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83. ( 임걸령. 샘터. 황장사 막터. 노루목. 정금마을. )

donkyhote 2011. 2. 28. 01:09

임걸령.



...........↖............반야봉.........노루목..... .칠불사.....(무학대사)...불일폭포..쌍계사...
..............↖...달궁...목통골..*임걸령 샘터..........피아골 산장....연곡사...........
.................↖...................*돼지령.
.................심원계곡.......*노고단 산장....왕시리봉.........문수골
.......................↖............성삼재



...산도적 포고령....
"전국의 백성들은 보아라.
나는 신라 화정성령 대사마 수달.
알다시피 천하는 이제 하나가 되었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으나 도적 무리들

이 세상에 나와 법도를 흐리고 있다.
게다가 온갖 약탈과 범행을 자행하여
온갖 천하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느니라.

백성들이여.

위와 같이 생긴 도적의 수괴.. 임꺽정
그 목에 황금 다섯 괴와 비단 10필을 건다.
저같은 자를 보거나 아는 자 있다면 신고하라.

도적들을 잡는 데 공을 세운 자에게는
나라에서 후한 상급이 내려질 것이니라."

-화정성령 계림 대도독, 수달 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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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은 산도적 두목의 상징적인 이름.
도적 두목이 본명을 드러낼수 없기 때문.
그러나, 임꺽정 중에는 실존 인물도 있다.

임꺽정은 이조 중기 의적(義賊)으로 알려졌다.
16세기 중반 몰락 농민과 백정 천민들을 규합해
지배층 수탈정치에 저항, 정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홍길동(洪吉童)·장길산(張吉山)과 함께 이조 3대 도적
일명 임거정(林巨正) 임거질정(林居叱正)으로도 불렸다.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나 황해도에서 생활.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처지 농민들 가족 집단
황해도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도적 활동을 시작.

1559년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까지 활동영역
이 지역의 관청이나 양반·토호의 집을 습격,
이들이 백성에게서 거둬들인 재물을 빼앗았다.

또한 서울 평양 간 도로와 그밖의 주요교통로를 장악
정부가 거둬들인 토지세·공물·진상물 등을 탈취했다.

관군의 방비와 토벌의 허점을 교묘히 찌르며 세를 확장
빼앗은 재물을 빈민들에게 나눠주어 의적으로 행세했다.
위기감을 느낀 지배층이 여러 차례 관군을 동원해 진압

이를 번번이 물리치고 1559년 개성부 포도관 이억근 주살.
1560년 가을에 봉산 개성을 거점으로 서울까지 진출했으나,
같은 해 11월 참모인 서림(徐林)이 체포되자 결정적인 타격

정부는 서림에게서 활동의 계획과 비밀을 알아내고
선전관 정수익과 봉산 평산의 관군으로 토벌을 시도
임꺽정 무리들은 뛰어난 전투력으로 세력을 보존한다.

당시 이서와 농민의 도움은 임꺽정의 부대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되어 신출귀몰.
1561년 황해도, 경기도 북부, 평안도, 강원도에 출몰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이어져 형인 '가도치'가 체포

토포사 남치근(南致勤)이 이끄는 관군의 끈질긴 추격
1562년 1월 임꺽정은 서흥에서 체포당해 15일 만에 죽음

임꺽정의 의적활동은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기까지
이조 전체에서 일어났던 농민봉기의 일환이며 그 집약점.

이 시기 농민의 저항에 대한, 당시 사관의 기록

"도적이 되는 것은 도적질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그렇게 된 것이다.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 - 기록 내용-

당시 사회경제적 모순이 격화됨에 따라서 지배층에 저항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임꺽정 집단의 치열하한 반란 활동

지배층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으며
피지배층 일반에게는 희망을 안겨주었던 '임꺽정 집단'.
지배층에게는 흉악무도한 도적, 민중은 의적으로 영웅시.

그뒤 그에 관한 많은 설화가 민간에 유포되었고,
그의 행적이 민중 소설로 대중에게는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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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걸령은 남원 함양 특산물이 화개장터로 가는 길목.
임걸령 고개마루 피해 화개장터로 가는 우회로는 없다.
하여, 의적 임걸에서 유래된 지명, 그만큼 도적 많던 곳.

