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리산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 27. ( 마천. 단천골. 단천마을. 토종약초. 목통골. )|

donkyhote 2010. 5. 18. 18:45

마천(馬川).



물이 쉬엄쉬엄 쉬듯 흘러., 휴천.
물이 말달리듯 흐른다 하여., 마천.
물이 날아가는 화살처럼 흘러., 시천.

.....................마천령 산맥...................
백두산에서 함경남도 단천 원산 덕산까지 뻗은 산맥.
양강도와 함경남도·함경북도의 교통에 지형적 장애
동서 지역의 연결은 허항령, 남설령, 마천령(709m) 등
...................................................

단천은 옛 발해 영역이자 단군신화 '전설의 고향'
'마천'은 마천령 산맥을 동서로 연결하는 고개마루.
지리산의 <단천골>과 <마천>과 무관하지 않은 지명.

고려 및 이조시대 당벌 장터로 불리웠던 마천.

발해 패망 유민들이 정착한 숨결이 있는 마천.
<단천골>은 패망 고조선의 유민들이 정착한 흔적.
지리산 단천골은 단군신화 이전 전설 속 단군 영역.

마천에서 벽소령 넘어 단천골로 이어지는 옛 길.

마천은 지리산의 북부 관문인 지리적 여건.
백무동도 벽소령도 한신계곡도 칠선계곡도
마천을 거쳐야 갈 수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

마천에는 나무로 겹겹의 울타리를 만든 '마천보루'.
민간인 특공대를 만들어 빨치산과 대항하게 했던 곳.
'짚세기부대'란 색다른 별명으로 불렸다는 민간 특공대.

이현상의 '남부군'과도 격전을 벌렸던 마천 특공대.
이 과정에서 수많은 마천 주민들이 희생을 당했었다.
가족을 잃고 홀로 남아 아직도 비극적 삶을 사는 이들.

그들은 이제 모두가 7순, 8순의 노인들이 되었다.
이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만들겠다는 강상길 씨 염원.
'소문난 짜장면집'을 운영하고 있는 외팔이 강상길 씨.

"나의 프로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 저자.

어느덧 마천면에서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경남 함양군 남부에 있는 마천면[馬川面]

면소재지는 가흥리.
면의 90% 이상 산지

지리산(1,915m)·창암산(923m)·영신봉(1,652m)·삼정산(1,182m)
지리산 국립공원에 속해있고 칠선폭포·무명 폭포 등 폭포가 많다.
산비탈을 따라 펼쳐진 계단식 형태의 다랭이 논밭 풍경이 그림 같다.

가흥(佳興)·군자(君子)·덕전(德田)·삼정(三丁)·강청(江淸)·
추성(楸城)·창원(昌元)·의탄(義灘)·구양(九楊) 등 9개 동리.
면적 107.53㎢, 인구 2,460 명(2002). 볼거리가 많은 관광명소.


- 마천에서 찾아가 볼만한 곳 -

실상사. 벽송사. 서암정사. 지리산 휴양림.
칠선계곡. 한신계곡. 백무동 굴바위 등등

 

 

 


단천골.     




화개장터에서 섬진강과 합류하기까지 20 km를 흐르는 화개천.
화개천은 신흥 마을에서 보면 크게 두 갈래 주류로 나누어진다.

동쪽으로는 촛대봉과 영신봉 칠성봉 덕평봉 형제봉 그리고 삼신봉
서쪽으로는 토끼봉 불무장등 물줄기가 범왕골을 타고 내려와 신흥

신흥 동쪽으로 여러 계곡이 모인다.
선유동천 단천계곡 대성계곡 빗점골.
단천골은 선유동계곡과 대성계곡 사이.

인접한 두 계곡과 함께 단천골은
남부능선 서북 방향으로 흘러간다.

단천골은 남부능선상의 박단샘과 삼신봉 사이에서 발원된 화개천 지류.
단천골은 화개천 골짜기 가운데 평범한 계곡 중 하나로 조용히 남아있다.

지도를 펴 보면 인접한 선유동, 대성골은 등산로와 함께 표기
단천골은 단천마을 이외엔 지도에 표기된 곳이 없는 무명계곡.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단천골은 찾는 발길 드문 곳이었다.

단천골은 평범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계곡의 정겨움이 있다.
선인들이 오랜 세월을 찾았던 청학동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추측되는 곳.
단천골 입구에 있는 단천마을은 살기 좋은 느낌이 드는.. 풍요한 마을이다.

단천교를 지나 마을까지는 도깨비소 독아지소, 종개지소가 있다.
단천마을 지나 계곡을 3~4 번 건너 오른쪽 계곡에 있는 용추폭포.

단천골의 등산로는 산만하지만 삼신봉을 목표로 정하면 간단하다.
계곡이 나누어지는 지점의 왼쪽은 남부능선의 박단샘으로 이어진다.
단천마을에서 삼신봉 정상까지는 2시간 30분∼3시간 가량 소요된다.


