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94. ( 영신봉. 낙남정맥. 세석산장. 세석평전. 촛대봉. )

donkyhote 2011. 2. 28. 01:42


영신봉



................한신(백무동)계곡↙.........................연하봉.
.......................................↖.........................../
.....................,,,..................↖............. ........촛대봉 ........도장골..길상사.
..................... ........................↖................세석 산장...음양샘~~.......거림
................................................................영신봉....한벗샘...........↗..삼신봉..... .........청학동.
.............................................................../................↘ ........↗
.......................................................... ..선비샘~~.......대성골
..........................................↙..............벽소령 산장.........↘


'세석평전의 철쭉' = 영신봉과 촛대봉의 철쭉.
세석평전은 화개 영신봉과 산청 촛대봉의 사이
해발 1,600m 고지대에 수만 그루의 철쭉꽃 평야

5월 하순 경 화려한 철쭉꽃의 요염한 붉은 색
오색 물결 등산객 인파에 신열을 앓는 지리산.

.....1463년(세조 9년) 이륙 유두류록 중......
"시내는 영신사의 작은 샘으로부터 근원이 되어
신흥사 앞에 이르러는 이미 큰 시내가 되어
섬진강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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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분수령(山者分水嶺) 이론........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벽소령에서 흐르는 물은 섬진강으로 흐르게 된다.

그러나 영신봉에서 흐르는 물은 방향 따라
섬진강으로도, 또는 낙동강으로도 흘러간다.

그러므로 경상도 서남부 일대 산지를 포함한
낙남정맥 그 시발점은 영신봉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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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개 제일 1봉 영신봉(1652m).
2. 화개동천 젖줄이 되는 발원지.
3. 낙남정맥(落南正脈)의 시발점.
4. 불교문화 요람 화개 성산(聖山).
5. 눈보라에 탈진 조난사고 많은 곳.


영신봉은 낙남정맥의 분수령이다.
서남쪽 김해 신어산까지 뻗은 산맥.

낙동강을 사이에 둔 낙남정맥과 낙동정맥
언어, 풍습, 문화 등등에서 영호남의 분기점.

태백산에서부터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
부산 영남권을 동쪽으로 감싸안고 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무슨 뜻일까?'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이조의 사학자 여암 신경준의 지형적 개념이다.

1903년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 산맥 제안.
'백두대간은 1정간과 13 정맥을 거느린다. '

지리산은 백두산 한라산과 더불어 3 신산.
지리산 3 신이 살고 있다는 세 봉우리 이름.
청학동을 감싼 삼신봉, 내삼신봉. 외삼신봉.

'영신봉에 신(神)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신봉은 음양샘 전설 속 영신의 이름을 본딴 곳.
호야가 아내 영신의 죽음을 슬퍼하다 바위가 된 곳.
이곳은 호야의 아내 이름에서 유래된 지명이..이색적.

'<음양샘의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일까?'

작은 샘물이 거대한 산봉우리 이름을 빚어낸 듯 싶다.
세석을 사이에 두고 영신봉은 촛대봉과 마주 보고 있다.
영신봉은 주 능선 上에서 <청학동 가는 길>의 들머리이다.

영신봉은 낙남정맥의 시발점이고
섬진강 따라 남해 바다로 뻗은 산맥.

호야가 영신을 향한 그리움을 잊지 못하는 듯.
섬진강 물결에 그리움 싣고 바다를 바라보는 듯.
원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삼신봉을 내려다 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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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은 음양샘의 전설 속 영신이 돌이 된 곳.
영신봉은 음양샘의 전설 속 호야가 돌이 된 곳.

혹시, 촛대봉은 비구니의 상징 아닐까?
그렇다면, 영신봉은 비구의 상징 일까?

불교에서는 비구보다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이 많다.
여성이 남성보다 전생의 업보가 많다고 여기는 탓이다.
전설 속 영신과 호야는 비구니와 비구의 상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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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초(靈神草)는 원지과(遠志科 Polygalaceae) 다년생초.
봄순은 나물, 가을 줄기와 잎은 진해, 거담, 강장 한약재
영신 = 사람의 영(靈) + 신(神) = 득도에 도달한다는 의미.

호야꽃(엉겅퀴) 원산지 : 한국, 만주, 중국 등등
꽃말 : 독립, 고덕한 사람, 근엄, 권위, 고독한 자랑
국화과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70cm-1m가량 잎과 줄기
자주색 꽃이 피면 꿀이 많아 벌과 나비가 많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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乎(호)는 '그런가?' 의문 또는 감탄 어조사
소리를 길게 끌어 마음 속 생각을 나타낸다.

也(야)는 '...라 이르다. 또' 라는 뜻의 어조사
땅 속에 겨울잠 자던 뱀이 고개들고 나오는 모양.

호야 = '이제야. 이에 있어서., 라 이르다. 또'란 뜻
즉, 호야는 인간의 본능적인 성애를 상징하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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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도를 닦거나, 기도 푸닥거리 굿판 벌이는 곳이 많다.
백무동 입구의 굴바위를 비롯한 곳곳에 무속신앙인들이 몰려든다.
지리산에서 도를 깨우치겠다며 명당자리 찾는 구도자가 많은 영신봉.
이런 기도처들은 일반 등산객들의 눈엔 쉽게 목격되지 않는 곳에 있다.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라고 입을 모으는 명당이.. 영신사 터.
영신봉 바로 남쪽 사면의 대성계곡 본류가 발원하는 곳에 위치
이곳 가는 길은 세석평전에서 주능선 따라가는 것이가장 빠르다.
영신사 터에 기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접근로이다.

영신봉 등산 코스로는 대성골 따라 오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대성동-대성골>, <대성교∼세석평전> 두 코스는 등산지도에 표시.
그러나, 대성골 본류 따라 영신봉을 오르는 코스는 은밀히 숨어있다.

