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스크랩] 지리산 이야기 - 50. ( 남부능선. 한벗샘. 자빠진골. 음양수. )

donkyhote 2010. 10. 29. 02:44

 



남부능선



지리산에서 최고 비경 코스는 단연, 남부능선.
지리산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사현장, 남부능선.
빨치산 정예 유격대 남부군은 남부능선에서 유래.

.................주능선 전망대 같은 비경 코스........................
세석 -2Km- 1,050m갈림길 -3Km- 한벗샘 -5Km- 삼신봉
-1.5Km- 송정굴 -3.5Km- 생불재삼거리 -2.5Km- 불일폭포
-3Km- 쌍계사 -0.5Km- 용강리(총 20 Km, 오르막 7시간 40분)

삼신봉에서 동쪽으로 10분쯤 내려가면 청학동으로 빠지는 길
원삼신봉에서 청학동 1시간, 구경할만한 곳은 '터골'의 <삼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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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남쪽 전망대로 알려진 삼신봉
그곳에서 영신봉까지 이어진 남부능선.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산로.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붉게 녹슨 포탄들.
붉은 녹은 지난 반세기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듯.
남부군을 소탕하려 대성골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흔적.

<반란의 역사> 격전지였던 남부능선.
아직 끝나지 않은 이데올르기의 상처들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로 남아있는 곳

모순된 역사와 낡은 이데올로기가 빚은 참상.
그로 인해 비참하게 목숨을 잃고 떠도는 영혼들.
세월이 흘렀어도 당시 참상이 서려있는 남부능선.

인간의 본능적 절규가 터져나왔을 그곳 골짜기
부모형제 아내와 아들 딸 떠올리며 숨져간 그들
사슴의 눈물 만큼 깨끗했을 맑은 개울에 흘린 피.

뜨거운 피를 품으며 고꾸라져간 수많은 생명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단 하나의 목숨.
그것을 버린 그들의 궁극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죽음앞에서 마지막 부르짖고 싶었던 절규.

아침이슬처럼 남부능선에서 흔적없이 사라진 그들.
그들이 목숨을 받쳐가면서 지키려한 것은 무엇일까?

반세기 세월 속에 묻어버린 역사의 현장
뼈속깊이 시린 애환은 차라리 서러운 희열.
그들이 지리산의 품속에 남기고 간 통곡의 한.
이젠 미래의 역사에 그 서러움 묻어야 할 영혼들.

'이젠 여기에서 고이 잠드시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토벌군이 부른 '남부군'
이현상 부대 또는 '나팔부대'라고 불리던 좌익.
정식 호칭은 '조선인민 유격대 독립 제 4 지대'.

남한 최초의 조직적인 좌익 빨치산 부대였고,
남한 빨치산의 전설적 총수 이현상의 직속부대.

1949년 이래 소백산·지리산 지구 공비토벌전
교전 횟수 1만 717회, 전몰군경 수는 6,333 명
빨치산 사망자는 대략 1만 수천 명으로 추정된다.

1952년 3월 15일 전북 남원 백선엽 야전군 사령부.
일명 '백야전사'는 토벌임무를 마치고 해체되었다.
1952년 4월 남한에서 활동해온 빨치산 지대는 해체

남한 전역이 5개 지구당으로 개편되면서 분산활동.
정순덕 여인을 마지막으로 이땅에서 사라진 남부군.
그 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흔적이자 지명인 남부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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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봉에서 영신대 거쳐 삼신봉으로 뻗어 내린 남부능선
세석에서 전나무와 활엽수 숲길을 따라 쌍계사 쪽으로 30분.
기도 터와 음양샘을 지나 조금 더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거림골로 하산하는 길
오른쪽으로 10 분 더가면 갈림길
오른쪽은 대성동 거쳐 쌍계사 가는 길.

왼쪽은 남부능선 가는 길이고 10분 후 큰 석문이 나온다.
두 길 넘는 바위벽 사이로 길이 있고 천정바위가 덮혀있다.

대패로 깍아 세운 듯한 바위 사이로 들어서면
대성골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골 안은 온통 숲.
구름 속에서 솟은 봉우리들이 다도해로 변한다.