- 단천골 찾아가는 길 -

화개천 깊숙이 들어가면 고운 최치운 행적이 남아 있는 신흥마을.
병목처럼 좁다란 계곡 안에 비교적 넓은 농경지를 낀 남향에 위치.
죽림이 어울어진 마을 풍경이 정겨워 이상향 같은 느낌이 드는 곳.

오른쪽 도로 국립공원 간이 매표소 지나 선유동 계곡 입구와 단천교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단천골 입구의 급커브 포장도로가 나온다.

곧장 오른 쪽 도로따라 2km 정도 차로 오르면 계곡과 단천마을.
병목 같은 계곡 안 넓은 농경지 끼고 남향에 위치한 20 여호 마을
지리산 깊은 계곡에 이렇게 큰 마을이 있으리라 믿어지지 않는 규모.

산비탈을 이용한 벼농사 가축사육, 송이와 산채를 채취, 여름철 민박
예전엔 숯을 구워 화개장터에 팔았으며 산 너머 덕산까지 이어진 길목

길손을 위한 주막도 있었을., 단천골
산청 덕산으로 가는 고갯마루 단천골.

산을 가운데 두고 가까이 있는 화개에서 산청 덕산 가는 길.
단천골 따라 삼신봉에 올라 거림골 거쳐 덕산장으로 가는 길
산 넘어 덕산장을 가지 않으면, 멀리 진주까지 가야했던 애환.

단천골은 옛부터 산청 덕산 방면으로 가는 삶의 고갯마루.
지금은 관리공단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벽소령 군사 작전도로.
벽소령 4km 아래 길목에 문을 달아 막아놓았고 그 옆에 염소목장

2006년 10월 현재 3 가구가 사는 하늘 아래 첫동네.
그 길 따라 올라가면 빗점골 지나.. 벽소령 고갯마루.
벽소령 능선에 있는 부자바위는., 아미선녀 전설의 고향.

아미선녀의 날개옷을 감췄다는 나무꾼 총각.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는 삼정마을 총각.
그 총각이 아미선녀와 살던 곳으로도 추정되는 곳.

하여, 3 가구가 사는 이곳 마을 이름도.. 삼정마을.
벽소령 북쪽 삼정(양정 음정 하정)마을과 같은 지명.
아미선녀 전설 때문에 염소목장도 삼정마을로 명명된듯

벽소령을 사이에 둔 같은 이름이지만 서로 다른 마을.
그러나, 벽소령 고개마루를 넘는 길로 서로 이어진 마을.
마을 이름이 둘다 같아 약간 혼란스럽지만, 이해할 만 하다.

옛날엔 장보러 다니며 넘나들었다는 단천골.
워낙 가파르고 높은 곳이라 힘들었을 단천골
요즘은 삼신봉 찾는 등산객이 단천마을에 주차.

옛 마을터 사이를 지나 숨겨진 계곡 물..단천
옛 마을터에서 골로 빠지는 숨은 덩쿨 터널길.
덩쿨 터널길 아래 목욕하기 적당한 개울..단천.

사랑하는 연인과 단 둘이 목욕하고 싶은 곳.
단 둘이 누워 낮잠을 즐길만한 침대 크기 바위.
아미선녀가 날개옷을 벗어놓고 목욕했을만한 곳.

마을 어귀에 세워놓은 자연석에 새겨진., 檀川
'檀 = 박달나무 단, 川 = 내천' 무슨 뜻일까?
단천의 발원지는 남부능선 상의 한벗샘(박달샘).

단천이란 어디에서 유래된 지명일까?'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가 있는 4 곳은
경남 창령, 서울 북한산, 함흥 황초령,
단천 마설령에 남아 있는 진흥왕 순수비

............단천 도호부.........
'함경남도 단천'의 이조시대 이름.
본래 옥저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으나
발해 멸망 후 오랫동안 여진족 거주지.

고려 1107년(예종 2) 윤관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1108년에 복주 방어사를 두어 동계에 소속시켰다.
1109년 여진에게 돌려주었고 훗날 원나라가 점령

'독로올'이라 불렸는데, 1356년 공민왕 5년에 수복
1359년 단천안무사를 설치 1398년(태조 7) 지단주사
1413년(태종 13)에 단천군, 1720년(숙종 46)에 도호부.
.....................................................

단천골은 귀화 여진인들이 정착한데서 유래된 지명.
남원의 풍악 '독우물굿'도 여진에서 유래된듯 하다.

.....................마천령 산맥...................
백두산에서 함경남도 단천 원산 덕산까지 뻗은 산맥.
양강도와 함경남도·함경북도의 교통에 지형적 장애
동서 지역의 연결은 허항령, 남설령, 마천령(709m) 등
...................................................

단천은 옛 발해 영역이자 단군신화 '전설의 고향'
'마천'은 마천령 산맥을 동서로 연결하는 고개마루.
지리산의 <단천골>과 <마천>과 무관하지 않은 지명.