주민들은 이 비밀 루트를 오가며 당귀와 같은 약초를 채취하고
구도자들의 기도처인 영신사 터(영신대)로 물품을 운반해 준다.
의신마을 주민들은 이 루트 중간지점 대성폭포에서 봄맞이 놀이.

이 코스는 큰세개골 이정표에서 처음 찾아드는 길이 애매해,
상당한 혼란을 느낄만한 곳도 있어 경험자 안내를 받아야 한다.
영신대 가는 길은 큰세개골 이정표까지 대성골 코스를 따라간다.

대성동을 지나 작은 세 개골 다음 골짜기가 큰세개골이다.
큰세개골 이정표에서 세석 오른쪽 길을 따라 200m 쯤 지점.
그곳에서 왼쪽(계곡 방향) 숲속으로 영신대 비밀 통로 시작.

이 들머리는 꼼꼼하게 주의를 하며 보지 않으면 찾기가 어렵다.
일반 등산객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걸음 들어가면 호젓하고 기분좋은 오솔길이 연결돼 있다.
큰세개골에서 세석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온통 너덜지대 투박한 험로.

대성계곡 코스 가운데 가장 투박하고 힘이 드는 코스이다.
그런데, 큰세개골 영신대 비밀통로는 평탄한 길로 이어진다.

작은 지계곡을 건너가면 집터 흔적 같은 것이 나타나고,
부드러운 오솔길로 30분 오르면 대성계곡 본류와 만난다.
큰세개골 이정표 오른쪽 큰 계곡보다 오르는 시간이.. 절반.

그곳부터 오솔길은 계곡 오른쪽으로 20분 가량 더 이어진다.
그 뒤로는 무조건 계곡을 따라 오르면 대성골 상류 끝, 영신대.
대성골 본류 끝지점이고, 큰세개골 위 3Km부터는.. 계곡산행

이 계곡 주변은 설악산 산세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
골 양쪽의 암벽들이 내리꽂히면서 협곡을 이룬 경치가 그렇다.
그런데도 계곡은 폭이 넓어, 오르는데 아무 지장 없는 무릉도원.

대성골 상류는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 길 같은 느낌마저 준다.
어떤 곳은 반석 사이로 맑은 물이 휘감아 흘러 '수중 궁전'과 같다.
대성폭포의 거대한 바위벽을 타고 오를 때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길.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다보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대성폭포.
'대성골 상류의 학소대'라고 불리울 만큼 똑같은 모양의 3 봉.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암봉 위에 독야청청 우뚝 서있는 소나무들.

첫 봉 아래에서 대성폭포(일명 : 선유동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지리산에서 가장 큰 폭포인 듯 한데, 지도 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폭포는 갈 之자로 4 단에 걸쳐 120m 높이에서부터 떨어지는데
아래 쪽에서는 폭포 상단 부분을 볼 수 없을 만큼 아득한 높이이다.

이 폭포의 왼편으로 누구나 무난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 나있다.
4단 폭포 중간에는 100 명 정도 앉아 놀 수 있는 마당바위가 있다.
마당바위 뒤쪽에는 '선녀탕'으로 불리는 직사각형 욕조 반석이 있다.
이 폭포 왼쪽의 마지막 3봉 아래에 영신사 터(영신대)가 자리잡고 있다.

대성폭포에서 영신대까지는 약 1시간 거리의 계곡길이다.
마지막 구간은 극심한 비탈을 이루고 있어 체력소모가 크다.
급비탈을 올라 영신대에 닿으면 이곳 절경은 별세계를 빚는다.
이곳 초막이 헐린 흔적이 있고 샘터 제단 석문을 통과하면 용왕당.

이곳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있고 학소대 같은 독립 암봉의 바로 앞
마당에는 서북쪽으로 미륵불, 칠성당이라 불리는 곳이 나란히 있다.
그 건너 숲속에 천막이 있고, 이곳 기도객들의 빨래가 널려 있는 곳.

영신대 주변은 바위마다 촛농, 타다 남은 향, 제기, 생필품 싼 비닐.
이곳에 많은 기도객들이 장터처럼 몰려들고 있는 사실을 대변한다.
이곳에서 '천왕성모 생일'에는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제를 올린다

크고 작은 바위마다 잔돌을 쌓아 올려놓고, 어떤 바위에는 돼지머리.
영신대는 이제 도를 닦는 곳이 아니라 온갖 무속신앙터로 전락한 느낌

1472년 김종직이 지리산을 산행하며 이곳에 있던 영신사에 들렀다.
당시 영신사에는 스님이 한 사람, 벼랑 아래 돌부처 1좌가 있었단다.
그의 '유두류록'에는 이곳에 대한 소견과 경관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다.

김종직은 이조 시대에 '전설 속의 청학동'을 찾아나섰던 인물.
하여, 이곳을 '전설 속 청학동'이라 믿는 구도자가 많은 듯 싶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도 왜침이 잦았던 듯.

...............김종직의 '유두류록'지리산 산행기 ............................
김종직(金宗直)은 1431∼1492(세종 13∼성종 23) 이조 전기 문신
호는 점필재. 고려말 정몽주·길재의 학풍을 이은 아버지로부터 수학,
후일 사림의 조종(祖宗)으로 문장·사학(史學)에도 두루 능통하였으며,
절의를 중요시하여 도학(道學)의 정맥을 이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도학사상은 제자인 김굉필·정여창·유호인 등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김굉필은 조광조(趙光祖)를 배출시켜 학통을 그대로 계승시켰다.
사림학자들이 훈척계열(勳戚系列)의 비리와 비도를 비판하고 나서자,
중국 고사를 인용하여 의제와 단종을 비유하며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당파싸움의 구실을 삼아
훈척계열 유자광·정문형 등이 일으킨 무오사화.

