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재.
예전에 지리산종주 들머리는 화엄사 입구였다.
요즘, 지리산종주는 대부분 성삼재에서 시작한다.
노고단 인근 성삼재까지 도로가
개통된 때문이다.
서울역 밤기차를 타고 새벽녁 구례구역에서 하차.
택시로 성삼재휴게소까지 간 다음 노고단을
오른다.
폭설기엔 성삼재 아래 시암재까지 택시가 힘겹게 간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30~40분 도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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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는 백두대간 2 구간 들머리이자 역사적인 유적지.
성삼재 도로가 개통된 이후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
성삼재
도로가 지리산 야생동물 통로까지 차단한 것이 흠.
'성삼재 도로는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을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갖게되는 공통적인 의문점.
이 도로가 백두대간 1구간 끝 부분부터 동강낸 탓.
하여,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도로이기 때문.
이 도로는 건설당시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납득하기 어려워진 사연,
1952년
빨치산 대몰살 현장이었던 지리산 일대.
대성골, 거림골, 빗점골, 의신부락 등은 잿더미.
대성골에는 아직도 반세기 전 인골이
나뒹군다.
당시 빨치산 토벌 명목으로 헤일 수 없는 죽음들.
죄없는 양민들도 학살된 현대사의 비극적인 역사.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으로 만든 도로
'지리산 서북능선을 주능선과 뚝 떼어놓는 잘못.'
노고단 턱밑을 깎아 만든
성삼재 861번 지방도로
그리고, 정령치 도로에 짤린 만목대 아래 서북능선.
'마치, '지리산의 섬'과 같이 느껴지는..
서북능선.'
거기에 주능선마저 갈라 놓으려던 벽소령 작전도로
관광도로로 포장되지 않고 남아있게 되어 대행이다.
'마천 - 벽소령 -
대성골 - 화개골'을 이어주던 옛 길.
백두대간 1구간(천왕봉~ 성삼재) 날머리 성삼재.
백두대간 2구간 (성삼재~여원재) 들머리 성삼재
백두대간 2구간은
지리산 태극종주 코스 중 1/3.
성삼재-작은고리봉 -묘봉치 -만목대 -정령치 -큰고리봉
- 고기 삼거리 - 덕치리
도치마을 -가재마을 -대간석 정자
-도치샘 - 수정봉 - 입망치 - 주지사 부근 - 여원재 -
도상거리 19.Km,, 실거리 20.6Km,
도보로 소요 시간은 약 10 시간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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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진한, 변한이
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있던 삼한시대
마한과 진한 간 전쟁이 일어나 진한에 쫓기던 마한의 왕.
신하들과 함께 지리산으로 피신해
오랫동안 피난생활 중.
마한의 왕은 피난처에 도성을 쌓고 마련한 궁전이 달궁.
뱀사골 반선에서 도계 사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달궁은 지리산의 깊은 협곡에 분지 형태인 천혜의 요새이다.
마한 왕은 달궁 서쪽 10리 밖 정장군을 배치한
정령치.
달궁의 동쪽 20리 밖에 황장군을 배치하였다는, 황령치.
달궁의 남쪽 20리밖에 성이 다른 세 장군을 배치한 성삼재.
북쪽 30리밖 8명 장군을 배치
진한군을 방어한 곳이 팔랑치.
<성삼재>는 성이 각각 다른 마한의
3 장군이 지킨 고개마루.
정령치는 정장군이 지킨 고개, 황령치는 황장군이 지킨 고개,
팔랑치는 8명의 젊은 장수가 지킨 고개를
말한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 달궁에는 이름만 있을 뿐
옛 궁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성삼재에서 정령치까지는
옛 마한의 자취.
마한의 역사적인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코스.
성삼재 - 3Km -작은
고리봉-1Km-묘봉치-2Km-만목대-4Km-정령치
총 9 Km, 어느 방향에서 출발하든
걷는데 소요 시간은 3시간 40분
쯤.
노고단 및 지리산 종주 들머리이자 백두대간 2 구간 출발점.
성삼재-묘봉치-만복대-정령치-가재마을-수정봉-여원재 코스
성삼재 도로 개통 이후로 노고단까지 예전보다 접근이 편리한 점.
그러나, 백두대간 1구간과 2구간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허리가 끊겼다.