발해 패망 유민들이 지리산 일대에 정착한 흔적.
<단천골>은 패망 고조선의 유민들이 정착한 흔적.
지리산 단천골은 단군신화 이전 전설 속 단군 영역.

서해 남해가 저지대일 무렵인 마고신화 시대.
단군은 마고 여신의 딸과 결혼해 단국을 창건.
마고 여신은 9천 9백년전 상고시대 '구원의 여신.'

단천골 일대는 옛부터 야생동물들의 천국.
온갖 야생의 과일 열매들이 풍부한 단천골.
인근에 섬진강 화개장터와 악양 들판이 있다.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
화개천 깊숙이 감춰진 단천골.
단천골을 아는데 도움되는 '역마'.

......................역마 제도........................
몽골은 '역마 제도'라는 독특한 통신망을 확보.
광대한 제국의 통치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대칸의 명령과 각종 정보가 빨리 전해질 수 있도록
40㎞마다 「참」이란 역을 두고 숙박시설과 말을 구비

전령들은 릴레이식으로 하루에 5백㎞씩 주파,
카라코룸에서 유럽까지 보름이면 도착했었다.

이 통신로는 20세기 초 이전까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
현재 유라시아 횡단철도와 군사로 겸 통상로로 쓰인다.
몽골이 러시아를 정복한 후 지배했던 흔적이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는 역마제도를 얌브(yamb)라고 기록하여
각 역에 언제나 400필의 좋은 말을 상비하고 있다가,
사절은 여기에 지친 말을 두고 새 말을 타고 갔었다.

원(元)나라 천역에 역사가 1만개, 역마(驛馬)가 24만필
각 역사에는 황제의 급사(急使)가 있어 한 역까지 가면
다른 급사가 서류를 받아 계속 달려 황제의 명을 전했다.
...........................................................

역마는 여진 후예인 원나라의 통신수단.
칸의 명령을 전달해 속국들을 지배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아직도 역마를 설치한 흔적.
서울 북부에 있는 구파발은 대표적인 그 흔적.
원나라는 한반도 교통의 중심마다 역마를 설치.

...........'역마' 소설 中에서 편집 발췌.............
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화개 장터가
인근 주민들 그리움의 대상인 이유는
맑고 좋은 막걸리와 물고기 안주가 있고
판소리와 광대들의 공연이 있기 때문인 듯.

화개장터에서 혼자 주막을 하는
마음씨 착하고 인심 좋은 옥화는,
얼마 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죽자
아들 성기와 함께 단둘이 살아간다.

그녀는 성기의 타고난 역마살을 없애려 노력한다.
사주팔자에 역마살이 끼면 집에 머물지 못한다기에
이 운명을 지우기 위해 성기를 쌍계사 절에 보내고
장날만 집에 와 있으면서 장터에서 책을 팔게 한다.

어느날 젊은 시절 잠시 화개장터를 들러간 체장수 영감
호리호리한 소녀와 함께 저녁놀에 은어가 번득이는 여름철
석양 무렵 옥화네를 찾아온 영감은 옥화에게 인사를 청한다.

소녀에 대해 묻는 옥화에게 영감은 딸이라고 한다.
그는 화갯골로 갔다가 하동쪽으로 가볼 생각이라며
갈 때 데리고 가겠으니 자기 딸을 맡아달라고 한다.

그러자 옥화는 계연을 아들과 결혼시켜
정착시킴으로써 아들의 역마살을 풀려고
계연에게 접근하자 아들도 계연을 보고 화색.

여자에게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들이
계연에게 관심을 보이자 옥화도 즐거운 듯.

이튿날 성기가 책전에 있으려니까
계연이 점심들고 그 앞에 나타난다.

다음날 옥화는 상돌어멈을 부엌에 둔 채
계연에게 아들 성기의 시중을 들게 한다.

옥화는 체장수 영감이 나오는 대로
계연을 양딸로 정해둘 생각을 한다.

성기가 칠불암에 책값을 수금하러 간다고하자
옥화는 나물도 캘겸 계연을 데리고 가라 한다.

성기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산길을 택해 가고 있는데
두릅꺾고 딸기 따던 계연치마가 떡갈나무 가지에 걸린다.

성기는 지팡이로 치맛자락을 벗겨주려다
계연의 치맛자락 속의 종아리만 건드린다.
이에 성기는 같은 마우 밑둥치까지 올라가
나무가지에 걸린 계연 치맛자락을 벗겨준다.

계연은 치맛자락을 위로 걷어 올리고
이마의 땀을 씻으며 샘물을 찾아간다.

이때 성기는 계연의 둥그스름한 어깨와 목덜미를 껴안고
입술을 포개자 가마귀 한마리가 머리 위로 울며 날아간다
그때야 비로서 성기는 다래 덩굴에 걸어둔 점심을 벗겨든다.
.........................(중략)....................................

