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17-다. ( 광양.,도선국사 마을. 향적사 터.)

donkyhote 2010. 5. 14. 01:40

광양., 도선국사 마을.

 

..............................도선국사..........................

태조 왕건의 출생과 고려 건국을 예언한 도선국사,

광양 백계산 옥룡사에서 35년 동안 수도하다가 입적.

도선국사 법구가 발굴 6년만에 옥룡사지에 봉안되었다.


광양시가 1994년부터 추진한 옥룡사지 발굴 복원사업의 하나

도선국사와 통진대사의 부도탑과 탑비전지 복원을 이달까지 완료

다음달 7일 옥룡사지에서 도선국사 법구 봉안식과 부도 점안식 개최


이 행사에 문화관광부장관과 문화재청장, 전남도지사, 도내 시장 군수,

조계종 고산 큰스님을 비롯 불교계 학계, 문화재 전문가 등이 대거 참석

 

봉안 및 점안 행사는 삼귀의례와 반야심경이 개식을 알리게 되며,

광양시장의 개요사와 도선국사 유골입증 학계보고, 부도탑 제막, 헌화,

 법고, 바라, 승무에 이어 사홍서원을 끝으로 본 행사가 끝이 난다.


부대행사로 불락사 국악단의 우리가락 한마당 공연과

옥룡사지 유물전시회가 열리며, 원광대학교 양은용 교수가

강사로 나서 도선국사의 풍수사상인 비보사상에 대해 강연.


도선국사 유골은 1995년 백계산 옥룡사지에서 석관묘로 출토돼

학계와 불교계의 획기적인 관심을 모은 바 있으며, 이를 계기로

지난 1998년 8월 광양 옥룡사지가 사적 제407호로 지정됐다.

..............................2007년 3월....................................

 

옛 시골의 정취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도선국사마을
 

입춘이 지나고 계절의 변화가 성큼 다가온 남녘의 따사로움.

광양읍에서 백운산 자연 휴양림 가는 길목에  도선국사 마을

시골 풍경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농촌 전통 테마 마을.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따듯한 봄바람이 마음 설레게 한다.

우선 오래된 약수터인 사또약수터에서 시원하게 약수 한 모금

먼 길 오느라 허기진 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전통순두부집

 

큼지막하게 담겨져 나온 순부두와 도토리묵

동동주 한사발과 함께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 도선국사마을과 함께 나이를 먹은 우물터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산내음을 물씬 맛볼 차례.

건너편 백운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도선국사마을

관광객들 편의를 위해 민박집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고

마을 곳곳에 오래된 우물터와 옛 정취가 간직되어 있다.

고로쇠액으로 담근 된장들

통일신라 말의 뛰어난 고승이자 한국풍수지리의 대가

선각국사 도선이 마을 건너편 자락인 백계산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무르며 동백꽃과 더불어 야생차를 심었다고 한다.

 

그 이후 명맥을 이어온 야생녹차를 이용해서

일반인들에게 다도체험의 좋은 기회를 마련.

 

관광객들에게는 야생 녹차 밭에서 찻잎을 따고,

체험장에서 수제 차를 만들어 다도를 배우는 체험

 

이밖에도 도자기 만들기, 전통 손두부 만들기,

고로쇠 된장 만들기 체험 가족 프로그램이 마련.

옥룡사로 향하는 고즈넉한 동백꽃길(왼쪽) - 심신의 안식처, 백운산 휴양림

인근 백운산 자연휴양림에 찾아가면 맑은 공기를 마시고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자연과 하나가 되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특히 봄철에는 인근의 옥룡사지 동백림을 찾아가서

만개한 동백꽃을 감상하며 사랑을 속삭여보길 추천.

구경 후 배고프면 광양 전통음식 광양숯불구이를 추천.

 

▲ 봄을 알리는 매화의 향기

전통마을 테마체험을 하고나면 광양을 더 구경하려면

섬진강변 매화마을 매화문화축제와 고로쇠 약수 축제.

 

 

 

 

향적사 터.



제석봉 남쪽 장터목 산장에서 5분 거리에 있었던 절 터.
옛부터 사찰 창건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향적사는 지리산의 수호신 천왕성모를 모시기 위한 사찰.

태고의 옥황상제가 딸 마고를 지리산 수호신으로 임명.
후토지신이 신라왕 꿈에 나타나 경주옥돌 석상 조각을 명.
하여, 꿈의 계시대로 천왕봉에 사당을 지어 그 석상을 봉안
가까이에 향적사를 지어 향화를 받들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박혁거세 왕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국가수호신 '지리산의 산신'으로 모셨다는 설이 있다. 

고려태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 모신 어머니 위숙왕후 석상.
천왕봉에 모시고 그곳을 성모사라 하였다는 설도 전해온다.

한편으로는 석가여래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상
현재 석상이 언제 모셔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지리산신을 대대로 국가 수호신으로 삼았던 민속신앙.

한반도에서는 옛부터 지리산신은 국가 수호신으로 삼았고
성모석상은 그 상징으로 모셨던 민속신앙의 대상인 것 같다.
석상은 근래 수난을 겪고 현재 산 아래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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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8.14~ 8.19(5박 6일) 함양군수 김종직의 유두류록.
제자 유호인, 한인효, 임대공, 조위와 지리산 탐승 동행.
김종직 일행은 말방울을 울리며 함양 마천 벽송사, 영랑대
하봉, 중봉 거쳐 천왕봉에 오른 후 세석평원 영신사로 하산.

