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스크랩] 지리산 이야기 - 29 ( 뱀사골. 소금. 뱀사골산장. 송영호. )

donkyhote 2010. 10. 16. 21:27

 

 

뱀사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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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선리 -2Km- 제3야영장 -2.5Km- 병풍소 -1.5Km-
제승대 -1.5Km- 간장소 -4.5Km- 뱀사골산장 -0.2Km
<총 12Km, 오르막 길 4시간, 하산 길 3시간 1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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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수많은 계곡 중 가장 인기가 높은 피서지.
원래 북사면 계곡은 일조시간이 짧아 단풍이 곱다.
또한 여름에는 시원해 피서철에 물놀이 하기 좋다.

여름철 뱀사골은 계곡 곳곳마다 피서객이 붐빈다.
그러나, 지리산 일대에서 가장 강우량이 많은 곳.
장마철 폭우에 뱀사골 일대는 항상 수해 재난지역.

뱀사골은 옛부터 풍류객들이 은밀히 찾던 피서지.
옛부터 화개재를 넘는 소금장사 상인들 오가던 곳.
뱀사골 지류 들돌골 일대는 '변강쇠전'의 배경무대'

뱀사골은 성 해학에 관련된 전설이 유난히 많은 곳.
뱀사골은 '욕망의 상징' 뱀에 관련된 전설이 많은 곳.
지금부터 색다른 '전설의 고향' 뱀사골로 들어가보자.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원시림에서 발원된 물줄기.
물에 패인 기암괴석을 감도는 개울, 소, 폭포의 어울림이 절경.
반선-탁룡소- 뱀소- 병소-병풍소-간장소-제승대-화개재 코스.

'지리산에서 피서철 인파가 가장 붐비는 계곡.'

봄가을 꽃 단풍도 좋지만 설경 속 엉덩이 눈썰매 신나는 곳.
특히, 여름철 무더위를 식혀주는 개울과 짙은 녹음은 환상적.
반선에서 뱀사골 산장까지의 약 5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12km의 등산로는 계곡과 나란히 이어졌고
경사도 비교적 완만해 걷기 편한 등산코스.

반선 전적기념관을 들머리로 하는 뱀사골 등산로.
일명 흔들바위라 불리우는 요룡대, 아치형 반야교,
탁룡소의 긴 암반 위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

반야교, 금포교, 병풍교, 명선교,
옥류교, 대응교, 재승교 계곡 철교.

탁룡소에서 금포교 건너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살던 뱀소,
병 모양 병소. 아치형 명선교와 옥류교 제승대 지나 간장소.

용이 승천하려고 몸부림 쳤다는 요룡대.
그 용이 곤두박질치며 떨어져 숨진 탁룡소.
소금 장수가 헛발 딛어 소금이 빠졌다는 간장소.

'뱀사골은 개울과 소 곳곳마다 전설의 고향.'

..................뱀사골의 전설.....................
지금부터 1200년 전 신라 말에 창건한 송림사
전통적으로 해마다 불제자 본보기 승려를 선출.

그 선출된 승려가 칠석 날에 기도 하면
구름 타고 은하수 건너 극락 간다는 믿음.
불도들에게 최고 영광인 '승려를 뽑는 행사'

해가 갈수록 행사가 성대해졌다고 한다.
통일신라, 고려, 이조를 거쳐 계승된 전통.

이조 때 서산대사는 그 전통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사람이 불심이 돈독해도 신선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

서산대사는 그 해에 뽑힌 승려에게
독 묻은 옷을 입히고 동정을 살핀다.

자정이 넘자 용소가 요동치더니
거대한 이무기가 승려를 덮쳤다.
그 승려는 이무기의 제물이 된다.

서산대사는 비로서 송림사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된다.
승려를 뽑는 행사는 이무기에게 제물을 받치려는 수단.

다음 날 용소 위에 신선대로 가니
승려와 이무기가 함께 죽어 있었다.

뱀사골은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
이무기인 뱀이 죽었다는 뜻 이름인 '뱀사골'.