1948년 <백민(白民)>지에 발표된.. '역마.'
화개장터는 역마살 낀 장돌뱅이들 집결지.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 하동, 구례, 쌍계사

세 갈래 길목이 한군데 모이는 화개장터

장터란 전근대적 사회에서 하나의 연극 공간
'장보러 간다’는 다양한 뜻이 담겨져 있는 말.

이 장터에 옥화(玉花)라는 주막집 여인이 있다.
36년 전 남사당과 하룻밤 사랑으로 태어난 옥화.
그 역마살을 풀려고 쌍계사로 보낸 그녀 아들 성기
그녀가 구름 같이 떠도는 중과 연분으로 태어난 성기

옥화나 다름없이 화개 장터 주막집에서 태어난 그들
누구를 원망할 수도 할턱도 없는 어미 딸 아들의 관계.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한 탓

성기의 역마살도 결국 따지고보면 할머니가 장본인.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 살을 떼우려 한 것.
중질에서 못 푼 살을 책장사 시켜 풀어 보려고 한 것.

어느 날 옥화 주막에 머문 채 장수 영감과 딸(계연).
아들 성기가 장날 내려왔다가는 계연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계연이는 성기 어머니의 친동생, 즉 성기의 이모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절망한 성기는 심한 열병.'

화개 장터 연극 공간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인다.
그들은 자의 건 타의 건 연극 공간 속 주인공들
단천골은 화개장터와 연관된 또 하나의 연극무대.

지금은 옛 영화를 잃어버린 화개장터.
화개장터처럼 그 빛을 잃어가는 단천골.
소설 속에서나 겨우 맥을 이어온 단천골.




단천(장수)마을.



단천마을은 귀화 여진인들이 정착한 마을 같다.
고려 말부터 이조까지 한반도 속의 여진인 마을.
특히, 병자호란 이후 이조에 귀화한듯 추정된다.

여진족은 '신라, 흉노족'처럼 백의민족이다
고구려 백제는 원래부터 백의민족은 아니다.
여진은 백의를 즐겨 입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온돌은 여진인들의 고유 문화이고 풍습.
여진인들은 소금에 절인 채소를 먹는다
소금에 절여서 배추 및 파 등을 먹는다

어떨 때는 야생동물을 잡아서
소금에 절인 배추 사이에 넣는다.
그러면, 겨울에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여진인 고유음식이 오늘날, 함경도 식혜.'

............재가승 풍습(在家僧風習)..............
이조 초기 귀화한 함경북도 여진 후예들의 풍습.
산간에 숨어 머리깎고 동리에 절을 짓고 살아왔다.

함경북도 부령군·회령군·유성군·종성군·온성군·
경원군·경흥군 등 6진(六鎭) 변방이., 여진족 마을.
산간 오지에 은둔한 부락을 재가승마을이라고 불렀다.

재가승들의 직업은 화전을 하며 주로 귀리를 생산했다.
귀리 원료로 황지(黃紙)를 생산, 국가 세공으로 바쳤다.
소를 중심으로 함께 품앗이 하는 소겨리 조직이 성했다.

장례는 원래 화장이었으나 함경도 풍습을 받아들여 매장
마을 공동으로 상여를 준비하고 장(葬)의 일체를 책임졌다.
정초와 10월 2일 산치성(山致誠), 연중 4 번의 국사당 산제.

민속놀이로는 주지춤·수박치기·길마지기·
벙어리놀음(걸립굿)·윷놀이·그네뛰기·장기

이들은 외부와 단절된채 혼인도 자기들끼리 행했다.
그러나 차츰 함경도를 중심으로 한 생활풍습에 동화
특히, 8·15해방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거의 동화
...........................................................

옛부터 어머니 성씨를 물려받았던, 여진족 풍습.
고려에 귀화하며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변화.
이조 초 귀화인들은 집성촌을 이루고 모여 살았다.

..........청해 이씨(靑海 李氏) 유래....................
시조 이지란(李之蘭)은 "황송통보(皇宋統譜)"에 의하면
중국 남송 충신이며 당대 명장 '악비'의 5째 아들 6세손.

원나라 정서대장군 아원(雅遠)의 아들 두란(豆蘭)
여진족 풍습에 따라 '어머니 성' 동으로 성씨 개명.
고려 공민왕 20년 북청에서 성과 본관을 하사받았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에 오르고 청해군에 봉
좌찬성을 지냈고 후손들은 중국 청해을 본관으로 한다.
이조시대 7명의 문과 급제자를 비롯, 많은 관직자를 배출

[집성촌] - 함경남도 북청군
[본관지] - 청해 : 중국 북서부 칭하이성(靑海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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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동부에 살았던 퉁구스 계통 여진족 원주민
춘추전국 시대에 숙신(肅愼), 한나라 때에는 읍루,
남북조 시대에는 물길, 수나라, 당나라 때에는 말갈.