그로 인해, 야생동물의 통로가 끊기고
먹이사슬 고리가 끊겨, 환경에 악영향.
만복대
아래에서 정령치 도로에 끊겨
동떨어진 섬처럼 변해버린, 서북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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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온천지구-성삼재-노고단 5㎞
구례군에서 케이블카
설치를 검토 중.
환경부가 반대하자 구례군은 3㎞ 구간으로 축소 수정 안
구례군 산동면 골프장 건설과 맛물려 섬진강 오염
가능성.
2004. 6.18 지리산 순환도로 개통에 이어,
관광시설이 들어서면 지리산이 몸살할 듯.
지리산
순환도로에 차에 치어죽은 야생동물 시신들.
야생동물 서식처가 좁아지면 근친교배로 멸종의 위기.
먹이사슬이 끊긴 야생동물들에게도
생태적으로 악영향.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통로복원 및 대책이 시급.
지리산 야생동물들은 먹이찾아 목숨걸고 도로를 횡단.
이미 수많은 등산로와 도로에 의해 산산조각난 지리산.
야생동물이 마음놓고 살 만한 보호구역
자연환경을 위해 반드시
조성해야 할 듯.
노고단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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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산장 내부. 1층은 남자... 계단을 올라 2층은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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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고개 |
목 마른 대지처럼., 목이 타들어가는 그리움.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 여인 같은 반야봉 산세
반야봉 산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상징.
노고단에서 바라는., 반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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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산장 - 임걸령 - 노루목 - 삼도봉 - 화개재
토끼봉 - 총각샘 - 연하천 - 삼각고지 - 벽소령 산장
선비샘 -
영신 - 세석 산장 - 촛대봉 - 연하봉 - 장터목
제석봉 - 통천문 - 천왕봉<<총 25.5Km, 소요시간 13시간
20분>>
<천왕봉에서 노고단 소요시간 : 12시간 거리>
역종주를 하면, 보통 한시간 반 정도
단축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산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노고단 방향에서 출발한다.
지리산 제 1
경은 새벽 녘.. 노고단의 운해.
또한 천왕봉 일출을 마지막 목표로 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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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밤기차 타고 구례구역 하차.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성삼재에 도착.
성삼재에서 노고단 산장 향해 걷는
40분.
'밤하늘 가득한 별빛이 환상적인 산책로.'
먼동이 틀 무렵 고요속에서 다가오는 노고단.
새벽 여명이
걷힐 무렵 다가오는 노고단 위용.
그곳에서 아침을 먹다보면 온누리가 밝아오는듯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대부분 한번은
겪는 경험.
노고단 산장은 지리산 종주 출발점.
이곳에서 일박하고 시작해도 좋을듯.
주변에 볼거리가 제법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 시원하고 맑은 물이 샘솟는 노고단.
무등산은 물론, 맑은 날 한라산도 보였던 곳.
노고단에는
KBS, MBC방송 송신탑과 부속 건물
청학동 도인들이 쌓은 거대한 돌탑(케룬)이 있다.
예전에 상주했다는 통신부대의 옛
막사와 철조망.
1988년 1월 완공된 200명 수용 규모의 노고단 산장.
'붉은 벽돌 3층 건물이 노고단 산장.'
그 옆 좌측 40 평 건물이 예전부터의 산장.
1971년 건립 후 함태식 옹이 관리했던 산장
지리산 질서를
바로잡는데 헌신한 함태식 옹.
노고단 아래 성삼재까지 뚫린 지리산 순환도로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3㎞ 도로는 관리용 도로.
지리산 관리공단 차량 만 다니는 시멘트 포정도로
노고단 산장 우측으로 난 돌 계단길
그곳부터가 사실상 지리산 종주
깃점.
노고단 좌측에는 옛 외국인 별장 터
조림한 잣나무 숲 사이로 앙상한 골격 .
노고단 고개 참나무 숲
터널길로 20 분
시야가 탁 트이는 평편한 공터가 장승터.
<민족통일 대장군>과 <민중해방 여장군>
당초 임걸령 샘터 남쪽 공터에 세울 계획.
운반의 어려움 때문에 노고단에 세운 장승.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기톱질로
절단.
