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20. ( 萬福臺. 달궁. 심원계곡. 九龍폭포. )

donkyhote 2010. 5. 14. 01:52

만복대(萬福臺)
 
정령치 ←4.0km→ 만복대 ←2.0km→ 묘봉재
←1.0km→ 작은고리봉 ←3.0km→ 성삼재

지리산 서쪽 최고봉인 노고단에서
종석대,고리봉,만복대,세걸산,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진 방책능선 (서북능선)

마치 지리산 속살을 보호하듯
북으로 길게 감싸안고 있는데
서북능선 기점은 여러 곳이다.

운봉면 수철리 -세동재-세걸산으로 오르는 코스
운봉 우무실 절에서 바래봉까지 비포장 산판도로
산내면 내령리와 부운리에서 팔랑재, 부운재 등 코스.

요즈음 정령치까지의 9km코스를 성삼재에서 많이 등정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정령치가 해발높이로 따져 더 높다.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는 기원 전 78년
이곳에 마한이 피난도성을 쌓았다고 기록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정 장군을 파견해 지키게해 유래된 지명.,정령치.

또 하나 이와 비슷한 유래를 가진 황령재
덕동리 뒷산 '황나드리'라는 곳으로 추정

한편 성삼재는 각성받이 3장군 수비성터
바래봉 남쪽 팔랑재도 8 병사의 수비성터

마한에 관한 공식적 역사기록으로 보면
백제의 시조 온조왕 26년(서기8년) 10월
백제군에 의해 마한의 국읍(國邑)이 함락

이듬해 4월 원산성과 금현성 두 성마저
정복당해 마한이 멸망한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심원계곡 달궁은 일종의 망명국가 궁전
마한의 한 유랑 부족국가 무리 중에 하나였을듯

달궁은 백제 온조왕의 마한 정복과는 관련 없는듯.
훗날 지리산이 김해 가락국 영토로 편입되는걸 보아
가야세력에 의해 정복된 것이 유력하다고 볼수도 있다.

아무튼 심원계곡 일원에 자리잡은 마한 왕조는
곧 지리산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셈.

아직도 옛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령치
지금은 넓은 산상주차장과 휴게시설이 있으며
식수는 달궁쪽 도로 따라 150m 내려가면 있다.

정령치 공터에서 남쪽 산불감시 초소 건물을 향해
소나무와 잡초 우거진 길을 오르면서 등반은 시작.
억새와 싸리나무 봉우리 안부 지나 빼곡한 잡목숲.

여러 갈래로 늘어진 노송과 참나무 길을 조금 가면
높이 10m 바위 옆을 비켜 오르면 평탄한 바위반석
바로 눈앞에 유순하게 흘러내린 만복대가 다가온다.

운봉평야가 내려다보이고 꾸불꾸불 정령치 도로도 확연
반야봉의 큰 덩치는 이후 줄곧 호위하듯 옆을 따라붙는다.
여기서는 노고단과 천왕봉도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보인다.

이곳 전망 좋은 쉼터에서 평지 능선길을 따라 얼마 가면
수천평을 헤아리는 보드라운 초원 안부로 내려가게 된다.
만복대에 들어서면 바람에 너울거리며 춤추는 억새 향연

억새를 헤치며 완만한 오름길을 가다보면 잠시후
오른쪽으로 능선 하나 갈라졌고 능선 위로 소로길
다름재로 빠지는 전라남북도의 경계선인 요강바위.
만복대로 오르는 길은 왼쪽으로 휘어져 계속된다.

해발 1,433m 만복대 정상에 올라서면
동남쪽 200m 정도의 능선이 누워있고
남북쪽에 두 개의 골짜기가 펼쳐지는데
온통 억새밭이라 초가집을 연상케 한다.

돌무더기와 몇 개의 구덩이가 있는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산동 쪽은 경사가 급한 절벽
남쪽은 시암재 주차장, 도로, 노고단 방송 송신탑

노고단-임걸령 능선도 뚜렷한데 반야봉은 앙증스러운 일면
만복대는 한번쯤 나뒹굴고 싶은 수만 평의 광활한 초생지대.

만복대 남쪽으로 경사 급한 초원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어지럽게 희미한 길들이 나 있는데 샘으로 가는 길이다.

싸리나무가 무성한 곳인데 만복대 남쪽 내리막 능선길에서
동쪽으로 200m쯤 다시 꺾어 내려오면, 야영터와 만복대 샘.