10세기 초 송(宋)나라 때 처음으로 여진

명나라 때까지 여진이었다가 청나라 때 만주족
우리나라에서 야인(野人)으로도 불렀던 여진족
우리 민족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시기는 고려 초.

그당시 여진은 고려를 상국으로 섬겼는데,
고려는 이들을 회유하여 무역을 허락하고
귀화인에게 가옥과 토지를 주어 살게 했다.

숙종 때 하얼빈에서 일어난 완안부 추장 영가(盈歌)
여진족을 통합하고 북간도를 장악후 두만강까지 진출.
그후 여진은 1104년(숙종 9)에 평양까지 진출하였다.

이에 고려는 윤관을 보내 화평을 맺게 하는 한편
1107년 윤관으로 하여금 함경도의 여진족을 토벌.
그후 아구다가 여진 부족을 통합해 국호를 금(金)

고려에 대해 형제관계를 요구하여 왔으며,
요를 점령후에는 사대(事大)의 예를 강요.

이조 초 회유와 무력의 여진 양면정책
귀순을 장려하여 관직과 토지를 주었고
경성, 경원 무역소를 두어 국경무역 허락.

세종(世宗)은 4군 6진을 두어
압록강~ 두만강 연안선을 확보,
세조 때 남이(南怡), 신숙주(申叔舟)
준동하는 여진을 토벌하게 하기도 했다.

그후 명나라가 약해지자 세력을 확장한 여진.
1616년(광해군 8)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고
이조를 침공하여 1627년(인조 5)에는 정묘호란,
1636년에는 병자호란을 일으켜 이조를 점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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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험한 산길같고, 끝모를 머나먼 여정길.
단천마을은 옛부터 장수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한반도 민족은 옛부터 장수에 관한 관심이 높다.

하여, 장수마을을 이상향으로 여겨왔던 관습.
장수비결에 관해 전해오는 말과 관습이 많다.
그러한 장수비결에 관한 말과 관습을 알아보자.

"환갑에 저승사자 오면 지금 안계신다 하여라.
고희에 저승사자 오면 아직 이르다고 여쭈어라
희수(喜壽)에 저승사자 오면 서둘지 말라 하여라."

"산수(傘壽) 八十에는 아직 쓸모있다 하여라
미수(米壽) 八十八에는 쌀밥 더 먹겠다 하여라
졸수(卒壽) 九十에는 서둘지 않아도 된다 하여라."

"백수(白壽) 九十九에 저승사자 오면
때를 보아 스스로 가겠노라고 하여라."

"생각은 깊게 마음은 원만하게
화를 내지 말며 말을 조심하면
오래 살 수 있다."- 장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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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비결 10 가지.>

1. 적게 먹고 많이 걷는다.
2.고기는 적게 먹고 야채는 많이 먹는다.
3.염분은 적게 먹고 신것은 많이 먹는다.
4.술은 적게 마시고 과일은 많이 먹는다.
5.차는 조금 타고 많이 걷는다.

6.옷은 적게 입고 목욕은 자주 한다.
7.말은 적게 하고 몸은 많이 움직인다.
8.욕심은 적게 갖고 많이 베푼다.
9.성은 적게 내고 많이 웃는다.
10. 번뇌는 적게 하고 잠은 많이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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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장수비결.>

1.매일 꾸준한 운동한다.
2.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3.적게 먹는다
4.채식을 한다
5.차를 많이 마신다

6.참선 등 정신수양을 한다
7.스트레스 강도가 낮다
8.담배와 술하고 거리가 멀다
9.환경오염이 적은 곳에서 지낸다
10.지적 활동을 꾸준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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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봉에서 불일폭포 거쳐 쌍계사에 이르는 능선
삼신봉에서 남부 능선따라 세석평전으로 가는 길.
그러나, 또 하나의 숨은 코스가 단천골로 가는 길.

'단천골에는 장수촌으로 널리 알려진 단천마을.'

인적이 없어 고즈녁하고 고요한 산속의 숲길.
때론 낙엽이 무릎을 덮는 미로와 같은 낙옆길.
그 미로 속으로 펼쳐지는 원시림속에서의 산책.

화개재에서 목통골로 들어선 느낌같은 설레임.
산속에서 또 다른 산허리를 나선형으로 도는 길
약간 지칠무렵 나타난 80 넘은 노인들의 장수마을

물론 지도에도 나오지 않을 만큼 희미한 길
그길 조차도 사라졌다는 그 길 끝에 단천마을.
지금은 개조된 가옥도 조금은 보이는 마을 풍경.

'과거로 흘러가는 길목 같은.. 단천마을.'

어린아이 같은 피부를 갖인 팔순 노인들
숲이 쏟아내는 신선한 공기가 싱그러운 곳.
무공해 마을이 무엇인지 대변해주는 장수마을.

 

 

 

토종약초.

 


 

......................................
......................................
'과연,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
........................................

'혹시, 항암작용 토종 약초 때문 아닐까?'
단천마을 일대에 지천에 깔려있는 토종약초.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초들.