1989년 5월 무렵 누구인가에 의해 훼손.
이곳은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왕시루봉, 만복대,
피아골과 심원계곡.'
<노고단 산장>은 백두대간 1구간(천왕봉-노고단) 끝나는 지점.
노고단 산장은 지리산 주릉
서쪽 끝 노고단 아래(1,400m)에 위치.
(예약 ☏ 061-782-8663). 숙박료 7,000원 , 침구 사용료 1,000원
운해.
지리산 제 1 경 - 노고단의 운해
운무가 파도처럼 몰려와 주변의 산과 계곡을 휘감으면
구름바다를 이루어 마치 하계를 떠나 선계에 오른 환상
특히 5월
철쭉이 노고단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시작
한여름철과 가을에 걸쳐 피어나는 야생화군락은 천상의 화원.
♬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른다.♬
노고단 구름바다 속 봉우리들.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섬들 같다.
노고단은 바다를 떠가는 한척의 배.
서쪽으로는 전남 광주의 무등산,
동쪽으로는 반야봉과 토끼봉·천왕봉.
노고단은 태백산·토함산·계룡산·
팔공산과 함께 오악 산 중.. 하나.
남악산으로 불리던 통일신라 시대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 사당 터.
그 사당을 모신 사당이., 남악사
지금은 옛 흔적만 남은.,남악사터.
구한 말 사라졌던 남악사
90년대 말 화엄사로 이전.
<노고> + <제단> = 노고단.
<선도성모의 높임
말..노고>
문수보살이 노고로 몸을 바꿔 나타난 모습 = 선도성모.
박혁거세 어머니를 문수보살로 신격화 한 곳이
노고단.
지리산은 3도 5개 군 15개 면에 걸쳐있는 민족의 영산.
동쪽 멀리 천왕봉과 더불어
서쪽 구례에 솟은
노고단까지
해발 1,500m 넘는 봉우리만 10개
주능선에서 뻗어내란 골짜기만 73 개.
백두대간 제 1구간 끝
지점인 '노고단'.
노고단은 외국인 선교사 별장 52 동 터.
'지금은 폐허 흔적만 남아있는 별장 터.'
옛
모습이 노고단 운해 속으로 사라진듯.
운해가 흐르는 노고단 정상은 언제나 환상.
마치 꿈속에서 신비의 세계를 배회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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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대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선교사 수양관 촌.
그당시, 이질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으로 신생아 90% 사망.
여름철 수인성 질병을 피하려고 설립했다가 6.25
전후에 폐허.
1948년 10월 여순사건 이후 한 달간 김지회의 반란군들 근거지
국군 토벌대가 빨치산 거점을 막기 위해
불태워 옛 건물 흔적만
호텔, 공회당, 교회당, 발전소, 영화관, 간이 수영장, 기타 별장터
'1948년 10월 여순 사건
당시, 반란군 근거지.'
그 후 빨치산 거점 막으려 불태워 잔해만 남은 터.
외국인 별장은 문수골 방향 왕시리 봉으로 이전
됨.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 코스' 들머리로 각광받는 곳.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도상거리 25.5 km가 최단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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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전 노고단 성삼재는 삼한시대 마한의
영역.
마한 때 성이 다른 3 장수가 지켰다 하여... 성삼제.
진한에 밀려 지리산 자락까지 숨어 들어온 마한 왕조
성삼재 너머 달궁을 짓고 지리산 길목마다 장수를 파견.
정장군을 파견한.. 정령치, 8 장수를 파견했다는.. 팔령치.
달궁에 숨은 마한이 빈약하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노고단'.
고려 이조 시대에는 8도 민심 화합을 위한 국가제사 터.
이조시대 유교관이 뿌리 내리자 불교문화가 쇠퇴하던 곳.
구한말 일제 시대엔 외국인 선교사들 별장촌이 들어선 곳.
불우 노약자, 전염병 환자, 어린이 환자 치료하던 곳.
노고단 외국인 별장은 여순사건 이후 빨치산들이 점령.
국군
토벌대와의 싸움에서 산장과 수목들은 모두 소실.
노고단의 넓은 초원은 오늘날 '야생화의 천국'.
노고.
노고단은 삼한 모계사회 부족장 회의장소.
그 회의를 주관한 여신이 노고단 마고할미.
