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봉.
지리산에는 형제봉이란 봉우리가 3곳이 있다.
1. 주능선에서 벽소령과 명선봉의 사이에 형제봉.
2. 남부능선
마지막 봉우리, 함양군 악양면 형제봉.
3. 구례군 마산면 형제봉까지 3 봉우리 지명이 같다.
1.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꼭 지나는 형제봉.
'형제봉의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인듯 하다.
요정의 유혹을 피하려다가
돌부처가 된 형제.
'형제 돌부처'는 선종불교의 상징인듯.'
선종 불교는 비구 비구니를 고수하는 종파.
옛부터 고승들이 참선 또는 득도에만 전념.
삼정산 7 암자에는 득도한 고승 유적이 많다.
............삼정산에서 화개천까지...............
실상사 약수암 삼불사 문수암 상무주 영원사 도솔암
조계종이 개화하기 시작한 실상사를 시발점으로 하고,
선종의 중흥조 보조국사 지눌이 깨달음을 얻은 상무주.
중북부
능선 동쪽은 삼불사 문수암을 낀 골짜기
'견성골'과 벽소령에서 내려서면 '음정마을'이다
삼정산 능선과 와운능선
사이는「와운골」「굴밭골」
S자로 휘어지는 주능선상「삼각고지」까지 중북부능선
'영원봉'까지는 굴곡이 심하며 이후부터 꾸준한
오르막.
삼정산 오름길은 꾸준한 인내심을 요구할 정도로 지루하다
음정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 이후 부드러운 산길.
토끼봉 과 명선봉 사이에서 발원해
주능선 남쪽 빗점골을 거쳐 화개천.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일어난
순천
반란군을 끌고 1953년 9월까지 유격전.
6년에 걸쳐 유격투쟁을 주도한 이헌상.
빗점골에서 총탄을 맞은
시체로 발견.
화개장터 앞의 섬진강변에서 화장된다.
그의 최후 미스터리는 아직도 수수께끼.
그 빗점골을 이루는 세
가닥 지류.
명선봉 과 삼각고지 사이에서 발원
형제봉에서 빗점골 향해 흐르는 '절골'
명선봉에서 남쪽 아래로 흐르는
'산태골'
토끼봉 아래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왼골'
빗점골, 대성골 화개천으로 가는 3 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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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돌부처가 있는 인근의 봉우리..
형제봉.
삼정산 7암자 길이 끝나는 도솔암 위 삼각고지.
삼각고지는 연하천에 가까운 벽소령과 중간지점.
지리산
종주를 하면 반드시 거치는 형제봉.
형제봉은 오르막 내리막이 험해, 조난사고 빈번한 곳.
벽소령과 연하천 산장의 중간지점
전망이 탁 트인 곳.
형제봉 정상은 등산로에서 벗어난 왕관 형태 바위지대.
잡목과 바위들이 뒤엉켜 쉴 곳도 없는 정상.
볼일 본 흔적이 많아 자칫 잘못 밟기 쉬운 곳.
형제봉에서 인적 드문 곳을 찾다보면 안성맞춤.
지리산 종주 중
형제봉 마당바위는 휴식처
등산객들이 으례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전망대이다.
발 아래 수많은 산등성이는 파도치는 바다 물결
같다.
초저녁 별부터 새벽녘에 스러지는 별들이 아름다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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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가득한 은하수 별빛 아래로 흘러가는 초생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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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대자연 속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부르기에 적당한 노래이다.
길벗과 어울려
밤새도록 머물러 있어도 마냥 즐거운 곳이다.
일몰 일출 운해 아침이슬 등등 시시각각으로 조망이 변화무쌍.
2~3 인용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터는 등산로 바로 곁 한곳 뿐.
약간 비탈진 바위공터가 불편하긴 하지만, 비박하기.. 적당한 곳.
그
아래는 커다란 바위에 15m 깊이로 20 여명이 들어갈 만한 동굴.
'산행 도중에 악천후를 만나면 긴급 대피할 장소'
형제봉 정상 주변에서의 탁 트인 밤하늘은 유난히도 곱다.
그곳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면 달맞이 고개 전설이 생각난다.
'달나라 월계수에 관한 중국의 전설'도 형제봉과 어울리는 전설 .
.........................달맞이
고개의 전설.............................
부산 달맞이고개를 넘어 가는 고개길, 와우산에 얽힌 전설
해운대
양반집 도령이 사냥을 매우 좋아해 매일 사냥 나갔다.
어느 날 와우산 계곡에서 나물캐던 미모의 처녀를 만나게 되었다.
도령은 처녀에게 “무슨 짐승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고 물었다.
처녀는 못 보았다고 대답하자, 도령은 그냥 아쉬운 듯
지나갔다.
한참 후 어디서인지 송아지 한 마리가 처녀 앞으로 다가와 울었다.
"음매 음매" 울며 갈 줄 모르더니 처녀의
집까지 따라왔다.
다음날 처녀는 송아지를 데리고 어제 간 계곡에서 나물을 캤다.
이제껏 따라오던 송아지는 간 곳 없고 어제 만났던
도령 나타났다.
내년 정월 대보름달이 뜰 때 다시 만나자 약속.
그후 도령과 처녀는 서로 연모하는 사이가 된다.
이듬해 정월 대보름날에 다시 만나, 혼인을 약속.
그 소원이 이루어졌기에 지금도.. 달맞이 고개.
정월 대보름에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뤄지는 곳.
부산 달맞이 고개를 넘어 가는 고개길은..카페 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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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월계수에 관한 중국 전설.......................
중국의 오강은
삼년간 선도를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 사이 오강의 부인 아녀연부와 염제 신농씨의 손자 백릉이 통정.
그녀는 임신한지
3년 만에 세 아들 고(鼓), 연(延), 수(?)를 낳았단다.
오강은 화가 나서 백릉을 죽였다.
태양신 염제는 오강을
월궁에 유배.
잘라도 죽지 않는 월계수를 베는 벌을 주었다.
월계수는 오백장씩 자라고 잘라도 다시 붙었다.
그는
끝없는 월계수를 베어내고 또 베어내야 했다.
오강에게는 몹시 괴롭고 힘든 형벌이었다.
오강은 세 아들을 데리고 달나라로
도망간다.
오강 부인도 세 아들을 찾아 달나라로 쫓아갔지만
고 연은 토끼와 두꺼비로 변했고 수(?)는 행방 묘연.
전설 속의 한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밝혀지지 않는다.
'혹시, 수(?)는 은하수가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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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별자리 전설...........
밤하늘에서 북두칠성과 마주보는 카시오페아 좌.
이디오피아 공주 '안드로메다' 이름을 본딴 별자리.
오렌지 빛과 청록빛이 조화를 이룬 두가지 색의 별.
'안드로메다'는 여자의 머리카락이란 의미.'
안드로메다 유성군 별빛은 마치 빛나는 여인의 머리카락.
은하계
밖의 우주에는 수천억개의 집단 은하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200광년 거리라 눈에 보이는 별은 안드로메다 성운 뿐.
안드로메다는 카시오페아의 딸이자 에티오피아 공주.
허영심이 남달리 강한 에티오피아의 왕비 '카시오페아'.
바다의
님프 네레이드(Nereid)들보다 아름답다고 자만.
화가난 님프들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복수를 요청.
포세이돈은
괴물을 보내 카시오피아의 미모를 빼앗는다.
카시오페아는 신탁에게 미모를 되찾을 길을 알려달란다.
신탁은 딸 안드로메다를
괴물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한다.
카시오페아는 딸을 해안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제물로 바친다.
이때 메두사를 처치하고 돌아가던
페르세우스가 그녀를 구한다.
카시오페아는 사후에 의자에 묶인채 하루에 절반을 꺼꾸로 지낸다.
그녀는 허영심에 대한 죄로
밤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한 벌을 받는다.
창끝같은 가시의자에 묶였어도 도도한 허영심을 자랑하듯 빛나는 별.
카시오페아는
어두운 밤하늘에서 북쪽을 알려주는 별자리.
북극성을 사이에 두고 멀리 북두칠성과 마주보는 카시오페아.
북극성을 중심으로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밤하늘을 돌고 있는 별.
은하수는 아가 헤라클레스가 빨던 헤라의 젖에서 생겼다고도 한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
아들이지만 부인 헤라에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제우스는 아들에게 불사의 몸을 주려고 헤라의 젖을 몰래 먹이려 한다.
'헤라
여신의 젖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불사약.'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에게 젖을 먹일 리 없는 헤라.
헤라가 잠든
틈에 젖을 물리자 품속 아가에 놀라 잠이 깬 헤라.
제우스에 대한 질투심으로 뿌리쳐 밤하늘에 뿌려진 젖이 은하수.
헤라
여신의 젖이 지상에 떨어진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백합이다.
훗날, 장성한 헤라클레스는 헤라 여신과 화해하고 헤라를 돕는다.
하여, 그 이름은 <헤라 여신의 영광>이란 의미이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대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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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 별자리...............................
왕관
별자리와 거문고 별자리 사이에 '찌그러진 H 자.'
백조 별자리의 데네브와 거문고 별자리 베가의 연장선상
여름철
직녀(Vega)별의 서쪽에 무릎꿇고 엎드려 있는 모습
특별히, 밝은 별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뚜렷한 윤곽의 별자리.
별자리
중심에 나비 또는 H자 모양이 헤라클레스의 몸체이다.
H 형의 별자리는 직녀와 왕관 별자리 중간에서도 볼 수 있다.
BC
540년경 창건한 고대국가 그리스의 전설적인 영웅
아르카디아 사슴뿔을 뽑는 등 그에 관한 복잡한 신화.
그는 아르고스 왕국의
가신이며 족장인 실존인물 같다.
그는 제우스와 페르세우스의 손녀딸 알크메네의 아들.
제우스는 그를 그리스의 통치자를
삼겠다고 맹세했지만,
헤라의 계략으로 에우리스테오스가 그리스의 왕이 되었다.
성장한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오스를 섬겨야
했고,
질투심과 복수심이 강한 헤라의 박해에 시달려야 했다.
제우스의 정실 부인인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죽으려한 탓.
아기
헤라클레스는 헤라가 요람에 넣은 뱀 2마리를 죽인다.