벌나무. 질경이. 까마중. 소리쟁이. 조릿대
석이버섯. 뱀딸기.가래나무 껍질. 상황버섯
돈나물. 살구씨. 쇠비름. 비파잎. 간수, 오매

선학초<짚신나물> 패장초, 백모등, 전기황.천마
민들래. 겨우살이.만병초.도마뱀.뱀탕.땡비<벌집>
감초, 대추, 생강 , 모든 각종 야생 토종 산나물들

★간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간암,간경화,지방간,황달)

벌나무(산청목) ,지구자나무<헛개>과경,노나무,천마,
만병초,겨우살이,인진쑥, 흰민들레,익모초,
오소리쓸개,민물고동,굼뱅이등

★위장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위염,위궤양,소화불량)

느릅나무<유근피> ,삽주뿌리(백출,창출) ,참옻나무 껍질

★기관지,폐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독감,기침,해소,천식,기관지염,결핵)

곰보배추 ,산도라지 ,장생도라지 ,산더덕, 오미자,주목,은행,
보리수나무,잔대,맥문동등

★신장,방광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신장염,방광염(오줌소태),부종)

옥수수수염 ,녹두 ,쥐눈이콩 ,질경이 ,붉은팥,
으름덩굴,인동덩굴,어성초,조릿대,참가시나무

★뇌,정신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중풍,두통,신경쇠약,불면증,건망증,스트레스)

천마, 야국화(감국) ,석창포,복령,복신, 동향송근,
해방풍,거풍목,만병초

★뼈,관절에 사용되는 약초
(요통,관절염,신경통,골절,골다공증)

홍화씨, 접골목 ,골담초, 목천료(다래,개다래) ,오갈피나무 ,
엄나무 ,두충 ,위령선, 속단, 쇠무릅(우슬), 송절(소나무마디) ,
호랑가시나무, 야생노루뼈,아카시아버섯,소리쟁이

★남성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정력부족,음위증,발기부전,갱년기장애)

만병초,야관문,산수유,구기자 ,복분자 ,삼지구엽초(음양곽)
참마(산약),두충, 가시오가피, 말벌집

★산후조리,산후풍에 사용되는 약초
생강나무, 잔대 ,오소리쓸개

★여성질환에 사용되는 약초
(비만,변비,냉증,생리통)

함초, 지치(자초) ,삼백초, 천궁, 당귀 ,냉초,
만삼 ,노박덩굴, 생강나무 ,익모초, 삼백초,
돌복숭아,두충,향부자,흰접시꽃

★보기약으로 사용되는 약초
(피로증,식욕부진,다한증)

산삼, 가시오갈피 ,천삼등

★당뇨병에 사용되는 약초

조릿대 ,갈근,갈화, 산뽕나무뿌리,하눌타리열매 ,
소나무뿌리,가시오갈피 순,천삼,굼뱅이,석룡자 등

★각종암에 사용되는 약초
(간암,위암,폐암 등)

벌나무(간암) 참나무겨우살이(위,신장,폐암) 느릅나무
지치(위암,자궁암) 와송 꾸지뽕나무(자궁암) 광나무
부처손,바위손(폐,간,위,자궁,피부,식도암) 녹나무(각종암)

번행초(위암) 까마중 비단풀 상황버섯(각종암)
차가버섯(위암) 말굽버섯(식도,위,자궁암)
덕다리버섯(유암,전립선암)
운지버섯(간암,폐암,유암,소화기계암) 영지버섯
석이버섯(말기암 통증완하) 동충하초(대장암)

★기타 질병에 사용되는 약초

동백나무겨우살이(신부전증) 하수오 산작약 생지황
만병초(백납) 개다래(통풍) 오이풀(화상) 참가시나무(결석)
토복령 오배자(설사) 백년초 약쑥(3년생 이상) 일엽초<이뇨작용>
한련초(흰머리) 도꼬마리(축농증)) 찔레버섯(경기,간질)


★ 암으로 인한 복수 제거

등대풀을 바싹 말려낸 가루를 대추살로 반죽해
엄지손가락 마다만한 환을 지어 하루 두 번
한 번에 2알씩 뜨거운 물에 풀어서 먹는다.

용규(까마중) 젖은 것 600g, 마른 것 160g
하루 분으로 하여 물로 푹 달여 먹는다.
직장암, 방광암, 간암, 위암 등 거의 모든 암에
다른 항암약초와 함께 쓰면 효과를 볼 수 있다.

그외 붉은팥,금은화<인동덩굴>,으름덩굴<목통>,
벌나무,어성초,참가시나무,개머루등

★ 말기 암의 통증 해소

빙편(용뇌) 50g을 술 500㎖에 넣고 녹인 다음 쓴다.
이 약은 암이 전이되어 극심하게 아픈 부위에 바르되
처음에 하루에 10번, 동통이 덜해지면 하루에 몇 번만.
바를 때 종양이 터진 곳에는 바르지 말아야 한다.