노고단은 모계사회 족장들 회의장소였던듯
부계사회 고조선 세력이 남하하며 영역다툼.
결국, 철기시대에 부계사회가
모계사회를 지배.
단군 고조선이 정착후 차츰 사라진 모계사회.
고조선의 유민세력이 남하해 이룩한 삼한시대.
적과 전쟁시 피할 곳이 없었던 유목민 부족들.
드넓은 초원에 방어용 성곽을 쌓을 수 없었다.
유목민들은 생존을 위해
이웃 부족들과 공동체.
'공동 연합체 구성을 위한 정기적 산상회의.'
상고시대 신시를 열 수 있는 회의 장소..
청구.
청구란 부족 대표들이 모여 화백회의를 했던 구릉.
천부삼인은 신시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
청구국이 멸망한 이후에 생겨난 나라가 단국
3 배달나라가 차례로 돌아가며 통치했던 단국.
태제, 홍제, 성제 3국이
돌아가며 단군으로 등극.
..............홍제..............................
신라시대
연호로 572년(진흥왕 33) 1월부터
584년(진평왕 6) 1월까지 사용했고 그외에도
개국(開國)·대창(大昌) 등의 연호를
사용했다.
..................................................
'단군왕검은 단국의
통치자.'
<단국> 영역은 만주 중원의 황하 서쪽 일대.
<후한서>에 나오는 진국(辰國)은 삼한에
해당.
진국의 진(辰)은 뱀과 용을 의미하는.. 풍이족
마한은 마고의 나라, 즉 마한(麻韓)
진한은 바람의 나라,
즉 풍한(風韓)
변한은 우주의 '별들의 나라'를 상징.
마고할미는 '늙은 할미' 노고라고도 한다.
즉, 마한 부족장
회의를 주관한 여신 마고.
늙은할미 노고가 살던 곳이라 하여.. 노고단.
노고단은 노고의 제단에서 선도성모 성지로 탈바꿈.
신라 박혁거세 생모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던 노고단.
문수보살이 만명의 문수로 변신했다는.,구례군 광의면 구만리.
하여, 팔만명의 권속들에게 설법한 땅이란 뜻의 지명이 <구만리>.
즉, 문수보살이 설법한 팔만명 + 문수보살의 분신
만명 = 구만명
반야봉 서쪽 <길상봉>은 문수보살의 묘길상이란 뜻.
문수보살이 '늙은 여자'로 몸을 바꾸어
나타났다는 곳.
하여, <노구봉> 또는 <노고단>이란 이름으로 불리운다.
노고단 맞은 편 부착대 넘어
칠불암
문수보살의 7아들이 성불한 사찰 이름.
신라의 뿌리인 청구, 단국, 진국, 풍이족.
선도성모 전설의 뿌리
애기씨당. 노고(마고).
.................청구(靑丘).......................
〈산해경
山海經〉해외동경조(海外東經條)에 옛 지명
동방(東方)을 뜻하는 말로 우리나라 옛 이름은 청구국.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670년(문무왕 10) 고구려의 왕족인 안승(安勝)
그를 고구려왕에 봉하고 그 책명문(冊命文)에
"공의 태조 중모왕(中牟王:고구려 시조 주몽)
덕을 북쪽 땅에 쌓고, 공을 남쪽 바다에 세워
위풍이 청구에
떨쳤다"라는 기록이 전해져온다.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
후백제 견훤조(甄萱條)에 의하면,
뒤에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王建)이 보낸 서신 속에
견훤의 공격에 대한 잔인함을 꾸짖는 기록이 전해온다.
"오월왕 전하의 큰
덕이 멀리까지 떨치고
인(仁)은 소민(小民)을 사랑함이 깊어
특별히 궁궐에서 윤음(綸音)을 내려
청구의 난을 끝내라고
타이르니
이미 가르침을 받은 이상
어찌 높이 받들지 않으랴"
이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청구는 우리나라 호칭
이조시대 김종직(金宗直)의 〈청구풍아 靑丘風雅〉,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 靑丘永言〉,
김정호의 우리나라 지도〈청구도
靑丘圖〉
'우리 민족이 즐겨 썼던 호칭..청구.'
...............................................
....................단국.........................