이륙은 1449년(연산군 4)에 귀양을 가고,
사후에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저서로는 점필재집 청구풍아 당후일기,
편저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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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류록' 지리산 산행기 - <1472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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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대왕 시절에 자주 사람을 보내시어 향화를 받들게 하였던 곳이다.
돌부처 머리 한쪽이 일그러졌는데, 이것은 왜구가 찍은 것이라고 한다.
" 아, 왜구는 참으로 잔인한 도적. 생사람 껍질을 얼마나 많이 벗겼는가?"

천왕봉 성모석상과 이곳 돌부처처럼,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쳤을 것이다.
돌부처는 오른 팔에도 반점같은 상처를 입었는데, 이것은 불에 태운 흉터.
돌부처를 태우면 미륵을 만날 것이라며 상처를 남겼다니, 아!~황당무계함.'

어리석은 자들이 내세에서 이익을 얻으려고 돈과 포목을 바치니..,
그 정성이 가증스러울 뿐이다...돌부처 북쪽에는 두 바위가 솟았는데
소위, 창불대..한쪽 바위의 아랫 부분은 패이고 튀어나와 울퉁불퉁한데,
위는 날카롭고 쭈뼛..그 위에 네모꼴 평평한 돌을 얹어 넓이가 겨우 1 자.
스님 왈, 소원 이루기 바라는 사람들이 위태로움 무릅 쓰고 그 위에서 기도.

동쪽 바위틈 옥천 샘은 달인 차 맛과 같고 차다 하였지만 가보지 못했다.
샘의 서쪽엔 흙벽돌로 쌓아올린 높은 건물이 보였는데 옛 영신사라 하였다.
서북쪽 작은 석탑은 왜구들이 넘어뜨린 것을 쇠기둥을 꾀어 고쳐 세웠기 때문에
몇 층은 떨어져 나가고 없고, 영신대에서 오른편 비탈로 오르는 길이 있다.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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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10 분 오르면 영신봉 이정표가 있고 세석산장은 10분 거리.
세석산장에서 영신대까지 찾아가는 길은 30분 거리로 어려움이 없다.
의신마을에서 대성골 따라 영신대에 오르는 시간은 4 시간 정도 소요.

세석으로 오른 후 하산길은 대성골 또는 거림 코스가 안전.
영신대서 대성골로 하산길은 험하고 길 찾기 어려워 위험.

이곳에 이르러서야 베일 속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 하다.
'음양샘의 전설'의 여주인공 '영신'은 실존인물인 듯 하다.
아울러, 대성골 역시 역사의 한 시점에는 가락국 영토인 듯.

조선시대에 김종직이 이곳을 다녀간 시기는 1472년 이었다.
대성골은 임진왜란(1592년) 당시 왜적에게 고초를 겪었던 곳.

그렇다면, 임진왜란 120년 전에도 왜적의 만행이 심했다는 사실.
산 사람을 껍질 벗겨 나무에 걸어 둘 만큼 잔인했던 왜적의 만행.
당시 이조왕조가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

이 깊은 곳까지 왜적의 만행 흔적이 남아있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조는 왜적의 만행을 응징도 하지 못한 채 또 다시 겪은 임진왜란.

영신사는 세조대왕이 늘 사람을 보내 향을 피우고 꽃을 받치던 곳.
김종직이 찾을 무렵에는 스님 한 사람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
불교가 이조 중반 이후 얼마나 박해를 받았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그당시 영신사는 이미 잘 알려진 유서 깊은 고찰이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천왕성모를 숭배한 유래는 이조시대 훨씬 이전.
'노고단 선도성모'나 '마야계곡의 마야부인'보다 유서깊다.

천왕성모의 8 딸이 전국으로 퍼졌고 셋째 딸이 하동에 정착.
그것은 곧, <천왕성모의 전설>은 고대국가 시대 이전의 전설.
그렇다면, <천왕성모의 전설>은 신석기시대로부터 유래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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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에 갇혀 조난사고 많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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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1박 2일에 지리산 종주.
성삼재 출발, 세석산장 일박 일정.
칠선봉 험로에서 영신봉까지가 고비.

'벽소령에서 세석산장 = 마의 구간.'

하여, '마의 구간'은 조난 겪기 쉬운 곳.
칠선봉 험로에서 지친 후 나타난 영신봉.
여기쯤 오면 이미 탈진상태에 이르게 된다.

사실, 1박 2일 지리산종주 일정은 무리.
그러나,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현실.
주말 여가를 이용해 완주를 하고 싶은 욕심.

어렵게 세석산장까지 예약한 상황이면 강행군.
초죽음을 무릎쓰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고전.

해는 저무는데 발걸음은 점점 더 무겁다.
세석산장은 아득한데도 힘든 칠선봉 험로
어둠속 그곳을 겨우 빠져나오면 영신봉이다.

'마치, 신기루와 같은 세석산장 불빛.'

발자국 옮길 때마다 다리가 무겁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산장 불빛.
특히, 겨울엔 눈보라 속 환상방황 잦은 곳.

산장 불빛이 보이면 긴장감이 풀어지는 탓.
그러나, 눈밭에 빠지면 진로 찾기가 어렵다.
키 넘게 쌓인 눈이 함정처럼 진로을 막는 탓.

'눈보라 칼바람에 파묻힌 등산로 찾아 방황.'

때로는 진로를 찾아 멀리 우회해야 한다.
그러나 지독스러운 눈보라에 가려진 시야.
이쯤 되면, 한치 앞이 안보여 눈벌판을 방황.

영신봉에서부터 세석평전까지는 광활한 평원.
하얀 눈속에 파묻혀 편안하게 잠들고 싶은 충동.
순간의 편안함이 죽음을 부르는 곳이 영신봉이다.

