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128 ( 사량도. 옥녀봉의 전설. 욕지도. 거문도. )

donkyhote 2011. 2. 28. 03:55


사량도.

 

통영.

 

 

'지리산 十경' 섬진강으로 들어오는 바닷길 길목.

사량도 정상에 올라서면.,지리산을 닮은 한려수도.

하여, 사량도 정상에 있는 산의 이름은., 지리(망)산.

 

'지리(망)산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풍경.'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섬들이 산그림자 같은 한려수도.

지리산을 닮은듯., 지리산을 바라보는듯 하여.,지리(망)산.

한려수도는 수평선 바다 위에 펼쳐진 또 하나의 지리산 같다.


사천 삼천포항에서 40분 배 타고 돈지 선착장에 내려
지리산 불모산 거쳐 옥녀봉에 이르는 산행코스는 일품.
사량도는 한려수도 바다에 떠있는 설악산 용아장성 같다.


사량도는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가 고성군 하일면 문수암에서
바라본 두 섬이 짝짓기 직전의 뱀 같다 해서 이름 붙였다 한다.

새벽 바닷길을 가르면서 달리는 쾌속선.

 

신부 웨딩드레스처럼 희게 부서지는 포말.
한려수도 다도해에 두둥실 붉게 떠오르는 일출.
바람막이 옷까지 끼어 입어도 춥고 바람 찬 새벽.

돈지항 - 지리산 - 불모산 - 옥녀봉 - 진촌마을(4시간 소요)

사량도 지리산(해발 398m)은 1m 더 높은 불모산을 젖혀두고
윗 섬의 대표적인 산으로 불리우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불모산, 가마봉, 향봉, 옥녀봉으로 이어진
연봉의 능선은 오랜 세월 해풍에 깎여 험하다.
급한 바위 벼랑을 지나다보면 오금이 저릴 만큼.

섬진강이 끝나는 여수반도와 삼천포 앞바다의 사량도.
그곳 산세가 다도해와 어울어져 지리산을 닮은 섬이다.
사량도는 역사적으로 해적 또는 왜구의 피해가 많았던 곳.


여수를 오가는 무역선을 약탈하는 해적들의 거점이기 때문.
장보고가 청해진 대사일때엔 해적들이 평정된 평화로운 시절.
장보고가 암살된 이후 공도령이 내려져 5백년간 인적 끊긴 섬.

사량도는 지리적 여건상 해적과 왜구가 들끓을 수 밖에 없던 섬.
사량도는 근친상간의 비극적 사랑 '옥녀봉의 전설'로 유명한 섬. 

신라시대 왕실에서 성행했던 근친상간.
파라오가 통치한 이집트 왕실의 근친상간.
구약성서 창세기 편에도 등장하는 근친상간.

부모 부부애를 시샘하는 자녀의 이디프스 콤플랙스.

어머니와 아들은 전생의 연인관계라는 불교 전생설.
가정에서 어머니와 딸은 전생에 연적의 관계라는 설.
오누이처럼 닮은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산다는 부부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오누이 같은 연인 사이.'

모두 근친상간에서 비롯된 옛 풍습으로 추정된다.
구석기시대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하기 이전 풍습.
근친상간 '전설의 고향'은 곧 구석기시대의 유적지.

상고시대 우리나라에 정착한 '풍이족'의 풍습.

인류의 조상은 뱀이라 여긴, 저지대 풍이족.
바람의 나라로 알려진 진한은 '신라의 전신'.
사량도는 상고시대 풍이족의 한반도 유입 경로.

 

 

 

 옥녀봉의 전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윗 섬 아랫 섬이 마주보는 뱀 같아 ‘사량도’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산‘이란 뜻으로 '지이망산‘
그곳 다도해 풍경마저 지리산 같다는 뜻으로 ‘지리산’
‘부녀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전설이 슬픈 ‘옥녀봉’

옛날 이곳 사량도의 외딴 집에는 혼기가 찼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섬에 결혼할 총각마저 없기에
시집도 못간 딸과 홀아비 단 둘이서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정절을 잃고 자살.
하여, 그 섬에서 아버지와 딸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혼기 찬 딸을 늘 연민으로 지켜 본 아버지!
홀아비의 외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옥녀!

어느 날 아버지는 옥녀에게 욕정을 느껴 범하려 하자
옥녀는 人倫의 道理로는 아버지를 차마 받아들일 수 없으니
짐승의 탈을 쓰고라도 아버지가 산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오시면
사랑을 받아들이겠다며 집을 뛰쳐나와 산으로 몸을 피했다고 한다.

죽은 아내를 빼 닮은 딸의 모습에 더욱 넋이 나간 아버지는
소가죽을 뒤집어쓰고 욕정을 채우려 뒤따라 산으로 기어올랐다.

옥녀는 산 정상까지 뒤쫓아 오는 아버지를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옥녀는 몸을 지키려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는데 지금도 비가 내리면
옥녀가 죽은 그 자리에는 옥녀의 피가 흐르는 듯 붉은 이끼가 피어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구전에 의하면, 옥녀 아버지도 뒤늦게 욕정을 후회하며
돌로 성기를 찍고 숨을 거두어 그 피가 먼훗날 붉은 이끼.
하여, 사량도에서는 婚禮를 할때 大禮를 올리지 않는단다.