단군은 묘향산에서 태어나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기자에게 고조선을 물려주고 신선이 되었다는 단군,
7선녀와 함께 신선이 된 강화도 마니산 정상 참선대.
<단국> 영역은 만주 중원의 황하 서쪽 일대.
...................................................
......................진국(辰國).......................
BC 2세기경 한반도 중남부에
자리잡고 있던 정치집단.
<사기> 기록은 진번방진국(眞番傍辰國) 즉 진한(진번)
진한은 옛 진국이며 BC
2세기말 고조선이 멸망할 무렵
고조선의 남쪽 지역에 진국이라는 정치집단이 존재했다.
〈삼국지〉보다 150여 년 후에 편찬된
〈후한서〉기록.
"삼한은 모두 옛 진국이다"(三韓古之辰國)라고 언급.
한반도 중남부를 모두 포괄하는 토착 정치집단으로
본다.
〈삼국지〉진한 전신설을 근거로 하여
삼한을 총괄하는 대세력으로서 보는 설.
한반도 중남부 특정한 지역
정치집단 설.
한반도 중부설·충청남도 일원설·전라북도 익산설 등
BC 2세기 후반경 중국과 직접 통교를 추진했다는 진국.
상당한 정치적인 성장을 보였으나, 고조선의 멸망과 함께
보다 우수한 철기문화를 가진 유목 이민이 남하해 왔기에
더
이상 자체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하여, <후한서>에 나오는 진국(辰國)은 삼한.'
.............................................................
......................풍이족...................
아사달은 단군조선이 건국한 곳을 일컫는
말이다.
단군이 태백산 천평에서 무진원년(BC 2333년)에 개국
배달나라는 10년 후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며 단군조선
배달나라(倍達那羅)는 배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이들을 구려족(九黎族)이라고 하였고, 후에 동이족(東夷族)
9개 씨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구려족이라고 하였던 것.
구려족을 이끌어갔던 인종이 한국이 멸망하고 나서
배달나라가 서기 전 한반도를 이끌어갔던.. 풍이족.
우리 역사에서 맨 먼저 마고족이 생겨나 마고지나시대
마고지나
시대를 마감하면서 일어났던 구황족(九皇族)
구황족이 연 한국시대를 마감하며 구려족(九黎族) 시대.
구려족 시대를 마감하면서
조선이 출현하였고,
이 시대의 인종을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하였다.
하여, 마고족 구황족 구한족 구려족은 같은 뿌리.
이들이 모여 화백회의를 한 곳이.. 노고단.
9천년전 발해만에서 노고단까지의 마고 전설.
단군왕검 세력과 마고세력이
합친 곳이 노고단.
..........................................................................
진국의 진(辰)은 뱀과 용을 의미하는.. 풍이족
풍이족이 일으킨 진국이 신라의 밑바탕 세력같다.
진국은 노고단 운해 만큼이나
베일 속 전설의 나라.
..............................
노고초화(老姑草花).
..............................
<마고>에게는 두 따님이 있었다.
두 따님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
물애기씨의 원조는 궁희와 소희 두 분
...........궁희와 소희...........
우리 민족의 민간신앙 '칠성신.'
칠석은 아만과 나반이 만나는
날
즉, 칠석날은 생산을 의미하는 날.
조상들은 음력 7월 7일을 칠월칠석
성스러운 날로 여겨 정성을 드렸다.
옛날엔, 무당집이나 사찰이 붐빌 정도.
요즘 무당집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칠석날 사찰에서 조용히 불공드리기.
칠석은 본디 직녀성을 섬기는 날이다.
즉, 직녀성에게 제례를 올리는 날.
직녀성은 삼신인 마고(麻姑)와 두 딸
즉, 궁희(穹姬)와 소희(巢姬)의 별자리.
..........................................................
황매화는 여신
노고를 상징하는 꽃이다.
노고는 탱화가 있는 곳으로 온다는 믿음.
오늘날 사찰 칠성각에 있는 문수보살 탱화.
고대 민간신앙과 불교와의 결합.
탱화는 노고 신화에서 유래된 것.
노고는 '늙은 할미' 마고할미라고도 한다.
마한 부족장 회의를 주관했다는 여신 노고.
늙은할미 노고가 살던 곳이라
하여.. 노고단.