헤라클레스는 보이오티아 오르코메노스 왕국과 전쟁에서 승리,
왕녀인
메가라와 결혼했지만 헤라가 그에게 내린 광기의 발작.
그녀와 아이들을 죽이고, 다시 에우리스테오스의 신하가 된다.
헤라클레스에게 12 어려움을 겪게 한 것도 에우리스테오스.
①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는 일로서 이후로 헤라클레스는 그
가죽을 입었고,
② 9개의 머리를 가진 레르나의 히드라를 죽이는 일,
③ 아르카디아의 잡기 힘든 사슴을 잡는 일,
④ 에리만토스 산의 멧돼지를 잡는 일,
⑤ 엘리스 왕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단 하루 만에 청소하는 일,
⑥
스팀팔리아 늪지에 사는 사람을 먹는 괴물새들을 쏘아 죽이는 일,
⑦ 크레타 섬을 공포에 떨게 했던 미친 소를 잡는 일,
⑧
비스토네스의 디오메데스 왕의 사람을 잡아먹는 암말들을 잡는 일,
⑨ 아마존 여왕 히폴리토스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일,
⑩
서쪽 끝에 있는 에리테이아섬을 다스리는 몸이 3개인 거인 게리온의 소떼를 잡는 일,
⑪ 헤스페리데스가 세상 끝에서 지키고 있는 황금사과를
가져오는 일,
⑫ 지하세계에서 그곳의 문을 지키는 머리가 3개인 개 케르베로스를 데려오는 일
12 어려움을 극복한 그는 또
다른 다른 일을 시작했다.
데이아네이라에게 청혼하려 강의 신 아켈루스와의 격투.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오다가 만난 켄타우로스인
네소스.
그녀를 범하려 하자 헤라클레스는 독화살로 그를 쏘았다.
켄타우로스는 죽어가며 데이아네이라에게 일러준다.
자신의 피는 그녀만 사랑하게 만드는 주술이 담긴 힘.
몇 년이 지난 뒤 헤라클레스가 이올레와 바람을 피우자,
그녀는
헤라클레스 바람기를 막으려 피묻은 옷을 보낸다.
그녀는 그 옷이 헤라클레스 사랑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헤라클레스는
죽음의 옷을 입자마자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그것을 떼려 하였으나 그럴수록 옷은 살을 더 단단히 붙었으며
네수스의 증오는 그의
몸속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퍼져갔다.
그것은 마치 몸을 둘러싼 불꽃같아 제거할 수 없었다.
마침내 헤라클레스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장례 준비.
높은 산에 올라 곤봉을 머리 맡에 두고, 스스로를 화장.
헤라클레스는 용감했지만 가련한 최후를
맞이했던 영웅.
이 때 그의 몸을 태운 불꽃은 핏빛으로 하늘까지 번졌다.
이때 제우스는 흰구름 전차를 타고 달려와 아들을 구한다.
헤라클레스를 불속에서 꺼내 밤하늘에 올려놓았다.
하늘을 바치고 있던 아틀라스 신도 비틀거릴 무계.
그 육체는
밤하늘의 '헤라클레스 별자리'로 변한다.
그의 영혼은 올림프스 산에서 불멸의 신이 된다.
그의 시체를 장작더미에 놓여
태웠다는 오이타산.
그는 하늘로 올라가 헤라와 화해하고 헤베와 결혼.
헤라클레스는 힘센 대식가, 호주가, 친절한 바람둥이,
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문학과 예술에서 묘사되어 있다.
활과 곤봉을 무기로 쓰는 그는 상인과 무역업자들의 신.
헤라클레스는 한반도 고대국가 조상들과 공통점이 많다.
사슴, 소 멧돼지 활 곤봉, 그의 성격, 무역업자들의 신.
그가 다녀 왔다는 전설 속의 소아시아는 현재 터키 반도.
'지구의 끝' 한반도까지 왔다고도 하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를 떠오르게 하는 한반도의 고인돌 유적.
우리나라에서 가장 폭 넓게 알려진 헤라클레스 전설.
사자 자리,
작은사자자리, 머리털 자리, 바다뱀 자리.
왕관자리, 처녀자리, 목동자리. 등등은 봄철의 별자리.
밤하늘의 별자리에는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신화가 많다.
'헤라클레스의 별자리는 무릎 꿇고 엎드린 모습.'
옴팔레 여왕에게 사랑의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
모습.
신들 노여움으로 3년간 옴팔레 여왕에게 매맞고 산다.
그 전설에 관해서는 '팜프 파탈'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
.......................백합...................................
백합은 원래
중국 이름이고 우리나라 이름은 '나리 꽃'.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쫓겨나
세상의 괴로움을 알며 이브가
흘린 눈물이 땅에 떨어져 백합.
하여, 기독교에서는 '성모의 꽃'이라 하여 부활절에 사용한다.
백합꽃이 기독교 의식에서
많이 쓰이게 된 유래가 있다.
옛날 아리스라는 어여쁜 처녀를 탐낸 못된 성주가 있었다.
아리스는 성주의 온갖 유혹의 마수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아리스는 성모 마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린다.
성모 마리아는 아리스를 백합꽃으로 만들어
순결을 지켜준다.
백합의 꽃말은 희고 깨끗함
그 자체가 순결을 상징한다.
'은하수 = 헤라 여신의 젖.
백합 = 이브의 눈물 = 순결.'
........................................
형제봉 달빛은 벽소령 명월 못지 않다.
태고의 정적과 고요 속에 구상나무 숲
형제봉 일대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빛
천추의 한을 머금은듯 차갑고 창백한 달빛
마음이 시리도록 푸른 달빛.
신비함마저 흐르는 둥근 명월
커피 한잔의 향기에 빠지는 맛.
태양처럼 뜨겁고,
사랑처럼 달콤하며,
악마처럼 검은 향긋함.
신의 저주를 받은 늑대.
달에서 보름 동안은 굶고
보름은 달을 뜯어 삼키는 벌.
늑대가 씹다 흘린 달
조각
밤하늘에 흩어져 별들이 된다.
'별들의 고향'은 달이라는 전설.
그곳에서 비박하며 마시는 커피 맛
동
서양 전설과 함께 어우러져서 일품.
야영 자유롭던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 곳.
그곳은 마치 숲속 '요정들의 별천지'와도 같은
곳.
밤하늘 가득 쏟아질듯한 별빛은 잠 못 이루게하는 유혹.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떡갈나무 잎마다 맺힌 이슬.
물안개 운무가 피어오르며 환상같이 다가오는 주변의 경치.
골짜기마다 깊이 잠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새벽녁의 풍경.
찬란한 아침 햇살이 눈부실 무렵에 아침 이슬로 고양이 세수.
발 아래 펼쳐진 구상나무 숲 넘어,
새벽 녘에 다가오는
산넘어 산등성이.
산등성이 골짜기마다 기지개 켜는 운무.
산봉우리마다 휘감아 도는 구름바다 물결.
선녀들 고운
춤사위 자태인듯 현란한 운무.
달빛 아래 들려오던 여인 신음 같은 바람소리.
자연이 빚는 소리는 시시각각 다른듯.
달빛 소나타처럼 애잔하게 흐느끼는 듯.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가슴을 치는 듯.
마치, 간밤에 유혹했던 숲의
요정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
안개가 자고 있는 계곡마다 해뜨면 잠에서 깨어나듯 기지개.
숲의 요정들이 하늘 위에 하얀 잠옷을
떨쳐버리는 듯한 풍경.
환상적인 운무가 시선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경관.
동녁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찬란한 아침 햇살.
어느덧 아침 해도 운무와 어울어져 하늘 위로 두둥실.
'숲의 요정들과 햇빛이 어울려 춤추는듯..'
형제봉은
'형제봉의 전설'에서 비롯된 지명.
그 '전설의 고향'은 쉽게 찾을 수 없는 위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형제봉 주변에 없다.
우선, '형제봉의 전설'부터 소개를 하고
그 전설의 고향을 뒤따라 찾아보기로 하자.
.............................형제봉의 유래.................................
옛날 성불수도 하던 두 형제가 산의 요정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道身)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오랫동안 부동자세.
하여, 몸이 굳어져 돌로 변했다 하여 형제봉이라 명명되었다.
..................................................................................
'얼마나 요정들의 유혹이 강렬했으면,
두 형제의 몸이 굳어져 돌이 되었을까?'
'형제봉의 전설'에는 토속적인
에로티시즘이 물씬 풍긴다.
형제봉은 지리산에서 유일한 에로티시즘 전설의 고향이다.
에로티시즘은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에서 유래.
우리나라도 내용이 보다 알찬 에로티시즘 전설이 필요한 시기.
하여, 에로스 및 에로티시즘에 관한 유래를
여기에서 소개한다.
....................사랑의 신, <에로스>......................
에로스는 로마시대에 큐핏 또는 아모르라고 불렀다.
에로스는 '대지의 신' 카오스와 밤의 여신 닉스의 아들.
카오스는
혼돈이란 뜻이며 닉스는 '태초의 힘'이란 의미.
'출산의 여신' 또는 '무지개의 여신'의 아들이란 설도 있다.
'제우스와
아프로디테(비너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에로스는 활과 화살을 지닌 어린아이 외모의 '사랑의 신'.
에로스의 화살은
사람은 물론 신의 가슴에도 사랑의 고통.
에로스와 인간 프시케와의 사랑 이야기가 곧 에로티시즘.
.................................................................................
'프쉬케의 상징' 나비 무늬는 여성복, 장신구에 쓰인다.
나비는 어두운 땅속에서 7년을 견딘 후에야 하늘을 난다.
7년의 괴로움을 겪고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란 뜻이다.
'에로스의 화살'은 <심장에 꽂힌 화살> 문신으로도
쓰인다.
사랑의 희열을 심장의 고통으로서 표현한 것이 에로티시즘.
결국, 가슴 터질듯한 신음을 토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정.
.........................에로티시즘의 유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에로스에서 유래.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육체적 욕망보다 심리에서 발생한다.
인간의
문화적 전통, 신화, 풍속, ·종교, ·예술, 문학속에 뿌리.
고대인의 성생활은 극히 자유로운 것이었고 개방적이었다.