칠흙 같은 어둠과 지척을 분간못할 눈보라.
허리까지 빠지는 눈벌판을 헤쳐나가는 러셀.
눈앞에 빤히 보이는듯해도 머나 먼 산장 불빛.

'과연, 내가 살 수 있을까?'

이쯤되면 꿈도 부질없는 것.
부귀영화 명예도 소용없는 것
간절한 바램은 살고싶은 마음 뿐.

때로는 논앞에서 교차하는..삶과 죽음.
이때 치즈 한쪽은 불꽃같은 에너지 공급원.
생명력이 꺼져갈 때에 기적 같은 힘이 된다.

'평소에는 지극히 평온한 곳이..영신봉.'

산행을 하다보면 안전한 곳일수록 방심은 금물.
눈벌판 헤메이면 동상으로 발가락 절단하기 십상.
가벼운 산행이라도 장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정석.

'눈보라에 탈진 조난 초보자 많은.. 영신봉.' 


낙남정맥.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영신봉에서 시작
경남의 산들을 거쳐 낙동강 하구에 잠기는 221㎞ 능선

'북쪽으로 줄곧 낙동강을 받드는 낙남정맥.'

지리산 영신봉에서 남하하다가 옥산(614m)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곡산(543m), 여항산(744m),
무학산(763m), 구룡산(434m), 대암산(655m)을 거쳐
낙동강 하구를 지키는 분산(盆山)에서 가라앉는다.

영신봉에서 시작해 삼신봉 지나 하동까지 내려와
고성의 대곡산 넘어 함안 여항산 타고 마산 무학산
창원 정병산, 김해 동신어산 밟고, 낙동강에서 마감.

동북으로는 임천강, 경호강, 남강이 합류하는 낙동강
남서쪽으로 섬진강이 스며든 남해바다를 경계 지으며
남부 해안지방의 수분령 낙남정맥은 옛가야국 문화권.


<낙남정맥 1차~ 20차 구간>

1차 구간은 낙동강변에서 신어산을 넘어 영운리고개까지.
2차 구간 김해 신어산 서봉 영운리 고개~ 덕암 공원묘지
3차 구간 경남 김해 덕암 공원묘지- 불모산 용지봉까지.
4차 구간 불모산 용지봉- 경남 창원 소복재까지
5차 구간 소목재~송정고개 14.2km

6차 구간 경남 마산시 화성동 송정고개~ 예곡동 쌀재 9.72km
7차 구간 마산시 예곡동 쌀재- 대산 - 광려산 - 한치 8.05km
8차 구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 한치 - 봉화산 서북산 여항산 오곡재 12.67km
9차 구간 오곡제 - 발산재 8.85km
10차 구간 마산시 진전면 발산재 - 고성군 구만면 새터재 9.3km

11차 구간 새터재 - 성지산 - 큰재 10km
12차 구간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 큰재 - 절골 고개 9.6km (1998.06.24)
13차 구간 고성군 상리면 망림리 절골재- 백운산 -부련이재 -봉대산 - 돌장고개 15.4 km
14차 구간 진주시 금곡면 사천읍 돌장고개 - 무선산 - 170m봉 - 94m봉 11.4km
15차 구간 진주시 정촌면 94m봉 - 모산재 - 실봉산 - 유수재 9.3km (1998.09.02)

16차 구간 유수재 - 선들재 10.3km (1998.09.25)
17차 구간 선들재 ~ 오랑동 9.8km (1998.10.29)
18차 구간 사천시 곤명면 오랑동 -배토재 - 602m -547m - 돌고지재 13.9km
19차 구간 돌고지재 ~ 묵계치 14.75km
20차 구간 묵계치~영신봉 10.3km (1998.12.10)



세석산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세석평전이 한눈에 보이는 곳.
세석평전은 그 둘레가 12㎞이고 약 30만 평 면적의 넓이이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은 일본식 표기이므로 세석고원이 좋을 듯.

촛대봉의 전설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을 연상하게 한다.
손끝찢는 세석의 잔돌. 핏빛 처녀의 순결, 촛대봉 형벌.
왜인 조상이 한반도에 거주할 당시에 남긴 전설이 아닐까?

한반도 민족이나 일본 민족은 그 뿌리가 하나인 '몽골리안'
일본은 칼 잘쓰는 기마족, 우리 민족은 활을 잘쏘는 유목민.
세석평전은 고대국가에서부터 말 달리고 칼 쓰는 심신 수련터.

지금과 같은 세석의 모습은 약 100 년전 산불 탓이라고도 한다.
15 세기 이곳을 찾은 김종직, 김일손의 기행문에도 이곳은 평원.
1983년에 처음 건립된 세석산장은 66 평방미터 60 여명 수용 규모.

이 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故 허우천 씨가 살았던 옛 산장 터.
세석평전 중앙에 있었지만 지반이 튼튼하지 못해 철거된 바 있다.

산이 좋아 홀로 산속에 들어와 살았던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壽).
'지리산신령'으로 더 알려졌던 그의 보금자리는 쓰러져가던 움막.
흘러가는 흰구름, 눈보라, 비바람 속 야생화를 벗삼아 살아갔던 그.

22에 결혼한 부인을 홀로 두고 31세에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던 그.
산을 잊어달라고 애원하던 부인을 뿌리치고 영영 혼자서 살다 간 그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

어림잡아 7 만명의 등산객을 안내하고 수많은 인명을 구조했던 그 .
조난자를 찾아 헤매기 20년..조난자 시신을 찾아 집으로 돌려 보낸 일.
부상자를 안전하게 옮겨 치료한 일, 지리산 일대의 고아들을 보살핀 일.

