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군(南部軍)>
이태(李泰. 원명 이우태) 원작 수기를 정지영 감독이 영상화
5년에 걸친 소백~지리 지구 빨치산 토벌전으로 죽어간 2만명
'당시 합동통신 기자' 이태가 체험을 토대로 지은 소설 남부군.
제작비 14억원, 제작기간 3년, 3만명 엑스트라
최진실은 박민자 역으로 영화에 처음 데뷔했고
최민수는 생존 빨치산 시인 김영의 역을 맡았다.
트위스트 김은 빨치산 중대장인 황대용 역활.
1990년 청룡상 감독상, 남우 주연상(안성기),
남우조연상(최민수), 1990년 춘사영화 예술상 등.
영화 <남부군>에서 안성기, 이혜영, 최민수 등
남녀배우와 엑스트라 등 4백여명이 전라로 혼욕
각지에 흩어졌던 빨치산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욕.
출연배우는 남자 300명과 여자 100명으로
엑스트라들은 남자가 5만원, 여자가 20만원
출연료는 그당시 엑스트라 1일 개런티의 3배
<남부군>은 철저하게 영화계 자체에서 제작
빨치산과 토벌대가 소지한 무기만 해도
러시아제, 미식보총, 일본제 99식, 38식 소총,
81mm 박격포, 미제 M!․M2 소총, 15연발 BAR
자동소총 등 30여 종을 모두 제작했을뿐 아니라
군복 등 의상도 전부 소품부에서 제작한 것이다.
일반 전쟁영화의 3배인 5백 파운드 폭약을 썼고,
탄피만 해도 5가마(3만발 정도) 분량이었다 한다.
...........
줄거리
............
1950년 9월말. 이태는 '조선 중앙통신사' 종군 기자
전주에 파견근무하며 '조선 노동당 유격대'에 합류
낙동강까지 내려왔던 인민군이 패전을 거듭하자
전투대원으로 참가하라는 당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
전세의 변화에 따라 남부군은 부대를 개편하는데
이때 이태는 '지리산 승리의 길'이란 진중신문 편집과
전사기록의 책임을 맡아 빨치산의 전투 활동을 기록한다.
얼마 후 빨치산에게 전투 회담의 소식이 전해지자
북으로 귀환과 열렬한 환영을 기대하며 가슴부푼다.
그러나 이것은 남과 북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서곡.
청룡작전이 무너지고 토벌대에 쫓기면서 부상당한 이태는
자신을 간호해 주던 박민자(최진실 분)와 사랑에 빠지지만,
본대복귀 명령으로 슬픈 이별을 하는데. 겨울은 깊어만간다,
이태는 악담봉 전투에 참여., 시인 김영을 만나
남북 동족 간의 전쟁의 허무함을 토로하게 된다.
계속되는 전투에 쫓긴 남부군은
지리산으로 밀려와 이현상을 만나고,
이태는 김희숙 대원의 용감성 놀란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부 소속의 정식당원이 된다.
휴전소식이 들리자 대원들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남부군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투쟁,
사기저하로 위기에 놓인 남부군,
최후의 발악같은 전투가 벌어지고
대열에서 낙오된 이태는 눈속을 헤메고
결국, 그의 빨치산 투쟁도 막을 내리게 된다.
남부군., 이태.
"나는 시천면 외공 마을에서 토벌군에게 체포되었다.
16개월 후 휴전 협정, 양측 후방에 남겨진 장비의 철거,
심지어 전사자의 발굴 및 반출에 관한 조문은 있었지만,
절망 속에 헤메는 지리산 남부군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1949년~ 1954년 소백ㆍ지리 지구 유격전에서
사망한 군경 및 빨치산 수는 모두 2만여 명이었다.
또한 3년 전쟁 동안 남북 희생자 수는 사망 130만명,
행방불명 111만 명., 이 작품을 그들의 영전에 바친다."
1950년 9월 20일, 군산 앞 바다 오식도에 연합군이 상륙
1975년부터 <남부군>의 집필에 들어갔으나
저자가 이 수기를 기록한., 몇 가지 이유. "대장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 주세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 주세요." -어느 청년 - 또 겨울산에 피를 뿌리고 숨져가던 한 소녀 마지막에 무엇을 말하려 했던 못다한 이야기. 이 책은 이처럼 북한 정권에게마저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소멸되어 간 비극적 영혼들의 메아리 없는 절규를 적나라하게 담아낸 기록. 빨치산과 군경을 합쳐 2만의 생명이 희생된, 그 처절함이 세계 유격전사상 유례가 드문 엄청난 사건이 그에 의해 남겨진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냉혹한 자가 숙청 등 빨치산 사회 내부의 모습을 들려준다. ㅣ 적나라한 빨치산 실록 2만 생명이 희생된, 사건 실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1922년생인 저자 고(故) 이태(본명 이우태)는 6.25 직전 서울신문.합동통신의 기자로 일하다 인민군의 서울 진입 후 조선중앙통신사에 흡수된다. 전주에 파견 근무 중 조선인민유격대 독립 제4지대, 즉 이현상부대라고도 불리던 남부군단의 대원이 됐고, 전사 편찬 일을 맡고 17개월간 목격한 사실들을 기록했다. 신간(2003년)은 88년 출간됐던 초판에 저자의 개인연보를 곁들인 재편집 증보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상상력으로 구성한 역사라면 '남부군'은 분식(粉飾)없는 적나라한 사실의 기록이다. 사실이 전달하는 구체성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 저자는 97년 세상을 떠났다.
"나는 5년여에 걸친 소백.지리지구 빨치산 토벌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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