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7개의 섬이.. 사도.
본도 간도 시루섬 중도 증도 장사도 나끝
연목 등
정월 대보름과 2월 영등일에 2∼3일간 갈라지는 바다.
길이 1.5km, 폭 30m 길이 열리며 'ㄷ'자로 이어진 7
섬.
충무공이 거북선을 구상하게 했다는 거북바위,
충무공에 관한 전설이 얽혀있는 증도의 장군바위,
맑은 물이
솟아나는 젖샘바위, 그리고 멍석 바위,
남산 야외음악당을 방불케하는 높이 20m의 동굴바위,
사람의 옆얼굴을 닮은
얼굴바위, 고래바위, 용미암 등
기암괴석마다 갖가지 전설이 숨어있어 더욱 흥미로운 섬
그밖으로는 양면으로 바다로
트여있어.. '양면 해수욕장'
고운 백사장이 일품인 사도 해수욕장 등등이 가족 피서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공원의
언덕에 앉으면
바다 건너편의 낭도리 일대까지 한눈에 보인다.
사도는 임진왜란 때 왜군함들이 주둔했던 격전지.
최근에는 국내 최대 길이의 공룡 발자국 행렬(84Km) 발견.
약 1억년 전 나무가 퇴적된규화목 화석층이 각광받고 있다.
교통안내
1) 여수항-사도 백조호 06:10, 15:50 1일 2회 (1시간 20분)
2) 섬내
교통편 본도와 중도 초입까지 4백m 해안도로 도보.
3) 여수 돌산대교에서 피서철에 운항하는 관광유람선이 있음.
야
영 지
사도해수욕장, 본도해수욕장에서 야영이 가능하다.
양면 해수욕장은 밀물 썰물 차가 심해 야영은 위험
통영(統營).
경남 남단에 있고 동쪽은 거제시, 서쪽은 남해군,
북쪽은 고성군, 남쪽은 남해와 접한 충무공 격전지.
면적 237.13㎢(2004년 말 기준), 인구 13만2,709명
통영은 한반도 남쪽 중심부 고성반도 끝에 위치
한려해상 국립공원 심장부로 삼면이 바다로 싸인 곳.
해안선
굴곡이 심하고 바다에는 150 개 크고 작은 섬
해양성 기후 영향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
연평균 기온은
14.1℃로 가장 추운 1월 평균기온은 2.3℃
가장 더운 8월의 평균기온은 25.7℃로 일교차가 적은 곳.
특히, 풍경이
빼어나고 기후도 좋아 옛부터 축복받은 고장.
한산대첩과 당포승첩, 원문전첩, 충무공의 격전지
청정 해역을 낀
수산도시이자 예술문화의 도시
한국의 연안 양식어업을 선도하는 수산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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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경남 남해안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어 통영시
임진왜란 한산대첩 격전지인 고성반도 한산도 미륵도 등
한려 해상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해양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청정해역으로 특히 굴 양식과 멸치잡이가 활발하다.
산양읍·용남면·도산면·광도면·욕지면·한산면·사량면·
무전동·도천동·서호동·명정동·항남동·중앙동·문화동·
태평동·동호동·정량동·북신동·평림동·인평동·당동·
미수동·봉평동·도남동 등 1읍 6면 17동 시청 무전동.
삼한시대에는 변진 12국에 속했으며,
삼국시대 초기에 가야의 영역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고성군
고려시대에는 995년(성종 14)에 고주(固州)
1391년(공양왕 3)에 고성현이 이조까지 유지.
통영 명칭은 경상 전라·충청 3도 수군을 통괄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의 약칭이다.
1593년(선조
26)에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고
일본이 남해와 서해로 가는 길목인 한산도에 통제영 설치
리아스식 해안이고 151개
도서(유인도 43개, 무인도 108개)
취락은 고성반도 광도면 도산면을 제외하고 거의 해안가
욕지도의 경우 3간 홑집
구조(온돌방-온돌방-부엌-툇마루)·
4간 홑집 구조(온돌방-대청-온돌방-부엌-툇마루)를 기본형
사량면에서는 전(田)자 형의 2간
겹집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통영 앞바다에서 잡히는 멸치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용남면 거제시 사이 진해만 해역과
사량도 윗섬·아랫섬
욕지도에서 많이 잡히며 통영시에는 160 개 어항이 있다.