지리산의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사라진 이후에도 전설.
추모비는 법천골 입구에서 법천교 다리 지나.. 칼바위 전.
세석에서 철쭉꽃처럼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1976년 6월 홀연히 자취를 감춘 그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1972년부터 매년 철쭉이 만발하는 시기에 진주산악회 주최로 '철쭉제'
이곳은 천왕봉, 한신계곡, 도장골, 거림골, 삼신봉, 청학동의 길목이다.
지리산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산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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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산 325
1995 년에 면적(653㎡) 수용인원 240 명
일박에 사용료는 7,000원이고, 담요는 1,000원

현재 주능선 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장이 들어서 있는 곳.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이용하는 산장이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양지바른 위치'에 있다는 것이..'장점'.

2층 창문으로 세석평전의 남사면의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장.
장터목 산장과 벽소령 산장을 관장하는 분소장 외 5명 직원들이 관리.
2층 칸막이가 된 가족실은 5∼8 명의 단체가족일 경우에 한해 빌려준다.
자가발전 난방시설이 있고 밤 10시에 소등, 산장 아래 50m 지점에 샘물.

매점에는 초코파이, 비스킷, 건전지 라면 가스연료 부식을 판매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직영하는 산장이라 술은 팔지 않는다.

사전 예약없이 이곳을 찾는 인파가 몰려들면 발 딛을 틈도 없다.
하여, 산장 건물 아래.. 지상 1m도 안되는 틈새 안까지, 비박 인파.
인파가 몰릴때면 산장의 복도와 계단 아래 구석까지도 새우잠 인파.

예약 없이 산장에서 일박하려면,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50세 이상 여성은 1순위>이고 <60세 이상 남자는 2 순위>.
<50세 이상 남자는 3 순위>이고 그 이외에는 같은 조건이다.

제44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설립) 국립공원을 보전하고
자원에 대한 조사·연구, 시설의 설치·관리, 자연공원의 청소,
공원 이용에 관한 지도·홍보와 그 밖의...' 대통령령이 정하는..'

대통령 긴급명령 악천후 일기예보...(폭설 태풍 호우)
이 때 제 44조 법령을 어기면 50 만원의 벌칙금이 고지.
관리공단직원들 만류를 어기고 야간산행을 강행할 경우.
벌금을 내더라도 몸만 무사하면 천만다행한 경우가 많다.

벽소령산장에서 세석산장까지는 '마의 구간'.

세석산장으로 이어지는 모든 등산로는 조난사고가 빈번한 곳.
거림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짧지만 그곳도 길이 끊기면.. 위험.
가벼운 마음으로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특히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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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산장에서 취사할 때에, 독초와 뱀을 조심해야 한다.
세석평전 등산로 주변 개울가에서 가장 흔한 <동의나물>....노란 꽃
미나리아재비과인 동의나물은 나물이란 이름의 독성식물.

특히, 산나물로 꼽는 곰취와 구별이 쉽지 않다는 사실.
곰취인줄 잘못 알고 먹고는 식중독 걸리는 경우가 많다.
하여, 동의나물과 곰취를 구분방법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꽃이 지면 동의나물과 곰취는 구분이 힘들다.
<곰취>는 잎에 털이 있고 테두리에.. 톱니 무늬.
<동의나물>은 잎에 털이 없고 테두리가 밋밋하다.

<곰취>는 잎자루에 골 따라 양쪽에 자색 무늬
<동의나물>은 잎자루 골 따라 무늬가 없다는 점.

<동의나물의 꽃>은 사실 꽃잎이 아니고,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것 뿐이이란 점.

'하얀꽃이 세석평전에 저렇게 많이 피어 있을까?' <꽃황새냉이>.
양귀비목 십자화과 쌍떡잎식물. 두해살이풀, 냉이꽃 닮은 큰 4 꽃잎.
꽃은 긴 꽃대에 달린 꽃이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한여름까지 핀다.

산소결핍 상태로 인해 급하게 일어나는 호흡곤란에 대한 진정효과.
중추신경 억제재 수면제 원료로 쓰였으나 요즘은 몰핀으로 대신한다.

이곳에서 흔한 <쥐오줌풀꽃>은 진정 진경제, 담배의 가공 향로.
연분홍꽃이 모여 핀 꽃술 위로 벌 나비가 모여들 만큼 꿀이 많다.
예전에 쥐오줌 풀은 약재 원료로 쓰였지만, 현재는 사용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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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초가 많은 초원은 맹독성 독사 종류의 서식처.
특히, 꽃뱀은 철쭉꽃으로부터 독을 공급받는 독사.
정해진 등산로에서 이탈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세석평전



<지리산 제 7 경 - 세석평전의 철쭉. >
해발 (1,500m) 경남 함양군 하동면에 위치.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넓고 경사 완만한 평원.
5~6월 철쭉 꽃 장관이 아름다운 '남녘 최대의 고원'.

마치, 티벳 고원을 연상하게 하는 세석평전.

티벳고원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황하강 발원지
우리나라 민족에게는 마음의 고향이자 영혼의 고향.
티벳 유목민 후손답게 이곳에서 말을 달린 옛 화랑들.

세석은 이름 그대로 잔돌이 많고 30리에 걸친 대평전.
처녀의 핏빛 투명한 속살처럼, 분홍 色 고운 철쭉 바다.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발디딜 틈 없는 세석평전.......3만9천여㎡

세석은 촛대봉(1,704m)과 영신봉(1,652m) 사이의 고산평원.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 하여 불리어 지게 된 이름..세석평전
해마다 5월 말~ 6월초 철쭉이 만개할 때이면 인파로.. 인산인해

세석의 초원과 철쭉 군락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세석평전에는 계절 따라, 야생화가 다투어 피고 진다.
신라시대 노고단과 함께 '화랑의 심신수련장'이었던 곳.
구한말 동학 농민군, 일제 징용 징병 거부자들의 피난처,

빨치산 남부군들의 근거지이자,
6.25 전후 화전민들의 보금자리.