중세
그르스도교의 위선에 저항한 에로틱한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 라파엘의 조형미와 보카치오. 아레티노의 문학
8세기
프랑스의 사드 또는 카사노바처럼 종교적 속박에 도전
19세기 낭만주의에 이어 근대 에로티시즘의 역사는 성의 과학.
엘리어트,
프로이드·. 킨제지 등등에 의해 과학 및 철학에서 학문
현대사회는 대중화된 에로티시즘 영화 ·텔레비전·출판물
스트립쇼
누드집 등을 이용한 섹스 산업 또는 패션 산업화.
과거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에로티시즘은 오늘날 가시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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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 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연하천 일대는 넓은 야영장소.
연하천 산장 수용 능력이 모자라 그곳 야영장은 늘 북적거렸다.
특히 연하천 샘물이 풍부한 것도 야영터로 인기 끈 이유였던 듯.
성삼재 도로가 뚤리기 전까지는 대원사에서 화엄사로 지리산
종주.
일출봉이라 불리운 장터목 산장 일대와 연하천 산장 일대가 야영장.
하여, 장터목에서 첫날밤을 야영하면 연하천에서 둘째날
밤을 보냈다.
성삼재 도로가 뚫린 후에는 연하천에서 일박후 장터목에서 둘째 날 밤.
장터목은 춥고 일기변화가 극심하지만
연하천은 포근한 야영장소.
지리산 종주를 하다가 만난 남녀가 친숙해질 수 있는 연하천 일대.
장터목은 몸을 씻을 물이 귀하지만
연하천은 씻을 물이 풍부한 탓.
하여, 총각들의 설렘이 <형제봉의 전설>을 탄생하게 한 듯.
그러나, 서양에
비해 형제봉의 전설 내용이 빈약한 느낌이다.
전설이 빈약하면 '전설의 고향' 역시 그 존재가치가 떨어진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속 주인공 또는 역사 이야기.'
전설의 고향은 문학의 산실이 되고 관광자원의 보고가 된다.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어 선진국에서는 막대한 외화 수입원.
흥행 성공작 한편의 영화 수입은 우리나라 일년 예산과 비슷.
영화 속 배경무대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부각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외화 획득의 효자상품, 관광산업의 굴뚝없는 공장.
유럽은 날조된 전설까지 보약을
재탕하듯 톡톡히 우려먹는다.
특히, 건전한 섹스산업까지도 권장 육성하는 추세이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 성욕 발산을
도와주는 일
장애인 전용의 윤락업소, 공개적인 섹스 자원봉사 권장.
"장애인을 위해 섹스 자원봉사를 해보지 않겠습니까?"
손발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은 성욕은 어떻게 견딜까?
신체장애 1급 기관절개로 산소흡입기를 사용하는 장애인.
섹스
할 때만큼은 생명 보존 장치인 산소통을 떼어놓는다.
목숨걸고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려 윤락업소를 찾는다.
쉰살에 처음으로
여자와 성관계를 가져봤다는 다케다
열 다섯 군데 윤락업소에서 거절당한 후에야 겨우 해소
돈으로 거래하는 윤락업소도 장애인은
받아주지 않았다.
야마모토 사유리는 장애인 섹스 자원봉사를 선뜻 나선다.
성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한 채 죽어가는 장애인은
참 많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 당한 장애인을 위한 자위
섹스 자원봉사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그녀는 더이상 견디기 힘들어 그 일을 그만두었단다.
99년 일본에 생긴 장애인 전용 윤락업소 출장 여성들.
장애인들은 윤락업소까지 이용해 성욕을 풀어야 하는가?
그것은 비판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하기도 하다.
생활고
주부가 장애인과의 섹스 댓가로 받았던 2만 5천엔
그러던 도중에 섹스 자원봉사 단체로부터 부탁을 받는다.
보수는 똑같은
금액을 제시했고 보수도 정확히 지불해준다.
그녀는 거부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섹스 자원봉사 내용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창녀들이 장애인을 위한 섹스 자원봉사.
일본에선 A급 호스트들이 장애인 DC 50%를 해주고 상대.
네덜란드 경우 36개
자치단체가 장애인에게 섹스지원금
우리나라에서도 선진국과 유사한 제도가 필요한 시기.
섹스는 더이상 음성적인 행위로
인식되어서는 안될 듯.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밝고 건전한 성 관념이 필요하다.
2. 함양군 악양면 형제봉.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 부른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이라 부르는 것처럼.
투르크는 고구려와 같은 시대에 존재한 돌궐족
고구려와 같은 우랄 알타이족 계통이었던 돌궐.
워낙 우호적인 사이라
'형제의 나라'라 불렀다.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위구르에게 멸망한 돌궐은 오스만 투르크을 건설
지금도 터키는 코리아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그래서, 터키인들은 코리아를 사랑한다.
설령, 코리아가 터키를
몰라준다고 해도.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과 터키 3,4위전.
대형 터키 국기가 코리아 관중석에 펼쳐지자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한다.
6.25 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1만5천 터키군 파견.
'그중 4천명이 전사했던 우방
터키 UN군.'
..................터키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는
위치에 있는 이스탄불.
무역, 문화, 민속, 군사, 종교, 역사의 중심지.
기원전 657년 그리스 비잔티움으로 명명되고
서기 196년에 내란으로 도시가 재건설되었고,
330년 로마 대제가 수도 이전후 콘스탄티노플.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
세계 3대 강국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제국 수도
현재 1,200만 명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이스탄불
그야말로,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를 간직한 도시.
.................................................................
옛부터 우리나라를 '형제의 나라'라 했던 중국.
고소산성을 애워싼 형제봉은 신라시대 지명인듯
나당연합군이 결성된
시점에 명명된 듯 추정된다.
하동군 악양면의 형제봉
지리산 남부능선 끝자락.
하동군은 삼국시대 신라의
한다사군(韓多沙郡)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 하동군으로 개칭
악양현 합포현(화개) 등 4개현을 영현으로 관할.
'한나라가 한사군을 설치한 4군 중 하나.'
....................한나라..........................
중국은 4천년 동안 지켜온
'중화'란 민족적 자존심
하여, 이민족이 통치하기가 용이한 민족이 아니었다.
그 인민을 통치해 태평시대를 이뤄 놓았던
한족(漢族).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최초 고대국가 하나라.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
진시황 역시
북방의 흉노족 침입을 막기 위해
수많은 성들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건설했다.
이후 들어선 한나라 역시 이민족 침력에
시달렸다.
그것이 바로 5호(강,저,선비,흉노,갈)의 침입이다.
이들은 진나라를 남으로 내몰고 16개 나라를 세운다.
북쪽은 북방 이민족이 남쪽은 한족이 다스리는
남북조시대가 중국에서 200년간 지속되게 된다.
....................................................
하동군 섬진강 유역은
장마전선이 제일 먼저 상륙
양자강 유역에서 동진한 저기압골로 최대 다우지역.
탱자나무·팽나무·비자나무·동백나무 등을 비롯해
상록활엽수와 북부 고산지대는 젓나무·자작나무 등.
하동군은 옛부터 중국과 밀접한 문화교류 지역이었다.
남부능선이
섬진강에 잠기기 전 우뚝 솟은 악양 형제봉.
천왕봉 제석봉 촛대봉을 거쳐 남부능선으로 이어진 비경.
비옥한 땅을 품은 형제봉은
신선대를 끝으로 강에 잠긴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과 화개면에 위치.
이곳 형제봉은 성제봉이라고도 한다.
이름
그대로, 성군 같은 어진 산이다.
신라 진성여왕 당시 명명된 지명인듯.
당나라 황제에게 태평송을 받친 진덕여왕.
그로 인해 신라는 당나라와 밀접한 외교관계
백제로부터 국가 존망의 위협을 받던 신라.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신라.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나당연합군을 결성
결국, 신라는 나당연합군 결성으로 삼국통일.
사실
상 성제봉은 신선이 된 단군의 상징.
진성여왕은 당 황제를 단군 적통으로 섬긴듯.
당 황제를 신선이 된 단군 같은 성군으로 추앙.
'진성여왕의 외교술이 돋보이는.. 성제봉.'
................성제봉................
청구국이 멸망한 후에 생겨난 나라가 단국
3 배달나라가 차례로 돌아가며 통치했던 단국.
태제, 홍제, 성제 3국이 돌아가며
단군으로 등극.
태제는 3한 정기를 이어받은 백제 왕을 일컫는 칭호.
홍제는 3한 정기를 이어받은 신라 왕을 일컫는 칭호.
성제는 3한 정기를 이어받은 고조선 왕을 일컫는 칭호.
단군은 기자에게 양위하고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
기자 조선은
삼한시대 진한이고 훗날 신라가 된다.
성제봉은 3한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전략적인 요충지.
하여, 성제봉 위에는 신선대
성제봉 아래 위치한 고소산성.
...................................
삼신봉 거쳐 이곳
악양 지나 진주를 지나
고성 무랑산, 함안 여항산, 김해의 신어산.
영신봉에서 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낙남정맥.
지리산 산세는 섬진강을 지나 광양의 백운산으로 이어진다.
형제봉은 세석에서 시작되는 남부능선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그러나, 대부분 남부능선 등반에서는 제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세석-삼신봉-성불재 구간에서 대부분 불일폭포, 쌍계사로 직행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는 성불재∼형제봉 코스를 포기한다.
남부능선은 세석-삼신봉 -성불재 -형제봉 -신선봉
-고소산성(30 km)
대부분 세석-삼신봉 -쌍계사간 20km 구간 만을 산행 대상으로 여긴다.
쌍계사, 불일폭포 등의
빼어난 경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불재-형제봉-신선봉-고소산성 경관도 일품.
형제봉(1,115m)은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같다.
남부능선 끝이지만 정작 남부능선 종주산행에서 제외되는 봉
형제봉 그 자체가 독립된 산행 대상지여서 최근
주말 인기코스.
소설 토지(土地)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들녘의 풍성함
아름다운 섬진강의 비경과 백운산의 자태를 만끽할
만한 곳.
성불재, 내원재를 지나 시리봉 못 미쳐 삼거리 오른쪽 형제봉.
삼거리 왼쪽으로 가면 시리봉을 지나 조식 선생이
넘던 회남재
청학동과 묵계에 갈수도 있고, 성불재에서 형제봉까지 2∼3시간.