통영은 마산-거제 국도가 지나며 그밖 지역은
해상교통에 의존
통영에서 부산·여수·욕지도·비진도·윗섬·아랫섬 정기여객선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로서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
한산면의 비진도해수욕장·추봉리자갈해수욕장,
산양읍 연대해수욕장, 욕지면 목과자갈해수욕장
특히 비진도해수욕장은
수려한 경관을 지닌 피서지
부산·마산·진주 등 인근 도시 주민들의 주말 낚시터
한산대첩축제
세계
해전사상 유례가 없는 대승첩인 한산대첩
충무공을 기리기 위한 매년 8월의 종합문화축제.
군점, 풍어제, 승전무,통영오광대,
마당놀이 등등
통영 나전칠기 축제
장인의 예술혼이 스며들어 문양과 색깔이 신비하고,
통영 나전칠기는
통제영 12공방시절 그 기예의 절정.
실 같이 켜낸 자개를 기하학적 문양을 넣는 '끊음질'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통영의
400년 전통
교통정보
구 분 타는곳 내리는곳 운행시간 배차시간 소요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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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고속
서울 통영 07:00-24:30 1일 14회 4시간 30분
직행버스 서울 통영 07:20-23:10 1일 12회 4시간 30분
"
부산 통영 05:40-20:38 수시 2시간 10분
" 마산 통영 05:40-21:15 수시 1시간 10분
" 진주 통영
06:00-21:00 수시 1시간 20분
" 대구 통영 06:30-23:40 수시 2시간 40분
" 대전 통영
07:30-19:10 수시 3시간 30분
공항버스 사천 통영 09:05-20:40 1일 10회 1시간
관광코스
1) 1일 코스 :
청마문학관 - 남망산국제조각공원 - 향토역사관 -
세병관(통제영지) - 충렬사 - 해저터널 -착량묘 -
산양관광도로(달아공원, 통영수산과학관) -
도남관광지(마리나리조트,
전통공예관) -전혁림미술관
해상관광(한산도제승당, 거제해금강, 소매물도)
2) 2일 코스
청마문학관
- 남망산 조각공원 - 향토역사관 - 세병관(통제영지)
충렬사 - 해저터널 - 착량묘 - 산양관광도로- 도남과강지-해상관광
3) 해수욕장
비진도해수욕장, 봉암해수욕장, 도남해수욕장,
덕동해수욕장, 연대도해수욕장, 대항해수욕장
4) 등산, 사찰, 도서,
미륵산, 벽방산, 사량도 지리산, 사량도 칠현산, 한산도 망산
안정사,
용화사, 미래사, 연화사, 한산도, 욕지도, 사량도 등.
진해.
인도 야후타국
공주 허황후 일행이 들어온 항구.
기록 상 외국 배가 한반도에 입항한 최초의 항구.
용원동 망산도 유주암 유주비각(경남 기념물
제89호)
처음 공주가 부모님 명을 받들어 바다건너 올때
풍랑으로 되돌아가자 부왕은 탑을 싣고 가라 했다.
이에
편히 바다를 건너와 가락국 남쪽 언덕에 정박
그 배에는 붉은 돛과 붉은 깃발을 달고
아름다운 주옥을 실었기에
그곳이..주포.
공주가 비단 바지를 벗었던 곳이.. 능현
붉은 깃발을 달고 들어온 해안이.. 기출변.
야후타국
파사왕이 하사한 탑이..파사석탑.
닭 벼슬 피를 떨궈도 굳지 않는다는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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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는 군항제로 유명하며 부산 창원 마산과
인접도시.
진해는 원래 웅천현 영역, 옛 진해현은 창원시의 일부
웅천현은 신라 때 웅지현에서, 통일신라 시대에 웅신현.
통일신라시대 웅신현은 의안군(창원)의 영현이었다.
고려시대 1018년(현종 9) 금주(김해)의 속현으로 합속
이조
시대 세종 때 '첨절제사' 설치, 문종 때는 웅천현.
1510년(중종 5)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현으로 복구.
1895년
진주부 웅천군, 1896년 경남 웅천군이 되었다.
1906년 8월 진해만이 군항으로 되자 군항도시로 성장
1908년 9월
웅천군과 진해군을 폐지해 창원부에 병합,
1910년 마산부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창원군에 편입.
1931년 진해면이 진해읍으로
승격되었다.