노고단은 마한 이전부터 모계사회 민간신앙의 상징.
하여, 신라 박혁거세 생모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던듯.
모계사회 민간신앙의 대상 노고는 불교에서의 문수보살.
반야봉 서쪽 <길상봉>은 문수보살의 묘길상이라는 뜻.
문수보살이 '늙은 여자'로 몸을 바꾸어 나타났다는 곳.
민간신앙의 대상 노고와 불교의 문수보살이 결합된 흔적.
노고단 일대는 고대사회 모계사회 영역.
고대국가 이전부터 삼남 지방은 곡창지대.
신석기시대 곡창지대
농본사회는 모계사회.
천왕봉 천왕성모가 민간신앙의 대상일 만큼.
전설 속 천왕성모 8딸이 팔도 무당이 될 만큼.
고대국가 생성 전 삼남지방은 모계사회가 지배.
북방 유목민족 남하 이후에 모계사회는 약화된듯.
아직도 한반도 곳곳의
노고 또는 마고 전설.
한반도가 고대사회에서 모계사회였음을 대변.
오늘날 노고는 아득한 전설 속으로 사라진 존재.
노고단 수십만평 지천을 뒤덮은 야생화.
반만년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긴 풀꽃들.
저마다 다른 전설을 간직한
채 피고 진다.
마치, 모계사회로부터의 전설을 이야기하듯.
................할미꽃 전설.......................
옛날 어느 마을에 두 손녀를 키우며 살던 할머니.
큰 손녀는 얼굴이 아주 예뻤으나 마음씨가 나빴고,
작은 손녀는 어여쁜 외모는 아니지만 마음이 착했다.
큰 손녀는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고
작은 손녀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간 작은 손녀
늘 홀로
남은 할머니를 측은히 여겼다.
그러나 큰 손녀는 남의 눈을 의식해
굳이 할머니를 모시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할머니는 큰손녀가 모시기로 했다.
그러나, 잘 돌봐드리지 않아 점점 쇠약.
할머니는 마음씨 고운 작은 손녀가 그리워
멀리 시집간 작은 손녀를 찾아 길을 나섰다.
그러나, 끼니조차도 제대로 잇지 못했던 할머니
작은 손녀가 사는 마을
고갯 마루에서 쓰러진다.
그리고 말한마디 못한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된 작은 손녀
허겁지겁 달려와 할머니를 안고 통곡
자기집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묻고
늘 그 할머니를 생각하며 슬퍼했다.
이듬해, 할머니 무덤에 이름모를 꽃.
할머니 허리같이 굽은 줄기 끝에 피어난 꽃.
작은 손녀는 그 꽃이 할머니
환생이라 믿고
그때부터 그 꽃을 할미꽃이라고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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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나 지금이나 꽃은 여인의 상징.'
모계사회 부족장을 상징했던 노고초화
노고초화는 오늘날 할미꽃이라 부른다.
할미꽃 전설 속 두 딸은., <궁희와
소희>
야생화(野生花, wild flower)
원추리
동자꽃
개별꽃
참꽃마리.
미나리아제비
사람이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는 꽃피는 야생식물.
정원에 심는 여러가지 꽃은 야생화에서 비롯되었다.
야생화는 대부분
원래 자랐던 지역에서만 살아간다.
그러나, 일부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하와이 야생화는 열대 또는
아열대 원산지.
대부분은 재배하기 위해 하와이 군도로 들여온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낮은 지대에서 자라는 대부분 식물들
원래 있던 것부터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들이 혼재.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영향을 받아왔던 식물 자생지.
사람이 불을
지르면 생명력 강한 식물들이 살아난다.
'예를 들면, 유럽 북부에서 자라는 미나리아재비.'
수풀이 불에 타 없어짐에
따라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유럽 북부의 낮은 지대는 석기시대부터 다양한 식물 군락지
잡초와 야생화는 인간의 분류
목적에 따라 구별된다.
잡초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해바라기가 논이나 목초지 등에서 자라면 잡초
경작지가 아닌 계곡에서 자라면 야생화가 된다.