1972년부터 매년 6월 첫째 주말에 열어왔던 철쭉제.
진주 산악회 주최 산상 축제는 88년까지 5년간 중단.
공식행사가 중단한 동안에는 진주 산악회에서 산신제.

철쭉제 중단후, 세석의 자연환경은 거의 회복.

89년 6월 3일 18회 철쭉제는 5년만에 부활되었고,
산상축제도 자연보호 경진대회로 성격이 바뀌었다.
<지리산 제 모습 찾기운동> 및 <미스 철쭉 선발대회>
   

'시인 김석(金汐)의 표현을 인용하면..'

세석 계곡 가득히 피어있는 철쭉꽃,
그 사이사이로 울고 있는 뻐꾹새 소리,

훈풍이 꽃 사이로 지날 때마다
꽃들의 환상적이고 화사한 흔들림,

그것은 남녘 나라 눈매 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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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은 처녀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
철쭉꽃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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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1704m).



.............동

...........촛대봉 ........도장골~~~~~↘...........................남
...........세석 산장...음양샘~~~~~~~길상사~~~~거림
...........영신봉....한벗샘~~~~.삼신봉.↗. .........청학동.

.............서


                                          
천왕봉-제석봉-장터목-연하봉-촛대봉-세석-영신봉-
칠선봉 -선비샘-덕평봉 -벽소령-형제봉-연하천-
화개재-삼도봉-노루목-임걸령-노고단-성삼재.     

'지리산 능선 상 많은 봉우리와 고개마루들.'

촛대봉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자연 훼손이 가장 심각.
그러나, 지리산에서 가장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곳.
촛대봉 암봉들은 등산로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촛대봉은 세석평전에서 천왕봉 방향의 봉우리.'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영신봉을 마주 바라보는 위치.
천왕봉 웅장함과 발 아래 도장골 풍경이 조화를 이룬 곳.
촛대봉 아래 40분 거리, 그곳은 지리산 나물 최대 군락지.

이곳 등산로가 산꾼들에게 알려진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내대 거림마을 사람들이 나물과 약초를 뜯으려 다녔던 길,
1950년대에는 지리산 빨치산이 환자후송병원의 환자 비트

'아직 자연환경이 살아 숨쉬고 인적이 드문 등산로.'

밀금폭포 아래 위 용소, 와룡폭포, 들돌골, 시루봉골 촛대봉골
아직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비경들을 품은 촛대봉.
지리산에 아직 이런 코스가 남아 있다는 것은 산꾼들에게 축복.

거림마을 들머리 매표소에서 오른쪽 200 m 숲속의 길상사.
도장골에서 유일한 시설물이고 그 이외엔 희미한 등산로들.
촛대봉 계곡과 연하봉 계곡이 만나는 바로 아래에 와룡폭포.

이곳까지 오기 전 500 m 쯤에서 시루봉으로 오르는 왼쪽길.
시루봉골 옆을 지나 촛대봉 능선까지 오르는 데도 1시간 30분
세석산장에서 촛대봉 샘은 20분 거리,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다.

촛대봉 정상에 서면 먼 산등성이들이 파도치듯 춤춘다.    
발 아래 사막처럼 펼쳐진 세석평전 따라 흘러내린 암릉.
점점이 촛대처럼 솟은 바위봉우리들 틈새로 붉게 핀 철쭉.

광활함일까? 황량함일까?
기이함일까? 절묘한 조화일까?

촛대봉에서 영신봉으로 이어진 애틋한 전설은 지리산의 백미.
세석평전과 아울러 음양샘에 얽힌 비화가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촛대봉의 전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신비함의 절정.

'과연, 촛대봉은 어떤 전설과 신비를 간직한 곳일까?'


<촛대봉 독립 산행코스>

의신 - 대성골 - 큰세개골 - 영신대 - 세석산장 - 촛대봉.
거림 - 도장골 - 촛대샘 - 촛대봉 - 세석산장1박 - 음양수 - 거림,
<밤 11시 50분 서울역 출발 - 진주행 무궁화 호 기차- 구례구 하차.>


.................촛대봉의 전설.............................

촛대봉에는 '음양샘의 비밀'에 관한 전설이 있다.
지리산에 최초로 들어와 살았다는, '전설 속 연인'.
호야(乎也)와 영신( 일명 : 연진아씨 라고도 부른다).

두 사람은 대성골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펴고 정착.
그들은 지리산의 대자연 속에서 인간적인 자유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했던 사랑은 너무도 짧게 끝나 버린다.

'결국, 촛대봉의 전설로 남은 애틋한 사랑.'

지금부터 그 애틋한 촛대봉의 전설 속으로 들어가보자.
호야와 영신은 산나물과 과일을 따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는 한 가지 아쉬움이 따랐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 호야가 집에 없을 때
영신에게 찾아온 곰이 알려준 음양샘의 비밀.

"세석평원에 아이를 낳게 해주는 신비의 샘이 있어요."

영신은 남편과 상의할 틈도 없이
음양샘으로 달려가 샘물을 마신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나빴던 호랑이
그 사실을 산신령에게 고해 바친다.

산신령은 음양수의 비밀이
인간에게 누설된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곰은 토굴에 갇우고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만든다.

한편, 음양수 샘물을 훔쳐 마신 영신에겐 무거운 형벌.
그날부터 영신은 세석평전에서 혼자서 철쭉밭을 가꾼다.
세석 철쭉꽃이 그녀 손끝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 때까지.