1946년에 해양경비대, 1949년에 해병대가 창설되고,
1950년 6·25전쟁 때 한국과 UN군의 해군기지로
사용
1955년 시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에 창원군 웅천면,
1983년 의창군 웅동면을 진해시에 편입했다.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하며,
근해는 모도·초리도·수도·송도·소율도·대율도·우도·
저도·부도·잠도·연도 등 유인도 4개, 무인도 25개의 섬
해안선 길이는 107.7km. 진해만은 수심이 깊고 잔잔한
항구.
남쪽에 위치한 거제군의 가덕도와 거제도가 방파제의 역할.
또한 와성만·웅동만·웅천만·마산만 등의 부속 만이 발달
죽곡동에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인 동혈주거지(洞穴住居址)
여좌동에는 초기 철기시대 것으로 알려진 조개더미가 있다.
불모산 기슭에 성흥사가 있으며, 청안동에는 도미(都彌)의 묘
그밖에 성내동의 웅천읍성지(경상남도 기념물 제15호),
대장동의 성흥사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
여좌동의 해군사관학교에 소장된 중완구(보물 제859호)
남문동의 웅천왜성(熊川倭城:경상남도 기념물 제79호)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 본거지로 삼기 위해 쌓았던 왜성
또한 일대에는 충무공이 왜군을 무찌른 안골포 해전지
자은동에는 구산성지(龜山城址:경상남도 기념물 제73호)
용원동에는 망산도 유주암 유주비각(경남 기념물 제89호)
가주동에는 최치원 친필이 새겨진 '청룡대'(靑龍臺) 바위
중원 로터리의 거북선, 구천동계곡, 마천동의 용추폭포 등
풍호동에는 충혼탑이 있고, 용원동 해안일대는 횟집이 많다.
1963년부터 진해 문화행사로 거행되어온 군항제.
매년 4월이면 전야제와 추모제 및 승전무, 검무,
벚꽃공주선발대회, 벚꽃 카니발 등의 다양한 행사
그밖에 불꽃놀이·강강술래·농악·축등행사 등등.
민속놀이로
윷놀이·연날리기·널뛰기·
그네뛰기·씨름·닭싸움이 전승된 고장.
동제는 제덕동 제덕마을 성황제
수도·사도 마을의
당산제가 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에 얽힌 전설 등.
〈갈바위 전설〉·〈부엉산 산신령 전설〉·
〈마야령
전설〉·〈대홍수와 사람의 시조이야기〉
<마야령 전설>
마산과 진해를 이어주는 마진터널
고개..마야령
옛날 어떤 남매가 이 고개를 넘다가 비를 만났다.
소나기에 흠뻑 젖은 누이의 자태에 반한 오라버니.
성욕을 가눌 수 없어 범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살.
"오라버니와 나만 아는 일, 신명도 모를 일인데.."
오라버니의
죽음을 탄식했다는 고개 이름이..<마야령>.
민요
<모찌는 노래〉·〈모심는 노래〉·
〈논매는 노래〉·〈지신밟기소리〉·
〈장독지신풀이〉·〈시집살이노래〉
거북선.
'여수에 가면 돈 자랑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수는 옛부터 중국과 일본을 잇는 무역항이기 때문.
거북선은 이순신이 여수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은 철기문화와 조선술 항해술의 진수.'
한반도는
기원 전부터 동아시아 해상왕국.
그 사실을 대변해주는 세계 최초의 철갑선.
과연, 동아시아 해상을 장악할만한 한반도.
여수는 옛부터 부동항 수심 200~300m 천연 항구.
굴곡이 심한 해안선과 한려수도 다도해는 방파제.
전남 수산물
생산량의 35 %를 찾이하는.. 황금어장.
'옛부터 여수 어민들은 바다속을 손바닥 눈금보듯.'
2천톤급 상선과
어선들이 정박할 만한 넓은 항만.
해상교통이 편리한 만큼 육로교통은 다소 불편한 곳.
하여, 여수에서 섬진강을 통해 화개장터로
이어진 상권.
'화개장터는 육로와 해로가 모여지는 교역장소.'
하여, 섬진강 팔십리 재첩국과 은어회 먹거리.
은어는 하동 섬진강의 맑은 물 1급수에서만 서식
하동 나들목에서 진월 나들목으로 빠지면 광양제철
'남해대교 및 남해
일주도로 드라이브 할 만.'
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삼천포 창선대교 완공
삼천포 들러 대전 진주 고속도로 드라이브도 좋다.
화개장터와 강 건너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 남도 대교.
'전북 구례와 경남 하동을 잇는 동서화합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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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대부분
도공들이 잡혀가 맥이 끊긴 하동 막사발
도요를 되살리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연구하여 복원.