사람이 침범하면 생태환경이 바뀌는 식물 자생지.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생태계 특별보전구역 몇 장소
이 지역 야생화와 동식물을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 지역으로는 지리산의 피아골과
심원계곡,
강원도 대암산 용늪, 전남 홍도, 강원도 설악산
향로봉, 건봉산 등지가 현재 지정된 천연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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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은 이듬해
봄 늦게까지 하얀 겨울이 계속된다.
고원지대의 겨울은 좀체로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봄진달래 움틀 무렵 겨울은 아쉬운듯
이곳에 눈을 뿌린다.
섬진강 물줄기 타고 산자락을 넘어 올라오는 봄바람.
노고단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는 야생화의 거센
숨소리.
노고단의 풀꽂들은 4월이 되면 언 땅을 뚫고 새순을 낸다.
버들가지를 시작으로 진달래가 피고 5월에는 철쭉의
나라.
운 좋으면 볼수 있는 '노고단 만발한 진달래 꽃에 앉은 서리'.
오뉴월까지 서리 내린 꽃잎마다 상고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며느리 밥풀꽃.................................
노고단은 '며느리 밥풀꽃'이 피면 야생화의 천국이 시작된다.
새색씨 밥뜸 알아보려다가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전설의 꽃.
'웃어른 먼저 밥숟가락을 들었다는 누명'.
.억울한 누명에 죽어서도 한이 된 것일까?
연보라 붉은 입술에
밥알 몇 개 입에 물고 있는 듯한.. 꽃의 형태.
새색씨 죽은 넋이 꽃으로 환생해 아직도 한을 호소하듯 피어난다.
새색시
수채구멍에 보리 한톨 흘려도 구박받던 배고픈 시절.
시아버지까지 집안살림 물말아 먹을 며느리라고 혼내던 시절.
결국, 새색씨는
매맞고 구박 받고 굶어죽어 꽃이 되었다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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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와
<조팝나무>.................................
그 당시 조상들은 6~7월에 피는 하얀 꽃을 밥풀
꽃이라 불렀다.
초근목피로 보리고개 허기를 때우다 보니.. 꽃이 밥으로 보인 듯.
초근목피 거친 올이 똥구멍찢던 시절에
밥풀꽃이 <이팝나무>이다.
밥풀보다는 작고 조밥처럼 보이는 꽃이 핀다 하여 <조팝나무>이다.
산골마을
뒷간마다 피똥 흔적 가득했던 굶주린 시절의 슬픈 이야기.
'예전에 얼마나 배고팠으면, 꽃을 밥에 비유했을까?'
피죽도 귀해
기름기 없는 산나물로 허기 채우던 시절.
새끼줄 꼬을 볏짚도 아끼려고 보리짚으로 밑 닦던 시절.
뒷간 앞 새끼줄에 올라 타
밑닦고 빗물 독에 손씻던 시절.
밭일 나가면, 종이가 귀해 풀잎으로 밑을 닦던 옛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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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밑씻개 풀..........................
날카로운 가시덩쿨로
발목감는.. '며느리 밑씻개 풀'
젖먹여 품에 키운 아들을 며느리에게 뺏긴 시어머니.
그 풀잎 가시로라도 며느리를 혼내고픈
시어머니 마음.
'여린 속살에 그 가시가 밖히면 얼마나 아플까?'
'며느리 밑씻개풀' 덩쿨 숲은 옛부터 뒤보기에
좋은 장소.
밑씻기 안성맞춤 넓은 풀잎은 전설의 의미를 실감나게 한다.
'아들 마음 뺏은 며느리 거시기' 원망스러웠을 시어머니
마음.
좋은 음식을 보면 자신은 굶더라도 아들부터 먹이려는 어머니.
그 음식을 아들이 며느리에게 양보하면, 가슴이 아팠을
어머니.
차마, 아들은 원망 못하고.. 며느리 거시기만 미워했을 것 같다.
'단칸방에 시어머니도 함께 살던 옛날.'
시어머니 눈길 피해 옥수수밭에서
새참을 먹고 아기를 만들었던 시절.
꽃이 밥으로 보이던 시절은 가고
꽃이 꽃으로 보이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꽃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피고 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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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양귀비과에 속하는 2년생초로 키는 50㎝ 정도
줄기나 가지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 즙이 나온다.
마치, 어린아기 똥같이 노란 즙이 나와.. 애기똥풀.