형제봉 등산로는 악양면 등촌리에서 시작하여
하산은 신선봉,
고소성 따라 19번 국도 코스와 성불재 거쳐 쌍계사로 가는 코스.
고소산성과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는 중국의
악양성과 유사하다
천년 전 삼국시대 당시 고소산성은 1966년 사적 제151호
고소산성은 하동에서 화개장터 가는 국도따라
차로 20 분
동북으로 지리산, 서남으로 섬진강과 동정호가 있는 요충지.
남해에서 호남으로 통하는 길목을 움켜쥐고 있는
위치.
경남과 전남 경계이자 화개장터 지나 불무장등 끝 지점
신라와 백제의 접전지역이고, 하동은 신라 영역(한사군)
고소산성 둘레는 800여m. 장방형 바위를 쌓아올린 석성(石城).
남북 양쪽에 성문, 높이는 3.5∼4.5m, 아래폭이
6m, 상면폭이 2m.
신라가 백제와 왜(倭)와의 협력을 차단할 목적으로 축조한 산성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비옥한
평사리 들녘을 무대로 한 소설 토지
악양이란 지명은 우리 조상들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의 발로.
하동군 악양면 산너머는
하동군 화개면이고 위쪽으로는 청학동이다.
형제봉까지는 길이 잘 나있고 원강 재너머 내원재까지는 잡목숲.
내원재 가기 전
하동에서 시작되는 시리봉과 만나는 인근은 산죽.
대낮에도 무서운 느낌이 드는 산죽밭에서 헤엄치듯.. 걸어야 한다.
'평사리에서 세석까지 1박 2일 또는 2박 3일 소요.'
3. 구례군 마산면 형제봉.
'형제처럼 두 봉우리가 닮았다 하여 형제봉.'
두 봉우리를 하나의 지명인 형제봉이라 부른다.
부흥산맥 최남단
암릉으로 이어진 지리산 조망대.
광활한 억새밭과 초원이 길게 이어진 고리봉 능선
고리봉(708.9m) 전북 남원시 주생면,
금지면, 대강면
고리봉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동악산과 마주보고 있다.
고리봉과 동악산은 섬진강으로 나뉘어 있지만,
두 산 사이의 강 7km 유역 계곡의 지명은 '솔곡'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이 군사동맹을 맺었다는 솔곡.
........형제신과 옥녀 자매 전설.............
형제봉은 형제신이 살았다는 '전설의 고향'.
형제신은
선녀들인 옥녀 자매와 장래를 약속.
사랑을 택할 것인가? 구도의 길을 택할 것인가?
결국, 구도를 위해 산속으로 은둔한
형제신.
어느날 갑자기, 사랑을 잃어버린 옥녀 자매.'
형제신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비며 방황한다.
그리움에 지쳐
죽은 옥녀 자매는 요정으로 환생.
연하천 요정이 되어 은둔한 형제신을 찾아 헤멘다.
결국, 연하천 요정들에게 쫓기다 돌로 변한
형제신
형제신이 돌부처로 변한 곳이 지리산 삼각바위.
지리산의 삼각바위에서 가까운 봉우리가 형제봉.
하여, 3.
형제봉에서 유래되었다는 1 형제봉 전설.
또 다른 전설은 '호야와 영신. 음양샘'의 전설.
호야는 형제신 중 하나 영신은
옥녀신 중 하나.
하늘나라 계율 상 서로 사랑해선 안될 연인 사이.
음양샘 마신 죄로 촛대봉의 돌로 변한 옥녀
옥녀를 찾아 헤메던 호야가 돌로 변한 영신봉.
3 형제봉은 '1 형제봉과 음양샘 전설'의 산실.
.................................................
이 전설 속 형제신은 신라와
백제의 상징.
옥녀 자매는 김해 가락국과 대가야의 상징.
가락국은 신라와 합병, 대가야는 백제와 합병.
'그
역사적인 배경을 품고 있는 전설인듯.'
........솔곡 8개 명소..........
우암탄, 청계상류, 자만연, 석탄,
청계중류, 청계하류, 임석탄 7개 명소
우암탄과 청게 상류 사이 '살베' 라는 곳.
...........................................
골산(骨山)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리봉
소금배를 묶어두었던 '고리' 에서 유래.
고리봉 연봉 산행 코스 들머리가 형제봉.
지금 남원 시내를 관통하며
흘러내리는 요천
100년 전 하동 소금배가 요천 물줄기를 거슬러
남원성 동쪽 오수정(참나무정)까지 올라왔단다.
당시
소금배 중간 정박지가 금지평원
고리봉 동쪽 절벽이 배를 묶어두던 곳.
소금배와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 고리봉.
조망도
좋지만 산세가 뛰어난 고리봉.
호남정맥은 장수 팔공산에서 만행산 천황봉 거쳐
고리봉, 삿갓봉, 두바리봉, 그럭재, 문덕봉
산줄기.
고리봉에서 문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코스
지리산에 들어선듯, 설악산 암릉을 거니는듯
지리산 주능선과
섬진강을 바라보며 걷는 맛
다른 산에서는 느껴보지 못할 즐거움.
행정구역상 남원시 주생면, 금지면, 대강면 등,
3개면에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에서 4 연봉.
고리봉이 가장 높고, 문덕봉은 용아장성 축소판
남원에서 곡성
방향으로 국도를 달리다보면
금지평야 서쪽에 하늘금을 그리는 병풍 암릉.
북에서 남으로 풍악산, 노적봉, 문덕봉,삿갓봉
서남쪽 섬진강 직전에 남쪽능선 끝에 고리봉
큰바위 암벽에는 소나무가 이끼처럼 다닥다닥
정상에 서면 남원 시가지와
주생, 금지평야
고리봉 남으로 뻗은 곡성 지방 마산봉.
동악산(動樂山), 형제봉으로 이어진다.
두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같아.. 형제봉.
암릉이 미끄러운 비오는 날은 주의해야 한다.
지리산 출입 통제기간에는 이곳 산행도 좋을듯.
..........................................
..........................................
지리산 일대 3 군데에 있는.. 형제봉 지명.
역사적인 배경은 서로 깊은 관련이 있는 듯.
요정.
'요정이란
무엇이며 어떤 존재일까?'
요정(妖精, fairy)은 초자연적인 아름다운 존재.
사람보다 오래 살지만 영혼이 없어 죽으면
끝장.
요정의 나라는 죽은 자들이 사는 곳과 비슷한 곳.
요정의 나라에서 무엇을 먹거나 마시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한다.
요정은 사람과 서로 사랑하면 결혼할 수도 있지만,
지켜야 할 몇 가지 제약을 어기면 둘 다 죽게
된다.
요정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온다.
요정들은 사람과 크기가 같거나 작으며,
키가 10㎝ 정도
밖에 안되는 요정도 있다.
여자 요정은 운명을 예언할 수도 있었는데,
특히 출생이나 죽음을 예고하는 힘이 있다.
요정을 물리칠 수 있는 고추나물과 서양가시풀
요정들이 아끼는 산사나무, 현삼화와 금방망이
이것들을 함부로 다루면
요정에게 보복 당한다.
'요정은 여성스러운 소녀의 아름다움을 상징.'
벽소령 작전도로에서 가까운 위치의 형제봉.
벽소령 작전도로 바로 아래에 숨어있는 절골.
절골은 연하천 산장에서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
절골 삼태골 왼골은
빗점골에서 합류한다.
빗점골 일대는 남부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
빗점골 일대는 통일신라 화랑의 심신 수련장.
통일신라에서 미륵불 신앙이 부흥했던 시절.
신라 원화가 청소년 군단 화랑을 이끌던 시절.
빗점골 일대는 미륵신앙 속
이상향과도 같은 곳.
화랑을 따르는 선남선녀 집단의 심신수련장.
빗점골에서 낭만적인 자유연애도 성행했을듯.
당시 신라공주 원화는 살아있는 미륵보살의 상징.
그후 원화 제도에 애정 다툼 문제점이 많아 폐지.
원화 대신에
화랑집단을 이끌었던 신라의 고승들
여성의 애욕을 죄악시 여기는 불교의 교리.
차츰 화랑 집단은 짙은 불교색체로 변한듯.
하여, 화랑 집단은 남자 중심의 단체로 변모.
화랑은 불교 교리에 따라 여색을 멀리한듯.
연하천 요정은 절골 마을의
소녀들인듯 싶다.
통일신라가 고려에 합병된 이후에도 절골은 존속.
이조시대에 들어와 절골은 폐쇠된듯 추정된다.
하여, 절골 마을의 소녀들도 뿔뿔이 흩어진듯.
'미륵불 신앙의 상징'으로 여겼던 절골의 소녀.
사찰마다 종교의식에
성처녀였던 절골의 소녀.
사찰이 폐쇄된 이후 연하천 요정으로 묘사된듯.
옛부터 스님과 무당은 이상적인 한쌍의 부부.
스님은 불교 교리에 따라 사찰의 의식을 집행.
무당은 사찰 경내 칠성각을 중심으로 무속신앙.
대처승은 스님과 무당의
결합에서 출발.
비구승은 독신으로 불교교리에 따른 참선.
고려 시대 성행했던 삼정산 일대의 7 암자.
참선수행과
고행으로 득도에 전념한 비구승.
형제봉의 전설 속에서 형제를 유혹한 요정들.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시대 전설로 추정된다.
................
등명락가사.
.................
정동쪽 약수터가
유명한..강릉 등명락가사
우리나라 정동(正東) 쪽에 위치한 사찰이다.
동해를 끼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7번 국도 입구
관광 도로를 끼고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곳.
등명락가사 일주문 한 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나침판
일주문에
있는 나침판은 우리나라에서 등명락가사 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에 있다는 표식으로서 설치한 듯.
절 입구 일주문 옆에
'등명감로약수'는 신비의 약수
영산전에 5백라한을 조성 봉안 후 발견되었다는 약수
마시거나 목욕하였을 때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고 표시.
빈혈이나 신경증 등 부인병 피부염에 효과가 있다 한다.
실제로 마셔보며 물맛이 특이하다.
달짝지근하면서도 뒷맛이 텁텁하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수다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고려 때 중창돼 많은
스님들이 수도 정진한 사찰이었으나,
이조 초기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폐사되었던 등명락가사.
