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스크랩] 지리산 이야기 - 49 - 나. ( 순천 벌교.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

donkyhote 2010. 10. 29. 02:43

 

 

순천 벌교.

 


 

갈대밭과 새들의 안식처인 순천만 대대포구 하구. 

 

 

벌교 읍내에 자리한 홍교. 일명 '소화다리'..

<태백산맥>에도 실명이 그대로 등장한다.

 

.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남도여관.

 

벌교를 품은 보성 땅은 이순신과도 인연이 깊은 곳.

이순신은 조성면 우천리 고내마을에서 군량을 얻고,

보성 군기고에서 무기를, 회령에서 전선 12척을 얻어

누란의 위기에서 백성을 구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해전사상 유례가 없는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을 무찌른 명랑(울돌목)해전 이면에

보성에서 얻은 물심양면 도움이 있었던 것.

 

이순신은 보성에서 열흘간 머물며

백의종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유년(1597) 8월 14일 밤 이순신은

보성읍내 열선루에 올라 시를 읊었다.


             한가로운 바다에 가을빛 저무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달이 칼과 활을 비추는도다.

 

새벽달이 칼과 활을 비춘다는 문장은 명쾌한 의지를 상징.

그가 보성에서 보낸 열흘은 조선 최대의 위기의 시기였다.

그의 근심은 개인적 명예회복이나 입신양명에 있지 않았다.

 

그의 단순한 칼과 활은 오로지 왜적을 향한 것.

조정의 무능은 그의 순수한 열정을 외면했지만,

그에게는 백성이 있었고, 조선의 바다가 있었다.

 

그는 기꺼이 조선의 바다로 나아가 기적처럼 승리

이순신이 지켜낸 바다는 지금 석양에 물들어 있다.

 

 

벌교에서 순천만 가는 길에 피어난 매화. 

 

벌교 여자만은 순천으로 넘어오면 순천만이 된다.

고흥 쪽에 여자도가 있어 벌교 여수에서는., 여자만

 

 

보성 오봉리에 남아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이식래 초가와 돌담. 

 

 

순천만의 매력은 동천 서천(이사천)이 만나는 대대포구에서 시작.

이곳 갈대밭과 찰진 갯벌은 겨울 철새들의 가장 안전한 월동지

국내 최대 규모인 순천만의 갈대밭은 약 30만 평에 이르며,

칠면초 군락지까지 포함한 순천만 갯늪은 총 50여 만 평.

 

겨울이면 순천만은 철새도래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무분별한 동력선 운행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벌교 앞바다에서 만난 풍경. 어부가 포구 인근에 세워놓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소설에서 무진은 안개가 지독한 가상의 공간이다.

그것은 암울했던 1960년대 시대상황에 대한 상징.

 

 

순천만 와온포구의 일몰.

 

순천만은 보성과 순천, 고흥과 여수 땅을

넓게 아우르며 뭍으로 우묵 들어와 있다.

바다이면서 뻘밭인 순천만은 가도가도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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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여순반란 사건의 실패로 인해
그들이 지리산으로 퇴각하는 1948년 10월 24일부터 전개.
1950년 6.25를 거쳐 전쟁이 끝나는., 1953년까지의 이야기.

 

벌교('뗏목을 이은 다리'란 뜻)는 日人이 개발한 읍.
그 전까지만 해도 벌교는 낙안 고을을 떠받치고 있는
낙안벌 끝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던 갯가 빈촌에 불과.

 

일제시대 전남 내륙지방 수탈을 목적으로 벌교 개발
배로 순천만을 가로질러 여수까지는 반나절이면 도착
목포에서 부산에 이르는 긴 뱃길을 반으로 줄인 순천만.

 

옛 순천군과 낙안군이 통합된 순천.
주암댐 수몰지구에서의 구석기 유물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주거지 등 발굴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사평군(沙平郡:또는 武平郡)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 승평군(昇平郡)으로 개칭
고려초 940년(태조 23) 승주(昇州:또는 昇化)로 개칭.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승주목
995년(성종 14) 곤해군(袞海軍) 절도사가 파견되고,
1012년(현종 3) 안무사, 1036년(정종 2) 다시 승평군

 

이 때부유현(富有縣)·돌산현(突山縣)·
여수현(麗水縣) 양현(光陽縣)을 속현(屬縣)
1309년 승주목(昇州牧), 1310년 순천부(順天府)

 

1413년(태종 13) 조선초 군현제 개편 때 도호부로 승격
조선시대 동안 순천도호부는 전라좌도 남부의 중심 역할.
 그러나 효종대와 정조대에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1479년(성종 10) 여수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 설치
전라좌도 해안방어 군사 요충지. 순천의 별호는 평양(平陽)
1895년 남원부 소속 순천군, 1896년 전남 순천군이 되었다.