<취화선>
영화촬영지, <대장금> 드라마 수라간 사기그릇 제작.
'쌍계사 일대와 진해 군항제에는 많은 벚꽃 상춘객이 몰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이 상징인., 진해에서의 군항제.
진해 통영 여수 광양 진도 부산진 섬진강 하구는 충무공 격전지.
............................거북선의
유래.......................................
우리나라 최고의 일출 명소인 여수 앞바다 남해의 돌산 향일암
돌산은 거북이 같은 형태라 거북선이 만들어지게 된 산실인 곳.
임진왜란 당시 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움직이는 암초'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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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바다를 가로지른 방파제 건너 있는 동백꽃 섬 오동도.
그 섬을 뒤덮었던 시누대는 임진왜란 때 사용한 화살의
원자재.
왜군에게 조총이 있었다면, 충무공에겐 시누대 불화살이 있었다.
'조총이 살상 무기라면, 불화살은 배를 태우는
무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 대륙을 삼키려 했던 임진왜란.
1592년 4월 20 만 병력을 동원, 같은 해 5월
2일 한양을 함락.
다음 달에는 평양까지 점령한 상황을 역전시킨 인물이 충무공.
남해 해상 보급로를 차단해 한반도 내륙의
왜군을 고립시켰다.
이순신은 옥포, 사천, 당포, 한산도, 부산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
...............거북선의
기원............................
거북선의 기원은 고려 말 또는 이조 초기.
실전배치 시기는 충무공의 개량된
거북선.
포문수 74개 좌우로 22개 포혈.
좌우 각각 8개의 노, 160~180명 승선
12개 방. 판자지붕을
덮어 외부공격 방어.
이순신이 개발한 거북선은 당시 가장 작은 판옥선을 이용한 것.
125명 탑승인원, 12~14개 노,
포문 14개로 빠른 기동력에 중점.
거북선 지붕는 송곳이나 칼을 꽂아 적이 승선공격을 사전에 차단.
'두께 12㎝ 이상
소나무를 쓴 강도높은 철선..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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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3월 이순신은 거북선을 여수 앞바다에서 진수
거북선이 최초로 전투에 투입된 것은 당포해전이었다.
이후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의 전략으로 혁혁한 전과.
임진왜란 이후 수군에 의해 유지되었고 거북선도 커졌다.
1745년에
14척, 1808년에는 30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순신은 움직이는 암초 거북선으로 왜군함에 돌진했다.
거북선을
피하느라 흩어진 왜함을 학익진으로 포위 공격.
원균은 임진왜란 초기에 그보다 우수한 수군과 거북선을 사용
그러나, 왜군에게
수전에서 참패해 왜군 침입을 가능하게 했다.
원균의 후퇴를 모르는 공격일변도 전략이 통하지 않은 탓이었다.
신안 앞바다 보물선.
그 보불선의 배 밑창 용골에 담겨진.
움직이는 암초 거북선의 비밀이 있다.
신안 보물선 특징은 V자형의 첨저형
그 배 밑바닥에는 큰 사각단면의 용골.
7개 칸막이 벽의 형태이므로
어느 한곳에 물이 스며들어도
다른 쪽은 보호되는 조선 기술
서양에서 이 조선기술을 쓴 시기는
신안 보물선보다
500년 후인 19세기.
널빤지 이음 부분을 맞물리게 이어
배에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조선술.
즉, 신안
보물선의 배밑창 용골과
거북선 바닥의 통나무 구조는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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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나라 말기에 양자강 하구의 경원항을 떠났던 보물선.
650년이 지난 1975년 5월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사례.
한 어부에 의해 알려진 그 사건은 고려 충숙왕 때의 일.
전남 서해안 다도해 임자도를 4km 남겨두고 침몰한 보물선.
1270 년 영광군으로 바뀐 후 154년 동안 임자도는
무인도였다.
경원항은 당시 원나라의 광주 천주 복주와 아울러 국제 무역항
신안은 고려, 원나라, 왜를 연결하는 성공 확률
50%의 뱃길.
하여. 당시 해상무역의 이윤은 목숨 걸만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6년 6월 MBC가 복원한 19 일간
3000km의 뗏목 대장정 항로.
역시, 경원항을 떠나 서해를 지나 임자도를 거쳐 일본 후쿠오카 항.