그리고, 영신은 밤마다 촛대봉에 촛불을 켜고 잘못을 빌었다.
산신령에게 잘못을 빌다가 영신이 돌로 변한 곳이 '촛대봉 정상'
그곳에는 한 여인이 기도하듯 무릎 끓고 앉아 있는 모습의 바위.

촛대 모양 암봉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촛대봉.
촛대처럼 뾰죽한 암봉들이 기이한 형상으로 서있다.
촛대봉 고개마루 길가 암봉이 영신이 돌로 변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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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는 중국 진나라 당시부터 유래된 밤을 밝히는 불.
진시황은 촛불로 아방궁을 밝히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하여, 촛불로 신방을 밝히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성행한다.

한반도는 고대사회로부터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지역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촛불의 유래는 진나라와 차이가 없을 듯.
하여, 촛대봉 이름으로 전설의 시대적인 배경을 찾긴 어렵다.

촛불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상징한다.
촛불은 지상에 사는 사람의 뜻을 하늘에 전하는 매개체
이 때 촛불은 신단수, 솟대, 탑 등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화촉을 밝힌다'는 말은 부부 합궁을 뜻한다.
촛불의 흰 빛은 신랑 신부의 순결을 상징한다.
촛대는 남근의 상징이며 촛불은 여성을 의미한다.
촛대봉의 전설을 보면, 영신은 촛불의 상징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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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이 무릎 꿇고 앉아 잘못을 비는 것은 석고대죄.
석고대죄는 거적 깔고 앉아 벌을 기다리는 궁중법도.
순결을 지켜야 할 신분의 여인이 사랑에 빠진 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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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의 노여움을 샀던 음양샘 전설의 여 주인공.'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 같기도 하다.
영신이 음양샘을 마시기 전까지 대성골은 에덴 동산.

영신과 호야 두 사람 만이 행복하게 살았던 지상낙원.
그러나, 영신이 음양샘을 마신 후 그 낙원은 사라진다.
마치 에덴동산 선악과를 아담 이브가 따먹고 난 후처럼..

'죽음보다 혹독한 형벌을 받는 영신과 호야.'

고해성사를 하는 여인의 모습과 같은 촛대봉.
그곳에서 석고대죄를 하던 끝에 돌로 변한 모습.
죽은 후에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의 형벌'.

'영신이 죄를 빌다가 돌이 되었다는 촛대봉.'

호야가 죽은 영신을 찾아헤메다 돌로 변한 영신봉.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촛대봉과 마주보이는 위치.
호야가 죽은 곳이지만 영신의 이름을 본따..영신봉.

'멀리 떨어져 마주보며 그리움만 삭이는 연인.'

.......................촛대봉의 형태..............................
촛대봉은 넓은 구릉에 올망졸망 뾰족뽀족 선 바위 군락.
멀리서 보면 작아 보여도 가까이 다가서면, 큰 바위 숲.
그곳 큰 바위 암봉들은 목숨을 위협할 만큼 높고 험하다.

그곳 큰 바위 숲은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접근이 어렵다.
길따라 울타리로 막혀 있어 그곳 큰 바위 숲은 잘 보존된 듯.
고산지대의 희귀식물 자생지는 한번 망가지면 회생이 어렵다.

일반 등산로는 인파에 짓밟히고 패여 사막과도 같은 분위기.
촛대봉 정상 팻말 옆 바위에 잔돌로 쌓은 탑들이 눈길을 끈다.
그곳 위에 앉은 모습으로 돌이 된 영신의 슬픔을 달래주려는 듯..

촛대봉은 영신봉을 마주보며 세석을 품은 곳.
광활한 세석평전 양끝에서 마주보는 연인인듯.

처녀의 순결한 피로 물들인 듯한 세석평전 철쭉꽃.
촛대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연이어 있는 암봉 숲.
마치, 촛물이 흘러내린 듯하여 유래된 이름, 촛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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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마다 날카로운 바위 표면이 살을 찢는 촛대봉.
겉보기엔 부드러워 보여도 칼날을 품은 듯 한 암봉들.
온몸의 피부는 물론 여린 속살까지도 사정없이 파고든다.

아득한 태고에는 바닷가의 갯바위였을 것 같다는 느낌.
그것은 광활한 세석평전에 깔린 잔돌들도 역시 마찬가지.

지리산은 6천 5백만년 전에 화산 폭팔로 형성되었단다.
3천만년간 용광로처럼 용암이 끓다가 식은 후 빙하시대.
한반도는 1억 2천만년전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

한반도는 공룡 서식처일 만큼 열대 우림지역.
세석의 갯바위는 태고에 이곳이 바다였던 흔적.
오랜 세월 지각변동으로 바다에서 솟아오른 고원.

칠,팔천년전 빙하가 녹아 세석평전의 표면을 깍아내린 듯.
그곳에 남은 갯바위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부서져 흩어진 듯.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환경의 변화일까?

세석의 잔돌들은 오랜 풍화작용을 거쳤어도 날카롭다.
영신은 세석평전 철쭉을 가꾸며 열 손가락이 찢겼을 듯.
밤이면, 촛대봉 날카로운 바위가 속살까지 파고들었을 듯.

촛대봉은 잠시 앉아 머물기에도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운 곳.
음양샘을 마신 죄에 비해, 산신령 노여움은 지나치다는 느낌.
'영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던 형벌이 아니었을까?'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면 시야 가득 펼쳐진 세석평전.
영신의 피에 물들어 붉은 듯 세석평전 가득한 철쭉꽃.
온 몸에 피를 다 쏟고 속죄의 기도 끝에 돌이 된, 영신.

영신의 슬프고도 애달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촛대봉.
아직도, 촛대봉 높은 곳에서 삼신봉을 내려다 보는 영신.
영신은 돌이 되어서도 아직도 그곳에 무릎꿇고 앉아있다.
당장 달려가면, 만날 거리에서 돌이 된 연인 '영신과 호야'.