대례는 신부집에서 첫날밤 합궁하는 혼례 풍습.
이 전설은 임진왜란 당시의 전설이라고 알려졌다.
근친상간에 관한 내용이라 오랫동안 숨겨졌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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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로 사량도에 주민이 거의 없었던 듯 싶다.
부녀자는 모두 잡혀가고 힘쓸 젊은이는 전쟁터에 나간 듯.
임진왜란에 이어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의 참상이 짐작된다.

옥녀봉의 전설은 윤리와 도덕에 어긋난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앞으로도 지켜져야 한다고 여겨진다.

서양 관광지에 얽힌 신빙성 없고 날조된 듯한 전설보다
이 전설은 무형 문화제 관광자원으로 무한 가치가 있다.

이 전설이 관광수입과 직결되어 지역경제에 힘이 되고
이 섬의 후손들의 마음속에서 애향심이 점점 더 자라나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전설들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욕지도(欲知島)

 

바다에 떠있는 지리산 끝자락 같은 섬.

한려수도의 끝자락을 이루는., 욕지도.

행정구역 상으로  경남 통영시 욕지면,

 

사량도처럼 옛부터 왜구의 피혜가 극심했던.,욕지도.

 동아시아 국제 무역상선들을 털던 옛 해적들의 본거지.
장보고가 해적을 소탕해 당나라와 왜를 잇는 항로 개설.

주위에는 상노대도·하노대도·안거칠리도·밖거칠리도·
초도 소초도 연화도 우도·두미도·갈도 크고 작은 섬들
장보고가 암살당한 이후 500년간 공도로 남아있던 욕지도.

최고봉 천황산(392m)은 남동쪽에 솟아 있으며, 곳곳에 암릉.
북동쪽 해안은 깊숙한 만을 이루어 항만으로 개발되어 있다.
북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높은 해식애가 발달한 암석해안.

동항리 동서쪽에 소로가 있고, 북동쪽 만에 욕지항.
통영항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1일 4회 운항된다.
면적 14.5㎢, 해안길이 31㎞, 인구 4,781, (1991년 통계).

한려수도 끝자락 39개 섬을 거느리는 욕지면의 본 섬.
통영항에서 직선거리 27㎞, 뱃길 32㎞ 떨어진 망망대해
통영시 한산도 비진도 매물도의 유명세에 눌려 한산한 편.

섬 전체가 바위산이라 도로 사정이 열악한 편이다.
욕지도는 모두 1000 여 가구 주민이 살 만큼 큰 섬.

'욕지(欲知) = 알고자 하거든..'이란 뜻의 이름

모든 욕심을 버리고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
그 때 '욕지도'라는 섬을 한 번 떠올려 보자.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한려수도 고운 물결,

빈약하지 않으면서도 대단하지 않고 소박한 풍경
주위에는 갯바위 낚시를 할 수 있는 바위가 즐비.
서산리 덕동 해수욕장 밤자갈밭 해안은 인기 높다.




거문도(巨文島)

 

 




팔금도 8 섬 가운데 하나인 거문도.
팔금도에 관해 우선 알아보기로 하자.

.............팔금도...................
섬에 가면 섬안의 넓은 면적에 놀라고,
육지 못지않게 많은 농사에 또 놀란다.
팔금도는 신안 면 섬 중 가장 작은 섬.

팔금도는 매도, 거문도, 거사도, 백계도,
원산도, 매실도, 일금도 등 8개의 섬이 연결
그 모양이 나는 새와도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1900년대 이전 현재 논들은 대부분 갯벌이었고
고작 산골짜기 옹달배미 정도가 논이었던 곳이다.

암태도와 추포리 사이 갯벌까지 나가
갯지렁이를 잡아오는 팔금도의 주민들.
겨울 염전 저수지를 손질하며 잡는 망둥이

갯벌은 낙지, 석화, 망둥이 잡이 어민들의 소중한 공간
서해에 서식하는 고기들이 산란하고 성장할 수 있는 터전.
칠면초, 퉁퉁마디, 나문재 등 갖가지 염생식물이 자라는 갯벌

갯벌 인접한 사구에 솔장다리, 순비기나무,
통보리사초, 갯방풍, 해당화 등이 잘 자란다.
바다와 육지 생물들이 공존하는 팔금도의 갯벌

철따라 낙지, 갯지렁이 등 소득원이지만
함초 등 염색식물로 만든 음식과 한방치료,
갯벌로 만든 화장품 등은 다양한 기능성 상품

팔금도는 암태도를 비롯해 인근 자은도, 안좌도
다리가 연결되면 육지(압해-목포 연도교 공사 중)

팔금도의 생업은 쌀농사와 마늘농사가 중심이다.
한때 일부 염전은 소금 값이 떨어지면서 새우양식
고산마을을 중심으로 김양식를 비롯해 어업이 활발.