석문에서 듬성듬성 바위가 솟은 돼지바위 능선길 1시간.
산죽 봉우리 북쪽으로 촛대봉과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
특히 촛대봉은 팔을 쭉 뻗으면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눈이 덮인 겨울엔 큰 나무가 적은 촛대봉은 만년설 고산.
서쪽으로는 노고단으로 이어진 100리 주능이 시야에 가득.
발목까지 빠지는 눈속 능선길은 온갖 동물들의 발자국 흔적.

손바닥만한 꽃 무늬 야생동물 발자국부터
멧돼지, 고라니 등등 이름모를 동물 발자국.

남부능선이 워낙 인적이 드문 탓일까?

천왕봉을 왼쪽 지척에 두고 발걸음마다 그 모습이 달라진다.
헬기 착륙장이 있는 초원지대에서 10분 가면 박단재가 나온다.
오른쪽은 단천 왼쪽으로는 거림으로 내려가는 길이 마주치는 곳.

박단재는 수곡재라고도 하고 '엎어진 뜰'이라고도 부른다.
박단재에서 거림 방향으로 150 m 내려가면 맑은 샘이 나온다.
음양수와 삼신봉 사이의 유일한 이 샘을 한벗샘( 수곡샘, 박단샘).

등산로에서 40m 떨어진 숲속의 빈터..한벗샘.

한벗샘에 들어서면 주변 경관이 아늑하게 들어온다.
한벗샘 가까이 3~4용 텐트 한 동 칠 수 있는 야영장.
예전에는 남부군 식수원, 지금은 야생동물에게 식수원.

여기서 삼신봉까지는 3 km 정도 될까?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여러 재와 봉우리를 넘다보면 힘든다.
첩첩산중 멀리 왕시루봉, 노고단, 반야봉 연봉들의 웅장한 모습.

병풍처럼 시야를 가로막는 능선을 지나면 돌단이 있는 삼신봉.
청엄, 화개, 시천 3개 면의 삼각지점에 정걸방이 쌓았다는 돌단.
매년 곡우날, 삼신봉 아래 청학동 사람들이 삼신제를 올리는 곳.

삼신봉(1,284 m)에서는 다도해와 남해 섬이 보인다.
동쪽 진주와 함께 멀리 진양호가 손바닥처럼 보인다.
삼신봉에서 계속 종주하려면 오른쪽으로 전진해야 한다.

삼신봉에서 오른쪽 능선따라 5백 m 후 봉우리 하나 넘으면
동쪽으로 길이 꺽이면서 부처님처럼 보이는 암봉이 미륵바위
10m 높이 바위 주변엔 금강산 일부를 옮겨 놓은 듯한 기암괴석.

미륵바위 오른쪽 망실봉을 지나
암봉 서쪽으로 아슬아슬 트래바스

조금 더 가면 오른쪽 능선 아래로
갈림길 10m 지점에 송정굴이 있다.

송정굴 동쪽 능선에는 높이 100m 신선대.
옛 신선이 쌓아 놓았다 하여 신선대이다.
이곳 내삼신봉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삼신동.

삼신동 가는 길 건너편 능선 아래 자물쇠 같은 <쇠통바위>
학동 어가정 위의 바위 열쇄로 열면 이상향 문이 열린단다.
사람이 쌓은 듯한 돌무덤 위에 얹힌 미륵머리 형태의 독바위.

독바위에서 두 세 시간 더 가면 성불재가 나온다.
성불재 못 미쳐 오른쪽 길로 40분 내려가면 불일폭포.
성불재에서 보면 능선 끝에 우뚝 선 형제봉(1,114m)

성불재에서 내원재까지 관목지대는 헤쳐나가기 애먹는 곳.
내원재에에서부터는 길이 편해 3시간이면 형제봉에 닿는다.
내원재에서 한시간 쯤 걷다보면 우뚝 솟은 시루봉이 나타난다.

시루봉과 이어진 능선은 오른쪽에 횡천강과 왼쪽의 악양골
그리고, 칠성봉, 구재봉을 연이어 하봉읍까지 계속 뻗어 있다.
시루봉 못 미쳐 왼쪽 능선길로 가면 원강재 건너 형제봉에 이른다.

형제봉 정상에 서면 발 아래 신선봉(600m)이 있고
그 아래 능선은 섬진강으로 흘러 서서히 잠겨 간다.
형제봉에서 악양골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

삼신봉에서 남부능선 종주를 끝내려면 왼쪽 능선을 타면 된다.
초원길을 10 분 내려가 <갓거리재> 왼쪽 길따라 내려가면 거림.
능선길로 30분 가면 미륵봉 아래에 미륵암터.(6.25 전란에 소실).