'그 옛날 산도적을 만나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삼도봉에서 피아골 입구 지나 노루목과 임걸령 사이의 샘.
그 샘물 마시다가 도적떼를 만나면 놀라 혼비백산 했을 듯.
임걸령 샘터에서 50분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오르면 노루목.

'임걸령에서 노루목 쪽으로 25분 거리..임걸령 샘터.'

임걸령은 그곳에서 30분 거리 반야봉으로 다녀오는 길목.
만날 약속 하거나 식사하기 편하기에 만남과 휴식의 장소.

불무장등 왕시루봉 능선이 보이고
멀리 천왕봉, 중봉이 구름위로 우뚝.
노루목, 피아골 입구,삼도봉 지나 화개재
그곳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면 뱀사골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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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걸령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의 전설이 담긴 곳.
구형왕의 증손자 김유신은 7년간 지리산에서 수련.

화랑 시절, 이곳 도둑 떼를 길들여 부하로 삼았단다.
훗날, 김유신이 삼국통일할 때 전쟁에서 앞장 선 그들.
그만큼 옛부터 도둑이 많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 임걸령.

'임걸령은 의적 임걸년에서 유래.'

임걸령은 원래 '물두덩이'라 불렀고
신라시대에 화랑들의 연마도장인 곳.

임걸년 활동 무대는 임걸령 반야봉 일대
그리고, 덕평봉 음양샘 부근에 있던 별채.




임걸령 샘터.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8KM거리 능선 중간 위치
반야봉이 북풍을..주능선이 동남풍 막아주는 아늑한 위치.
샘터에는 언제나 차고 물맛 좋기로 소문난 샘물이 솟는다.

샘터에서 피아골 쪽 암벽 밑에는
'황(黃)장사의 호랑이 막(幕)터.

옛날 약초꾼 황 장사가 눈 내리던 겨울
이곳에서 자다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곳.
노고단에서 약 4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지금 야영터 자리가.. 황장사 막터.

호랑이를 지혜와 용기로 잡았다는 곳.
옛부터 지리산 약초꾼들의 야영터이다.
약초꾼들이 야생동물 사냥도 했을 샘터.

인근 돼지평전은 야생 멧돼지 서식처.
지금도 야생 멧돼지들이 나타나는 곳.
겨울에 그곳 원추리 뿌리는 멧돼지 먹이.




황(黃) 장사 막터.



노고단에서 반야봉까지 8km 중간지점 고개 임걸령.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 보통 걸음으로 1시간 20 분.
임걸령에서 노루목 35분, 임걸령에서 반야봉 1시간 반.

임걸령은 북쪽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 주고
노고단과 인근 능선들이 동남풍을 막아 주어
높은 고갯마루지만 샘물까지 솟는 천혜의 요세.

의적 두목 임걸의 본거지라 하여.. 임걸령.

피아골 쪽으로 내려가면 아늑한 절벽 밑에 막터
옛날부터 이곳은 <황(黃) 장사 막터>'라 부른다.

'옛날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던 사람 중에
<황 총각>이라는 약초꾼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황 총각이 임신한 개를 데리고
지리산을 산행하다가 날이 어두워졌다.

황 총각은 '호랑이 막터'에 불 피우고
야영 중 개가 여러 마리 새끼를 낳았다.

그 때 그곳에 호랑이가 나타나 으르렁 거렸다고 한다.
황 총각은 새끼 강아지를 한마리씩 호랑이에게 던졌다.
호랑이가 그것을 받아먹는 동안 황총각은 돌을 구웠다.

황 총각은 뜨겁게 달구어진 돌을 호랑이에게 던져주었다.
호랑이는 그것이 새끼 강아지인줄 알고 덥석 받아먹었다.
그리고, 그 뜨겁게 달구어진 돌을 삼키고나서 곧 죽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황 총각이 지혜와 용기로
호랑이를 잡은 곳을 <황장사 막터>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2km 지점 작은 고개 = 노루목 삼거리.' 

반야봉 정상에서 동쪽 절벽 아래 암자.. 묘향대.
옛부터 속세를 떠난 구도자들이 수도하는 기도처.
황장사 막터 일대는 옛부터 야생동물들의 서식처

 

 

노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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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에서 노고단 방향으로 2km 떨어진, 주능선 상에 위치.
'노루의 목'처럼 높고 길게 솟아오른 고개마루란 의미로 명명.