폐사에 대한 두 가지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임금 눈에 안질이 생겨 점술가에게 물어보니,
정동에 있는 큰절에서 나온 쌀뜨물이 동해로 흘러
용왕이
노해 안질을 앓게 되었다고 하자 왕명으로 폐사
또 다른 하나는 이조 초 정동에 있는 '등명'의 불을 끄면
불교가 망한다는
유생들의 상소에 의해 폐사됐다는 것이다.
1957년 '낙가사'란 이름으로 암자가 지어졌고,
1980년에 중창불사를 시작해
지금의 등명락가사.
현재의 등명락가사는 중창을 거듭해 규모도 상당.
경내에는 옛날 등명사와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등명사지 5층석탑이 연화무늬 기단 위에 우뚝 서 있고
중창한 대웅전·극락전·오백나한전 등이 어우러져 있다.
그중
관광객 눈길을 끄는 나한전 고려청자 오백나한상
인간문화재 유근형 옹이 만든 청자 나한상은
세계적으로도 보기힘든 각각 다른
생생한 표정.
대웅전 극락보전의 벽에는 석가모니 일생이 그려진 벽화.
특히, 악마(여색)가 석가모니를 유혹하는 적나라한
장면
이 벽화는 다른 사찰 대웅전의 벽화와 상당히 다른 느낌.
부처를 유혹하는 선정적인 자태의 여인들.
거의 춘화에
가까울 만큼 옷을 벗은 여인들.
교태로운 몸짓으로 수도중인 석가모니를 유혹.
...........................................
...........................................
'형제봉의 전설'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벽화.
신라시대 이와 유사한 사찰 벽화가 성행했을듯.
팜프 파탈.
우리나라의 전설 속에 나오는 매혹적인 요정이 드문 듯.
동화에 나오는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 정도가 고작이다.
아니면, 토속적인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는 개울 목욕 장면.
뽕밭, 옥수수밭, 아니면, 물레방아간 농도 짙은 정사 장면.
<형제봉의 전설 속> 숲의 요정은 어떤 부류일까?
남자의 시선을 일순간에 사로잡는 신비한 여성의 매력.
그녀 앞에서 어떠한 남자도 거부할 수 없는 불길한 끌림.
여인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일과 인생이 점점 꼬이는 남자.
이런
유형의 여성을 19세기말 문학계에서는 팜므 파탈로 통칭.
'남자를 파멸시키고 마는 '치명적인 성적 매력을 지닌 여인.'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한 이브.
적장과 동침한 후에 목을 베는 유디트.
돈 때문에 삼손을 배신해 눈멀게 한
데릴라.
성서와 신화, 역사, 문학작품 속 팜프 파탈 이미지
19세기말 탐미주의 예술가들이 빚어낸 환상적인 여인.
사랑과 죽음, 쾌락과 고통의 주제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자기 나라를 침략한 적군의 장수 홀로페르네스에게 접근
성적인
매력으로 그를 유혹해 동침한 후 목을 벤 유디트.
젖가슴을 풀어헤친 그녀의 손에는 적장의 목이 들려 있다.
'남성에게
성적매력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팜프 파탈.'
...............남성을 사로잡은 전설의 여인(요정)들..................
<사이렌>,
<리디아의 여왕 옴팔래>, <팜프 파탈>, <마타 하리>
그녀들은 한결같이 남성을 사랑의 노예로 만든
'전설의 주인공'.
우선, <로마 그리스 신화> 중 <사이렌 전설>을 떠오르게 한다.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넋을 빼앗기게 된다는 세이렌.
남자를 유혹해 잠들게 한 다음 그를 죽이고 살을 뜯어먹는 요괴.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호기심에 끌려 세이렌 노래를 들으려한다.
결국, 자신의 몸을 돛대에 단단히 붙들어 맨 채로 노래를 듣는다.
세이렌 노래에 홀린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밧줄을 풀라고 명령.
그 부하들은 더욱 단단히 묶어 오디세우스는 죽음을 모면하게 된다.
'오늘날, 사이렌은 경보·시보·신호에 사용되는 음향기계.'
리디아 여왕 옴팔레는 팜프파탈의 대명사.
헤라클레스를 단 한순간에 사로잡은 미녀.
옴팔레를 위해 황금 양산을 받쳐주었던 헤라클레스.
옴팔레를 등에 태운 채
네 발로 궁전을 기어다닌 영웅.
남장여인 옴팔레 매력에 사로잡힌 여장남자 헤라클레스.
요염한 여인과 정력이 넘치는 근육질
남성의 불같은 사랑.
헤라클레스는 애욕의 노예가 되어 그녀에게 매 맞으며 산다.
옴팔레의 잠옷을 입고 여장 차림으로 뜨게질 하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 몸속에 갇혀 있는 여성스러움.
옴팔레의 매력은 여성 속의 숨은 남성다움.
남장여성과
여장남성이 벌리는 뜨거운 사랑.
그리스 신화속 테이레시아스라는 최고의 예언가.
그는 7년간 여자로 지낸후 남자로 되돌아온
인물.
'성관계때 남녀 어느 쪽이 더 쾌감을 느낄까?'
제우스와 헤라의 입씨름때 심판으로 호출되었던 인물.
여성이 훨씬 더 즐겁다고 대답해 헤라의 분노를 산다.
옴팔레는 그리스 신화에서 남성을 유혹하는 최고의 요부.
얼마나
매력이 넘치면 헤라클레스를 애완견처럼 길들였을까?
헤라클레스가 그녀에게 매맞고 살게 된 것은 신들의 노여움 탓.
홧김에
친구를 때려 죽인 헤라클레스는 옴팔레 궁전 노예살이.
제우스와 비너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에게 신들이 결정한 형벌.
옴팔레는 남성을
유혹하는 재주로 헤라클레스를 멋지게 혼내준다.
'프랑수아 르 무안' 그림을 보면,
헤라클레스 전설을 더욱 실감한다.
헤라클레스를 애마처럼 길들인 옴팔레의
매력.
감미로운 눈맞춤을 나누는 두 사람의 묘한 모습.
서있는 옴팔레를 다소곳하게 올려보는 헤라클레스
'양 손에
뜨개질 기구를 든.. 헤라클레스.'
사자 가죽 옷에 몽둥이를 겨드랑이에 낀 옴팔레.
여자 잠옷을 걸치고 옴팔레를 유혹하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를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며 서있는 옴팔레.
헤라클레스가 옴팔레에게 야양을 떨며 유혹하는 그림.
남녀가 바뀐 그림을 보면 까닭모를 해괴함이 느껴진다.
강물을 역류시킨다는 헤라클레스 속에 숨겨진 여성스러움.
'사랑은 남녀 정체성까지 뒤바꿀 위력이 있는걸까?'
헤라클레스를 위협하는 옴팔레 오른팔 겨드랑이에 낀 몽둥이.
야생마 같은 헤라클레스도 애욕의 노예로 굴복시킨 묘한 매력.
말처럼 네발로 엎드린 헤라클레스 엉덩이에 매질을 하는 옴팔레.
'그녀의 매질이 그를 다소곳하게 길들인걸까?'
헤라클레스가 3년간 매맞고 산 전설을 형상화한 그림
옴팔레
궁전에서 노예살이 한 헤라클레스에 관한 그림.
이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 짐작이 간다.
헤라클레스가 말처럼
엎드려 옴팔레에게 매를 맞은듯.
옴팔레 시녀들이 보는 앞에서 매질을 감수한 헤라클레스.
하늘의 신들은 그의 굴욕적인 모습을 내려다
보며 즐긴 듯.
힘으로는 누구도 당할 자 없는 야생마.. 헤라클레스.
싸워 저본 적 없던 그도 사랑 앞에 무력한
남자였을까?
옴팔레의 성적매력 앞에 무릎꿇고 여장까지 한 헤라클레스.
옴팔레의 몽둥이에 길들여져 다소곳해진 '헤라클레스'.
그녀의 채찍질에 길들여져 네발로 기어다닌 헤라클레스.
애욕의 노예를 몽둥이질로 굴복시켰던 남장 여인 옴팔레.
'옴팔레 특유의 '남성 길들이기' 비법일까?'
전설의 내용을 알고나면 풀리는 의문점들.
옴팔레와 헤라클레스의
사랑에 관한 전설.
지금부터 그 전설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자.
.....................옴팔레..............................
헤르메스에게서
헤라클레스를 노예로 산 리디아 여왕.
그녀는 숱한 화가들의 관심을 끌 만큼 관능적인 여인.
비너스 클레오파트라에 못지 않은 미모로
명성이 자자
특히 관능적인 매력으로는 첫째로 손꼽히는 여인.
그녀가 헤라클레스를 노예로 얻게 된 것은 큰 행운
난폭한 성격 탓에 신들의 노여움을 샀던 헤라클레스
리디아에서 3년간 노예생활을 하는 저주를 받게 된다.
리디아는
옴팔레 여왕이 지배하는 여인들의 천국이다.
리디아는 매일같이 육체의 향연이 벌어지는 전설의 나라.
신들은 옴팔레 여왕에게
헤라클레스를 노예로 넘겨
영웅으로서는 참을 수 없을 온갖 모욕을 겪게 한다.
신들은 헤라클레스의 굴욕적인 모습을 보며 즐긴다.
옴팔레는 헤라클레스를 노예로 산 리디아 여왕.
그녀는 비너스와 클레오파트라 못지 않은 관능미.
그 관능미로
헤라클레스를 애욕의 노예로 길들인다.
헤라클레스는 옴팔레 궁전에서 3년간 노예생활.
무장을 해제당한 헤라클레스는 여장을
하게된다.
여장을 한 채로 옴팔레의 시중을 드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상징 = 황금사자 가죽 + 몽둥이.'
그 상징은 옴팔레의 옷과 장신구로 전락하고 만다.
헤라클레스의 황금사자 가죽옷을 입은.. 옴팔레 여왕.
여장을 하고
옴팔레 여왕에게 아양을 떠는 헤라클레스.
옴팔레를 등에 태운 채 궁전을 기어다닌 헤라클레스.
엉덩이를 드러낸채 그녀의
매질을 감수해야 하는 신세.
옴팔레는 헤라클레스를 애욕의 노예로 차츰 길들여간다.
슈프랑거 -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헤라클레스를 애완동물럼 길들인.. 몽둥이.'