샘에서 나와 싸리나무 군락을 헤치며 다시 능선 위로 오르면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참나무와 산죽이 우거진 내리막이 계속

등반로가 왼편으로 휘어지듯하다가
전망이 좋은 기암 반석 위에 올라서고
다시 길을 막는 잡목숲을 헤치면 억새숲

헬기장이 나오고 내리막길은 아직도 계속.
왼쪽에 계곡 물소리, 돌아보면 만복대 정상

묘봉재에는 또 하나의 헬기장이 있고
심원 산동 쪽으로 희미한 길이 교차한다.

이 만복대 능선은 지형적으로 특이하다.
심원 계곡 쪽 동쪽사면은 대개 완만하고
산동 지방 쪽 서쪽 사면은., 거의 급경사.

묘봉재에서는 한동안 경사진 오르막길.
능선 평지에 올라서면 작은 고리봉이 뾰족
고리봉은 성삼재와 가깝고 내리막길과 평지

소나무숲을 내려와 잡목터널을 지나면 헬기장
성삼재를 오가는 차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온다.
다시 잡목터널을 뚫고 20여분 가면., 곧 성삼재.

 

 

 

달궁 .



 

 

덕두산, 바래봉, 세걸산, 고리봉,
정령치, 만복대, 성삼재, 반야봉.

달궁을 병풍처럼 애워싼 만복대의 가을이 아름답다.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은빛 물결의 억새풀 꽃의 바다.
여인의 풀어헤친 젖가슴인양, 탐스러운 아름다움 가득.

'시골 초가집 지붕을 연상케 하는.. 광활한 초원.'

산 동쪽에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
산 서쪽엔 산수유가 봄꽃을 피워내는 상위마을,
산 북쪽엔 5~6월에 바래봉 산등성이를 덮는 철쭉

만복대 능선을 뒤덮은 억새꽃 군락.
바람에 흩날리며 부르는 자연의 노래.
단풍이 스러질 무렵 재빛 억새꽃 장관.

멀리 천왕봉과 연봉들을 바라보면
별천지에 들어 온 느낌이 드는 곳.
만복대 억새는 10월 초~ 11월 절정.

해질 무렵 황혼빛에 물든 황금빛 억새물결.
멀리 바람 결에 들려오는 으악새 우는 소리
자연의 소리가 가슴을 애닯게 하여주는 달궁.

심원 계곡이 있는 동쪽 만목대 능선은 완만하고,
산동마을이 있는 서쪽은 급경사라 천연적인 요새.
서쪽 남원, 구례, 운봉에서 접근하려면 가파른 능선.

달궁은 동학군 남부군들의 항전처.

......달궁으로 가는 세 코스..........
첫째 <성삼재 만복대 정령치 능선길>,
둘째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로 오르는 길>
셋째 <심원계곡 따라 심원마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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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에서 심원마을까지 6km 계곡 길.
자연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별천지.

달궁 1km 지점 넓은 반석 가운데 <쟁기소>
자연이 빚어낸 걸작. '신비로운 여인의 비밀'.

달궁 계곡에서 유일한 다리 건너
500m거리의 지류에서 식수를 준비.

산길을 지나 산죽밭을 지나가면
반야봉에서 달궁마을로 뻗은 능선.

노송 암봉 철쭉 진달래 설경이 뒤섞여
봄이면 4계절이 공존하는 듯한 오솔길'
그곳을 지나면 심원계곡 반야봉 삼거리.

달궁 - 심원마을 - 쟁기소 - 반야봉
- 노루목 - 임걸령 - 노고단 -성삼재.
6 시간 8km 코스로 쟁기소 이정표가 들머리

반야봉이 지리산 제 2 봉인 사실을
실감나게 해주는 경치좋은 코스이다.

지리산 끝자락까지 진한군에게 쫓긴 마한왕조.
달궁을 거점으로 <성삼재>능선에 3 장수를 파견.

8 명의 장수가 지켰던 <팔령치>.
정장군이 방어망 구축한 <정령치>.

달궁으로 숨었을 망정 만만하지 않았을 세력.
지리산 관광도로 정령치에서 성삼재까지 9 ㎞.

<만복대>는 전형적인 억새밭 가을 산행 코스
만목대> 들머리 정령치는 기원 전 도성 유적지.
정령치는 마한의 효왕이 정(鄭)장군을 파견한 곳.