 

1896년 돌산군 신설에 따라 도서지역이 돌산군에 이관되고,
1897년 순천군 율촌면 소라면 삼일면 여수면이 여수군(麗水郡)
1908년 낙안군을 폐지해 낙안군 7개면이 순천군에 편입되었다.

 

순천시 지역은 남쪽으로 여수반도의 여수시와 연결되고,
북으로 구례군 곡성군 보성군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
일제강점기에 순천평야와 주변 농지는 수탈거점으로 성장

 

1920년대 말에는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했다.
8·15해방 후 일제의 수탈거점 역할을 상실하고
1948년 여순반란사건을 겪으며 인구가 감소되었다.

 

전라선과 경전선이 순천에서 교차하며,
호남 남해고속도로로 서울 부산이 연결
광주 화순 보성 구례 여수 남원 국도 연결.

 

청동기 유적지 가곡동·용당동·덕암동·왕지동 조례동·승주읍·
송광면과 보성강과 이사천 주변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며,
조선시대 이곳에 유배된 김굉필과 조위를 추모하는 임청대(臨淸臺)

 

불교문화의 요람이라 불릴 만큼 불교문화재가 많으며,
낙안읍성민속마을·곡천유원지·주암댐·주암호·죽도봉공원
죽도봉 공원에 박혁거세를 봉안한 숭성전(崇聖殿)이 있다.

 

 



조계산(884m).

 

 

 

 

 

조계산 등산로는 흙과 돌로 이루어져 정겹다

 

 

 

 

 

장군봉과 장군봉 밑에 마련한 고상한 휴식장소

 

 

 

 

나쁜 사람이 오면 나타나고

착한 사람이 오면 없어져서

산신령으로 불렸다는 호랑이

 

턱을 고이고 등산로를 지켰다고 해서

'호랑이 턱 바위'라고 불리우고 있는 곳.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보리밥집

 

출렁다리와 봄의 소리를 맘껏 들려주고 있는 계곡물.

잠시 내려가면 보리밥집이 나오는데 탁자가 60여 개

손님이 많으면 줄을 서서 밥을 타다가 먹는다고 한다

 

 

 

 

 

 

 

 

 

 

 

 

하산을 하는 길목에 있는., 승선교  아래 용머리

계곡을 따라 오는 음습한 기운과 사악한 것들을

물리치려 용머리를 다리 밑에 매달아 지키게 했다

 

 

 

전남 순천시 송광면 승주읍 경계에 있는 산.
본래 동쪽 산군을 조계산 서쪽 산군을 송광산
조계종의 중흥 도량산이 되며 조계산이라 명명

 

1979년 12월 도립공원 지정, 공원 면적 27.38㎢.

벚꽃 동백 목련 철쭉, 여름 숲, 가을 단풍, 설화(雪花)

 

산 주위에는 광원암·감로암·천자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천자암 위에 곱향나무 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가 있다.
산 동쪽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

 

선암사 입구 계곡에 아치형 승선교와 강선루가 있다.
비룡폭포가 유명하며 특산물로는 산채와 고로쇠약수

송광사 - 마당재 - 굴목재[屈木峙] - 선암사 등산 코스

 

광주 순천에서 송광사 및 선암사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호남고속도로 및 순창-고흥 국도와 인접해 교통이 편리.
광주 순천 여수 대도시와 인접해 있고, 한려수도와 연계

 

(저지대민족 유적지가 잠겨있을 한려수도)

 

(전세계 고인돌 중 1/3이 있는 우리나라.)

(고인돌은 저지대 민족의 이동경로를 대변)

(대홍수를 피해 민족 이동한 흔적들이 고인돌)

 

(당시 고지대 민족보다 선진문명을 보유한듯.)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개막을 알리는 문화 유산)

(곧 이어., 철기시대가 열리며 고대국가들이 탄생)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바뀐 시기도 이 무렵인듯)

 

(동남아 저지대민족의 공통 종교., 불교)

 

 


 
송광사

 

 


 

 송광사 내부 전각들 (우측건물은 주방건물)

 

   청량각(다리를 건너면서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지역의 경계가 되는 건물)

 

 비사리구시(옛날 보온밥통이라 할 수 있겠죠?)

