
진국명산 만장봉에 바람이 분다고 쓰러지며
송죽 같은 굳은 절개 매맞는다고 훼절할까…”
연하반 산악회.
지리산 근대 등산사와 산악운동사를 안고있는 노고단
지리산 근대 산악사 주역은 구례 연하반(煙霞伴)산악회
하여, 노고단은 지리산 산악 운동사의 시발점인 곳이다.
연하(煙霞)란 안개와 노을, 고요한 산수를 뜻하는데,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을 연하지벽(煙霞之癖),
연하반(煙霞伴)을 명명한 구례중학교 초대 교장 백경.
연하반산악회가 창립된 시기는 1955년 5월 6일
구례중학교 우종수 교사의 주도로 창립이 되었다.
공비 토벌작전을 끝낸 수도사단이 54년 12월 철수하자
55년 4월 구례중학교 동료 교사들과 처음 노고단 등정.
하지만 전쟁 여파로 종전의 등산로는 찾을 길이 없었다.
거미줄처럼 뒤엉켜 혼란만 주는 작전용 소로(小路)
첫 노고단 등정에 실패한 우종수는 노고단 뿐아니라
지리산 전역의 등산로 개척에 강한 집념을 불태웠다.
하여, 그는 '구례 연하반'이란 산악회를 만들게 된 것.
1955년 5월5일, 연하반산악회 창립총회를 겸한 기념산행
하지만 연하반산악회 창립 기념 노고단 등정마저도 실패
잡초와 잡목에 막혀 해발 1200m 지점에서 되돌아서야 했다.'
우종수는 그해 5월 세번째 노고단 등정 도전
마침내, 해발 1506m 노고단 정상에 성공했다.
연하반산악회는 그후 지리산 등산로를 본격적으로 개척
1956년 반야봉, 1957년 노고단~천왕봉 주능선 등산로 개척
우종수 회장은 당시 천왕봉 일출 장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해발 1915m 영봉 아래 온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던 장관
'지리산 8경'을 선정할 때 천왕봉 일출을 제1경으로 선정.
창립 10년후인 1965년 지리산 산악회로 개명.
당시 회장은 우종수, 부회장은 함태식
지리산 종주 코스 등을 개척한데 이어
지리산 등산지도를 제작하여 배포했다.
1980년대, 지리산 등산구 마을이나 산장에서 팔던 '등산 안내도'
빠짐없이 구례의 지리산산악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 관례
지리산 안내도는 지리산산악회에서 제작한 등산지도를 참고했다.
지리산산악회는 1972년 "지리산 10경"을 선정 발표
지리산의 10경
제 1 경 노고단의 운해
운무가 파도처럼 몰려와 주변의 산과 계곡을 휘감으면
구름바다를 이루어 마치 하계를 떠나 선계에 오른 환상
특히 5월 철쭉이 노고단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시작
한여름철과 가을에 걸쳐 피어나는 야생화군락은 천상의 화원.
제 2 경 피아골의 단풍
지리산 최대의 활엽수 지대인 피아골
10월 하순 피아골을 뒤덮는 단풍의 절정
산이 붉고 물이 붉어 사람 마음도 붉다.= 3홍.
제 3 경 반야봉의 낙조
지리산 제 2의 봉우리로 알려진 반야봉.
높이가 아닌 그 존재의 의미로서 제 2 봉.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높이와 관계없이 제1봉.
황금빛 노을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풍경은 장관.
제 4 경 섬진청류 (섬진강의 맑고 푸른물)
섬진강 뱃머리에 비친 지리산 자락의 그림자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의 푸르고 맑은 강물
백사장따라 섬진강 위로 두둥실 떠가는 돛단배
제 5 경 벽소령의 명월
벽소령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빛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못해 부서질듯 찬란
밤의 정막 속에서 고요히 떠오르는 벽소령 달빛.
제 6 경 불일폭포
불일폭포에서 떨어지는 오색영롱한 물줄기.
무지개가 어린 폭포수 소리는 천지를 진동.
소에 꽂힌 폭포를 거슬러 피어오르는 물안개
골짜기 밖으로 강물처럼 흐르는 듯한 구름바다.
제 7 경 세석평전의 철쭉
해발 1600m 세석고원의 수만그루 철쭉 군락.
고원을 붉게 물들여 꽃필 무렵 낭만적인 정경.
제 8 경 연하선경.
연하봉의 기암괴석 사이로 온갖 기화 요초
이곳에서 앉아 있으면 신선이 된 듯한 기분.
중산리에서 동틀 무렵 바라보이는 경관이 장관.
장터목을 사이에 둔 새벽여명의 실루엣이 환상적.
제 9 경 천왕봉의 일출
끝없이 펼쳐진 구름바다 저편 동녘의 새벽 여명.
붉은빛이 감돌다가 휘황찬란하게 솟구치는 용트림.
부채살 같이 사방으로 뻗치며 불쑥 솟아 오르는 일출
3대에 걸쳐 적선해야 볼수 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장엄.
제10 경 칠선계곡
지리산 최대의 계곡으로 수많은 소와 폭포가 장관
가득한 원시림 및 청정한 개울과 험한 산세가 절경
목욕하는 선녀들의 전설이 떠오를 만큼 아름다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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