노고단 입구의 성삼재(姓三峙)
바래봉 남쪽의 팔랑재(八郞峙)
각각 3명 장군과 8명의 병사들

달궁을 지키는 성터였다고 전해온다.
달궁은 왕조가 뿌리 내리기 힘든 환경.

1600년 경 안동 권씨가 임진왜란 때해 달궁으로 피난.
1730년 영조 때 달궁에서 100m 떨어진 궁터에 10 여호.
영조 7년 1731년 신해년 대홍수 산사태로 마을이 매몰.

그당시 산사태에서 생존자는 단 한 명,
임금이 직접 쓴 제문으로 원혼을 달랬다.

1940년 115 세대 마을은 1951년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폐쇄.
1954년 주민이 다시 입주하기 전까지 이 일대는 빨치산 무대.
1936년 마을 산림도로는, 빨치산 토벌 이후 1970년 군사도로.

1970년 군내 버스가 운행되기 이전까지는
주민들은 재넘어 구례 산동시장을 다녔다.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 고리봉, 덕두봉에 싸인 달궁.
두 갈래 산 능선이 V 자로 벌어진 사이 깊숙한 은신처.
현재, 달궁은 잡초더미에 묻힌 돌더미와 주춧돌 잔해 뿐

'월궁(月宮) 지명도 잊혀져가듯 지금은.. 達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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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은 2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마한의 피란 도성.
최초로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는 개산 역사의 시발점.
천연적 요새로 애워싸인 달궁은 2천년 전 효왕의 별궁

마한은 고조선 내분 세력 일부가 남하해 형성된 국가.
고조선 내분이 심화되자 더 많은 유민들이 마한에 합류.
한반도 중부세력과 뭉쳐 삼한 고대국가 중 규모가 으뜸.

마한은 중국 군현과의 교역권 장악으로 급성장.
한강 유역에서 일어난 백제와 중국 교역권 다툼
백제 온조왕은 변한 진한과 연합해 마한을 공격.

그 연합군에 쫓긴 마한 효왕
지리산 달궁에서 마지막 항전.

달궁을 애워싼 능선에 성벽을 쌓는다.
마한은 피란 도성 마지막 궁전에서 패망.
마한의 멸망은 고조선 멸망과 관계가 깊다.

.............고조선의 멸망...............
위만조선 시대에 국력이 강해진 고조선.
위만조선 우거왕은 한나라와 교역 금지령.

고조선은 산동반도 제나라와 경제교류 및 군사동맹.
연나라는 BC 5세기 고조선과 국경을 마주했던 국가
연나라는 고조선을 요동에서 평양으로 내쫓아버린다

그후 고조선은 평양을 중심으로 체재를 정비
만주 부여와 한반도 한강 이남 진을 식민지화.

그런데 진나라에 이어 한나라가 중국통일을 한다.
한나라는 서남 아시아 교역을 위해 고조선을 침공.
고조선의 속국 부여가 한나라 교역로를 가로막은 탓.

한나라는 부여와 한강 이남 '진'과 교역을 원했지만
고조선이 허락하지 않자 한무제가 고조선을 점령한다.
이어, 한사군을 설치해 시베리아를 통해 서남아시아와 교역.

한편, 히말라야 부족들과 혼인 동맹
결국, 실크로드 개척에 성공한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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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기록.............
'반야봉 좌우 두 봉우리, 황령 정령.'

옛날 한나라 소제 3년(BC78)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에 쫓겨
지리산 일대 서쪽에 도성을 쌓을때

황 정 두 장수에게 일을 맡겨 감독.
도성을 싼 고개 이름을 황령과 정령.
두 장수의 성을 따서 명명하였다 한다.

도성은 그로부터 72년을 보전하였다.
-황령암에 대해 기록한 청허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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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인근을 근거지로 했던 마한왕조
북쪽은 백제, 남쪽은 진한과 변한의 세력.
달궁으로 쫓겨와서도 72년 동안 항전했다.

성삼재 황령치와 정령치는 마한의 방어용 전초기지.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 고리봉 덕두봉이 애워싼 달궁
지금은 잡초에 묻힌 돌더미와 주춧돌 잔해만 남았을 뿐.

'지리산 인간 개산의 역사가 담긴 곳'
'그 현장이 왜 이렇게 방치되어 있을까?'

한반도는 고대국가마다 다르게 왜곡된 역사기록
서로 꿰어 맞추어지지 않아 혼돈스러울 때가 많다.
이곳 마한 역사도 정확한 고증이 없는 기록들만 난무.