옴팔레에게 충직한 노예 헤라클레스.
그녀 역시 점점 애욕의
노예로 변해간다.
헤라클레스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옴팔레.
노예를 주인으로.. 주인을 노예로 바꾸는 사랑의 힘.
옴팔레의 노예에서 속히 해방되고 싶었던.. 헤라클레스.
주인 옴팔레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마침내 헤라클레스의 매력에 빠진 옴팔레.
헤라클레스를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고 만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자유를
찾자마자 줄행랑.
옴팔레를 홀로 남겨두고 리디아에서 탈출.
3년간 노예생활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된다.
야성을 포기하고 양처럼 죽어 지냈던 헤라클레스.
그러면서도, 옴팔레 품에 안기면 관능적인 야성미.
사나운 맹수
같으면서도 솜털처럼 부드러운 매력 남.
옴팔레가 원하는 것이라면 다 해주던 남자.
여인처럼 베틀을 들고 실을 짓던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 대신에 사자 가죽 옷을 입은 옴팔레.
옴팔레의 명령에 복종했던 노예 헤라클레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섹시한 남자는 없었을 듯.
세상 모든 여심을 사로잡을듯한 헤라클레스 매력.
'프랑수아 르 무안' 그림에 담긴
전설의 내용.
천하의 헤라클레스를 몸종으로 두었던 옴팔레.
이 세상 어느 여자보다도 더 큰 행복을 누렸을듯.
헤라클레스가 떠난 후부터 가장 불행한 여자였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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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수난, 성자의 순교,
지옥의 형벌을 표현한 미술작품
사디즘 또는 마조히즘의 예술 혼.
오늘날 검은 가죽 자켓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상징.
채찍을 상징하듯 위압적인 가죽벨트 장식 미니스커트.
남성에게
무의식 중에도 정신적 가학을 요구하는 옷차림.
자물쇠, 방울이 달린 금목걸이 또는 발목에 두른 금사슬.
노예의 상징
장신구로서 남자에게 구속 당하고 싶은 여심.
오직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한 남자만을 위해 살고싶은 여심.
한 남자에게
노예처럼 구속받고 싶은 내면의 표출.
굴욕적인 자세로 엎드려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거나 때리기.
주인의 발등에 입맞추며
노예로 복종할 것을 맹세하는 의식.
때리고 맞고 구속당하고 고통겪는 상상으로 느끼는 묘한 쾌감.
무의식적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추구한 여성 옷 패션.
장발을 날리며 도시를 누비는 여성 옷차림인 신세대 남성.
이조 때 암동모 짓을 하던
남사당 마당놀이에서 유래된 듯.
또는, '로마와 그리스 신화'의 옴팔레와 헤라클레스가 원조.
이성으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성욕을 느끼는 마조히즘
이성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로 성적 쾌감을 얻는 사디즘
각각 피학증과 가학증을 뜻하는 것으로 그 의미는
상반된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은 악어와 악어새같은 공존관계.'
마조히즘과 사디즘 용어는 모두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
마조히즘은 오스트리아 소설가 레어폴트 폰 자허 마조흐
자신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결혼 직후 자신을 나무에 묶어놓고
아내 오로라와 하녀 마리에게 자신을 매질해 달라고 간청했던 인물.
결국, 2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마조흐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해준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국내 최초로 표현한 영화., 거짓말.
외국 영화로서는 유사한 소재의 영화.. '올 레이디 두
잇.'
<거짓말>은 베니스영화제에서 알려진 뒤 국내에 알려졌다.
이 영화는 예매 시작 20분 만에 매진된
부산영화제 인기작
이 영화는 표현의 자유를 탄압받던 국내영화 현실의 돌파구
'변태 가학행위로 등급보류 판정을 받았던
영화.'
그러나, 막상 개봉하자 관객들의 반응은 슬픈 코메디 영화.
남자 주인공 엉덩이에 피맺힌 매자국은 동정심마저
일으킨다.
벌거벗고 회초리로 서로 맞고 때리며, "사랑해"를 외치는 장면
"저 남자 배우는 얼마나 아팠을까?"
"저
영화 찍으며 얼마나 슬펐을까?"
영화를 찍으며 실제로 몹시 울었다는 여배우 김태희.
옷벗은 수치심보다 회초리로 매맞는
엉덩이가 아팠던 탓.
영화를 찍으며 평생할 키스를 다한듯 해 억울하다는 그녀.
'영화찍으며 두려웠던 불안감..상영불가 판정
'
보수단체들은 적나라한 외설 시비를 걸며 사법처리 요구.
거짓말은 제작진이 법적 구속까지 각오하고서 만든 영화.
영화속 마조히즘과 사디즘은 관객에게 묘한 충격을 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몽둥이로 매맞는 느낌.'
영화가 끝난 후 감성어린 20대 초반 여성들은 의외의 반응
상당히 많은 여성이 남주인공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거짓말 영화속에서 중년남자는 잔인하게 버림받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울며 매달리던 이별 방식과 사뭇 다르다.
커다란 도끼 자루로 남자를 초죽음이 되도록 때린 후 결별.
외설 시비와는 거리가 먼 관객들의 호응으로 흥행은 대성공.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키스를 많이 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정말 정들었어요.
나중에는 영화와 그녀가
구분이 안되더라니까요."
영화 밖에서 남주인공이 했던 솔직한 심경고백.
영화속에 서로 주고받는 반말 대화도 색다르다.
38세 중년남자와 19세 여주인공과 영화 속 대화.
남 :“자, 나를 때려봐."
녀 : " 너하고 하고 싶어.”
남 : "제발 애원이니 나를 때려.”
녀 : “제이야, 나 너무 행복해.”
남 :“와이야, 나도 그래! 너무
행복해서
어쩌면 때려죽여달라고 부탁할지도 몰라.”
녀 : “난 널 망가뜨릴 거야. 그래도 좋아?”
남 : “넌 날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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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인 브라스 감독의 '올
레이디 두잇' 성애영화
틴토 브라스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성애영화 감독이다.
영화 거짓말 처럼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예술화 시킨
영화.
싸구려 이발소 같은 세트촬영에 윤기나는 조명,
여성 몸의 특정 부위를 감질나게 훔쳐보는 기법
관음증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성애영화의 거장.
정열적인 남편을 둔 20대의 아름다운 부인 다이아나
시 낭송 파티에서 원시적인 매력남
알퐁스를 만난다.
숙모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베니스로 간 다이아나.
뜻하지 않게 숙모의 아파트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고
베니스에 오면 들르라던 알퐁스에게 전화를 걸어 만난다.
알퐁스는 다이아나의 엉덩이를 보며 그녀 매력에 이끌린다.
그녀는 파격적인 정사를 나누고 귀가 후 남편에게 고백한다.
질투심으로 화를 주체못한 남편은 다이아나에게 별거를 선언.
브라스 감독은 쾌락의 매질과 훔쳐보기를 노골적으로 표현.
여성 내면에 깔린 에로티즘을 '올 레이디 두잇'에 담아낸다.
국내 영화제작 및 상영 현실과는 상당히 비교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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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존 콜리어 작
<릴리트>
소설 속 여주인공 <팜므 파탈>.
사랑에 빠진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
현대시회에서 가장 육감적인 여배우를 팜프 파탈에 비유한다.
최근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다투어 누드 화보를 출간하고 있다.
'팜므 파탈과도 같은 악녀가 되고 싶은 탓일까?'
연인 사이라도 보일 수 없는 곳을 드러내는 연예인들.
그
파급효과는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여성까지 번져간다.
한창 나이의 아름다움을 누드 화보로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
'그
화보집이 남자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팜므 파탈은 19세기말 탐미주의 문학에서의 인기 요부형 여성.
긴 머리카락에
희고 고운 눈부신 피부, 붉은 입술, 유혹적 눈빛,
성적 매력이 넘치는 미인의 전형적인 상징이 <팜므 파탈>의 모습.
현대사회에서 성윤리 가치관이 무너지고 자의식에 눈 뜬 신여성들
남성을 위한 희생자의 역할에서 남성을 지배하는 존재로 변한
여성.
남성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남성을 굴복시킨 공포의 여성 = 팜프 파탈.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 묘비명
그 주인공이 되길 바랐던, <존 키츠>.
23세로 요절한 천재 시인 존 키츠
재능과 드높은 야망을 타고난
인물.
폐결핵에 걸리자 재능과 야망도 물거품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을 앞두고 부질없는 삶을 깨닫게 된 것은 속절없는
사랑 탓.
"나는 여름날의 나비가 되어 딱 사흘 만 당신과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당신은 나에게 50 년
이상의 기쁨을 가져다 줄 듯."
키츠는 패니 브론에게 편지로 구애한다.
그러나, 그녀는 팜므 파탈과 같은 여자.
한
남자에게 매이는 것을 바라지 않은 듯.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만 있다면
어디에서든지 누구하고나 잘 어울렸다.
겉으론 키츠의 사랑을 받아주는 척했지만
키츠 입장에서는 속마음을 알 수 없던 여자.
존 키츠는 그녀를
사랑하면서 미칠 것 같은 질투와 광기에 사로잡힌다.
주변에서도 그녀 때문에 더욱 병이 깊어져 죽음에 이르렀다고 여길 정도.
결국
그녀 때문에 광기와 허무에 사로잡혀 미칠 듯한 번뇌 끝에 죽어간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이건 배신을 넘어
살인행위.'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랑하는 것을
지켜 보아야만 했던 존 키츠의 심정.
'혹시, 날 말려 죽일
속셈이냐?'
한편, 그녀가 떠나갈까 늘 두려웠던 존 키츠.
결국,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존 키츠.
수많은 남자들을 사랑의 노예로 사로잡았던 그녀.
그녀를 사랑한 남자들은 한결같이 존 키츠와 같은 고통.
하지만,
남자들은 그녀가 자신만 사랑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녀는 남자마다 한결같이 당신 만을 사랑한다고 속삭인 탓.
'그 탓에
이룰수 없는 사랑을 포기 못하는 그녀의 남자들.'
사랑의 노예가 된 남자들은 그녀에게 조롱당했다고 믿지 않는다.
사랑을
앞세워 뭇 남성들을 조롱하는 듯한 그녀의 심리가 묘하다.
남녀 사이에 끌고 당기는 심리전이 지나치게 강한 여자는 팜므 파탈.
