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17- 마. (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

donkyhote 2010. 5. 14. 01:45

신석기시대.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시대에 대해 조사된 1950년대
북한은 1950년 평남 온천군 운하리 궁산유적을 발굴
평양 승호 금탄리(1956 발굴), 청진 농포동(1956 발굴),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1957 발굴),
평안북도 의주군 미송리 동굴(1959 발굴),
함경북도 무산군 범의 구석(1959~61 발굴) 등
 
그밖에 두만강 유역과 동해안 일대
함북 영안 회령 유선 종성 청진시 및
황해남도 은천군 송화군 은율군 지역
 
그 결과  평안남도 황해도 경기도 일원을 포함
우리나라 서해안의 빗살무늬토기문화권을 설정
 
사슴뿔로 만든 괭이와 뒤지개,
멧돼지 이빨로 만든 낫 출토유물
궁산문화 상한은 BC 1500년 이상
 
1957년 서해안 일대에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를 조사
덕적도 소야도 승봉도, 무안군 대흑산도의 조개더미 등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서포항
해주 용당리(1960 발굴), 자강도 중강군 토성리(1960~61 발굴)
장성리(1960 발굴), 평안북도 영변군 세죽리(1962 발굴), 등 유적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적은 서포항.
우리나라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 계통
수렵 어로는 BC 3000~2000년에 시작
 
시베리아 빗살무늬토기문화가 서해안으로 들어와
남해안을 거쳐 동북지방으로 전파되었다고 보았다.
 
1972년에 부산 금곡동 율리유적을 발굴했고,
1973년 부산 영도구 아치섬 철기시대 조개더미
1978년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유적과 통영 상노대
 
1980년 양양 오산리 유적 발굴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BC 6000년
 
1987년 하남시 미사리유적을 조사
합천 수몰지구 봉계리 및 거창 임불리
경남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곳.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150 군데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가 시베리아 계통이라는 것.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전기(BC 6000~3500)·
중기(BC 3500~2000)· 후기(BC 2000~1000)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자연환경은 지금과 거의 비슷
약 6,000년 전,  강이나 바닷가에서 움집을 짓고 살며
조개를 채취했기에 먹고 버린 조개더미 패총이 많았다.
 
이들은 도토리 밤 등 열매를 많이 이용했으며
이른 시기부터 좁쌀 등의 잡곡 농사를 지었다.
 
물고기를 잡는 데는 강가에서는 그물추를,
바다에서는 이음낚시를 포함하여 낚시한듯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뼈들이 출토되어
사람들이 먼 바다까지 나갔음을 알 수 있으며
배만들기와 항해술도 발달한 것으로 짐작된다.
 
깊은 바다에 오래 잠수하여 귀뼈에 변형을 일으킨 사람뼈
짐승뼈가 다양하고 풍부하여 짐승 사냥도 활발했던듯 하다.
가장 많이 잡은 종류로는 사슴·노루 등의 짐승과 멧돼지이다.
 
족제비·너구리·오소리·여우 등의 뼈도 자주 출토되는데
털을 얻으려 주로 겨울철에 사냥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집짐승을 기른 흔적은 신석기말 출토된 집돼지뼈가 있다.
 
여가에 치레걸이나 예술품을 만들고
옷도 만들어 입었으며, 외부와의 교역.

 
 
  • 한국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인류물질문화 발전단계 중 청동으로 연모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문화 직전까지의 시기이다.

 
그리스는 BC 3000년 이전에 시작되었고
중국에서는 BC 18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금석병용기(金石倂用期), 순동이 처음 사용
 
구리는 귀하여 작거나 아주 귀중한 것만 만드는 데 사용.
BC 4000년대 중기 구리 야금술이 메소포타미아의 도시화
BC 3000년 무렵 구리는 중동지방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서쪽으로는 지중해지역까지 퍼져나갔고 유럽에도 전파되기 시작.
 
BC 2000년대에 청동의 사용이 매우 증가
BC 1000년경 새로운 금속 철기시대가 시작
우리나라는 시베리아 청동기문화 영향권역인듯.
 

청동기시대에 생업은 대체로 농경생활을 주로 하면서
물고기잡이와 짐승사냥·열매따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탄화된 쌀을 비롯하여 기장·수수·조·보리 등의
곡식과 곡물의 이삭을 따는 데 쓴 반달돌칼·돌낫 및
 수확된 곡물을 가공하는 데 이용한 갈판 등의 유물들.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잡곡농사가 활발해졌고
벼농사를 포함 기장 수수 콩 팥 조 보리 잡곡농사.
 

청동기시대 집터는 강언저리 낮은 구릉지대에서 발견
드물게 보령 교성리유적처럼 바닷가 산 정상에도 있다.
이러한 집들이 한 곳에 10~100여 채까지 발견되는데,
송림 석탄리유적에서는 약 10만㎡에서 100여 집터 발굴
 

 

이 시기 무덤으로는 고인돌무덤을 비롯
돌널무덤·돌무지무덤·돌깐무덤이 있으며,
늦은 시기가 되면 독무덤·널무덤도 나타난다.
 
고인돌은 주변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으며,
덮개돌과 굄돌에 따라 탁자식·바둑판식·구덩식으로 구분.
 
돌널무덤은 넓적한 판돌을 벽 바닥 뚜껑을 짜맞춘 것
대부분 서해안 지역의 낮은 구릉지대에서 발견되었고
동검을 비롯한 많은 청동기가 함께 무덤안에 껴묻었다.
 


 
 
철기시대.
 
 
 
초기철기시대는 청동기 후기와 겹치는 시기이므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형식이 그대로 계속되면서
아가리를 보강하기 위하여 아가리에 둥근 보조띠를 붙인
아가리띠토기가 있으니 이것은 한대 동기의 영향인듯하다.
 
아가리띠토기 외 검은간토기도 이 시대 토기인데
중국의 용상문화시대의 흑도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시대 특징은 타날무늬 회색토기와 적갈색 타날무늬토기이다.
이들은 민무늬토기의 전통위에 새로이 중국의 회도기법의 영향.

 

제작환경은 개방된 노천가마가 아니라

밀폐된 지하굴식 혹은 터널식 오름가마.

 

이같은 환경은 산소공급이 차단된 환원염 상태이므로

표면 색조가 적갈색에서 차츰 회청색 혹은 회색을 띠며

제작온도를 올려 빗살무늬토기나 민무늬토기보다 경질이다.

 

이를테면, 약 섭씨 1000도 이상의 상태에서 구웠기 때문에

쇠붙이 소리가 날 정도 석기질 상태라 토기제작의 일대 혁명

 

이와같은 토기를 대표하는 것이 타날무늬 경질토기이며

김해 회현리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소위 '김해토기'가 표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