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98 ( 단군. 음력. 소. 활. 시베리아. 알래스카. 동해. )

donkyhote 2011. 2. 28. 01:58


단군. 



단군신화에 나오는 단군의 어머니.,웅녀.
환웅이 잠깐 몸을 변신하여 웅녀와 결혼
아이를 낳았는데 이가 단군왕검(檀君王儉)

<단군신화>는 청동기문화 집단의 이동과 정복시대.
고대 국가 성립의 단계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것.
웅녀와 환웅의 결합도 그러한 맥락으로서 이해된다.

신화를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서는 환웅을 천신(天神),
웅녀는 지모신(地母神)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 魏書〉와
〈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
이조 초기 권람(權擥)의 〈응제시주 應製詩註〉와 〈세종실록〉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기〉
그 밖의 단군신화들은 이와 비슷하다.

.......古記의 단군신화..............
"오랜 옛날에 환인의 서자(庶子)
(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 아들을 칭함)
환웅이 항상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자
아버지 환인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보내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다.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환웅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

이때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속에 살며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3·7일(21일) 만에 여자의 몸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
환웅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

왕검이 당고(唐高:중국 3황 5제 중 堯) 당시
(고려의 제3대 왕인 정조의 이름이 요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뜻이 같은 高자를 대신해 쓴 것임)

즉위 50년 뒤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일컬었다(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
(그곳을 궁홀산(弓忽山:弓자 대신 方자를 쓰기도 함)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


[해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 관한 국조 신화
역사발전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신화도 변천을 거듭
내용의 일부가 소멸하기도 하고 첨가되기도 하였다.

이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신화의 내용을 허구로 인식
<단군신화〉와 관련된 고조선 존재조차 부정하는 견해
〈단군신화〉의 생성 과정과 주인공에 관한 5가지 학설

첫째, 중앙아시아 한반도 일본 등을 포함한 지역의 사상중심
이 문화가 역사 속에 나타난 실체가 바로 단군과 부루(夫婁).

둘째, 태양 신화와 토테미즘 두 계통이 섞인 삼신(三神)사상
두 종족이 정치적으로 통합되면서 두 종족의 시조신화가 융합

셋째, 천신족(天神族) 환웅이 지신족(地神族) 고마족 여성과 혼인
단군이 출생했다는 것을 설화로서 단군이라는 호칭은 무군(巫君),
즉 제주(祭主)의 의미가 많고, 왕검이라는 호칭은 정치적 군장(君長)

넷째, 환웅과 웅녀를 쌍분체제(雙分體制)로 간주하여
곰과 범이 한 굴에서 살았다는 내용이 신화로 발전한듯

다섯째, 동북아시아에 분포되어 살던 고아시아족 시조설화
자신들은 곰의 자손이라고 믿는 곰 숭배사상에서 유래된듯.

원래 고조선의 종족신화였던 〈단군신화〉
대몽항쟁(對蒙抗爭) 당시 민족신화로 인식
〈삼국유사〉편찬 시기가 대몽항쟁기였던 점,

〈제왕운기〉에서는 구월산을 아사달산으로 보고
거기에 사당이 존재한다는 기록이 최초의 단군신화

이조시대 세종 때 평양에 사당을 지어 단군을 모신 뒤
명실상부한 국조(國祖)로 추앙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즉 고조선은 이미 BC 12세기 이전에
북경 근처의 롼허 강[河]서쪽 경계로
동북부는 헤이룽 강[黑龍江] 밖까지
만주일대와 한반도 전지역을 영토

동아시아의 대국으로 실재하고 있던 국가이므로
〈단군신화〉는 줄곧 개국시조로 인식되어 왔다.

신화에 담겨진 역사적 현실과 그 시기 및
사실성 여부에 관해 다양한 논의가 있다.

첫째, 1단계에서는 씨족사회에서의 단순한 씨족토템이 생겼고,
2단계에서는 군사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에 군사 수장
3단계에서는 계급국가 형성 뒤 고조선 국왕으로서 단군이 등장.

둘째, 사회경제사적 관점에서 고대국가의 성립을 반영.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풍백 우사 운사 선 악 곡 형 등
360 가지를 보면 청동기시대  부권(父權)사회의 신화인듯.

곰과 호랑이, 환웅과 웅녀의 결혼 등의 내용을 통해
토템을 믿는 몇 개의 종족이 결합하여 부족국가를 형성

셋째, 신석기시대의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시베리아 지역과 관련된 고아시아족 신석기문화의〈단군신화〉

넷째, 〈단군신화〉는 4단계의 역사적 발전단계가 압축된 것
무리사회 무렵이 환인시대, 부족사회들 집단 체제가 환웅시대,
부락연맹체 단계인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 국가사회 단군시대

각 시대를 고고학 자료와 연결시켜 환인시대는 1만 년전
환웅시대는 1만년전부터 6,000년 전까지 전기 신석기시대,
환웅과 웅녀의 결혼시대는 6,300~4,300여 년 전(BC 2300경)
고조선시대는 BC 2300년경부터 BC 2세기말까지로 보는 신화

다섯째, 산둥 성[山東省]에 있는 무씨사당(武氏祠堂)
석실 내의 화상석(畵像石)의 그림은 〈단군신화〉와 일치

그밖에 단군과 관련된 문헌 중 도가(道家) 계통의 역사서
〈규원사화 揆園史話〉·〈환단고기 桓檀古記〉 등을 제시
단군조선 역사가 47대 마지막 왕까지 실사(實史)였다는 견해

그러나 이 역사서가 한말과 일제하 위서(僞書)라는 비판들
단군의 개국신화를 왕조사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
어쨌든 〈단군신화〉는 민족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 역할

한편 일제강점기의 민족의식의 고양과 관련하여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대종교(大倧敎).
1909년(융희 3) 나철(羅喆)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단군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행사이던 개천절(開天節)
8·15 해방 후 정부가 정식으로 국경일로 지정했다.
1945년 정부 수립때 법령으로 공포되어 사용한 단기

요즘의 단기는 이조시대 사서 〈동국통감 東國通鑑〉에 근거.
5·16 군사 정변 이후인 1962년 1월 1일부터 단기 사용을 중지 

한수 이남 지리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
고조선 민족의 이동 경로를 알 수 있는 유물이다.
고조선을 창건한 단군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도자.