팔금도만 특별히 고기잡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봄철에 숭어, 가을에는철 낙지잡이와 망둥이 잡이,
봄가을에는 농게와 서리게(칠게)를 많이 잡는다.

숭어잡이는 대맥이와 개맥이 삼중그물(삼마이)을 활용한다
대맥이는 개맥이처럼 썰물에 그물에 갇힌 고기를 잡는 방식.

모래펄이 발달한 곳에서는 삼중그물을 부표를 달고 고기잡이.
말목을 치거나 닻을 매어 조류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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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속해있는 섬.
다도해와 제주도 항로를 밝히는 거문도 등대.
고흥반도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다.

고도(0.83㎢)·동도(3.4㎢)·서도(1.77㎢)의 3섬

최고봉인 동도의 망향산(247m)을 비롯,
서도의 음달산(237m)·수월산(128m) 등
비교적 급경사 기복이 심한 산지로 형성.

해안은 외탄갑·다렝이끝·취끝·대매지끝
등 작은 돌출부가 많고 들쑥 날쑥이 심하다.
암석해안 동도 남쪽 해안은 높은 해식애 형성.

고구마·감자·마늘·보리·콩·유채·참깨·양파
연안 일대에서는 삼치·멸치·장어·도미·갈치 등
자연산 굴·미역·조개류 등의 채취와 최근 미역양식

취락은 동도 서쪽 해안가인 유촌·죽촌마을,
서도 북쪽 서도리·남쪽 덕촌리, 고도 서쪽

3섬으로 싸인 도내해(島內海)는 파도가 잔잔
수심이 깊어 거문항은 원양 어업의 전진기지
서도는 연안항로의 기항지로서 중요한 역할.

거문도는 문장과 학문이 탁월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곳
거문도 서도 수월산 아래 바다 속에 길이 30m 남근형 바위
그로 인해 대유학자가 태어났다 하며, 문필암이라고도 한다.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이 섬에 들어와 김유 대학자와 필담
그의 문장력에 탄복해 거문도라 이름지었다는 일화도 있다.

1905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들어선..거문도
동양에서 최대 규모의 등대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수월산의 동백나무숲,
남해안 최고 절경에 속하는 백도 등 아름다운 관광지
영국군 묘지, 거문사, 유학자 김양록을 기리는 서산사

거문도 해역은 고기떼가 훤히 보일 정도로 물이 맑으며,
특히 성어기에 고기잡이 배들이 몰려와 불야성을 이룬다.

거문도와 주변 섬들은 갯바위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고.
여름철이면 해수욕과 함께 낚시를 즐기는 외지인들도 많다.

거문도 동쪽 28km쯤 떨어진 백도의 39개 무인도
깎아지른 듯한 바위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바위벽은 세로로 골골이 파여져 있어 오묘한 모습.

크고 작은 섬들도 갖가지 기묘한 형상을 띄어
바다 속에 잠긴 금강산처럼 풍광이 빼어나다.

섬 안에는 천연기념물 제 215호인 흑비둘기를 비롯
휘파람새, 팔색조 등 뭍에서 보기힘든 30여 종 조류

120여 희귀 동물이 서식하고 소엽풍란, 눈향나무, 등
40여 종 식물이 자생하며 붉은 산호가 무리 지어 있다.

섬 전체 봉우리가 백에서 하나 모자라 백도(白島)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흰 빛을 띠고 있어 백도
백도는 명승지 제 7호로 지정되어 일반인 상륙 금지.

...............거문도 해수욕장..................
거문도항 건너편 서도에 위치한 유림 해수욕장
백사장 규모는 폭 20m, 길이 200m로 물 맑은 곳.
주변에 동백꽃과 유채꽃, 해녀들이 어우러진 풍경
부드러운 해안선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매년 7월21일에서 8월15일까지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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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360여 년전 추씨(秋氏)가 처음 거주한 곳,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에 추씨 할머니를 모시는 제사.
여수-거문도 간 정기 여객선이 하루에 5번 왕래한다.

수백년 동백나무 고목이 뒤덮인., 서도
섬 일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여
관광객유치를 위한 관광개발에 주력한다.

<거문도 뱃노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거문도라 부르기 전에는 삼도·삼산도·거마도라 불렀다.
1885년(고종 22) 영국의 동양함대가 거문도를 불법 점령
해밀턴 항구라 불렸다가 정여창 등 석학이 많기에 거문도.

문장가들이 많다는 뜻인 '거문'으로 개칭

1885년 4월부터 약 2년간 영국 동양함대가 점령한 거문도
당시 세계적인 규모로 러시아의 남하세력에 대항해온 영국
러시아는 1860년 한반도 동해 인근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

함남 영흥만, 제주도,쓰시마섬 등이 러시아 점령 대상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명분을 세워 거문도 점령
한국을 침범 않겠다는 러시아 약속후 1887년 함대 철수.

현재 거문도에는 영국군 묘지가 남아있고
영국대사들이 몇년에 한번씩 다녀가는 곳.
영국 여왕 내한 당시 방문계획이 취소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