'반선'은 이무기의 밥이 된 스님
또는 '반쪽 신선'이란 뜻의 지명.

반선(半仙)은 그후 언제부터인가
반선(伴仙)으로 한자 표기가 바뀐다.

현재, 뱀사골 입구에 있는 <반선 전적 기념관>
그 자리가 통일신라 시대 창건된 송림사 사찰 터.

하여, 뱀사골 전설에 등장하는 송림사
지금은 사라지고 옛 사찰 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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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의 전설은 이조의 불교탄압 정책 결과인듯.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승병 대장.
승병이 전쟁터에 나갈 정도이면 국운은 바람 앞 촛불.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전까지는
불교탄압으로 박해받았던 인물.

임진왜란 때 세운 혁력한 공으로
선조 왕이 정 2품 벼슬을 하사한다.
그러나, 그 벼슬을 버리고 떠난 고승.

제자 사명대사가 그의 빈자리를 계승.
통신사 외교사절로 수차례 일본 방문,
임진왜란 포로 귀환에 큰공을 세운다.

“금강산은 빼어나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되 빼어나지 못하고
묘향산은 빼어나고 웅장한 산세. ” -서산대사 -

..........................서산 대사.......................................
서산대사는 이조 중기 승려이고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양부 이사증(李思贈)에게서 성장.
과거 낙방후 지리산에 입산, 숭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

1549년(명종 4) 승과에 급제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 제수.

봉은사 주지 후 1556년 승직을 그만두고, 금강산·묘향산 유람.
1589년(선조 22) 정여립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투옥된다.

임진왜란 때 왕명을 받고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병을 모집.
이때 제자 유정은 금강산에서, 처영은 지리산에서 승군 모집.
승병 1500명을 총지휘하여 명(明)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 탈환.

159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여생을 보내다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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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소는 운봉 소금장수가 뱀사골 넘어 하동으로 건너가다가
물에 빠져 죽은 뒤에 물이 간장처럼 짜졌다는 얘기가 내려온다.
이 전설로 미루어 뱀사골은 소금 장사 왕래가 많은 곳인 듯 싶다.
아울러, '정력의 상징' 소금장수 왕래가 많은 곳이라 성풍속도 문란.

뱀사골 유래는 이외에도 여러 설이 있다.

뱀소에서 유래된 뱀소골이 뱀사골로 불린다는 설.
옛날 석실(石室) 부근에 배암사라는 사찰이 있어
뱀사로 줄여 뱀사골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소금. 



뱀사골 소금장수 정력은 변강쇠의 상징.
'피아골이 '씨받이촌' 전설의 고향이라면
씨내리 소금장수 '전설의 고향'은.. 뱀사골.'

전국 천일염 생산량 85%를 차지하고 있는 전남.
'천일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첫걸음.
전남 소금산업을 특화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 검토

전남 갯벌 소금은 건강에 좋은 미네랄이 다량 포함
건강식품을 만들 경우 높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
옛부터 소금은 당나라에서 화폐를 대신한 교역상품.

뱀사골 화개재는 전남 소금의 수송 교역로.
조상 대대로 소금장수 주민들이 많았던 곳.
소금은 젓갈을 담그는데 꼭 필요한 첨가물.

어패류 살 알 창자를 발효시킨, 젓갈.

요긴한 밑반찬으로 새우젓·조기젓·밴댕이젓·
꼴뚜기젓·멸치젓·연어알젓·명란젓·어리굴젓·
조개젓·창난젓·방게젓 등 그 종류가 무척 많다.

김치와 더불어 매우 뛰어난 저장 발효식품.

젓갈은 상하기 쉬운 어패류를 소금으로 저장해
오래 두고서 먹을 수 있도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특히 날씨가 더운 전라도지역에서는 젓갈이 중시한다.

젓갈은 제철에 소금을 켜켜이 치고 항아리에 봉
새우젓·멸치젓·조기젓 등은 김장을 할 때 쓰고,
나머지는 젓갈은 양념에 무쳐 밥 반찬으로 쓰인다.