지리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단군 유래.
한수이남 지리산 일대는 옛 삼한시대 영역이다.
삼한은 패망 고조선의 유민들이 세운., 고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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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수명에 관해 전해오는 문헌은 크게 두 가지.
1048년설 문헌은 이조 초기의 '응제시주, 역대세년가'.
동사강목, 동국통감, 등의 여러 문헌에 적혀있는 기록.

'1908년설 문헌들은 삼국유사 동사보유 춘관통고 등.'

그러나, 단군이 천 년 이상 살았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
단군의 수명은 조선의 건국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단군은 고조선을 다스리던 역대 통치자들을 뜻하는 칭호

동국통감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당나라(요임금의 나라)와 우(虞)나라(순임금의 나라)로부터 하나라와 은나라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점점 야박해져, 한 임금이 5~60년 밖에 자리를 누리지 못하였는데, 어찌 단군 혼자서 1048년 동안 살면서 한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것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옛 사람들이 이르기를, 이 1048년은 단씨(檀氏)가 세대(世代)를 전해 내려온 햇수요, 결코 단군의 수는 아니다라 하였는데, 이 말이 이치에 맞다"

이는 단군이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인 사실을 의미한다.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건 도당씨 25년 무진년부터 순임금,
하나라를 지나 상 무정8년까지 이르렀는데, 1048년이다" 기록
즉, 단군조선은 중국 요임금 25년 무진년에 건국된 실존 국가

그렇다면, 단군수명 1048년과 1908년은 어떤 뜻일까?

그 해답은 한단고기 단군세기 21세 단군 소태조에 있다.
당시 단군조선에 우현왕 색불루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사건.
기원전 1285에 병권을 쥔 색불루가 소태 단군(52년)을 폐위.

자신이 직접 단군에 즉위한 해가 단군조선 개국 후 1048 년
즉 시조 단군부터 21대 단군 소태 52년 을미년까지가 1048년
그로 인해 이 해에 단군왕조가 멸망한 것으로서 본 것이다.

그렇다면 단군 수명 1908세의 비밀에 대해 알아보자.
43대 물리 단군은 사냥꾼 우화충 반란으로 해성으로 피난
붕어하자 상장 구물이 우화충을 평정하고, 단군으로 추대된다.

44대 단군 구물은 즉위 원년(기원전 425)에 국호를 대부여
도읍지를 아사달에서 장당경으로 옮겼기에 조선은 사라졌다.
그런데 단군 구물 즉위원년은 조선 건국으로부터 1908년 역사.
이를 통해 단군의 수명이 1908 세란 산출된 수치가 나오게 된다.

단군조선 단군 계보 (47대, 재위년수 : 2,096년)

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시대: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1대 단군 임검(王儉, 93, B.C.2333)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B.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나. 백악산 아사달시대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로 우현왕을 거쳐 단군으로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B.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다. 장당경(開原) 시대

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 (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C.425, 욕살)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R>
계해 58년(B.C.238) 단군조선을 폐관하고,
이후 6년간 오가(五加)들이 함께 다스린다.

지금까지 묻혀져왔던 단군역사가 드러나고 있다.
중국 황하 문명보다 앞선 배달문명으로도 보인다.
황하 문명은 배달민족의 일부가 건너가 일으킨 문명.

환웅 배달국 문명 당시에 중국은 원시 석기시대 였다.
이러한 사실을 수십년전부터 안 일부 중국의 지식인들.
중국 사학자들에겐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는 중국의 역사.

중국인은 고조선을 동이(東夷)민족이라고 불렀다.
중국 동쪽에 사는  이(夷) 민족이라 하여., 동이민족. 
지은 이., 가는 이., 오는 이.,란 말은 동이민족의 언어.


고대 중국인들은 한(배달)민족 및 배달문명을 동경했다.
그 한 예로 옥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설문해자(說文解字)
배달민족(동이東夷)에 대해서 해설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夷)" 는 동방의 사람을 말한다.
"이(夷)" 는 "大(대- 위대함)"에서 유래
또 다른 해석을 보면 "弓(궁-활)"에서 유래.

동이(東夷) = 대인(大人 - 위대한 사람).

동이인(東夷人)의 풍속은 어질고, 어질면 장수하므로
동이(東夷)에는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君子不死之國)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도 역시 큰 나라가 동이.

'황하문명'보다 천년이 빠른 '배달문명' 유물(만주 발굴)
현재 중국 역사학계가 커다란 충격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사실, 황하(黃河)는 "누런 강" 즉 진흙탕물이라는 뜻이다.
물이 맑지 않아서 최초의 문명 발생지로 보기에는 어렵다.

6천년 전 배달문명 유물들이 수십년 전부터 만주에서 발굴.
황하문명은 불과 약 4천 몇백년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만주는 중국 한족들의 영역이 아니라 배달민족의 역사무대.

예맥문명은 한웅(환웅)께서 오시기 전에 있던 문명이다.
실제로 만주에서 배달민족의 고대 문명 유물이 발굴된다.
투구 쓴 환웅과 웅녀 할머니, 그리고 웅족의 상징 곰 조각.