반야봉의 지형이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던 도중에
이곳에서 잠시 멈춰, 머리를 지켜든 한마리의 노루와 같은 산세.
반야봉을 노루 몸통, 토끼봉을 머리에 비유하면, 그 사이가 노루목.

반야봉 가는 갈림길 있는 그곳 주변 등산로는 눈이 많이 쌓이는 곳.
가파른 산마루에 쌓인 눈이 바람에 깎여 내려와 등산로를 뒤덮기 때문.
산마루 비탈 타고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눈사태에 떠내려가기도 쉬운 곳.
그곳 허리 깊이 눈밭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실감나는 지형 이름...노루목.

노루목은 살아있는 생명체 처럼 역동적인 산세를 지니고 있다.
노루목이 화개면 정금마을로 걸어나오다 개울가에서 만난 여자.

빨래하다가 너무 놀라워 크게 외쳤다고 한다. "산이 걸어 나온다"
그 탓에 그 자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하여, 노루목은 산이 걸어나오는 듯 보이는 산세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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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서면 서상리 장항(노루목) 마을.'

남해 대교에서 20㎞, 남해읍에서 8㎞,
전남 여수에서 광양만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 11㎞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반경 40㎞ 내에 삼천포시, 여수시, 광양시, 순천시,
하동군, 사천군 등이 위치한 주말 관광객 배출 지역.
113가구 중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는 83 가구인 마을.

구릉지에 산재한 취락은 남해지역 어촌의 독특한 경관
당산제 및 남해 농악 등이 활발히 전승되고 있는 마을.

혹시, 지리산 노루목과 관련있는 곳은 아닐까?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장항마을은 곳곳에 있다.
장항마을은 일기예보와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도깨비>는 이상한 힘과 재주를 가진 잡된 귀신.
사람을 호리거나, 험상궂은 장난질을 많이 한다.

단천교를 지나 화개면 정금마을까지 여러 개 소 중에서 <도깨비소>.
단천마을 지나 계곡을 3~4 번 건너 오른쪽 계곡에 있는 <용추폭포>.
용이 폭포에서 추락할 만큼 급류가 거센 곳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정금마을은 비오면 개울물이 자주 넘치는 곳.
개울물이 불면, 지리산이 걸어나오는 듯한 산세.
특히, 우뚝 솟은 노루목을 보면 도깨비에 홀린 듯.
하여, 정금마을 주민에겐 더욱 실감나는 도깨비소.

'정금마을 주민에게 노루목은 기상 관측소.'

산이 걸어 나온다고 놀랄 만큼 홍수에 시달린 탓.
중산리 사람들은 천왕봉의 통천골을 보고 두려워한다.
통천골에서 거센 폭포가 쏟아지면 천왕봉이 무너지는 듯.

'천재지변을 관측하는 첨성단 = 노루목.'

정금마을 주민에겐 일기예보를 점치는 곳.
우리나라에서는 마을마다 그 방법이 다르다.

새가 낮게 나르거나, 개구리가 유난히 울면 비.
일기예보를 점치는 방법이 곳곳마다 색다르다.

'한반도에서는 일기예보를 어떻게 관측했을까?'

백두대간의 분수령 태백산은 첨성단이 있는 곳.
태백산이 신단수인 황지연못과 검룡소를 품은 탓.
첨성단은 이조시대에 단군 왕검을 모시는 성지이다.

아울러, 고려시대부터 천문을 관측하던 태백산 첨성단.
첨성단은 옛부터 한반도 곳곳에 설치한 일기예보 관측소.
첨성단 곳곳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국가적인 제사를 지냈다.

'인천 강화 마니산에도 첨성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도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마니산은 단군이 천제를 올렸던 곳.
매년 전국 체전의 성화가 체화되는 곳이고 민족의 영산 중 하나이다.
마니산(469M) 입구에서 성화가 체화되는 첨성단까지 1시간 30분 거리.

.............................마니산의 첨성대 유래..............................
우리나라 5 대섬의 하나로, 항몽유적지와 전등사, 보문사로 유명하고
화문석 또한 전국적으로 알려진 강화도는 특히 문화유적지가 많은 곳.
어딜 가도 명소일 정도로 가는 곳마다 볼거리와 사연이 가득한 강화도.