'나무아미타불' 이라 새겨 놓은 큰 절벽 아래에 샘이 음양수.

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가려는 사람은 갓거리재에서 오른쪽 길.
개울 따라 40분 내려와 개울 건너 오른쪽 비탈길 10분이면 청학동.




한벗샘.




한벗샘은 자빠진골(엎어진 뜰) 발원지.
남부능선 상 깊고도 외딴 산속 옹달샘.
그 작은 샘이 빚어낸 광활한 자빠진골.

거림과 도장골 사이에 있는 자빠진골.
거림은 세석평전 가는 지름길 들머리.
연하봉과 촛대봉 사이에 있는 도장골.

세석평전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남부능선 중간 오른쪽 40m 아래 있는 한벗샘.
남부능선 상에 한벗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

계곡의 본류 만도 60리에 이르는 거림골
철쭉꽃 피는 봄이면, 등산객 인파의 물결.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중산리로 가다가
곡점마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거림.

산꾼들은 밋밋한 거림골 산행보다
남부능선으로 오르는 자빠진골이나
촛대봉으로 오르는 도장골을 찾는다.

'자빠진 골' '엎어진 뜰'로 부르는 남부능선 상 계곡
이름그대로 산이 자빠진 듯, 엎어진듯 완만한 경사면.
그러나 계곡의 수려한 경관은 어느 골짜기 못지 않다.

골짜기가 자빠지고 엎어지며 패인 원시성이 돋보인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거림 매표소를 지나 한동안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
지리산 등산로에도 나와 있지 않을 정도로 감추진 길.
반면, 도장골은 와룡폭포까지 길이 또렷해 찾기는 쉽다.

도장골 윗용소로 올라가면 이현상 남부군 지휘소 흔적.
그 만큼 도장골이 은밀하고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늦가을 낙엽이 떨어지고 나면 잡목 사이로 토굴과 돌담.

한벗샘에서 최단 남부능선 하산길은 거림
거림 인근에는 찾아가볼만한 명소가 많다.

산청 양수발전소,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시관,
남명 조식유적지, 대원사, 내원사, 덕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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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벗샘에서 세석평전이 가까워지면 음양수.
남부능선 등산로가 끝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여, 한벗샘은 남부능선 중간에 유일한 샘물. 

 

남부능선의 오아시스., 한벗샘,

 


 


자빠진골.



세석평전 오르는 길에 자빠진골(일명: 엎어진 뜰).
거림골에서 남부능선 중턱으로 이어지는 자빠진골
세석평전으로 오르는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골.

골짜기가 자빠진듯 경사가 완만해..자빠진골.
뜰이 엎어진 듯 약간 기운 산세라..엎어진뜰.

빨치산들 시신이 즐비하게 자빠져..자빠진골
총맞고 부상당한 빨치산들이 엎어져..엎어진뜰
대성골 빨치산 토벌작전 당시 격전장..자빠진골.

반세기전 토벌군 화염공격으로 사라진 원시림
지금은 무성한 잡목 숲으로 빼곡하게 뒤덮혔다.
불과 반세기만에 옛 모습을 찾아가는 무성한 숲.

자빠진골은 거림과 대성골 주민들 삶의 통로.

현재 이 길을 오가는 주민들은 거의 없지만,
고로쇠물 채취를 위해 거림 주민들이 오른다.

세석평전 ~ 거림마을(경남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8Km.
한신계곡 따라 오르는 북쪽길 10Km 보다 거리도 가깝고
경사도가 완만해 3시간 정도이면 넉넉하게 오를 수 있다.

거림~세석평전은 지리산 능선으로 오르는 최단코스.

세석평전에 철쭉꽃 필 무렵에는 정체현상이 심각.
그러나, 거림마을에서 일박하고 오르면 편안하다.

거림마을은 지리산 산간마을 중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시천면 소재지 덕산을 지나 중산리 5Km 못 미친 곡점리
그곳에서 7Km 거슬러 오른 해발 600m 깊은 산중에 있다.

왕복 1차선 진입도로 7Km가 좁은 것이 결점이지만,
적당한 간격의 갓길 포켓이 있어 차량 소통이 원활.