홍산문화의 '홍산'은 '밝 = 붉' 즉, '붉은(밝은) 산'이란 뜻.
'밝은 산'을 한문으로 쓰면, 백산(白山)= 백두산 = (태백산)
태백산은 '큰백산'이란 뜻이고 백산이 바로 홍산이란 뜻이다.
즉, '배달민족의 중심 산' 홍산(백산)문화는 약 6천년전 문화

따라서, 홍산문화는 약 6천년전에서 약 4200년전까지 문화.
한웅시대는 약 6천년전에서 4333년 전까지 단군조선과 일치.
홍산문화 특징은 정교한 옥기(玉器)의 사용, 돌을 사용한 무덤,

진흙 여신상(女神像 = 웅녀 할머니)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돌로 쌓은 무덤과 제단(하늘에 제사 지낸 곳)은 배달민족 문화.
그 전통은 고구려에서 이어져 장군총 등 많은 돌 피라미드 유적지.

중국은 예로부터 돌로 무덤을 쌓지 않고 흙으로 무덤을 쌓았다.
그런데, 쇠를 뜻하는 철(鐵)의 옛 글자는 金(금) + 夷(이)이다.
즉, 금이(金夷)이고 동이(東夷)민족 만이 쓰던 글자인 것이 특징.

구리(九黎)는 고대 동이족(배달민족)을 부르는 말이다.
(구리(九黎) = 구이(九夷) = 구한(九韓) = 배달 한국)
즉, 옛날에는 배달나라 즉 배달 한국의 임금이 천자(황제)

그 중에 한 분이 '치우 임금'이었다는 것이다.
치우는 형제가 81명인데 짐승의 몸에 사람의 말
구리 머리에 쇠이마(동두철액-銅頭鐵額)를 하였고
모래와 돌을 먹고 칼,창, 활 등의 무기를 만들었다.

동이(東夷)의 치우임금과 그 형제들이 입은 철갑옷
철광석을 퍼가자 모래와 돌을 먹는다고 생각했으며
구리와 쇠 투구를 쓰자 구리머리에 쇠이마'로 착각
구리(九黎) = 구이(九夷) = 구한(九韓) = 배달 한국

만주 지역에 널리 퍼진 한반도의 피라미드 중의 일부.
중국에서 연대를 측정한 결과 5,6천년 이상 전 에 만듦.
중국 신화통신은 2001년도 7월에 피라미드 뉴스를 발표.

황하문명보다 훨씬 오래된 배달민족의 유물이 쏟아져 나옴.
중국은 1970년대에 발굴하다가 배달민족의 유물 발굴 중단.
쌀 미(米)의 원시 한자로 보이는 글자를 찾아내었다는 내용.

한자도 만주(고조선)에서 먼저 썼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고조선 민족이 가장 먼저 농사를 지었다는 증거도 발견.
1만 5천년전 쌀농사 증거(재배 볍씨)는 국제학계의 공인.

중국 후난성 출토 볍씨보다 3천년이나 오래된 볍씨.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가 한국에서 발견되었다는
영국 BBC 인터넷 판이 2003년 10월 22일 보도했다.

홍산문화(배달문명)는 황하문명보다 천년 빠르다.
갑골문자(고대 한자)도 황하 갑골문보다 더 빠르다.
즉 한자도 만주(고조선)에서 더 먼저 썼다는 이야기.

즉 한자(한문)도 원래 한민족이 쓰던 것이었다는 사실.
이는 이미 중국 고대 역사학계의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하여, 중국은 고조선 고구려를 중국역사라 우기게 된 것.

군자국(君子國)에서는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
짐승을 키우고, 두 마리 무늬 있는 범(호랑이)을 부린다
이상 중국 정사(공식 역사책)인 후한서 동이전 서문 내용.

약 2000년 전, 공자의 7대 손 공빈이 쓴 고대 한국기록.
동이열전(東夷列傳)을 보면 동이(東夷)는 한(韓)민족이다.
단군이 계셨는데 구이(九夷)의 아홉 나라를 합쳐서 고조선.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셨으니 요 임금 때의 일이라는 기록.

순임금은 동이에서 태어나 중국천자가 되어 훌륭한 정치
동이(東夷)에는 자부선인(紫府仙人) 이라 하는 도통한 분
<황제헌원씨>가 그 문하에서 내황문(內皇文)을 배워와서
<염제 신농씨>의 뒤를 이어 중국의 임금이 되셨다.

동이(東夷)는 그 나라가 비록 크지만 남을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훌륭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길을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는 것을 서로 양보하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함부로 섞이지 않으니,
가히 동방예의 군자국(東方禮儀君子之國)이라 할 수 있다.

하여, 기자가 주나라 신하가 되지 않고 동이로 갔고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동이에서 살고 싶어 하셨고
나의 벗 노중련(魯仲連) 역시 동이로 가고 싶어한다.

동이는 대략 천년 이상 전부터 중국과 우방국가였다.
사람들이 서로 왕래했다. -위나라 安釐왕 10년 공빈 씀.

고대 중국인 중 지혜있고 솔직한 인물들은
<배달 문명>을 존경해 마지 않았던 것이다.

군자국이 한반도 북쪽에 있는데
옷을 단정히 입고 관쓰고 칼 찬다.
무궁화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진다.

맹자도 "순임금은 동이사람(한민족)" 이라 했고
황제헌원씨 후손 요임금, 순임금 황하문명 주역들
모두 동이족 즉 한민족이고 황제헌원씨 성은 웅씨.

단군의 '단'자는 밝달(나무)이라는 음을 뜻하는 것이고
밝달은 "밝은 땅" 이란 뜻이므로 단군은 '밝은 땅의 왕'
중국 역대 왕조는 대부분 배달민족인 '황제헌원씨'의 후손.

황제헌원씨는 중국에 문명을 전한 '훌륭한 배달민족'이다.
중국에서 황제를 칭한 것은 2천 몇백년 후인 진시황 때 부터.
진시황 때 고조선이 힘이 약해지자 중국 최초로 황제칭호 사용.
진시황 이전까지는 중국의 나라들은 작았고 큰 나라가 없었다.