'나르시즘 남성 심리일수록 팜프 파탈 여성에게 취약.'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버림 받고 싶지 않은
듯.
거짓 사랑에 빠져도 그녀가 자신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집착.
자존심이 강한 남성일수록 사랑하는 여성에 대한 집착을 포기
못한다.
'사랑이 떠난 후에도 영원한 사랑으로 남고 싶은 여심.'
어느 여자이든, 만났던 남자에게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여심.
여성 자신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인듯.
남자를 애욕의 노예로 만들어서라도 영원히 버림받지
않고픈 여심.
육체적 욕망을 거부하는 남성과의 사랑은 여성에겐 고통.
정신적 사랑을 원치 않는 여성과의 사랑은 남성에게
고통.
사랑없는 애욕에 빠지면 남녀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비극.
1차 대전 당시 팜프 파탈의 원조.
이중간첩의
대명사였던 <마타하리>.
실비아 크리스텔과 같은 네덜란드 출신.
누드에 가까운 요염한 배꼽 춤으로
유럽
상류층 남성들을 사로잡은 여인.
파리의 무랑루즈 바에서 스트립 댄스를 처음 선보인 미녀.
1917.10.15. 파리 교외
반센느 둑에서 알몸으로 총살당한다.
프랑스 5만 병력 가치가 있는 군사정보를 독일에 유출한 죄목.
그녀는 눈가리개조차
거부하고 사형장으로 간 당찬 여성.
12명 사수 앞에서 총살당하기 전에 외투까지 벗어 던진다.
본명
M.G.젤러(Margaretha Geertruida Zelle) 네덜란드 출생.
마타하리는 인도네시아어로 태양이란 뜻이다.
'여명의 눈동자' 즉 석양의 아름다움이란 의미.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매력을 지닌 여인.
그녀가 만난
남자들은 대부분 고위층.
프랑스 군부와 정재계의 유명 인사들.
네덜란드의 수상, 프로이센의 황태자
그외에 각국
실권자들을 포함한 다수.
..................................................
.........이조시대 팜프파탈 장록수............
연산군 총애를 받던 장록수는 본래 제안대군의 종
대군의 가노(家奴)에게 출가하여 자식을 두었으나,
용모가 아름답고 가무에 능해 연산군의 눈에 띄어
내명부(內命婦) 종4품
관작인 숙원(淑媛)이 되었다.
1503년(연산군 9) 종3품인 숙용(淑容)에 봉해졌고,
1506년 오빠 복수와 자녀들을
양인 신분으로 올렸다.
관선(官船)을 이용해 평안도 미곡 7천석을 무역하는 등
왕의 총애를 믿고 국사를 어지럽히며 재정의
궁핍을 초래
연산군 실정의 한 원인이 되어 1506년 중종반정 때 참수형.
장록수 기록은 [연산군일기] 10건,
[중종실록] 15건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는... 장록수.
그녀는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었는데,
집이 가난해 몸팔아 생활하고 시집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 가노의 아내가 되어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했다.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 들을 만 했고,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 들였는데,
총애함이
날로 융성해 말하는 것은 왕이 모두 좇았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어, 왕이 혹해 숙원을 삼았다.
부고(府庫)의 재물을 기울여 모두 그 집으로 보내었고,
금은
주옥(金銀珠玉)을 다 주어 그 마음을 기쁘게 해서,
노비·전답·가옥도 또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대하듯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렸으니, 김효손은 그 형부이므로
덕분에 그는 현달한 관직에 이를
수 있었다.
연산군은 장록수로부터 모성애를 느꼈던걸까?
아니면, 그녀 특유의 색다른 매력에 빠진걸까?
결국,
연산군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끈 장록수,
1498년 김종직(金宗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구실로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켜 사림파(士林派)를 숙청한
훈구파(勳舊派) 유자광(柳子光)·이극돈(李克墩) 등 일파.
연산군은 성균관을 유흥장 삼고
사간원 기능을 마비시켰으며
경연을 폐지하는 등 방탕한 생활로 민생을 혼란에 빠뜨렸다.
1506년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 등이 군사를 일으켜
성종의 2남 진성대군(晉城大君;중종)을 옹립하는 중종반정
그후 군으로 강봉되어
강화 교동(喬桐)에 유배되어 죽었다.
장록수 역시 반정군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 후
시신은 산속에 버려져 야생동물의 먹이가
된듯.
............................................
'형제봉 두 형제를 유혹한 요정은
어떤 유형일까?'
정상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전설의 고향.'
그곳은 정상에서 동떨어진 형제봉 초입
삼각고지에 있다.
연하천 산장을 지나면 형제봉 가는 길을 막는... 삼각바위.
'피라밋 형태의 바위산이 삼각고지 갈림길을
가로막고 있다.
대부분 우회로로 돌아가지만, 바위산 가운데 골이 패여 있다.
그 골을 타고 올라가면, 정상 오른쪽에 10 여 m
높이의 바위 벽.
더 이상 쫓길 수 없는 막다른 위치에 있는 돌부처.
온몸이 얼어붙은 듯, 바위벽에 기댄 두 형제의 형상.
난생 처음 겪는 요정의 유혹 앞에서 얼어붙은 듯 하다.
'요정의 유혹을 피해 숨바꼭질하듯 숨은 위치.'
잡목
숲 사이로 미궁과 같이 숨겨진 길따라 막다른 골목
피라밑 형태의 암봉 그 오르막 끝 바위 벽면에 두 돌부처.
잡목에 묶어있는
리본을 따라가면, 숨겨진 미로가 보인다.
그곳에서 연하천 산장 방향으로는 위태로운 바윗길.
삼각고지는 4 갈래길 한가운데
로타리와도 같은 위치.
대부분 등산객들은 삼각고지 정상을 오를 생각을 못한다.
하여, '형제봉의 전설' 속 형제 돌부처를
스쳐 지나간다.
우선 그곳 암봉의 바윗길을 올라가기가 겁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올라서면 의외로 주변의 전망이 참 좋다.
'인근 연하천이 요정의 별천지인 이유도 알 만큼.'
남자의 육체적 감성을 자극할 만큼 은밀한 막다른 위치.
성불수도 하려던 형제가 숲의 요정 유혹을 피해 도망친 곳.
숫총각에겐 이곳에서 만난 처녀가 마치 숲의 요정 같았을 듯.
하여, 마음속에서 솟는 애욕을 참다보면, 온 몸이 굳어졌을 듯.
마치, <형제봉의 전설> 속에서 돌로 변한 두 형제의
심경 처럼.
'아하!~~ 형제바위가 있어 형제봉이라 부르는구나.'
그 바위 벽 아래에는 비바람 피할 수 있는
비박터.. 하나.
그 맞은 편에 소나무 한그루 있는 곳은..전망 좋은 휴식처.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놀라울만큼 주변이 탁
트여있다.
하여 이곳 정상은 휴식장소로 찾는 등산객이 많이 늘어났다.
이곳에서 형제봉 방향으로 숨겨진 미로는 빨치산 루트
같다.
잡목 숲 사이로.. 길 같지도 않은 미로가.. 묘하게 숨겨져 있다.
따라서,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산행하면 이곳을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가면 진로를 막는 삼각고지.
피라밋처럼 생긴 바위봉우리 한가운데로 경사가 급한
바윗길.
삼각고지 갈림 길에 들어서면, 대부분 이 험봉을 피해 우회한다.
이곳 바위 봉우리를 올라야 "전설의 고향' 형제바위를 볼
수 있다.
험봉 아래에는 20 명 정도 수용할 만한 동굴이 우회로 곁에 있다.
예전에 빨치산 남부군과 토벌대가 숨바꼭질하듯
싸운 곳이라 한다.
'이곳 묻혀진 비화를 잘 개발하면, 무형문화재 가치가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은 고작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남량 특집用.
아니면, 영화 제작비용이 덜 들어가는 토속 에로물에 주로 씌여진다.
하여,
무형문화제 가치가 있는 <전설의 고향>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서양의 날조된 전설들에 비해, 현실감 높은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
<벽소령 산장>이 생긴 후, <형제봉의 전설> 의미는 점점 퇴색하는 듯.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도약할 잠재가치를 지닌, <전설의 고향>.
비구.
비구는 <팔리어>로'탁발하는 이'라는 뜻이며
불교에서 출가해 구족계를 받은 남자 수행자.
원래는 힌두교에서 집과 가족을 버리고 다만
보시 만을 받아 생활하면서 편력하는 수행자
불교가 일어난 기원전
6세기경 다른 종교에도 적용
탁발하는 수행자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
불교에서는 출가해 구족계를 받은 남자 수행자만
지칭.
불교에서 구족계를 받은 여자 수행자는 '비구니'
출가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만 7세 이상이면 가능
구족계를 받으려면 만 20세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그밖에 부모 허락이 있어야 하며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빚을 지고
있지 않아야 하며, 건전한 정신이어야 한다.
'비구'는 '탁발하다'란 의미를 가진 동사 어근에서 파생
비구는 물질에 대한
무집착과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
초기 불교에서 비구는 가정을 버리고 세속적 추구를 포기
붓다의 가르침을 명상하며 매일 매일의
삶에서 그것을 실천
그들은 마을 근처 숲속 한적한 곳에 무리를 지어 머물렀으며,
음식을 공양받는 대신 종교적으로 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쳤다.
불교 경전들에 따르면, 붓다는 처음에 남자만이 수도 공동체
나중에 제자 아난의 청으로 여자도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비구니 교단이 비구 교단만큼 규모가 커진 적은 없었다.
일상생활의 온갖 세부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비구승 계율
모든 조항(상좌부 불교 227조, 북방 불교 250조)을 준수
비구니는 더 많은 조항의 계율을 준수해야
한다.
(상좌부 불교에는 311조, 북방 불교에서는 348조)
보름에 1번씩 열리는 비구들 모임 포살(布薩
uposatha)
계율을 위반했을 때에는 포살 모임에서 참회해야만 한다.
승가 계율 중 바라이(波羅夷 pr jika)를 어기면
종신 축출.
첫째는 성(性)관계를 갖는 것(邪淫),
둘째는 생명체를 죽이거나 교사(殺生),
셋째는 주지 않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소유로 하는 것(偸盜),
넷째는 깨달음의 정도에 대하여 참람(僭濫)한 주장을 하는 것(妄語) 등.
