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런 단어 졸라 싫어하는데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있다. 아래 사진은 작년 가을 루마니아에 있는 드라큐라 성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저울에 사람을 올려놓고 또 다른 한쪽 저울에는 돌을 올려놓고 사람의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그 사람을 처형했다는 것이다.
진짜로 세상에 닝기리 이런 일이다. 죄목도 몸무게만이 아닌 엉뚱 황당한 것들을 붙이기도 했단다. 80% 이상 대부분이 무고한 여자들을 마녀사냥이라는 명목하에 처형했다고 한다.
최근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논란을 보면서 문득 그 저울이 생각났다. 특히 한 작가의 오래전 사생활과 연계한 기사를 연일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저울이 너무 유치하다 못해 부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안동김씨에 의한 세도정치 때문에 제주도로 유배를 갔을 때 글을 쓰면서 기생들과 놀았다는 후문들을 당대나 후대 사람들은 애써 굳이 들춰내거나 논란으로 삼지 않는다.
피카소는 72세 때 30세의 여인을 만나 비밀리에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는 두 명의 여인과 정식 결혼을 했지만 6명의 여인과 동거를 하며 아이들도 낳고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러나 스페인 아니 세상 사람들은 피카소의 진정한 삶의 조명을 그의 그림에 맞추어주었다.
16세에 진향기생이 된 자야와 사귄 영어교사였던 백석 시인은 어떠했는가. 더 많은 문인들 음악가, 전 세계의 예술가들의 삶과 연애는 어떠했는가. 비록 개인사적인 과정이나 결말이 안 좋았고, 때로 안타깝고 그래서는 안 되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예술로 승화 시켜주었다.
그것이 한 작가를 바라보는 진정한 독자의 몫이고 언론은 물론 국가의 역할이다. 기본적인 수준인 것이다. 그것은 비단 예술가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마녀사냥이 떠오를 만큼 무지하고 가혹하고 천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표현처럼 그야말로 찌라시 수준인 것이다. 나는 이외수의 작품들을 많이 읽었고 초기 작품들을 좋아했지만 실제 선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또 그의 책을 출간한 적도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시를 쓰며 느꼈던 것은 이외수는 늘 가난한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외롭고 아프고 힘들어하는 벗들과 삶을 함께 해왔다는 것이다.
그말인즉슨, 그의 삶이 그렇듯이 일등주의나 메이저와 브랜드만 지향하는 문학적 댄디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고고한 은좌의 자리도 높은 첨탑을 지향하지 않았다. 그냥 젊은 날에 배고프고 때로 굶주리고 사랑에 목말라하고 칭얼거리는 작가였던 것이다. 저잣거리였고 따뜻한 순대국밥이었고 서민이었다. 그만의 그런 삶과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필을 했고, 베스트셀러가 됐고 가난한 출판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출판사들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아무 연관도 없는 나도 보다 못해 닝기리 시파 한 마디 하는데. 혹자들은 말한다. 그가 상업주의작가라고. 조까라마이싱이다.
이외수는 160만 명의 팔로워(Follower)를 가졌다. 그들은 왜 이외수에게 팔로워를 했는가.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한 작가를 바라보고 지켜주는 기본적인 몫을 그들이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문은 아니 언론은 늘 그렇다. 만들어내고, 띄우고, 추락시키고, 편들고, 빨아주고, 까고...
팔로워의 속성도 그런 것인가. 우르르 몰려다녔다가 아니면 버리고 매도하고 손가락질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팔로워(Follower)란 추종자, 팬, 쫓아가다. 구독하는 사람들이다. 매스미디어 시대에 진정으로 그를 읽고 쫓는 독자인 것이다.
나는 160만 이외수 팔로워들이 인터넷 대통령 이전에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외수, 어렵고 힘들 때 용기를 주고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의 문장을 준 작가 이외수로 바라보고 지켜주길 바란다. 160만 그대들이 언론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 닝기리 시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