'이 보다 잔인한 형벌이 어디에 또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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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의 전설은 불교 교리에서 유래된 것 아닐까?'

지옥은 저주받은 영혼들이 형벌을 받으며 거주하는 곳.
환생할 때까지 생전 악행 만큼 마귀들에게 고통받는 곳.
망각의 국을 마시고 윤회의 수레에 오르기 전 머무는 곳.
망각의 국을 마시면 지옥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잊게된다.

원시 종교에서 죽은 영혼의 종착지는 어두운 지하세계
외딴 섬 또는 지하세계의 깊은 심연(그리스 타르타로스)

기독교의 지옥은 유대교 개념이 밑바탕인 '저주의 장소.'
마귀와 그 휘하의 악한 천사들이 지배하는 불타는 지역
원래, 지옥의 개념은 불교에서 시작되어 유래된 듯 하다.

촛대봉은 불교에서의 지옥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촛대봉은 바늘방석과 뜨거운 지옥 불구덩이를 상징.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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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열 지옥

<등활지옥>은 몽둥이로 얻어맞고 살이 찟겨
죽음에 이르렀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
똑 같은 고통을 되풀이해야만 하는 지옥을 말한다.

<흑승지옥>은 검정 오랏줄이 살을 갈갈이 찢는 지옥.
<중합지옥>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겪는 지옥.
<규환지옥>은 고통에 못이겨 짐승처럼 울부짖게 되는 지옥.
<대규환지옥>은 규환지옥 고통보다 강도가 한층 더 심한 지옥.

<초열지옥>은 불길에 휩싸여 살이 타는 고통을 겪는 지옥.
<대초열지옥>은 초열지옥에 비해 한층 견디기 뜨거운 지옥.
<무간지옥>은 한 순간도 멈춤없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옥.


8한 지옥.

<알부다지옥>은 너무 추워 온몸에 수포가 퍼져 고통겪는 지옥.
<나랄부타지옥>은 온 몸의 수포가 터지면서 더욱 고통겪는 지옥.
<알타타지옥>은 살을 에는 추위에 떨며 "알타타"를 외쳐대는 지옥.

<하바바지옥>은 더 심한 추위에 못견뎌 "하바바"를 외쳐대는 지옥.
<호호바지옥>은 "후후바"라 겨우 외쳐댈 만큼 추위에 시달리는 지옥.
<올발라지옥>는 혹한에 살이 벗겨져, 청련화(범어)처럼 보이는 지옥.

<발특마지옥>은 혹한에 살이 찢겨져, 마치 홍련화처럼 보이는 지옥.
<마가발특마지옥>은 혹한에 온 몸이 찢겨, 큰 홍련화처럼 보이는 지옥.


8열 지옥은 칼날이 촘촘하게 박힌 길을 걷는 지옥.
칼날 잎사귀 나무 숲속을 걸어가야 하는 지옥이다.
이 숲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살점이 잘려 나간다.
이 때 숲 속 점박이 개들이 그 살점을 주워 먹는다.

그리고, 큰 쇠못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숲속의 지옥.
이 지옥의 옥졸들을 피해 도망다니면 살점이 찢긴다.
더구나, 나무 위에는 쇠부리가 달린 새들이 살고 있어,
사람의 눈, 심장, 간을 쪼아 먹어 숨 돌릴 틈조차 없다.

아직도 지옥의 길은 멀고도 험하며 고통스럽다.
펄펄 끓는 물에 삶아지며 살과 뼈가 녹는 지옥
끓는 물에서 나오지못하게 무서운 옥졸들이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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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가르치는 불교 교리에 비해 무서운 지옥.'

불교의 교리는 인간의 성욕을 금기로 여긴다.
특히, 여성의 애욕은 전생의 죄악으로 여긴다.
하여,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은 비구보다 많다.

촛대봉의 전설은 불교의 교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남자인 호야보다는 여자인 영신에게 유독 가혹한 벌.
그러나, 전설 내용은 영신과 호야는 수도자가 아니다.

따라서, 애욕으로 인한 형벌로서는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영신이 잔인한 형벌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석평전과 영신봉까지 살펴보아야 그 의문점이 풀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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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평전의 철쭉꽃은 여전히 해마다 피어난다.
마치 돌로 변한 영신의 피맺힌 한에 붉게 물든 듯.
촛대봉의 주변은 인파로 훼손될 만큼 풍경 좋은 곳.

그곳의 능선 등산로는 지리산 전체가 보이는.. 전망대.
동쪽은 가까운 듯 멀리 천왕봉, 서쪽은 아스라히 반야봉.
남쪽은 도장골, 청래골, 북쪽은 한신계곡, 하동바위 능선.

인적 드문 먼 계곡 아래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길가엔 구상나무, 가문비 나무, 침엽수들의 억센 둥치.
모진 풍파에 견디느라 부대낀 듯 한결 같이 키가 작다.

'분재와도 같은 주능선 길가 또는 바위틈 나무들.'

수천년 세월을 그 자리에서 태어나 스러지고, 다시 태어난 그들.
'나무마다, 풀 한포기마다..아름답고도 신비 가득한 '꽃말의 전설'.
마치, 자연 속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유래 및 전설을 속삭이는 듯.
오랜 세월동안 모진 풍파를 겪으며 영신과 함께 아픔을 나눈 듯.

촛대봉을 닮은 듯.. 뾰죽한 모양과 침엽을 갖고 있는 구상나무.
'88 올림픽 나무'로 선정되었던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수종이다.
지리산 능선마다 볼 수가 있고, 높이 18m까지 자라는 상록교목.
마치, 이곳의 구상나무 숲은.. 촛대봉 유래와 전설을 말해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