어리굴젓:태안반도 근교 서산 서해안이 명산지
게젓:벼를 수확할때 논에 게를 잡아 담근 젓갈.
조기젓·멸치젓·창난젓:3~4월 중부지방의 젓갈.

연평도 조기 아가미에 소금을 가득 채우고,
독 안에다 조기 한 두름에 소금 1번씩 채워
돌을 눌러서 꼭 봉하여 시원한 곳에서 삭힌다.

여름이면 꼬들꼬들하게 된 조기젓
살을 굵직하게 찢어 밥 반찬을 한다.
식초 파 마늘 고춧가루 양념를 얹고 찜.

5~6월경에는 멸치젓을 담그고,
겨울철엔 대구 내장과 아가미젓.
창난젓은 고춧가루, 마늘로 양념.

'소금은 젓갈에 꼭 필요한 원료.'

소금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생필품.
옛부터 생산이 어려워 귀한 물품으로 여겼다.
물물교환 시대에는 화폐 대용으로도 사용했다.

로마시대에는 관리와 군인에게 봉급으로도 지급.
이처럼 중요한 소금은 생산과 유통을 국가에서 통제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이후에 국가가 소금을 관리

사사로이 생산하거나 비밀리에 무역하면 엄벌.

소금생산이 한반도에 전래된 시기는 알 수 없다.
전북 고창과 부안 해변가는 소금 제조의 첫 시조
577년(위덕왕 24) 고창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

백제 후기 고승으로 소금 제조는 선운사 창건과 밀접
선운사가 창건되기 전 이지역은 도적들의 소굴이었다.
검단선사는 도둑들을 구제하고 선운사 바닷가에 정착.

그들에게 소금과 종이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다.
아직도 선운사 아래 '검당'이란 지명이 남아있고
해방전까지만 해도 선운사에 매년 소금을 보시했다.

이러한 유래를 간직하는 선운사 소금
건너편 개암사에 이르러 죽염을 개발.
천일염을 대나무에 넣어 아홉번 구운 죽염.

죽염은 근래 건강식품으로 선풍적인 인기.
고창 해리와 부안 곰 소염전은 천일염 산지.

............소금에 얽힌 중국의 전설.............
진시황, 한무제 등 고대국가 중국 황제와 후궁들.
황제는 누구와 잠자야 할지 결정하기란 어려운 일.
하여, 양을 앞세워 따라가다가 양이 걸음을 멈춘 곳.

그 방에 있는 궁녀를 데려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궁녀 하나가 방문 앞에 뿌려놓은 소금.
양은 항상 그녀의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양이 소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궁녀.
황제를 그녀의 방문 앞에서 멈추게 했던 비결.
상점 문앞에 소금을 뿌려 손님을 끌려는 관습.

'소금 뿌리기는 이 고사에서 연유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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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싸개 아이에게 키를 씌워 소금동냥 보낸 풍습.
'키'는 곡식의 돌이나 쭉정이를 골라내는 농사 기구.
키를 아이에게 씌우는 이유는 오줌을 싸지 말라는 뜻.

소금는 부패를 막고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믿음.
아이가 소금 기운을 받아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남방 묘족 풍습에서 유래되어 우리나라에 정착한 듯.

옛부터 동아시아 해상왕국이었던 우리나라.

특히, '코레아'로 전세계에 알려진 고려시대.
외래 문명과 풍습들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정착.
특히, 고려의 중요 교역국가인 중국 송나라 문화.

아울러, 고려 말 원나라 지배하에 있었던 80 여년.
사실, 동아시아 유일한 부동항을 보유했던 한반도.
천혜적인 입지조건때문에 옛부터 국제무역의 중심지.

그 덕분에 고대국가부터 선진문명을 누린 한반도.

선진문명을 누린 만큼, 성풍속도 그만큼 다양했다.
이조시대 쇄국정책과 유교관념 덕분에 보수적 양상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개방적인 성풍속을 누린듯.

우리나라 소금 산지에서 쓰이는 말은 색다르다.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인지 외래어인지 모를 만큼.
하여, 옛부터 소금장수는 외래문화를 많이 전파한듯.