옛 궁터엔 피서 차량들과 민박촌 
마한의 역사현장 달궁은 소외된 채
계곡 피서 인파만 몰리는 점이 아쉽다.

 

 

 


심원계곡.

 

 

 

반야봉과 노고단의 그윽한 정취와 풍경이 곁들여져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감도는 심원(深源)계곡.

칠선계곡, 문수골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계곡 피서지.

 

담(潭)과 소(沼)가 50여개 연이어 펼쳐지는 골짜기

계곡을 오를수록 선경에 몰입하는 기분이 들게하는 곳.

심원계곡은 달궁마을에서 시작되는 달궁계곡과 이어진다.

 

달궁 마을에서 20분 오르면 쟁기소가 나타나고

다시 20분 가량 가면 둘레가 80m나 되는 쟁반소

여기서부터 심원계곡의 신비한 비경이 시작된다.

 

옛날에 비가 오면 수천마리 두꺼비가 울었다는 두꺼비소

그외 이름 모를 수많은 담과 소가 찾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반야봉에서 달궁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에 있는 쟁기소

여기서 500m 더 올라가면, 전남과 전북의 경계지점이다.

그 아래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 그 위로 전남 구례군 산동면.

 

엄밀하게 말하면 이곳부터 심원계곡

그 아래는 달궁계곡이라고 볼수 있다.

심원마을에서 노고단까지 2시간 도보거리.

 

달궁에서 계곡을 따라 이어진 도로는

하늘 아래 첫동네인 심원마을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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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군 산내면에서 노고단 정령치 도로를 따라 가면 <반선>.
뱀사골 입구 지나면 <달궁마을>이고 그 주차장 아래가 <궁터>
달궁계곡은 쟁기소, 쟁반소, 와폭, 구암소, 청룡소, 안심소 등.

달궁마을 쟁기소를 지나 계곡 쇠다리.

그곳 건너 암릉으로 3시간 거리 <반야선경>
반야 중봉 못 미쳐 삼거리 오른쪽 <심원계곡>
심원계곡을 따라 하산하면 <심원마을>이다.

반야봉 올랐다가 노루목, 임걸령 거쳐 돼지평,
노고단 지나 심원마을로 원점 회귀산행도 가능.

 

 

 

구룡계곡

 

 

 

정령치에서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사이 약 4km 계곡

옛날 옛적 초 파일에 九龍이 승천했다는 전설의 고향.

 

정령치 계곡을 따라 남원 방향 육모정으로 내려가면

굽이치는 구룡계곡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구룡폭포가 있어 달궁이 마한의 별궁터가 된듯 보인다.

 

 

제 1곡 약수터.

제 2곡 불영추.

제 3곡 학서대

 

제 4곡 구시소

제 5곡 유선대

제 6곡 지주대

 

제 7곡 비폭동

제 8곡 경천벽

제9곡 구룡폭포

 

 

 남원시 주천면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송력동폭포 일대와  약수터가., 제1곡 


 관리사무소 위  5m 높이 옥녀봉에 새겨진 "용호석문"

옥녀봉 하얀 바위벽에 둘러싸인 불영추 소가., 제 2곡.

 

육모정에서 300m 지점 황학산 북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서쪽 조대암 밑에  학이 물고기를 잡아먹었다는 학서대

 

학서암에서 300m 쯤 오르면 유난히도 흰 바위가

물살에 패이고 깎겨 반들거리며 구시처럼 보인다.

스님이 독경하는 모습같다 하여 서암 또는 구시소


구시소 1km 위에 암반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린 깊은 못

못 가운데 바위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는 제 5곡


유선대 500-600m 위에는 여러  계곡물이 모여든다.

그 중 가장 물살 빠른 지주대 같은 봉우리 밑이 제 6곡.


지주대 왼쪽 방향인 북쪽으로 1km 지점에

직각으로 깎아지른 듯한 문암이라는 암석

층층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가 비폭동


비폭동에서 600m 쯤 위로 올라가면

거대한 암석들이 계곡을 가로질러 있고,

바위 가운데로 물이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돌 사이로 물이 통과한다 하여 석문추(경천벽)


경천벽에서 500m 상류 골짜기 양쪽  두 봉우리

상류에서 흘러내린 개울은 이곳에서 두 갈래 폭포

폭포 밑에는 각각의 못에서 두 마리의 용이 놀던 곳.

 

그 모습이 물 속에 잠겨 있다가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꿈틀거리는듯한 교룡담이  제 9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