임상실험에 의하면 식도암, 위암, 골전이암 등으로
통증이 극심한 40명의 환자에게 썼는데 모두 진통효과.
그외에 만병초,천마등이 있다.

★ 암으로 열이 나고 아픈데

인동<금은화>의 줄기 200g을 나무망치로 짓찧어
감초 40g과 질그릇에 함께 넣고 물 두 사발을 부어
약한 불에 끓여 반이 되면 다시 맑은 술 한사발을 부어
끓인 다음 짜서 세번에 나누어 하루에 먹는다.

병세가 심한 경우는 하루에 두 번 끓여 먹으면
대소변이 시원하게 통하면서 효험을 본다.




목통골



토속적인 에로티시즘을 연상케 하는 물레방아.
물레방아간의 은밀한 정사를 연상케하는 목통골.
'뽕.'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독 짓는 늙은이'등

.....................뽕.....................
1920년 일제 치하 용담골, 안협(이미숙)의 남편
삼보(이무정)는 역마살이 들었는지 노름판을 전전
가사일을 돌보지않고 몇 달씩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벌이가 없는 안협은 동네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그 댓가로 곡식을 받아 와 집안 생활을 이어간다.

뽕을 치는 할매집 머슴 삼돌이도 그녀를 노리지만
그녀는 힘만 세고 가진 것 없는 삼돌이를 무시한다.

남편 삼보가 돌아오자 앙심을 품고 있던 삼돌이
그녀 행각을 고하자 남편은 오히려 삼돌을 패준다.
그녀가 준비해준 새 옷을 입고 길떠나는 남편 삼보.

고갯마루에 삼보를 지켜보는 일본 순경이 서 있다.
삼보는 노름꾼을 가장해 전국을 돌아다닌 독립투사
그 남편을 바라보는 안협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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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짓는 늙은이.....................
눈밭에 쓰러진 처자를 움막으로 데려온 송영감.
자신의 체온으로 그녀의 언 몸을 녹여 살려낸다.
그일로 인해 부부가 되어 송영감은 아들을 본다.

송영감과의 나이 차이로 밤이 외로운 젊은 아내.
그녀는 송영감 조수와 몰래 물레방아간에서 밀회.
그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모른척 해야 하는 송영감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젊은 조수와 줄행랑.'

어린 자식을 두고 조수와 도망간 송영감의 아내.
송영감은 자식과 함께 먹고살려고 독을 구워낸다.
독짓는 송영감이 안스럽기만 한 앵두나무집 할머니

병들어 쓰러진 송염감에게 미음을 쑤어다주면서
당손이를 어디 좋은 자리에 양자로 줄 것을 제의.

날이 갈수록 송영감은 자리에 눕는 때가 많아지자
당손이를 양자 보낼 자리가 있다고 송영감을 채근.
송영감은 어서 독을 한 가마 구워내려 마음만 조급.

한 가마도 안되는 독을 가마에 넣고 불질하는데,
조수가 만든 독은 터지지 않고 자기 독만 터진다.
송영감은 장인으로서 생명이 다해감을 스스로 절감.

송영감은 어린 아들 당손이를 양자로 보내고,
독가마 속에서 장인으로서의 최후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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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적인 영화 속 배경 마을 같은..목통골.'

목통골 목통마을은 화개재에서 가까운 곳.
목통마을은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에 있다.

김수로왕의 7 왕자가 칠불암에서 수도할 때
왕이 찾아와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범왕리.

목통마을 끝자락 물레방아 이름이 새겨진 집
오른쪽 도로 따라 올라가면., '영구 출입금지.'
그 표지판 뒤로 들어갈수록 넓게 열리는 계곡

계곡을 왼쪽에 두고 산허리의 오솔길을 오르면
첫번째 계곡을 건너 돌길 따라 감나무와 축대들.
6.25 이전까지 있었다는 옛 연동마을 터 흔적들.

운봉 소금장수가 화개장터에서 소금가마를 지고
화개재로 오를 때 쉬어가기 적당했던 옛 연동마을
마을 터를 이리 저리 살펴보니 꽤나 크고 넓직하다.

마을터 지나 우측 계곡을 따라 휘어진 오솔길
합수점에서 골 건너 오른쪽으로 오르면 화개재
화개동천 따라 오르다가 넓은 분지.,배나루평전.

전설에 의하면 배가 들어 왔었다는.,나루터.

인근 농평마을 염소농장 지나 내려서면
'문을 꼭 닫으시오.'라는 나무 문이 있다.
토끼봉 아래 당재가 훤하고 목통마을이 코앞

화개동천 따라 내려오면 대봉감 산지., 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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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통은 목통이란 한방 약재이름에서 비롯된 지명.
으름(한국산 바나나)이라고 불리우는 덩쿨의 열매.
으름 맛은 맵고 달며 방광질환에 효과가 있다 한다.