이조시대에는 집안에만 갇혀 살아야 했던 여인들.
소금장수는 여인들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줬을듯.
말하자면, 오늘날 뉴스를 전달해주는 매스컴의 역활.




뱀사골 산장.


 

 

지리산 관리공단 북부사무소는 뱀사골 대피소 시설이 낡고

이용객이 적은 데다 계곡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어 5월 말까지

뱀사골 산장 건물 해체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11일 밝혔다.

 

“대피소가 뱀사골 상류에 있어

등산객이 집중되는 여름철이면

각종 음식물쓰레기로 계곡을 오염

주  능선에 있는 6개 대피소 가운데

가장 시설이 낡고 이용객이 적다” - 공단 측.

 

 “인근에 이를 대체할 만한 대피소가 없는 상태에서

대피소 폐쇄는 등산객 안전을 위협하는 일” - 산악인 측.


 

“뱀사골 인근에서 연간 10여 건의 조난사고가 발생

노고단 및 연하천 대피소는 각각 6.5km, 4.2km 떨어져

 조난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모든 대피소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인 오염을 이유로

대피소 폐쇄는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 - 전북 산악연맹

 

관리공단과 팽팽히 맞서는 산악인들 단체
뱀사골 산장은 계획대로 폐쇄가 될것인가?

아니면, 존속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뱀사골은 장마철에 집중 폭우가 잦은 곳.'

2003년 9월 13일 (토) 태풍 '매미'의 강타
태풍 매미는 12일 오후 8시~ 13일 새벽 3시
7시간 동안 450㎜ 폭우가 쏟아졌던.. 뱀사골.

'그로 인해 뱀사골 일대 차량통행 전면통제.'

뱀사골은 해마다 게릴라성 폭우 상습 다발지역.
피서철 야영장 침수로 야영객들 조난사고 빈번.
장마철에는 뱀사골 산장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뱀사골산장은 쌀이 넘쳤던 곳.
등반객들이 배낭의 짐을 덜려고 남기고 간 쌀 때문.
하여, 그 쌀로 일년을 충분히 먹고살았다는 산장지기.

'그만큼 여름철에는 피서 등산객이 붐볐던 곳.'

주능선에 대형 산장들이 들어서며 차츰 침체.
피서철만 피하면 호젓한 곳으로 변하게 되었다.
화엄사에서 출발하면 이곳에서 낭만적인 첫날 밤.

<연하천 산장, 치밭목 산장>과 더불어 맥주 판매.
민간 위탁 관리하는 산장 만이 맥주를 팔 수 있다.
산장이용료 5,000, 침낭 2,000원, 수용인원 80~100 명.

'화개재에서 북쪽 계곡으로 내려서면 뱀사골산장.'

화개장터 화개골 화개재와 연계된..뱀사골계곡 반선.
옛 소금장수들이 지리산을 넘나들던 물물상품 교역로.
등짐 소금장수들에 관한 전설이 얽힌 곳도 뱀사골이다.

'그 대표적인 전설의 고향이 뱀사골.. 간장소.'

뱀사골 산장은 토끼봉과 임걸령 사이
화개재 북쪽 계곡으로 200m 아래 있다.

천왕봉 쪽에서 오면 반야봉 갈림길을 지나면 화개재.
노고단에서 임걸령 지나 화개재가 뱀사골 가는 길목.

주능선에서 약간 아래로 내려간 위치.
뱀사골 계곡 끝나는 지점에 있는 산장.

보통 이곳에서 1박하면 반야봉 등반.
산 넘어 피아골 또는 노고단으로 하산
지리산종주 단골 산꾼들이 즐겨찾는 산장.

<연하천 산장>과 <노고단 산장> 중간.

조난에 대비해 꼭 알아야 할 긴급 대피처.
폭설에 갇히거나 폭우가 쏟아질 때 대피소.
이곳 위치를 모르면 비상시 답답할 때가 많다.