거림마을을 산행 기점과 종점으로 정했을 경우
가장 좋은 코스는 자빠진골을 이용한 타원 루트.
거림마을 -세석평전-음양수-수곡재-자빠진골-거림

거림에서 도장골 입구를 건너 매표소를 통과하면
신선바위가 반겨주고, 이곳 숲사이 오솔길이 시작.
세석까지 8Km 구간 중 1,050m 갈림길 1Km만 오르막

원래 이 코스는 거림 다음 850m 갈림길에 첫 이정표
<표고 850m, 세석 5.5Km, 거림 2.5Km> <<통행금지>>

<<통행금지>> 그 갈림길은 자빠진골을 따라
남부능선 한가운데 지점인 수곡재를 넘어서
반대편 수곡을 따라 대성마을로 이어져 있다.

대성동 주민들이 거림을 거쳐 덕산시장으로 가던 길,
또 이곳 주민들이 산채나 약초를 뜯고 목기를 깎거나
사냥하던 길이고 자빠진골은 지난날 대규모 도벌 현장.

원시림이 도벌로 자빠지고 엎어져 '자빠진 골' '엎어진 뜰'

1952년 1월 백야전(白野戰) 사령부 제3기 토벌작전 때
토벌군이 대성골을 불바다로 만들며 빨치산을 토끼몰이
빨치산 생존자들의 몸부림이 핏빛으로 아로새겨졌던 곳

그들의 몸부림이 아직도 자빠진골에 남아있는듯.

자빠진골 입구는 거림 주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들로부터 안내받아도 십중팔구 중간에서 길을 잃는다.
고로쇠 수액 채취길이 산길보다 뚜렷해 길을 잃기 때문.

자빠진골은 7부 능선까지 산죽과 싸리나무 밀림지대
그러므로 '치고 나가는 일'도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자빠진골 끝 수곡재는 남부능선에서 가장 낮은 고개

서쪽으로 잘록하게 들어간 능선을 표적으로 삼지만
녹음이 울창하면 시야가 막혀 방향감각을 잃게된다.

자빠진골은 거림마을에서 세석고원으로 먼저 오른 뒤,
남부능선따라 삼신봉으로 내려가다가 수곡재에서 한벗샘
한벗샘은 남부능선 수곡재에서 자빠진골 쪽으로 200m 아래

남부능선은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다.
때로는 큰바위 옆을 돌아가기도 하고,
기암을 통과하는 재미와 장쾌한 전망

세석산장 500m 남쪽 갈림길에서 대성골 방향
여기서 1Km 거리의 음양수샘까지는 평지 같다.
음양수 500m 남쪽 1,400m 갈림길에서 남부능선

서쪽 내리막길은 대성골 루트.

이 갈림길에서 전설의 고향 석문(石門)을 통과
수곡재까지 3Km, 남부능선 10Km 구간의 중간지점.
남부능선(삼신봉~ 세석평전) 수곡재에 한벗샘 이정표

한벗샘 주변에는 텐트를 몇동 설치했던 야영터가 있다.
한벗샘에서 자빠진골 따라 가려면 길을 잘 찾아야 한다.
인적이 없어 한벗샘 흐르는 방향 실개천을 따라가야 한다.

1시간 가량 내려서면 고로쇠 채취 비닐 파이프들.

이제부터는 어느 길이든 거림골로 합류되는 등산로.
수곡재에서 거림골까지 자빠진골은 크고 작은 돌들.
세석평전처럼 돌들이 뒤덮고 있지만, 낙엽수 원시림

지척을 구분못할 만큼 빼곡이 들어차 신빌운 느낌.
고로쇠물 채취가 끝나면 인적조차 느낄 수 없는 곳.
지리산의 적막함 속으로 깊이 빠져볼 수 있는 곳이다.

자빠진골 하산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이면 충분하고,
다시 거림골을 건너 거림마을까지 닿는데 30분 걸린다.
거림-세석-남부능선 한벗샘-자빠진골-거림은 약 18Km.

'산행 소요시간 : 중식 및 휴식을 포함해 8시간.'

자빠진골은 얼핏보면 돌 투성이 비탈에 활엽수 원시림
그러나, 고로쇠, 석이버섯.등이 많은 주민들의 소득원.
바위 벼랑 끝에서 자라는 석이버섯은 부르는 게 값이다.

석이버섯 채취에 얽힌 여러가지 에피소드도 있다.