배달민족의 대부분은 (고)조선을 이루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조선
고구려의 정식 국호는 고구려가 아니라 '고려'.

고구려는 별칭일 뿐이고 정식 국호는 '고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의 정식국호도 '고려'.

배달민족 일부는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수메르 문명
그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검은 동아시아인들이었다"
수메르 인의 말(우랄어)는 우리 말(알타이어)과 유사.
하여, 같은 언어라는 뜻으로 "우랄-알타이어"라고 한다.

한국어와 만주어와 인디언 말과 수메르어는 한 뿌리.

동이족이 중국 피라미트를 쌓고 이집트로 축조기술 전수.
수메르 문명이 이집트로 건너가서 이집트 문명이 일어나고
그리스로 건너가서 그리스 문명이 일어나 유럽 문명의 뿌리. 

단군신화는 한강 이북에 중점을 둔 고대역사.
한강 이남 한반도 역사는 단군 역사와 다르다.
우리나라 역사는 한강을 경계로 차이점이 많다.

특히, 지리산 일대는 한강 이북과 큰 문화 차이.
풍습 전통 역사적인 면에서는 산동반도에 가깝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황하강 양자강 하류의 문화. 

현재, 중국과 일본은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상태.
역대왕조 간에 역사적 견해 차이점까지 정돈된 상태이다.
하여, 그 정돈된 역사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현실.

우리나라는 역대 왕조마다 왜곡된 역사로 맥이 끈긴 상태.
그로 인해, 우리나라 역사는 안타깝게 표류하고 있는 현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는 젊은이들 관심에서 소외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특징., 세 가지.
음력, 소를 키우고 활을 잘 쏘는 민족




음력.



입춘이 두 번이나 든 '쌍춘년' 예식장 특수
쌍춘년에 결혼하면 잘산다하여 전세금 급등

보통 음력으로 1년은 354일 정도
2006년은는 음력 7월 윤달이 껴
1년이 385일이나 되는 해이다.

중국어 사용국들은 우리나라처럼 음력을 사용한다.
한국과 중국에서 쓰는 음력은 태양 태음력이라 한다.

달이 공전하는 주기는 두 가지.
달 모양이 변하는 삭망월 주기,
달이 뜨는 시간을 정하는 항성월.

지구의 공전 주기는 365.2422일이고
달이 지구를 도는 공전 주기는 29.53일.

양력은 달보다 해를 중시해 1년은 365.2422일
양력을 월로 환산을 하면 약 12.38월이 된다.
하여, 양력은 365.2422일을 12개월로 나눈다.

4년에 하루씩 윤년은 12.38월을 12월로 맞추다 보니
한달의 길이인 29.53일을 30일 또는 31일로 맞춘 것.
하여, 양력은 달의 모양과는 전혀 관련이 없게 되었다.

한편, 태양 태음력은 해보다 달을 중심으로 한 것.

한 달 길이가 29.53일이니까 한 달은 29일 또는 30일.
1년 12.38월을 12개월, 19년에 7번은 13개월로 맞춘다.
그리고, 태양-달-지구가 일직선이 되는 날을 음력 1일.

그러다 보면, 음력은 한달이 29일 또는 30일
정확히 일직선이 되는 때는 눈으로 알 수 없다.
그리고, 1년이 13개월일 때에는 윤달이 들어간다.

음력은 달과 계절이 어느 정도 맞지만
양력처럼 맞지 않기에 24 절기로 구분.

24절기는 지구가 태양을 기준으로 해서
특정한 위치에 있는 때로 정한 것이다.
하여, 음력은 양력 날짜와 거의 일치.

이슬람 음력은 태양태음력과 달리 윤달이 없다.
12개월이 1년이라 월과 계절이 전혀 맞지 않는다.

홀수달은 30일까지, 짝수달은 29일까지 있고
12월은 달의 운동에 따라 3년에 한 번씩 30일

현대 달력은 순수 양력이고,
이슬람 달력은 순수 음력이다.
동아시아의 음력은 태음태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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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풍습은 아직도 음력 기준.
음력은 <태음력> <태음 태양력> 준말.
음력은 고대부터 중국과 한반도에서 사용.

우리나라의 단기 역사는 음력을 사용.
유목사회에서 농본 사회로 바뀐 흔적.
양력은 태양이 중심, 음력은 달이 중심.

......중국 음력...........
1. 阴历 [yīn lì]
2. 农历 [nóng lì]
3. 夏历 [xià lì]
4. 太阴历 [tài yīn lì]

음력 섣달은 추워 무 중심까지 어는 계절.
마음 속에 소원이 생기는 계절이기도 하다.
음력 정월 초하루엔 사람마다 세배 다닌다

맹춘(음력 정월)은 일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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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목사회에서 농본사회로 변화.
초원지대에서 농사짓기 좋은 따듯한 남쪽으로 대이동.
황하강 하류는 농사짓기에 적당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2모작과 3모작도 가능한 곡창 지대
물고기를 많이 잡을수 있는 강 하류.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정착.

여성이 이끌어가는 모계사회.
농사 및 식량저장 보관 조리법
밭가는 남성보다 여성 능력이 탁월.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지혜.
남성보다는 여성이 지혜롭다.
자녀들을 탈없이 키우는 모성애.

강력한 모계사회 통치자 무당.

구석기 시대에 이어 신석기 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농기구 발달.
제방 관계시설을 하며 공동체가 형성.

제방 관계시설 책임자가 최초 지배층
공동사업에 참여한 일반인은 피지배층.
전쟁에 진 패전국 주민들은 노예로 전락.