오히려 산행을 하려고 마니산을 찾는 사람이 드믄 곳이다.
그러나, 마니산은 발 아래 펼쳐진 서해 조망이 아름다운 곳.
마니산행 일반적인 코스는 상방리 관리사무소에서의 들머리.

삼국시대부터 임금님이 천제를 드리기 위해 오르내리던 길
첨성단에서 다시 40분 쯤 오르면 정상이고 정족산이 보인다.
정상을 지나 조금 가면 함허동천, 정수사, 첨성단의 이정표.

암릉이 끝나면서 숲길이 이어지고 곧 정수사가 보인다.
여기서 버스가 들어오는 사기리까지 비포장길을 걸어가면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산행이 끝나는 암릉미가 일품인 산.

세계에서 가장 간만(밀물과 설물)의 차이가 심한 바다 서해.
단군시대부터 천문관측 장소인 이곳은 국내 천문대의 역사.
농본국가인 한반도에서 음력은 농사와 밀접한 역활을 한다.

밀물과 썰물의 간만의 차이 발생은 달의 인력에 의해 좌우된다.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첨성단에서 별을 관측한 일이 기록에 있다.
이조시대에도 일식, 월식과 북극성 고도를 관측한 관상감의 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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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천문관측 유적지.......................
전문 천문대로 잘 보존된 것은 647년에 건립된 경주 첨성대.
신라는 선덕여왕 이후 288년간 많은 천문 관측기록을 남겼다.
고려 때엔 천문학이 더 발전해 개성 만월대 서쪽에 첨성대 건립.

이조시대 4개의 천문대가 건설되었지만 현재 2개만 남아 있다.
1434년 준공된 대간의대(大簡儀臺)로 당시에 제작된 관측기기들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설치한 천문대지만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다.
1702년 경희궁 개양문 밖에 관청대는 조선총독부에서 헐어버렸다.

지금 보존된 천문대는 창경궁의 소간의대와 북부 광화방의 관천대.
1688년에는 금호문 밖에 있던 소간의대가 창경궁의 보물 제851호.
관천대는그 위에 동서남북 관측 석대 선까지 보존된 사적 제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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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나 첨성단은 오늘날 기상대보다 기능이 부족했을 듯.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꾸준히 관측해 일기변화를 찾아낸 듯.
첨성단은 농사짓는 백성의 풍년 염원을 담아 제사를 지낸 성지.
조상의 은덕으로 풍년을 기원했던 성지가 더 발전한 것이 첨성대.

'지리산 화개골 주민들에게 노루목은 어떤 곳일까?'

불무장등은 천연제방이자 천재지변으로부터 피난처.
물한계곡 단천골 개울이 폭우로 불어날때 제방 역활
하여, 화개골은 고대국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곳.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5층 석탑(국보 236호)........
장항리는 덕동호를 지나 가내고개 넘어 범골 다음 마을.
마을 앞산 산등성이 생김새가 노루의 목 같다고 노루미기
장항리사지는 장항석굴로 제4교 오른쪽 언덕 신라시대 절터.

이 계곡은 토함산 동쪽에서 흘러 나와
'감은사' 앞을 흐르는 대종천 상류 지점.

절터는 두 계곡이 만나는 합수점 위 높은 언덕에 있고,
금당 자리와 석조불상을 안치했던 불상대좌, 5층 석탑
금당 안에 안치되었던 석조불상은 경주박물관에 전시 중

연꽃 위에는 여래상과 보살상만이 오를 수 있는데
연꽃 위에 배치한 탑신부 각면에는 8 금강역사 상.
뚜렷한 이목구비, 호통치듯 벌린 입, 불끈 쥔 주먹

석불 대좌 중대석 신장상과 사자상들도 큰 동작들.
장항리사지 조각들은 전체적으로 활동적인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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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장항)은 신라 불교문화에서 유래된 듯.'




정금마을.



'정금 야생열매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

가을은 무척이나 쓸쓸하고 외로운 계절.
자연의 변화가 몸속으로 파고드는 환절기
자연의 섭리가 피부로 느껴지는 계절이다.