 

1742년 남원 세전골에 있었던 큰 싸리나무를 가공

송광사 대중의 쌀 7 가마 분 밥을 담아 두었던 구시.

 

국사전(국사들의 영정을 봉안하고 덕을 기리는 법당).

 

                            심석  

 

 축조 방법이 일본 오사카성이나 니조성과 같다

오사카성은 니조성보다 늦은 1603년에 축조 완공.

일본의 성벽 축성술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인듯 하다.

 

 

 

만리장성 이후 고구려는 성곽축조 기술에서 뛰어남이 돋보인다.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되는 곳의 성돌은 규칙적으로 들여쌓기

신라는 턱을 만들지 않았지만 심석을 사용해 들여쌓기(첨성대)

 

자연석을 곱게 다듬어 쥐한마리 들어갈 틈이 없게 만든 기단부

그 위에는 큰돌사이에 작은돌을 끼워넣어 유격이 없도록 하였고

담장을 지지하는 하부쪽은 자연석을 쌓고 상단부에 기와장 토담

 

 

                                                                                                    심석  ↑

 삼청교위 우화각

 

 

 이제 이곳에는 또 하나의 특이한 곳이 있다.

그건 우화각 다리밑 용두 입술에 매달린 엽전.

이것은 조선시대 다리(건물)을 짖고 남은 돈이다.

 

불자의 마음으로 모아서 만들 건축 잔액인 셈.

그 엽전을 그곳에 매단 스님의 마음이야말로

세속에 물든 속인에게 채찍이 될 무언의 가르침.

 

 홍예석 상판 쐐기돌(용두) 에 매달린 엽전   

                                                                    

 조계산 자락 북쪽의 송광사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지리산에 큰 영향을 끼친 사찰.

 

1.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보관한 법보사찰
2. 통도사는 석가모니 전신 사리를 보관.
3. 송광사는 16 국사를 배출한  길상사.

 

<송광사 3가지 명물>

 

1. 비사리구시

1742년 남원 세전골 싸리나무를 가공
쌀 7가마(4천명분) 밥을 담을 수 있다.

 

2. 능견난사

사찰의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인 능견난사
그 크기와 형태가 일정한 정교한 수공예품

 

3. 쌍 향 수

조계산 마루 천자암 뒤뜰에 있는 곱향나무
두 그루의 향나무가 같은 모습이라., 쌍향수
엿가락처럼 꼬인 몸통에 땅을 향한 나무가지


<등산코스>

 

송광사 -> 천자암 -> 굴목재 -> 선암사(5시간)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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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산 802
조계산 기슭 동쪽에 자리잡은 선암사

 

백제 성왕 7년(529년) 아도화상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1년 도선국사 선종 9산 중 선암사 창건
선암사는 '태고종 총 본산' 답게 규모가 매우 큰 사찰.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시인 -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선암사 계곡
고승 부도밭 지나 신선이 건넜다는 승선교(昇仙橋)

 

다리 중앙에 용머리가 있고 작은 종이 매달려 있어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종이 울렸다는 전설
석가모니 마음과 함께 도교의 신선 사상까지 내포한듯


경내에 닫힌듯 열려있는 선암사의 명물., 해우소.

맞배지붕에 4칸의 정자형(丁字形) 변소는 누각인듯.
안에 들어서도 독립적인 공간 하나 없어 당황스럽다.

 

근심을 풀기(解憂) 위해 나무 발판위에 다리를 얹고
엉거주춤 앉노라면 누가 들어올까 조바심도 나지만
비스듬한 문살 밖으로 매화향과 기울어가는 햇살.

 

대웅전 주위에는 명부전, 약사전, 대장전,
팔상전, 원통각 등 여러 전각들이 있는데
마치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은듯.

 

선암사 내 각 건물들은 마치 잘 정돈된 마을인듯
각기 마당을 갖고 있으면서 독립적인 모습이 특징.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바라아제’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고,
조정래 부친 조종현이 승려로 있던 사찰

 

해방 당시 선암사 부주지 조종현
“절은 대중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절은 소작인들을 거느려서는 안된다”

 

실천불교와 사회개혁에 앞장 선 조정현 씨
"절 소유 토지는 소작인에게무상 분배해야 한다”
태백산맥에서 빨갱이로 몰린 '법일스님‘으로 등장.

출처 : 산사모산악회
글쓴이 : 선경나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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