고대국가에 들어와 치열하고 참혹한 전쟁.
여성 중심의 모계사회가 무너지고 부권사회.
'쌍도끼를 뜻하는 아비 부'는 가부장의 상징.

단군 역사는 곧 부권사회 개막의 시발점.
단기는 부권 사회의 출발점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한반도 삼남지방은 옛부터 곡창지대.

한강 이북과 달리 모계사회와 부계사회 공존.
특히 농본 중심의 신라는 모권이 강했던 나라.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삼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

특히, 지리산 일대는 모계사회의 중심.

천왕봉의 천왕성모,
노고단의 마고할미.
노고단의 선도성모.
중봉골의 마야부인.

불교가 정착하며 여성의 지위가 하락.
통치자 무당은 천민으로까지 전락한다.
농사법과 음식 저장법이 대중화된 때문.

원시시대 동굴에서 불씨를 지키던 여성.
신석기시대에 농본사회를 통치했던 무당.
철기 시대에 접어들며 기생으로 전락한다.

음력은 '여성의 달거리(생리)'와도 일치.
여성은 옛날부터 음력을 피부로 느껴왔다.
농사짓는 감각, 음력의 기일들과 각종 풍습.

아직까지도 음력 각종 풍습은 여성의 몫.
옷짓고 밥짓고 농사짓는 일은 여성의 책임.
지리산은 유독 무당과 여성 신들 전설의 고향.

음력의 전통적인 풍습도 유난히 많은 곳.
아직도 음력에 의존하는 지리산의 주민들.
음력은 곧 백두대간 단군 역사의 상징이다.

바이칼 호수에서 도래했다는 단군의 옛 조상.
바이칼 호수와 티벹 고원을 품고있는 히말라야,
히말라야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사상이자 종교.









히말라야에서 백두대간까지 흘러온 옛 조상.
우리나라 옛 조상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소.
히말라야에 가까울수록 소처럼 덩치가 큰 동물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사라져 사막화된 티벳고원.
그곳 인류는 식수마저 구하기 어려워 차츰 남하.
야생동물 수렵만으로는 살기 어려워 가축을 사육.

농사짓기 좋은 옥토를 찾아, 황하강 하류로 이동.
황하강 하류의 잦은 범람을 피해 한반도까지 이동.
지리산 일대는 어업 수렵 농사가 동시에 가능한 지역.

황하강 하류보다 살기 좋은 '지상낙원' 지리산 일대.
삼한시대 소를 이용한 써래 또는 철제 농기구를 사용.
김해 패총에서 발굴된 소의 두개골이 이를 뒷받침한다.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에 가축 명을 딴 관직 명
한반도에서는 수천년 전부터 소를 사육했던 흔적.

신라 지증왕 당시에는 소로 논을 가는 우경을 장려
고구려 정벌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2천 우차를 사용

고구려 시대에는 소 도살을 금지하는 보호령이 제정
고구려 무왕 시대 불교의 살생금지로 소가 많이 증식
백제 시대에는 육부를 설치 해 소를 적극적으로 보호

고려조에는 둔전우를 설치해 진보적인 축우사양법 제시
이조시대에는 농업 가우를 설치해 소의 질병을 예방했다.
이조 태조는 가축서 설치, 세조는 결혼비용 충당을 장려

세조는 양우법을 편찬해 소의 개량과 증식을 권장.

아들을 낳으면 송아지를 사다 길러 혼인비용으로 충당
1945년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서 60만두의 한우가 사육
1950년 6.25사변으로 인해 39만두로 급속히 감소했다.

한우증식을 위한 도살 및 보호 등 각종 법이 제정
1959년말 1백2만두로 늘어난후 현재까지 축산정책.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은 소를 중요하게 여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어떤 일이든지 하려고 생각했으면
한창 열이 올랐을 때 망설이지 말고
곧 행동으로 옮겨야 함을 이르는 말”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는 말은
소의 뿔을 뽑을 때 열을 가해
잘 달군 다음에 흐물흐물할 때
뽑아야 한다는 데서 유래된 말.

소뿔은 가구의 중요한 재료로 쓰인다.
목기세공품을 곱게 만드는 각질(角質)
그 '공예기법' 화각에 소뿔이 중요 구실

화각은 고급 목공예에 반드시 쓰는 것
목공예 나무에 먼저 채화(彩畵)를 그리고
그 위에 소뿔을 아주 얇게 오려 덧붙이는 것

'신라 때부터 쓰였던 기술'

화각은 젊은 황소뿔 중 맑고 투명한 좋은 것
소머리를 2시간 가열해 찌면 부드러워지는 뿔.
이 때 소머리에 있던 힘줄인 뼈가 빠져 나온다.

이것은 1mm에서 0.3mm 정도 두께로 깎아 사용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소뿔은 섬세한 무늬를 내거나 가구를 곱게 할 때,
또한 목가구 이음새 용도로 한중일 삼국에서 사용.
우리나라 소뿔을 이용한 공예가 가장 좋다고 한다.

'소뿔은 활의 재료.'

활은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무기 중의 하나.
우리나라 활은 멀리 나가고 정확도가 매우 높다.
하여, 중국 사람들이 늘 그 기술을 배우려고 시도

안시성의 양만춘이 당태종 눈을 뚫었다는 고구려 활.
우리나라 활이 옛날부터 얼마나 우수했는지 말해준다.
하여, 신분높은 사람은 항상 좋은 활을 지니고 있었다.

하여, 그 수요가 엄청났을 것으로 보이는데,
좋은 활의 원재료가 바로 소뿔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활' 국궁은
고구려 산상왕 때인 2세기경
소의 뿔을 재료로 사용한 것.

그중 소뿔을 재료로 만든 활이 각궁(角弓)
소뿔과 물소 뿔이 사용해 만든 활이라 한다.