임신 신장염으로 인한 부종 급성 요도염에 효과가 있다.
이뇨 배변작용을 촉진해 전신의 기순환을 원활하게 하므로
특히 출산 후 부기가 있으면서 살이 찐 사람에게 효과가 좋다.

'원래, 으름 덩쿨나무가 지천에 깔려있던 목통골.'

노고단, 돼지평전, 임걸령을 지나 노루목 왼쪽은 반야봉 가는 길.
직진하여 15분 정도 가면 삼도봉 그곳에서 남쪽 능선이 불무장등.

삼도봉 다음 봉우리가 토끼봉.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가 화개재.

토끼봉에서 칠불사로 이어진 남쪽능선.
칠불사 능선과 불무장등 사이가 목통골.

목통골은 뱀사골 사람들이 화개장터로 가는 길목.
동물 이름 <토끼봉, 노루목, 돼지평전>이 감싼 골.

화개장터에서 화개천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신흥마을.
여기서 왼쪽으로 따라가면 범왕리 목통마을, 물레방아
목통마을을 휘감고 도는 물줄기가 있는 골짜기가 목통골.

지금은 거의 허물어져가는 물레방아 방아간.
적막한 오지 분위기처럼 을씨런스럽기만 하고
한때 목통마을의 상징이었던 물레방아는 폐허화.

목통골 물레방아 소리는 멈춘지 오래되었다.
스님소도 이젠 아무도 찾지않는 전설의 고향.
칠불사 스님들이 경내 세면장을 이용하는 탓.

목통골 아담한 소마다 쉬어가며
동화 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서면
햇볕이 너무 강해 아쉽기만 하다.

1967년 남파된 무장공비 9명 출현으로
아닌 밤중 홍두깨처럼 사라진 연동마을.
그 아래 목통마을보다 융성했으리라 추정.

'소개령으로 사라져 버린 연동마을 터.'

화개골 아름드리 벚꽃나무 가로수를 한참 지나,
신흥교에서 칠불사 이정표 따라 좌회전해 들어가,
칠불사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꺽으면 사하촌 목통마을.

그곳에서도 차가 들어갈 수 있는 시멘트 길끝까지 달리다가,
오르막길 아래 공터에 차를 멈추면, 상큼한 풀냄새가 다가온다.

주차장 바로 옆 목통교를 건너면서부터 산행 시작.
다리 지나 좌측 물레방아 산장으로 이어진 시멘트 길
왼쪽 숲속 길로 연동골 알리는 표지기가 몇 개 보인다.

남쪽 하동의 소금이나 해산물 교역 마을
내륙 지방의 삼베를 비롯한 농산물 교역
그 상인들에게 삶의 고갯마루였던 화개재

옛날 옛적부터 장사치들이 오르내렸을 연동골.
1967년 여름. 서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9명,
이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하다 모두 사살된 사건

'그후, 소개령으로 자취를 감춘 연동마을.'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마냥 서러울 정도
화개재를 거쳐 뱀사골과 연결된 연동마을.
칠불사로 뻗어내린 능선과 이어지는 목통골

옛 선인들이 화계동천 절경으로 일컫던 목통골.
고운 최치원 선생의 전설 흔적이 담겨있는 명소.
주변 난개발로 나날이 변모하는 산세가 안타깝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연동마을이 있었다 하여 연동골.
요즘 연동골보다 알려진 목통마을에서 유래된 목통골.
화개재 길목 좌우 봉우리 능선을 타고 흘러 합진 물줄기.

화개재(1,360m) 동쪽은 토끼봉(1,533m), 서쪽은 삼도봉(1,550m).
토끼봉의 능선은 칠불사까지 내려와 목통마을에서 꼬리를 감춘다.
이곳을 칠불사 능선, 삼도봉에서 뻗어내린 능선은 불무장등(1,446m)

통꼭봉(904m), 당재, 황장산(942m)으로 이어진뒤 화개장터가 있는 탑리.
그곳에서 내려와 섬진강까지 흘러내려와 스며드는 능선이 불무장등이다.
칠불사 능선과 불무장등 능선 사이 골이 연동골이고 화개천의 지류에 해당.

화개천은 크게 신흥마을에서 둘로 나누어진다.
왼쪽이 범왕계곡 목통골이고, 오른쪽은 의신계곡
(대성골, 빗점골, 절골, 산태골 등) 지리산 최대 계곡.

화개천에는 독특한 계곡미를 간직한 독립 지계곡이 최소한 10개.
그 가운데 한 지류인 연동골은 해안과 내륙 산간을 잇는 최단거리.
지리산 능선 가운데 가장 낮은 곳인 화개재가 넘나드는 길목이다. 

화개재는 연동골과  뱀사골을 이어주는 길목.
화개재는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 지점.

옛부터 화개장터와 이어졌던 화개재. 
뱀사골을  따라 올라가면, 뱀사골산장.

뱀사골 산장에서 좀 더 올라가면 화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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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통골은 옛부터 토속적인 주막 저자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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