5~8월
노란꽃이 피며 꽃잎은 4장이고 꽃받침 잎은 2장
수술은 많고 암술은 1개, 열매는 콩꼬투리처럼 익는다.
습기 있고 양지바른
길가나 밭가에서 흔히 자라며,
가을에 줄기와 잎을 그늘에 말린 것이 백굴채(白屈菜)
여름철 벌레 물린데 직효, 습진에 잎을 따
붙이면 효험.
노란색 즙에는 해로운 알칼로이드가 있어
애기똥풀은 산나물로서는 먹을 수 없는 풀.
아가 사랑하는
모성애가 가득 담긴 애기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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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 바람꽃.......................
만장대 서복 기슭에 금령천 약수터
서젯골
고려때 금강사 부전루(不戰樓)가 있었던 곳.
'여몽 연합군'이 일시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선비들이 과거를
준비하는 곳이라 서젯골.
이곳 약수를 마시면 과거에 합격한다는 속설
신혼 초 이 물을 마시면 수재를 낳는다는 설.
고려 충선왕 때 김해 무점에 사는 청년 김태은
향리 외아들로 태어나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젯골 금령천(金靈泉)
부근에서 밤낮없이 공부.
논실 마을 이씨 집안의 따님과 결혼하기로 했다.
꿈같은 신혼의 나날이 흘러 서로 사랑하는 사이
3년 세월이 흘렀어도 태기가 없는 채 병든 부인
남편의 지극정성 병수발 간호도 백약도 무효였다.
부인은 여생이
얼마남지 않자 유언.
"여보! 당신께 미안해요. 내가 죽거든..
이 모시저고리를 만지며 마음을 달래세요.
좋은
부인을 만나거든 이 옷을 묻어주세요."
남편은 복바치는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부인은 이틀 후 운명하고 홀아비가 된 태은
밤마다 부인이 남긴 하얀 저고리를 안고 잤다.
3년이 지난 어느날 우물가에서 만난, 어여쁜 낭자
물을 길러가는 낭자
모습에 넋을 잃게 된., 홀아비.
홀아비 마음 속에는 온통 그 낭자를 향한 그리움 뿐.
그는 한손에는 호미, 한손에는
저고리를 들고
약수터 옆에 죽은 부인의 모시저고리를 묻었다.
이렇게 흰 모시 저고리는 홀아비 곁을 떠났던 것.
그
이듬해 봄, 그 자리에서 핀 여러 송이 흰꽃
그 진한 향기를 맡으며 만감이 스쳐갔던 홀아비.
훗날 사람들은 그 꽃을 '홀아비
바람꽃'이라 했다.
누가 홀아비의 바람을 막을 수 있으랴
외로운 홀아비의 빈 가슴을 누가 채우랴.
봄이 오면 희고
소담스러운, 홀아비 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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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결에 피였다가 다시
바람결에 스러지는..풀꽃들.'
아침에 피었다가 반나절 만에 스러지는..가엾은
나팔꽃.
남편을 기다리며 정절을 지키다가 죽은 혼이 꽃씨로 환생.
바람 타고 날아가 감옥의 벽을 기어올라 피었다는 전설의 꽃.
삶과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애절한 부부애가 가득 담긴 나팔꽃.
죽은 약혼녀의 혼백이 환생해
무덤
위에서 자라 피었다는 매화.
그 나무 가지에서
일생을 떠나지 않고
산다는 휘파람새 전설.
붓으로 그린
그림 위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하여, 꽃이 되었다는 붓꽃.
그림 위에 나비가 앉으면
청혼을 받아 준다던
귀부인
화가는 붓꽃을 그리고 결혼.
저마다 나름대로의 전설을 간직한 꽃들
말없이 늘 그 자리에서 피고 스러져간다.
6~7월에는 원추리와 비비추, 까치수염, 큰행초, 오이풀,
노루오줌, 붓꽃, 꽃창포, 금강초롱, 지리털이풀.. 30 만평
가을이면 옥잠화를 비롯하여 그곳 자생식물만... 1,320 종.
노고단 만큼 넓은 야생화 군락지는 전국에 없는 듯.
예쁜 거시기에 빠져 환장하면 서방·각시 팽개치는 듯.
노고단에 풀꽃 가득할 무렵이면, 이곳 찾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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