소뿔은 시치미, 노리개, 술잔, 부채, 각퇴 등에 사용.
시치미는 매의 주인을 표시하기 위해 몸에 붙이는 명패
'시치미를 뗀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귀면(鬼面) 범발톱 노리개.'

소뿔로 범 발톱 형을 만들고
은으로 도깨비 얼굴을 조각하여
그 입에 물린, 노리개를 말한다.

소뿔은 술잔으로도 많이 사용되었고,
전통악기 편종·편경 등을 치는 뿔 망치

소뿔은 부채의 재료로도 쓰이는데,
고급부채의 살대에 소뿔을 펴서 채색

소뿔은 머리를 빗는 빗에서부터 시작하여
숟가락 젓가락 뿐만 아니라 장식품과 도장
얼마 전까지 도장의 대명사가 바로 뿔도장

암소뿔은 천지각(天地角)과 수각(垂角)으로 세분
하나는 위를, 다른 하나는 땅을 향한 뿔이 천지각.
한 쌍의 뿔이 모두 밑으로 향해 구부러진 뿔인 수각.

화각이나 공예품에 사용하는 뿔은 2-3년 된 숫소 뿔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은 고추뿔인 당신자각(唐辛子角)
소뿔 중 가장 귀한 뿔로 옛 선조들이 소중하게 다루었다.

특히, 숫소 뿔을 뽑을 때 쓰였던 말.
"쇠뿔도 단김에 빼라." 속담의 유래.




활.




각궁은 소뿔을 깎아 붙여 만든 우리나라 고유의 활.
활의 탄력성과 견인성을 좀 더 강력하게 만든 각궁.

우리나라 활 종류는 각궁, 전투 및 수렵용인 철태궁
전투용 쇠로 만든 철궁(鐵弓), 수렵용 나무로 만든 목궁
예식(禮式) 용도로 활을 쏠 때 쓰던 길이가 긴 예궁(禮弓),

작은 동개활(동개에 넣어 등에 지고 말달리며 쏘는 활),
무거운 화살을 쏠 때 쓰던 큰 활(正兩弓) 등 각궁이 있다.

고조선에서 생산된 단궁(檀弓)
고구려에서 생산된 맥궁(貊弓)

멀리 중국까지 그 이름을 떨쳤다.

단궁은 나무로 만든 활, 즉 목궁이었으나
맥궁은 3세기 초 고구려에서 중국에 수출
'뿔로 만든 활' 즉, 각궁이라고 짐작 된다.

각궁은 남쪽에도 일찍부터 있었다.
3세기 초 백제가 왜인 사절에게 선물.

우리나라는 양질의 목궁과 각궁을 일찍부터 창안
2가지를 무장 편제의 기본을 이루는 무기로 사용.

각궁은 후궁 또는 장궁이라고도 한다.
주로 물소뼈, 소뿔, 양의 뿔 등을 이용.

전투 및 수렵용, 연습 및 경기용의 두 종류.

전투용 활은 그 몸체를 산뽕나무·뿔·힘줄·
아교·참나무·붓나무껍질·화피(벚나무 껍질)
등 7가지 재료를 배합해 각궁을 만들었다고 한다.

각궁에는 굳세기에 따라 강궁(强弓)·실궁(實弓)·
실중력(實中力)·중력(中力)·연상연중(軟上軟中)·
연하로 구별해 사용자 힘에 맞게 쏠 수 있도록 제작.



시베리아
 
 
 
중앙 아시아 동아시아 사람들이 이동해오면서 시작된 역사
알타이, 예니세이 강 상류, 바이칼 호 주변에 집중된 구석기 유물
 
신석기시대 유물은 바이칼 호 주변지역과 아무르 강 하류에서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만주·중국·우리나라로 연결되는 지역에서 많이 발견
 
청동기 문화는 BC 2000년경 알타이-미누신스크 지방.,유럽계 인종
곧 바이칼-레나 지방 아시아계 주민들이 청동과 구리를 사용하기 시작
그러나 생계수단은 수렵., 순록 유목민., 퉁구스족에게 밀려나거나 동화.
시베리아는 BC 10세기경부터 중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
BC 7~2세기경 미누신스크 분지에 중국인 관개시설을 이용
당시 남부 시베리아의 다른 지역에 유목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흑해 북쪽의 스텝에서부터 몽골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독특한 동물문양 장식품을 특징으로 하는, 스키타이 문화를 발전
 
BC 3세기 이후 남부 시베리아는 투르크몽골계의 훈족과
몽골에 중심을 둔 여러 투르크계 국가들에 의해 차례로 점유
남부 시베리아에서 이후 투르크족은 인종적으로 지배적인 위치
 
이웃한 사모예드족을 동화시키거나 북쪽으로 밀어냈다.
그무렵 극동 바이칼 호 주변 야쿠트족의 선조 쿠리칸족이,
카자흐스탄 스텝 지대에 유목민족 킵차크족이 살고 있었다.
 
AD 10세기부터 투르크족의 지배권은 점차 몽골족으로 넘어가,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이 시베리아 전지역을 지배하게 되었으나
북부 시베리아의 주민들은 사실 상 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 러시아의 식민화(1581~1890)
 
시베리아가 러시아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1세기이며,
12세기 노브고로트 상인들이 오브 강 하류 부족들과 모피 거래
1581년 일단의 카자크인이  탐험에 나서 시베리아 칸국을 정복했다.
 
그뒤 오브 강, 예니세이 강, 레나 강의 하계를 이용하여
카자크인은 북부 시베리아 전역은 물론 남부 시베리아까지
들어가 곳곳의 전략적 요충지마다 요새를 세웠다
 
1585 튜멘,
1587 토볼스크,
1604 톰스크,
1617 쿠즈네츠크,
1628 크라스노야르스크,
1632 야쿠츠크,
1649 태평양 연안의 오호츠크,
1651 아무르 강 연안의 알바지노,
1652 이르쿠츠크),
 
 그와 함께 러시아인에 의한 시베리아 개척과 병합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러시아의 진출은 아무르 강 연안에서 중국의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으며,
이 일대는 1689년 중국과의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해 중국령으로 선언되었다.
 