1978년 반야봉 산장으로 탄생
1989년 12월에 전화 개통된 산장.
산장 앞마당에 늘 넘치는 풍부한 샘물.

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야생동물 천국.
하여, 밤이면 산장 주변을 서성거린 맹수.
1990년대 뱀사골산장의 구조 명견 '검둥이'

그곳 찾는 등산객에게는 유순한 검둥이.
야생동물 맹수는 얼씬도 못할 만큼 맹견.
대를 이어 뱀사골 산장을 지켜왔던 구조견.

그곳을 찾던 옛 산꾼들에겐 추억의 대상.
언제부터인가 사라진.. 그곳 구조견 후손.
그 구조견은 산장을 찾던 산꾼들의 즐거움

'언제 어떤 사연으로 사라진걸까?' 

 



 
송영호. 



현재, 뱀사골 산장 관리인 송영호씨.
1996년부터 남원으로 내려간 고영국씨.
'민간구조대 대장' 남원 산악인 고영국씨.

그를 대신해 현재 송영호씨가 산장지기.

그가 십 년째 몸을 담고있는 뱀사골산장은 사설산장.
연하천, 피아골, 치밭목과 마찬가지로 개인 위탁 운영
뱀사골산장 원래 옛 관리인은 '남원의 산악인' 고영국 씨.

'그가 떠난 빈자리를 지키는 송영호씨.'

날마다 오르내리고 밤마다 이곳을 사수.
꿈속에도 눈구덩이 속을 허우적거릴 만큼.
밤과 낮은 물론 꿈속에서도 지리산 지킴이.

산을 오르면서도 그리워하게 하는 곳.
산을 내려올 때에도 돌아보게 하는 곳
그 산을 돌아서려던 발목마저 붙잡은 곳.

'무엇이 그의 발목을 붙잡은걸까?'

병풍처럼 애워싼 지리산 주능선.
노을에 물들어 보석처럼 빛날 때
그의 가슴 속에서는 파도같은 설렘.

'사랑하는 여인의 치마폭인듯.'

지리산 뱀사골 산장지기 송영호(49)씨.
어느 산꾼들처럼 지리산을 오르내리다가
장터목산장 산장지기로 눌러앉았던 1994년.

2년 후 뱀사골산장으로 옮겨 정착한지 12년.
서울이 고향인 그는 고 3 때 처음 산을 찾았다.
겨울 치악산에서 얼어 죽을 뻔했던 19살 첫경험.

운동화에 하얀 면장갑, 청바지차림으로 헤멘 눈속.
그후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출퇴근한 가이드.

치악산에서 구조한 여인이 인생의 반려자.
결혼 후에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구조대원.
그후부터 줄곧 그에게 종착역이 된 지리산.

산꾼들에게 지리산과의 첫만남은.. 애틋한 연정.
일반 등산객에게도 지리산 종주는 인생의 전환점
그러한 추억들이 지리산을 다시 찾게 하는 원동력.

먹고사는 일에 쫓겨 살다 문득 떠오르는 옛 추억.
다시 큰 맘을 먹고 종주에 나서면 묵직해진 뱃살.
도둑맞은듯한 세월에 가슴 뭉클해지기도 하는 곳.

'예전엔 나도 이 길을 뛰며 날아다녔는데..'

송영호씨에게 지리산과 첫만남은 1980년 봄.
당시엔 성삼재까지 도로가 닦이기 전이었다.
당시 들머리는 선택 여지가 없는 화엄사계곡.

용산역에서 비둘기호 밤기차를 타고 12 시간.
간이역마다 꼬박꼬박 서며 달려 가는 둥 만둥.
그래도 지리산 가는 길은 지루한줄 몰랐던 시절.

밤기차에서 배낭 맨 사람을 만나면 반갑던 시절.
어울려 이야기하다 술한잔 하다보면 동행 길동무.
그시절 칼바람 몰아치는 겨울에 뱀사골산장의 난로.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던 장작불 난로.
이곳을 찾던 겨울 산꾼들에겐 못잊을 추억.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지켜온 송영호씨.