1975 년 5월
임자도 어민들이 발견한 청자수병 백자대발 백자접시
보물선이 발견된 지점은 (북위 35.1.15 동경 126.5.6) 수심 평균 20m
인양된 200톤 급 중국 보물선 선체 길이는 28.4m 폭 6.6m의 대형 상선
발견된 유물은 토기류 20,661. 금속기
729. 석제품 43. 동전 약 28 t. 등등.
사실, 보물선이 발견 전에도 어부 그물에 걸린 청자와 백자들.
어부들은
보물인줄 모르고 바다에 버렸거나 개밥그릇으로 사용.
개밥그릇이 보물인 사실을 알고 도굴단이 처음 보물선 인양 시도.
나중에야
비로서 문화제 관리당국이 앞장서서 보물선을 인양했다.
서울대 최향순 교수는 배수량 260톤 급, 시속 8 노트 배로 추정.
배수량은 <물에 잠긴 선박 부피에 해당하는 물의 무게>를 말한다.
8 노트 = 1해리(1852m) x 8 (현재 통통배
수준, 당시 대형 쾌속선.)
길이 34m, 폭 11m, 깊이 3.8m 돛배로 목포 해양유물 전시관에 전시.
'원나라
보물선이 조난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 충숙왕때 태풍속 대형상선은 전남 다도해로 배를 몰았다.
태풍에 밀려 최고 속도로
가장 가까운 임자도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임자도 4km 남기고 침몰, 겨우 상륙한 선원들도 죽었다.
무인도였던 임자도는
몇명의 생존자인 그들마저 구해 주지 않았다.
당시, 몽고군에 저항한 진도의 삼별초군을 제압하기 위해
추토사 김방경은 주변
섬들에 공도령을 발령했기 때문이다.
1270년 영광군으로 소속된 이후부터 154년간 임자도는 무인도.
'현재 중국 절강성의
항구도시' 영파항은 650년전 경원항이다.
원나라 말에 신안 보물선이 떠났던 곳으로 그당시 국제 무역항.
경원항과 신안
왜를 연결한 항로는 한반도 선조들도 목숨건 항로.
당시 교역이윤은 원가의 200 배라 할만큼 황금항로지만 성공율 50%
망망대해를
지나 임자도 앞바다에서 위령제를 지낸 후 후쿠오카 항구.
'650년간 바다 밑에 잠들어 있었던 보물선의 전설.'
위령제 속에서 숨쉬던 전설이 수면 위로 떠오른 1975년 5월
임자도 흑암리 앞바다 4km 지점에서 고기잡이배 어부가
발견.
국제적인 관심 속에 인양 복원되어 신안 보물선이라고 명명된다.
1976.10.26-1984.9.18 인양 복원되어
목포시 국립해양 유물전시관.
그당시 사회, 경제상, 국제 교역사, 조선술 및 공예미술의 연구자료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첫장을 연
해양발굴로 큰 획을 긋게 되었다.
중국과 한반도를 잇는 서해 항로는 위험해 해상무역 이윤이 컸던 곳.
하여, 탁월한
항해술과 축적된 조선 기술 아니면 항해할 수 없는 항로.
충무공은 그 항해술과 조선 기술을 총동원해 거북선을 만든 것이었다.
...........1700 년전 심청전에 등장하는 서해 항로.............
전라남도 곡성 송정리에 있는 섬진강
강변의 심청이 마을.
이곳 마을 사람들은 심청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우물은, 심청이가 동냥젖을 얻어
먹던 곳
심청의 효심때문에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우물이다.
송정리 사람들은 심청이가 왜 이곳이 고향이라고 믿고
있을까?
곡성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송광사에 그 근거가 있다.
<관음사 사적기>를 보면, 효심 깊은 처녀와
맹인 아버지
내용은 심청전과 같은데, 여자 주인공이 심청이 아닌 원홍장.
중국으로 건너간 원홍장이 불상을 고향에 보낸
시기는 서기 300년.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한적한 산자락에 위치한 관음사는 1700년 역사.
심청의 운명과 달리 실존 인물
원홍장은 중국으로 무사히 건너갔다.
원홍장 처녀가 불상을 보낸 중국 절강성과 전남 곡성은 머나 먼 거리.
절강성 근해의 보타도
앞바다에는 신라초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었다.
신라 상인이 관음상을 싣고 오다가 이 바위에 부딪혀 좌초됐다는 전설.
1700년 전에, 불상을 실은 배가 서해를 건너 곡성까지 올 수 있었을까?
서기 300년 경 중국과 한반도는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시기.
하필이면, 중국 상인들이 곡성까지 와서 처녀를 데려갔을까?