그뒤에도 러시아는 계속 동진하여
1699년에는 캄차카 반도를 병합하고,
1858년 아이군 조약과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아무르 강 하구와 한국 사이의 태평양 연안을 획득.
합병된 시베리아 통치는 모스크바에 있는
시베리아 관할 관청에 의해 직접 이루어졌다.
 
1822년 행정개혁으로
이르쿠츠크에 동시베리아 총독,
토볼스크에 서시베리아 총독을 두었다.
 
 
■ 근대 이후
 
시베리아 전통 경제가 근대 경제로 전환된
가장 큰 사건은 시베리아 황단철도의 건설 완공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바이칼 호 동쪽까지 전철화.

바이칼 호 서쪽에는 산맥이 비교적 적은 편이며,
해발 4,507m 알타이 산맥은 몽골과 경계선을 형성.

바이칼 호 주변은 거대한 단층지대,
주요단층으로 인해 고지의 고원이나
산맥이 깊은 계곡이나 분지와는 분리

이 지역은 다양한 지형적 특성을 지닌다.
바이칼 호에서 가장 깊은 수심은 1,158m
바이칼호 동쪽에는 부채꼴로 펼쳐진 산맥들

레나강과 태평양 연안 사이 대부분 지역을 차지
북극해로 가는 레나강과 태평양 아무르강 분수계
오호츠크해에서 베링해까지 이어진 저지 회랑지대

태평양 가에 위치한 캄차카 반도따라 산맥계를 형성
캄차카 반도에는 수많은 화산이 있으며 대부분 활화산
화산지대는 남동쪽 쿠릴 열도를 지나 일본까지 연결된다.

광활한 저지평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들이 흐른다.
북극해 유역은 오브강 예니세이강 레나강 등 3개의 강
시베리아 나머지 지역 강들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간다.

시베리아 남동부 넓은 지역에는 거대한 아무르 강
아무르 강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경계를 이룬다.
볼가강은 러시아 전체 수상 교통량의 2/3를 해결.

시베리아는 겨울과 여름 두 계절 만 있고,
봄 가을은 신속하게 바뀌는 겨울과 여름 사이
강우량이 적은 대신 적설 기간은 120일~ 250일

북극 사막지대는 식생을 볼 수 없는 불모지대
국토의 10%를 차지한 툰드라 지대는 습지 평원.
북극해 툰드라, 관목 툰드라, 수목 툰드라 지대

북극해 툰드라 지대는 대부분 이끼와 지의류
관목성 툰드라 지대는 이끼, 지의류, 초본식물,
키작은 북극해안 자작나무, 관목성 버드나무 등

수목 툰드라 지대는 키작은 자작나무와 낙엽송,
가문비나무 원주민이 기르는 사슴 및 북극 여우
사향소·비버·레밍·흰올빼미·들꿩 등이 서식.

툰드라 남쪽 타이가 지역은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소나무, 관목, 목초 등으로 식생의 종류가 바뀐다.
타이가는 세계 최대의 목재 보유지로 꼽히는 원시림.

흑담비 다람쥐 담비 여우 산족제비 같은 모피동물
말코 손바닥 사슴. 곰. 사향쥐. 늑대 등의 원산지.

노루 늑대 여우 다람쥐 등이 흔한 아무르강 유역.
참나무·서어나무·느릅나무·개암나무 등이 분포.

서부 스텝 지대는 곡물경작이 가능한 곳.

스컹크·여우·늑대 등 야생동물이 서식.
남부 지역에서는 영양, 능에, 독수리, 매,
종다리, 회색 자고 등의 조류를 볼수 있다.

 

 


알래스카. 



시베리아의 백색 설원에서 태어나
백색 설원으로 되돌아간다는 믿음.
제 4 빙하기를 극복했던 백의 민족.

'제 4 빙하기를 연상케하는 알래스카.'

옛 조상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알래스카.
알래스카 원주민은 아직까지도 독특한 문화.
그들 만의 언어와 전통을 고수하며 살고있다.

현재 미국의 영역인 알래스카 & 알류산 열도.
매년 허리케인과 해일이 몰아치고 화산이 요동
제 4 빙하기를 연상하게 하는 험한 기후로 유명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고대사회 미이라.'

1936년 알류산 열도를 방문한 인류학자 호들리츠크
그가 찾아낸 그 섬에 잘 보존된 고대 유물과 미이라.

1700년대까지 알류산 열도에 살았던 우낭간족
알래스커 기후와 지형과 어울리는 문명을 유지
특히 미이라 제작 기술은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놀라운 점은 미이라 제작 방식이 이집트와 흡사

복부를 절개해 내장을 먼저 꺼내고,
시신을 닦는 과정이 이집트와 공통점
다른 점은 시신을 밧줄로 묶어 웅크린 점.

풍부한 해부학 경험에 의한 지식과 문명
9천년을 이어온 우낭간족은 어이없는 종말.
18세기 바다사자 사냥을 하러 온 러시아인들

2만명에 가까운 우낭간족을 러시아인이 몰살
이백년 후에 서구인들에 의해 알려진 우낭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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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는 북미 북서 끝 북태평양 화산대에 위치
미국에서 면적은 가장 크지만 인구는 가장 적은 주
베링 해와 해협의 사이에 시베리아와 마주보는 위치.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북극해,
남쪽으로 태평양과 알래스카 만,
동쪽으로는 캐나다의 유콘 준주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접해 있다.

주도는 주노.