이 버섯을 채취해 고소득을 올린 이 일대 주민들이 많다.
수곡재 넘어 의신마을 조봉문 씨도 아내와 함께 가출하여
거림골에 텐트를 쳐놓고 석이버섯 채취로 돈도 제법 모았다.

그밖에 자빠진골에는 황철목, 마가목 한약재 나무가 많다.
거림 주민들이 이 골짜기를 자주 찾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빠진골-수곡재-수곡골 옛길은 인적 끊긴 잡목숲으로 변모

수곡재에서 아무리 틈을 비집어봐도 길을 뚫을 수 없다.
거림골~ 대성골 옛길은 대성골에서 시작하면 연결이 가능.

대성계곡 문바위에서 계곡건너 수곡폭포를 거쳐 양진암.
스님 한분이 지키는 이 암자 뒤로 수곡재 능선까지 옛길
녹음이 우거지기 전까지는 자빠진골 산행을 시도 해 볼만.

 

 

 

음양수. 



큰 바위 아래에 있는.,음양수.


음양수 부근에 있는 구상나무. '20년 뒤에는 얼마나 자랄까?'

영신봉과 촛대봉.

 

 

길옆 한 쌍의 암봉

 

삼신봉에서 출발, 남부능선이 끝날 무렵
'나무아미타불' 바위벽 아래 있는 음양수.
음양수 팻말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는 곳,

세석에서 2km 못미쳐 양지바른 휴식처.
바위벽 아래 두 구멍에서 각각 샘물이 나와
하나로 합쳐져 고이는 음양수는 '전설의 고향'.


지리산에서 가장 길고 깊은 계곡이 대성골.
그 대성골의 발원지가 작은 샘물인., 음양수.
작은 샘 하나가 흘러 흘러 거대한 계곡을 형성.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음양수를 놓치기 쉽다.
주능선에서 벗어나 남부능선 방향에 있기 때문.
거림 방향에서 올라와야 제일 쉽게 만나는 샘물.

세석평전 직전 고사목지대 양지바른 바위숲.
음양수 위쪽 너른 바위엔 곱게 쌓인 돌 제단.
예전에 화전민들이 십여 가구 쯤 살았던 흔적.

그곳 돌절구가 화전민 마을이었음을 뒷밭침해 준다.
책상만한 바위에 원통형의 구멍을 파서 절구로 이용.
사람이 살았고 농사를 지었다는 구체적인 증거인 셈.

김점분 외12명의 여성 빨치산들이 토벌대에 포위되자
13명 전원이 권총으로 장렬하게 자결했던 곳이 음양수.
전설적인 여성 빨치산 김점분이 생을 마감한 음양수 주변.

1953년 여름, 토벌대에 쫓긴 김점분 外 15명의 여성 빨치산.
음양샘 가에서 포위되어 더 피할 곳 없자 모두 권총으로 자결.
이어, 1952.1.17 토벌대와 미군 합동군이 대성골 빨치산을 공격.

대성리 마을 뒤에 수많은 시신들이 흩어지고
3일 동안 대성골 계곡 일대에는 피가 흘렀다.
음양수는 반란의 역사 격전지였던 곳 중 하나.

'김정분 외 12 여성 빨치산은 왜 자살했을까?'

전쟁 중 적군의 여성 포로는 정복할 공격목표.
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한., 심리전술.
전쟁 중에는 성윤리가 표류해 강간 겁탈이 급등.

2차 대전 당시 정신대를 피해 절에 숨은 여성들.
6.25 당시 정절을 지키려 산속으로 피신한 처녀들.
정절을 유린 당하느니 죽음을 선택한 당시 유교관념.

수복지 산간 마을마다 "색씨"를 찾던 일부 미군들.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은 목숨보다 소중한 정조 관념.
그녀들의 자살은 정절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듯.

'과연, 공산주의를 위해 목숨을 끊었을까?'

단지, 살기 위해 도망치다가 맞이한 그녀들의 최후.
그녀들은 죽음으로서 정절만은 지키려 했던 듯 싶다.
비록 빨치산이지만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순결관념.

'조상대대로 뿌리깊었던 유교관의 영향인듯.'

이념과 사상을 초월해 마음이 숙연해지는 곳.
그 고귀한 정조 관념 앞에 고개 숙여지는 곳.
그 가엾은 넋들을 기리기 위한 음양수의 돌탑.