그 처녀가 절세미인으로 소문났던 때문일까?
아니다.
여기에는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든 비밀이 숨겨져 있다.
무거운 철갑선이 임진왜란 때 신출귀몰한 수수께끼 열쇄.
심청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검붉은 담벼락.
비오면 녹물이 흘러내린다는 돌담은 철 성분을 다량 함유된
탓.
중국 상인들이 내륙 깊숙한 곡성까지 온 이유는 철광석 때문이다.
철광석을 실은 배밑창이 평평해야 강바닥에 닿지
않는다.
판옥선은 배밑창 용골은 평평한 배의 단점을 보강해준다.
아울러, 용골은 배와 배끼리 부딪치는 것을 막아주는 역활.
거북선 용머리 아래에 숨겨진 통나무 병기는 용골에서 비롯.
그것으로 왜 함대를 받아 옆구리 배밑창에 물구멍을 냈던 것.
거북선의 조선 기술은 이미 그 성능이 입증된 역사가 깊은 것.
인당수는 과거 바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으뜸 제사방법은 사람을 제물로 삼는 일
중국으로 가는 길목인 위도와 죽망동 일대에서 '인신공희' 흔적.
백령도와 부안 외에도 심청이와 관련된 설화나 지명은 많다.
그런데, 공통점은 바닷가의 오래된 마을과 사찰이 있다는 점.
심청전은 뱃길로 이어진 한반도와 중국 간 교류의 역사를 대변.
맹인 심현의 사랑을 받고 자란 심청은 7, 8세부터 아버지를
봉양.
13세 심청이 장자집의 방아를 찧느라 귀가가 늦자 마중나간 심공
혼자 구렁에 빠졌을때 명월산 운심동 개법당의 화주승이
구해준다.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부녀가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예언.
이 말을 들은 심공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엉겹결에
시주를 서약.
고민하는 아버지의 사정을 들은 심청은 천지신명께 지성으로 빈다.
그때 남경상인이 유리국 인단소에 제사지낼
처녀를 사러 다닌다.
심청은 수중고혼이 되기로 결심하고 공양미 300석에 자신을 판다.
행선날 아버지에게 알리고 떠나려 하자
심공은 통곡하며 만류한다.
이 광경을 본 상인들은 제사일을 연기하여 주었고
공양미 50석을 심청 아버지 심공에게 더 주고
떠난다.
인단소에 빠진 심청은 동해용왕의 시녀들에게 구조된다.
용궁으로 인도된 심청은 전생에 초간왕의 동해용녀 였다.
그동안 모든 괴로움이 석가세존의 시험이었음도 알게 된다.
'큰 꽃송이 속에 들어가 인단소에 다시 떠오른 심청.'
남경상인들은 심청을 건져 유리국 왕궁으로 동행한다.
심청은 왕후가 되어 왕을 도와서 자비와 선정을 베푼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기 위한 맹인잔치를 열어 극적 상봉.
심공은 죽은 딸이 왕후가 되었다는 말에 놀라 눈을 뜬다.
심공은 좌승상
임한의 딸을 맞아 재혼해 행복하게 산다.
이 전설은 1700년 전에 '서해 항로'가 있었음을 말한다.
무거운 철광석을 싣고
중국과 일본을 왕래했던 무역선.
변한에서, 가락국, 신라, 고려를 거쳐 이조로 이어진 항로.
수출 용 철기 제품들이 녹슬지
않게 지붕을 덮은 조선 기술.
곡성에서 섬진강 하구를 거쳐 중국과 일본으로 왕래한 항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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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왜을
잇는 남해 항로만 오갔던 왜군의 군함.
서해 항로에서 축적된 항해술과 조선 기술만 못했었다.
그 점을 이용해 육지 전투를 피해
바다에서 싸워 이겼다.
충무공의 격전지는 모두 화개장터로 이어지는 항로.
남해 수산물은 대부분 여수를 통해 화개장터로
집결.
그곳 상선을 몰던 뱃사람 수군들이 충무공의 주력부대.
하여, 화개장터 일대와 진해의 군항제는 무관하지 않다.
'인류 최초의 철갑 잠수함으로 세계에 알려진 거북선.'
충무공은 조총을 앞세워 침공한 왜군을 바다에 수몰.
마침내, 풍전등화 같았던 한반도를 국란에서 구해낸다.
그러나, 7년 간 임진왜란으로 이조 백성들은 뼈아픈 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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