알래스카 본토의 남북 1,450km, 동서 1,300km.
알류샨 열도와 남동쪽 팬핸들 지역을 포함하면
동서 4,800km, 알래스카 인디언 후손들이 원주민.

1만 5,000~4만 년전 베링 열도를 건너
최초로 북아메리카에 온 사람들의 후손
또는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했던 원주민들.

에스키모(이누이트)족과 알류트족
3,000~8,000년 전 정착한 북극 민족

최초 유럽인 정착지는 1784년 코디액 섬.
러시아 모피사냥꾼이 스리세인츠베이 건설.
1799~1867년에는 러시아-아메리카 회사가 관리

그후 미국이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조약을 체결.
1880~90년대에 금이 발견되자 미국인들이 정착
1912년 의회 인준을 받아 알래스카 준주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적대적인 활동 때문에
알래스카 간선도로와 더불어 방어시설도 필요했다.

알래스카는 1959년 1월 3일 미국의 49번째 주.

연방정부는 광대한 지역을 보유하고 있지만
원주민들의 소유권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막대한 지역을 원주민들에게 내주었다.

알래스카는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첫째, 섬과 산계로 이루어진 남부이고,
둘째, 내륙의 중부 평원과 대지이며,
셋째, 브룩스 산맥이고,
넷째, 브룩스 산맥의 북쪽
노스슬로프로 불리우는 해안.

북미 대륙 최고봉은 알래스카 매킨리 산(6,194m)
남서쪽 알류샨 산계와 남동쪽 세인트 일라이어스·
바운더리 산맥은 화산활동·지진·빙하로 알려진 곳.

알래스카 중부 내륙에는 유콘 강과 커스커큄 강이 흐른다.
지리적인 조건과 지형적인 기복에 따라 기후가 매우 다양.
내륙은 여름에 낮이, 겨울에 밤이 길고 북쪽은 북극사막기후

알래스카는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곳이지만
일자리 찾기 위해 이주해오는 젊은이가 많다.
주민 평균연령은 26세, 원주민은 인구의 1/7

에스키모족(3만 4,000명)이 가장 큰 인구 집단
아메리카 인디언(2만 2,000명), 알류트족(8,000명)

주민 절반 이상이 앵커리지 지역에 살고 있으며
페어뱅크스에 15%, 남동부 팬핸들 지역에 13%

알래스카는 석유, 천연 가스 산업 의존도가 높다.
1977년 송유관 개설후 석유생산은 텍사스 다음 2위
석탄·금·아연·은·구리·모래·자갈 등의 광산물

교통편은 주로 항공을 이용 그 다음은 여객선
그리고, 미국, 캐나다 서부와 연결된 고속도로
총 면적은 1,530,700㎢, 인구는 626,932(2000).

 

 

동해(東海) 


 

 

 

아시아 동북부에 있는 태평양의 서쪽에 있는 바다.
한국, 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섬, 일본에 싸여 있다.
북쪽에는 타타르 해협, 소야 해협 남쪽에는 대한해협
 
 

신생대 제4기초 대단층운동에 의한 함몰로 생성
북동­남서 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타원형을 이룬다.
 
남북 길이 1,700㎞,
동서 최대길이 1,100㎞,
수심은 평균 1,361m이다.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 부근이 깊어 3,000m 정도 급사면
 최심부는 북동쪽 오지리 섬[尾尻島] 부근으로 3,762m이다.
 
대륙붕이 15m 너비로 해안따라 좁게 발달
그 면적은 전체의 1/5로 약 21만㎢에 불과.
 
해저지형은 중앙부에 연속적으로 발달한
해령을 중심으로 북부와 남부로 나뉜다.
 
북부는 대체로 평탄하고 경사가 완만
남부는 복잡하여 해구 해퇴 등이 발달.
 
대표적 해퇴., 야마토 뱅크
크고 둥근., 자갈이 있으며,
송백과(松柏科) 식물화석
 
해구는 대륙사면에서 2,000m 이상 깊이지만,
일본 열도 말단에서는 800m 정도로 얕아진다.
 
울릉도 독도, 이키[壹岐] 쓰시마[對馬] 오키[隱岐]
사도가[佐渡] 도비시마[飛島] 등의 섬이 솟아 있다.

 
파랑(波浪) 영향은 황해나 남해에 비해 심하다.
북위 40°에서 쓰시마 해류와 북한해류가 만난다.
수심이 깊어 옛날에는 어장의 이용가치가 적었다.
 
오늘날 세계 4대어장 북태평양 서부어장 중 중심
어종은 살오징어 꽁치 방어 삼치 고등어 정어리 등
성어류와 명태 대구 등의 한류성 어류가 풍부하다.

 
대부분의 난류성 어류는 봄에서 여름까지 북상하여
북한 연안 인접수역까지 회유하며, 가을에 남하한다.
그중 오징어는 동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어족이다.
 
특히 울릉도와 묵호 주변에서는 6~9월에 잡히며,
7~8월에 최성기, 9월 중순경  부산까지 이동한다.
 
꽁치는 북상기간인 3~7월에 주로 잡힌다.
한때 영일만 부근에서 많이 잡혔던 정어리
제2차 세계대전 후 감소했다가 최근에 증가
 
대표적 한류성 어족인 명태는 원산만이 주요어장
최성기 11~12월 산란, 강원도 연안에서 부화 성장.
대구는 동해안과 경상남도 연안에서 주로 잡힌다.
 
또한 동해의 저인망어장은 대륙붕이 좁아 비교적 한정
명태 대구 도루묵 넙치 게 새우 등이 잡히고 그 밖에도
전복 참고등어 백합 참조개 한천 미역 곤포 등도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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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빙하기  고래잡이 민족은 동해를 따라., 남하.

한반도의 동해안에서 남해안을 거점으로.,고래잡이.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급상승하면서 한반도로 대피.

 

동해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 대륙과 분리된.,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