비구는 머리와 수염을 삭발한다.
옷으로는 겉가사(uttarsaga)·
아랫가사(antaravsaka)·
덧가사(sagh) 등의 3벌의 옷
원래 넝마를 짙은 황색으로 염색하여 기워 만든 옷.
오늘날에는 재가 신자들이 주는
선물일 경우가 많다.
비구는 최소한 소지품 소유.
앞에서 말한 3벌의 옷 외에는,
앉을 때에 까는 좌구(坐具
nidana),
탁발할 때 음식을 담는 발우(鉢盂 ptra),
마실 물속에 들어 있는 작은 벌레를
다치지 않게
걸러내는데 쓰는 녹수낭(水囊),
허리띠, 면도칼, 옷을 기울 때 쓰는 실과 바늘
또한 매일 탁발을 하여 자신의 식사를
해결하는데,
비구에게 공양하는 신자는 공덕을 얻게 된다고 한다
비구는 정오를 지나서 다음날 아침까지
액체로 된 것
이외에는 먹어서는 안된다.
성스러운 날을 제외하고는
비구도 고기를 먹을 수 있으나,
비구를 위한 요리가 아닐 경우
만
동남 아시아의 상좌부 불교 국가에서는
비구의 경제적 행위 및 육체노동은 금기.
동북 아시아의
중국·한국·일본에서는 다르다.
그곳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선(禪) 불교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규범을
확립.
또한 어떠한 고기도 먹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승려가 부부생활을 하는 대처승(帶妻僧)도 등장.
대처승.
글자 그대로 처를 허리에 띤 승려란 뜻이다.
살림차리고 식구를 거느린
승려를 가리킨다
다른 말로 화택승이라 하며,
대처승의 반대말로는 비구승.
출가후 독신 수도자는 비구승.
선종을 중시하는 한국 불교계는 비구승이 주류.
이승만 대통령 유시 한달 후인 1954년 6월 24일,
대처승들에게 눌려 지내던 비구승
서울 선학원에 모여 대처승 추방결의
비구측을 종권도전으로 인식한 대처승
대처승 기성교단은 1954년 7월,
1945년 제정된 '조선불교 교헌'
'불교 조계종 종헌'으로 바꾸고
종단
직명을 종정(宗正)으로 환원
만암 스님을 종정에 추대
비구측은 두차례 전국 비구승 대회
대처승측에 환속과
종권 이양을 요구
그해 10월 태고사(太古寺)를 강제 접수
사찰 간판을 조계사(曹溪寺)로 바꿔 건다.
대처측은
11월 23일 조계사 탈환을 시도
조계사 접수 공방전은 1년동안 계속된다.
그해 비구측은 4차례 경무대를 방문
대처승 추방 협조를 거듭 호소하였다.
1955년 8월 11일 비구측은 전국승려대회를 개최
'조선불교 교헌'을
제정하고 독자적 집행부 구성.
이로써 조선불교는 두파로 갈라졌고
비구-대처의 대립은 본격화되기 시작
종단이
비구, 대처로 두 조각 나자
대처측은 승려대회를 무효라고 주장
서울 민사지법에 소송을 제기해 대응.
'사찰정화대책위원회 결의 무효확인 소송'
이승만 정권과 공생관계 종권의 탄생을 예고.
10 여개월후
법원판결은 대처승측의 승소판결
패소한 비구 측은 청담 총무원장을 인책 퇴진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나자
정부 비호를 받은 비구측이 조계사 장악.
1961년 3월 대법원 비구 측을 법적 인정
5.16군사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1,2차 불교정화에 대한 담화를 발표하고
'불교재건위원회 조례안'을 양측에 제시
박정희 담화후 양측
대표들은 극적 합의
통합종단 명칭이 곧'대한불교 조계종'이다.
이로써 비구-대처의 종권분규는 일단락된다.
한때
대처측이 비구측과 다시 투쟁할 것을 선언
서울 민사지법에 조계종 종헌 무효확인 소송제기
정부당국은 대처측 반발에 강력한 억제
입장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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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종권 다툼은 일제가 한국
불교에 뿌린 씨앗
소위 內鮮一體라는 구호하에 한국 불교의 왜색화.
일본 불교는 승려의 결혼. 육식등에 대해서 관대
한국불교는 청정한 율행(律行)을 생명처럼 여겼다.
일제 치하에서 33本山 스님은 도쿄 유학을 떠났다.
그때 대부분은
대처승(帶妻僧)의 신분이 되어 귀국.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비구 대처의 갈등의 씨앗.
1945년 이승만 대통령의 불교에
대한 특별 유시
왜색 승려는 사찰에서 모두 물러나라는 내용이다.
당시 비구의 숫자는 전국을 통틀어 200 여명
하여, 비구가 전국 1천2백 사찰 관할은 불가능
당시 태고종(조계종) 종무원 (총무원) 중재안
전국 사찰을
궁극적으로는 비구승들에게 양도
하지만 대처승은 그 당대에만 사찰 거주 허용
그러나, 사찰을 내놓는 대처승이 거의 없었다.
양측은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계속.
1960년 불국사 난투극은 이 갈등의 절정이었다.
드디어 대처
비구 양자는 결별을 선언
비구승통합 종단 대한 불교 조계종 탄생.
한편, 대처 계는 1962년 태고종으로 발족.
이
와중에 헤일수 없이 망실된 재산과 토지
결과적으로는 불교에 대한 정부 관권의 개입
5.16 직후 여러 종파들을 등록시킨 것도 문제
이 때를 전후 한국 불교에는 26개 종파가 난립
무자격한 승려들이 대거 조계종안으로 스며든다.
이들은 사찰 재산권
이득만 노리고 승복을 걸친다.
조계종단 안에서 폭력이 활개를 치게 된 것.
정화불사를 주도한 청담 스님은 이점을 늘
후회.
다음으로 조계종 문제는 총무원의 재정적인 독립
총무원에 자금이 없어 사찰마다 분담금 제도 실시
특히 전국
명찰이 국립공원 지정으로 입장료 수입
일부는 문화재 보수등을 위해 지방 단체장이 관리
그러나 일부는 사찰 운영금으로 쓰이며 잡음과
마찰.
그래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는 늘 단명
18년 동안 24명이 총무원장직을 거처 갔다.
총무원장
평균수명이 8개월 밖에 안되는 것.
본사 주지의 임명권을 총무원장이 장악하지만,
돈은 본사 주지가 쥐고 있어 피할 수 없는
마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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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이전 일본 불교는 수행자의 결혼을
불허.
그후 정토종 승려만 공개적으로 결혼할 수 있었다.
메이지유신 이전엔 여성과 동침한 승려는 형사처벌
1872년
3월부터 개신교 영향으로 승려 결혼을 허용.
한용운(1879~1944) 같은 항일불교자도 대처를 주장.
욕망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그 자체를 긍정하자는 뜻.
불교에 의해 조금씩 벗어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뜻
불교가 중생을 구제하려면 태생도 인정해야
한다는 뜻.
결혼은 승려 스스로 자기 욕망을 점검해 결정해야 할 일.
붓다와 제자들 상당수가 기혼자 출신들이었다.
일본 정토종 이외 동아시아의 모든 대승 교단
19세기 중반까지 대처를 허용하지 않았던 전통.
남녀 간의 사랑을
수행의 장애로 보지 않았던 것.
비구 측이 대처를 비난한 1963년 당시 조지훈 시인.
동아일보를 통해 대처승에 대한 지나친
배척을 반대
.......<삼국유사>의 광덕 이야기를 논거...........
신발 만들기를 업으로 삼았던 하급
승려인 광덕
역시 승려인 아내와 함께 경주의 분황사에 거주.
밤마다 섹스 대신 부부가 함께 염불에 매진했다.
서로
보살핌과 챙김, 정신을 공유했던 결혼생활.
7세기 두 천민 승려를 신라인들은 무척 존경했다.
광덕의 부인을 관세음보살 환신으로
불렀을 만큼.
밤마다 목욕시켜 준 낭자에게 무심했던 노힐부득
자신을 유혹한다며 예쁜 낭자를 쫓아낸 달달박박
노힐브득이 먼저 미륵보살로 성불할 수 있었단다.
전북 부안군 월명암 소장의 <부설전>에 의하면,
결혼을
안해주면 죽겠다는 여인의 간청을 받아
환속해 거사가 되어 아들 딸을 낳았다는 부설.
계속 수행을 해온 그의 도력은 동료에
비해 월등
속인이건 승려이건 도만 깨우칠 수 있다면 구도자.
대처승에게도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논거.
......................................................
...........'이판 사판'...................
흔히 사생결단이란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판" 이란 수도하는 스님을 말하는 것이고
"사판" 이란 살림하는 스님을 말하는 것이다
이조시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는 억제한 정책
그당시 승려들이 두 가지 방향에서 활로를 모색
첫째 사찰을 존속시키는 노력
둘째 불법의 맥을
이으려는 노력
그때 사찰 살림을 담당했던 승려가 '사판승'
속세를 떠나 불법을 이어온 승려가 '이판승'
해방후 비구승과 대처승의 다툼이 생겼을때
서로를 이판승과 사판승에 비유해 비판했다
이조 오백년 동안 불교가
살아남은 것은
이판 사판 두 승려집단의 공이 있었지만
이판 사판의 다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묘안이 없는
자포자기 상태 = 이판 사판.'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반야심경 구절 중에서 '사바하' = '성취'란
뜻.
이조 때 불교의 활로모색 '성취'를 위한 '이판사판'
......................................................
불교 종파간의 다툼을
상징하는 형제봉 전설.
비구계와 대처계 종파 다툼을 상징하고 있는듯.
형제봉 전설은 불교졸파 비구계에서 유래된 전설.
'형제봉 전설은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
천왕성모가 마야부인 위숙왕후로 변하듯.
노고단의 노고할미가
선도성모로 변하듯.
형제봉의 형제신도 형제 돌부처로 변한듯.
연하천 요정으로 환생한, 옥녀 자매.
원래, 옥황상제
시녀인 하늘나라 선녀.
결국, 옥녀 자매는 연하천을 떠도는 요정.
..........
낙화(洛花)
...........
조지훈 시.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근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선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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