'1472년 8월 16일 향적사에서 일박한 기록.'

정오가 지나 비가 조금 그쳤다. 돌길이 미끄러웠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쇠사슬을 박아 놓은 길.
돌 구멍을 뚫고 나와 힘을 다해 걸어 향적사에 도착했다.

향적사에는 중이 살지 않은 지가 이미 2년이나 지났다.
그럼에도 골짜기 물은 나무 홈통 타고 물통으로 떨어지고,
문 자물쇠와 향반의 불유가 옛모습 그대로. 깨끗이 청소 후
향불을 피우고 안으로 들어가 쉬었다. 어둠이 깔릴 무렵 천왕봉.

남북의 바위를 두루 보면서 달 뜨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동쪽이 밝아 오기도 전에 추위가 느껴졌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솔불을 피워
향적사 방안을 훈훈하게 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밤중에 이르러서야 달과 별이 환히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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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류록을 보면 향적사는 이조시대에 사라진 듯 싶다.
향적사는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국가 수호신을 모신 사찰.
지금은 터만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선사시대 토우신상(土偶神像)과 부여(夫餘) 부인목상(婦人木像)
한반도의 여신(女神)은 고대사회부터 민속신앙이었음을 증명한다.
약 5천 년전 단군신화와 관련된 웅녀(熊女)는 산신에 가까운 여신.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단군 할머니와 단군 할아버지 영정
여신들은 주로 농경의 수호신으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다.
웅녀는 천신인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신화.

그러므로, 천신의 배우자가 되는 지신(地神)은 지모신(地母神)
山 위에 있는 천지나 산 어디엔가 있는 샘은 龍이 거처하는 곳,
땅은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주고 키워주고 돌보아주는 어머니.

우리나라 고대 선인들은 '하날님' 또는 '할머니'라 불렀다.
'하날님'을 뜻풀이 하면 천주(天主)이고 천왕은 불교 영향.
하여, <'하날님' = 천왕>, <할머니 = 성모(聖母)>라고 한다.

고구려 수호신 대혈신(大穴神)은 바로 여성 생식기 표상이다.
여성 생식기를 국가 민족적인 종교 가치관에 연관시키고 있다.
산신 아가씨 또는 산신 마누라라고 하는 것이 즉 산신의 처(妻).

'우리나라 민족에게 여신은 어떤 존재일까?'

산은 인간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어머니의 존재.
고대사회에서 우주는 여성 상징인 생식기의 역할
'구멍신'은 하늘을 믿는 것이고 어머니를 믿는 것.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덕적산(德積山)
백악(白岳), 송악(松岳), 목멱산(木覓山)의 산신제.
매년 봄가을에 내시 및 무당과 여악(女樂)으로 제사.

산악신과 산천신 제사는 나라에서 직접 관장하였는데,
제단을 마련하거나, 단이 없으면 3칸 사당을 지어 제사.
제를 지내기에 앞서 먼저 제관은 모범 주민 중에서 선정.

제관은 1~3명, 또는 5명에서 많게는 12명까지도 선정했다.
제석봉은 우리나라의 고대국가에서 산신제를 재냈던 곳이다.
산신제 또는 동제 풍습은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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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에 성모사는 무당들에게 으뜸가는 성소
백무동은 무당의 본거지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천왕봉 성모사는 원래 천년간 산신제 제당의 최고 명소.
노고단, 마천당벌, 백무동, 세석고원, 화개골 등의 신제당
그 중 으뜸 명소라고 이조시대 이중환의 택리지에 적혀있다.

"지리산 북쪽자락의 물이 모여 임천이 되어

용유담을 이루며 함양군 남쪽 엄천에 이르는데

시내를 따라 위아래의 천석이 모두 아름답다. .....

 

온산에 귀신을 모시는 사당이 많아 매년 봄 가을

각지의 무당이 모여들어 기도를 올린다.

이때에는 남녀가 서로 섞여서 같이 잠을 자기도 하고

술과 고기냄새가 낭자하여 불결한 곳이 된다."

이 기록은 당시 이조 민중들이 신령스러운 산봉우리에
잡신들을 섬기고 무당들과 가까이 지냈음을 의미한다.

지리산 북쪽 백무동은 천왕봉 오르는 들머리로 인기.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고원을 오르는 길목으로 붐빈다.
산장 스타일의 휴게소와 민박시설을 갖춘 집들도 있다.

경남과 전북에서 오가는 대중교통 시외버스 편도 빈번.
1950년대 관문 인월과 1970년대 관문 마천(가흥리) 등등.
차량의 시발점과 종착지에서 지금은 통과지역으로 변했다.

첩첩산골, 아름다운 산과 물을 거느린 백무동
오늘날 지리산의 북쪽 들머리는 우연이 아니다.
늘 무당 100명이 있었고 옛부터 기도객이 붐빈 탓.
전국 무당들 우두머리가 천왕봉 성모사를 받들던 곳.

하여, 백무동은 옛부터 기도객이 붐빈 곳이라 백무(百巫).
무속이 시들해지면서 행정 지명도 백무(白武)로 바뀌었다.
지금도 이곳 하동바위 밑 샘터에는 많은 기도객들이 몰린다.

음력 초하루, 보름, 한식날, 삼월삼짇날, 9월 9일날이 되면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여, 성모사에서 백무동에 이르는 곳곳은 무속인들의 본거지.

제석봉의 산신제가 구례 화엄사 남악사로 옮겨지자
향적사 터는 무속인과 기도객들의 기도처로 탈바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