아침 7시부터 분주한 등산객을 보내고
산장을 치우고 매점을 관리하다가 보면
밤 9시에는 불을 꺼야만 하는 산장 규칙.

모처럼 반가운 지인들이 찾아오면
뒷방 촛불 아래서 술한잔 기울이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귀동냥을 한다.

산장지기이자 구조대원..송영호씨.

뱀사골에서 반야봉까지는 3km의 가파른 산길.
안개 낀 반야봉에서 조난당한 한 남자의 신고
밤 9시 짙은 어둠속에서 가까스로 조난자 발견.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그를 들쳐업고
때론 끌다시피 산길을 내려오면 아침 6시.
그런 우여곡절들은 어느덧 그의 일상 생활.

그에게 구조활동보다 힘든 애로사항은 목욕.
군불을 때는 부엌이라 목욕할 곳도 없는 산장.
하여, 한달에 한번 목욕은 하산 중 가장 큰 행사.

하지만, 그 불편함도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그.
지리산의 넓은 품속을 누비고 싶어 들어왔던 그.
정작 10년간 천왕봉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그.

뱀사골산장을 비워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산이 좋아 올라와 붙박이 신세가 된 운명.
붙박이 신세가 되었어도 마냥 좋은 지리산.

19살에 처음 산에 올라 죽을 뻔 했다는 그.
주말엔 배낭메고 정신없이 전국을 떠돌던 그.
그의 젊음과 미래를 사로잡고 만.. 뱀사골산장.

'그를 사로잡은 지리산의 매력은 무엇일까?'

국립공원이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통제하는 봄.
얼레지꽃이 하늘 하늘 지리산의 숲을 뒤덮는 밤.
새순 돋는 밤에 홀로 마시는 맥주캔 하나의 행복.

쓰레기를 수거하려고 화개재에 오르면
가끔 등골을 쭈뼛하게 하는 멧돼지 떼.

앞장 선 우두머리와 마주치면 두렵지만
꽁무니 새끼 멧돼지들을 보면 귀엽단다.

“털 모양이 정말 보송보송 다람쥐 같아요.
어찌나 예쁜지, 봄날 새순처럼 여려 보여요.”

'뱀사골산장에서 사라진 추억의 명견들.'

그를 통해 듣는 옛 구조견들에 얽힌 추억담.
지금은 모두 전설처럼 사라져버린 옛 이야기.
그를 통해 떠오르는 옛 명견들에 얽힌 추억담.

산꾼이 밤길을 떠나면 연하천산장까지 길안내.
그리고나서, 혼자 되돌아오곤 했던 명견..졸리.
그러나, 등산객들에게 맹수로도 오해받던..졸리.

놀랜 등산객들의 신고로 결국 산장을 떠난 졸리.
졸리는 그의 친구이자, 조난자들의 구조견이었다.
졸리는 자신 아성에 도전한 삼순이에게 물려 운명.

그는 가끔 흑백사진첩을 꺼내 옛 친구들을 본다.
사진 작가가 찍어준 졸리, 삼순이 그리고 장군이.
뱀사골 산장을 거쳐 간 그의 옛 친구들의 사진 첩.

이제는 뱀사골산장 방문객도 그리 많지 않다.
예전엔 종주 산행의 중간 지점이라로 북적거렸다.
지금은 주능선에 대형 산장들이 들어서 한산한 편.

겨울에 눈에 젖은 옷을 털며 산장에 들어서면
따뜻한 차를 건네며 반기는 산장지기 송영호씨,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산장을 지키는 송영호씨.

'송영호씨가 한가할 때 즐겨 찾는다는 반야봉.'

노고단과 천왕봉 주능선에서 약간 벗어난 반야봉.
반야봉은 지리산에서 동떨어진 고도의 섬과도 같다.
견우와 직녀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상징.

뱀사골 산장은 위치상 반야봉을 닮아가는듯.
예나 지금이나 뱀사골산장의 지킴이 송영호씨
그가 있어 산꾼들의 발길을 당기는 뱀사골 산장.

 

출처 : 산사모산악회
글쓴이 : 선경나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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