음양수에서 대성골까지 수많은 돌탑들.
오늘날 그곳 돌탑들은 무속신앙의 상징.
하여, 철거되었다가 다시 쌓여지길 반복.

큰 바위 아래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음양수.
그 석관수를 자세히 살펴 보면, 놀라운 풍경.
마치, 하리수를 연상하게 할 만큼 고혹적이다.

'남녀 양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음양수.'

큰바위 하나에서 흘러나오는 두 줄기 석관수
큰 바위 앞 웅덩이에 고였다가 다시 흘러간다.
음양수 주변은 양지바르고 따듯해 편안한 휴식처.

들여다보면 볼수록 오묘한 느낌이 드는 음양수.
그 샘물은 주변을 적시며 다시 대지로 스며든다.
마치, 대지 위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듯한 광경.

'하여, 음양수라고 부르는 걸까?'

지리산 주능선과 남부능선이 만나는 곳의 샘물.
남부능선은 대성골과 거림골 사이로 뻗어 내린다.
하여, 세석평전 골짜기 '음'과 남부능선 '양'의 만남.

남부능선은 세석평전의 골짜기를 파고드는 산세이다.
엎어진 골(자빠진 뜰)따라 올라오면 한벗샘이 나온다.
한벗샘 지나 남부능선따라 세석평전 가까이 가면 음양수.

'음양 기운이 합쳐져 하나를 이루는 음양수.'

하여, 음양수를 마시면 아이를 갖일 수 있다는 전설.
특히,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이 찾아온다.
음양수는 들여다 보면, 볼수록.. 의미심장한 이름이다.

세석산장 남쪽 2 km 아래,
거림으로 가는 길가에 있다.

남부능선 마지막 고비의 갈증을 달래주는 음양수.
이 샘에는 사랑하는 남녀의 슬픈 전설이 담겨있다.
마주보는 <촛대봉>과 <영신봉> 두 이름 유래의 산실.

불교에서 인간으로 태어남은 윤회설에 의한 하늘의 뜻.
하늘의 뜻을 어기고 인간 뜻대로 아기를 갖는 행위는 죄.
그 천기를 누설했다는 전설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음양샘'.

이곳 샘물을 마시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의 샘.>
그 이유만으로도 은밀히 불임여성들이 찾는 샘이기도 하다.
음양수는 지리산에 있는 옹달샘 중에서 가장 진수를 품은 샘.

이곳에 얽힌 역사적 사실 역시 지리산의 전설 중에서 절정이다.
전설의 실체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알듯 모를 듯, 미궁 속 신비.
'도대체 <음양수의 전설> 속에 숨겨진 비밀의 실체는 무엇일까?'

.......................<음양수 전설>.................................
아득한 옛날 지리산의 인간은 호야와 영신이란 남녀 뿐.
세석평전에 초막을 짓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원앙처럼 금슬이 좋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호야가 다래를 따러간 사이에 반달곰이 영신에게
음양수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영신은 곧바로 음양샘으로 달려가서 음양수 샘물을 마셨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호랑이
그 사실을 지리산 산신령께 고해 바쳤다.

산신령은 천기를 발설한 곰을 토굴에 가두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이 되도록 했다.

산신령은 샘물을 몰래 마신 영신에게도 무거운 벌을 내려
철쭉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세석평전 철쭉을 가꾸도록 했다.

영신은 낮에는 철쭉을 가꾸고 밤에는 촛대봉 정상에 올라가
촛불을 켜놓고 산신령께 자기의 죄를 빌다가 바위가 되었다.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영신의 몸이 굳어진 모습이라 전해온다.

한편,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영신을 찾아나선 호야.
영신이 촛대봉의 바위로 변한 사실도 모르고 헤메인다.
결국, 그리움에 지쳐 호야가 바위로 변한 자리가 영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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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로 변해 영원히 마주보며 만날 수 없게 된.. 두 연인.
촛대봉과 영신봉은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봉우리.
넓은 세석평전 은밀한 곳에 옛부터 전해져 온 '음양샘의 전설.'

오늘날까지 아이 낳기를 염원하는 여성들
영신봉 자락 세석평전까지 찾아오는 음양수.
음양수는 오랜 세월간 대성골을 빚어낸 발원지. 

음양수는 영신대 아래 위치
영신봉은 낙남정맥의 시발점.
낙남정맥은 가락국의 옛 영역.



출처 : 산사모산악회
글쓴이 : 선경나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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