그러나, 가을에 정금마을은 풍요롭다.
온갖 야생열매가 풍성한 마을이기 때문.
정금마을 산길을 걷다보면 낙엽숲 속삭임

"바스락. 바스락" 바람이 일군 낙옆소리.

그리고, 온갖 야생 과실들이 반기는 정금마을.
머루, 다래, 오미자, 산초, 초피, 까치밥, 팥배.
쥐똥열매, 맹감(청미래 덩굴 열매), 아그배, 정금.

정금은 성냥알 2~3개 크기로 길가에 송알송알 열린다.
얼핏 검게 보이는 진보라색 정금은 예전에 나무꾼 식량.
수백개씩 열리는 열매를 따먹기 좋을 키 높이의 정금나무

한 자리에서 실컷 따먹을 수 있다.
정금 열매의 맛은 매콤 새콤 달콤.
씨도 가리지 않고 함께 씹어먹는다.

정금에는 비타민류와 칼슘류가 많다.
그래서인지 정금은 피로를 잊게 한다.

정금마을 주민들은 봄에는 진달래꽃을,
가을엔 열매 주렁주렁한 정금나무 가지
나뭇짐 지게위에 꽂고서 산길을 내려온다.

정금나무 초피는 진한 자극적인 냄새가 나서
추어탕에 넣어먹는 '종피' 또는 '젬피'의 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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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은 '영실'이라고도 불리는 찔레나무 열매.
눈덮인 겨울에 먹을 것을 잃은 까치들 겨울식량.
꿩들도 즐겨먹지만 '꿩밥'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아그배는 도토리보다 좀 더 큰 야생배
겨울엔 하얀 눈속에서 까맣게 변해 묵배.
아그배는 '묵배' 또는 '먹배'로 불리운다.

강원도 평창 일대 오대산에 가면 다래가 많다.
특히 평창군 방림면 야산에 10년 넘은 다래나무
높은 나무를 감고 올라가 쭈글쭈글한 다래 열매들.

정금 오미자 초피 아그배는 함양 산청 남원에 많다.
남원시 이백면 남평리 뒷산에는 정금, 아그배, 까치밥.
따라서 이 열매를 먹고 사는 꿩, 노루 야생동물도 많다.

이곳에는 다른 지역에서 안 나는 산초나무도 무성.
남원 일대 섬진강 미꾸라지와 이곳 산초열매 가루
서로 조화를 이뤄 낳은, 남원 명물 '섬진강 추어탕'

오미자는 남원장, 구례장, 함양장, 산청장에 많다.
벌똥은 보리똥 보리밥 보리수열매 등으로 불리는 과일
성냥알을 닮은 색깔과 모양에 작은 주근깨반점들이 있다.

쫄깃하고 약간 떫은 맛이 나는 벌똥 열매.
지리산 일대 정금나무 사이 사이 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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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금 야생열매는 전남 곡성 산간마을에 많다.
섬진강변 곡성읍내 2km 지점인 호곡리 줄나루
그 오른쪽으로 비단결같은 산자락이 펼쳐진다.

산자락 구비진 곳곳엔 산골 마을들이 안겨 있는데,
곡성군 오곡면 침곡리와 봉조리 같은 산간 마을들.

이곳 산간 마을 주변 산위에 토종 야생열매들
막 익어 고운 색이 절정인 가을엔 가볼만 하다.
아침마다 섬진강에서 안개가 올라와 알맞게 습기

여느 곳보다 야생과일들이 색깔이 곱게 익는 곳.
곡성 명물은 섬진강변을 달리는 관광증기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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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배는 팥알만한 크기의 배 맛이 나는 야생과일.
서리가 내릴 무렵 새큼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9월 중순부터 상강(10월 24일) 이후 서리철이 제 맛.

'산속 야생열매는 꽃처럼 예쁘고 색깔도 다양.'

진홍색 자디잔, 오미자와 까치밥으로부터 파란 다래,
갈색 아그배, 진보라 정금, 까만 쥐똥열매. 까만 머루.
누가 돌보지도 않는 산속에 숨어 아름다움을 뽐내는듯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애기 포도처럼 생겼지만
포도보다 더 진한 맛 머루.

색깔이 붉은 오미자는 차나 한약재 원료
새큼한 맛이 입과 뱃속이 다 개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