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백제
1700여년전 고대 한한도 국가들의 영토확장,
타지정벌 및 진출로 백제의 어원이 백가제해
(백개 부족국가가 모여 널리 바다를 다스린다)
백제는 바다멀리 중국, 동남아, 일본에 식민지를 건설
고구려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확보한 강대한 해양국가
하여, 어떤 학자는 백제를 동방의 로마제국이라 부른다.
대륙백제는 5세기말 동성왕때 북위를 패퇴시킨 군사강국
신라 말 학자 최치원 난랑비 서문에 북으로 유,연(북경지방),
남으로 제,노(산동지방),오,월(양자강 유역)을 제어했다는 기록.
백제 멸망시 인구가 76만호(고구려는 69만호)
백제사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고 문정창 선생
남중국 패자 남조(송,제,양,진)는 백제의 속국
남제(제)를 세운 남제왕 소도성이 백제인이라 주장.
대륙백제는 단순한 설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현재 사학계에서는 이것을 단순한 설로 취급한다.
하지만 백제는 중국대륙에 진출한 중국의 역사기록
동남아 '널뛰기,절구' 등은 백제에서 비롯된 풍습인듯.
중국의 역사책 - 송서,남제서,양서,
구당서, 자치통감,통전,남제서,북제서
기록 상 현 중국 산동성에 백제라는 지명.
중국의 역사책 송서,남제서,양서,통전의 기록들
"백제는 백가제해에서 온 말로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하자
백제 역시 바다건너 요서와 진평 이군을 차지후 백제군 설치.
- 구당서 백제전 백제영토 기록-
"서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르고
북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구려를 접하고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일본)에 이른다"
여기서 백제의 서쪽 영토가 월주라고 기록되었는데
월주는 양자강 하구이고 북으로는 바다 건너 고구려
여기서 바다는 현재 발해만. - 대륙백제를 입증한 기록-
< 바다를 지배한 백제의 힘>
백제의 요서진출 아니 중국진출은
8대 고이왕이 낙랑의 서현을 함락
10대 분서왕 때에 영토를 확장했다.
분서왕이 지금의 중국 천진지방을 점령하자
서진은 국력이 약해져 유연이 세운 한에 멸망
훗날 서진의 왕족이 양쯔강 이남에 동진을 건국.
중국 역사를 보면 동진이 호(胡)에게 시달림을 겪다가
양자강 하구 기름진 옥토를 빼앗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학자들은 호를 흉노라지만 사실은 '동호 동이족 백제'.
중국 역사책 사기를 보면 호와 흉노를 구분.
호를 고조선이라고 기록한 예가 많은데
이 기록에 의하면 호가 백제인듯 보인다.
백제는 13대 근초고왕때 영토를 확장
고구려 고국원제(소열제)를 전사시키고
왜를 신민으로 삼고 중국의 동진을 복속
그러다가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에게 굴욕을 겪다가
24대 동성왕이 즉위하면서 백제의 힘은 급속도록 강력.
- 백제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문정창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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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바다를 지배하고 대륙을 지배한 거대강국.
백제는 중국의 남조국가를 식민지로 두었다고 주장.
대륙백제는 중국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호남성,
호북성,절강성,사천성,인도차이나 등 동남아 일대를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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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창 선생의 글................
『백제 동성왕이 그 21년(499) 10만~20만 병력으로
북위 문제를 결정타하여 회수 유역과 산동반도를 점령
남지나(남중국) 일대는 완전히 백제인의 천지가 되었다.
백제국이 남지나에 진출한 지 200여 년이요,
남지나가 완전히 백제인의 천지로 된지 60년.
그간 백제문화와 생활 양식이 남지나에 침투,
남지나의 생산품, 음식, 일상생활, 혼례,
그리고 심지어는 언어까지 이토록 백제화 』
.......-백제의 번영『가림토』에서 발췌-.............
고이왕 때 서기 246년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려를 맹공
환도성을 함몰하고 고구려 동천왕(고구려 11대 임금)을 추격
낙랑지역(지금의 금주지방)을 기습하여 그 영역을 점령했다.
고이왕이 발해만의 낙랑지역을 점령한 지 20년 만에
조위(조조의 나라 위)가 망하고 사마염의 진이 등장.
그러나 곧 사방에서 군웅이 할거하여 대륙이 혼란.
이 틈에 백제 분서왕(10대 왕)이 천진지방을 점령(304)
서진은 국력이 약해져 51년 만에 패망했다.( 비류왕, 317)
백제 분서왕은 한을 건국. 중국대륙은 5호 16국 시대로 돌입.
5호(胡)는 흉노, 갈, 선비, 저, 강
흉노는 호가 아니란 기록 (사마천 사기)
송서에서 말하는 호란 바로 백제국인 것.
백제는 약해질대로 약해진 동진을 밀어 내면서
곡창지대 양자강 유역을 점령 250년간 통치한다.
「백제는 대륙에서 일본열도에 이르는 동아시아 제국
백제가 망한 후에도 3년 이상 계속되는 그들의 항쟁사
아직까지도 이러한 대백제의 전통과 문화(유물 및 유적)
중국 대륙 곳곳에 남아 있으며
일본 열도에도 그러한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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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 영역 내에 있는 백제의 8대 성씨.
산동성, 남성, 강소성 일대에 있는 백제 지명
성양, 광양, 청하, 백제 등등의 지명들이 있다.
대륙 백제는 4세기 산동 반도, 요서 지방, 베트남.
대륙 백제의 요서 지방은 고구려와 국경 접경지역.
산동,요서, 황하강 이남 황해 일대 영역은 서백제
한반도, 일본 대부분 지역을 포함한 영역이 동백제
강력한 수군을 보유했던 백제는 동아시아 해상왕국
백제는 황해안 주변 지역 100개 부족의 연합국
육군이 강했던 고구려는 중국 대륙을 점령했고.
수군이 강했던 백제는 황해안 주변 지역을 점령.
백제는 한때 일본 열도 대부분을 점령한듯.
일본은 신라 고구려 가야의 영역도 있었다.
백제는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했던 대제국.
.......중국 '송서, 양서'의 <백제전> 기록.......
"백제는 후에 점점 강하고 켜져 여러나라를 병합.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 동쪽에 있었다."
"고구려가 265~316 즈음 이미 요동을 점령했고,
백제도 역시 진평,요서 2군을 점거, 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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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백제는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일대
지금까지 이러한 인식은 통념이고 상식이다.
대륙 백제는 황하문명 심장부 하북성에 요서군,
하남성에 진평군을 개척하고 통치했던 고대국가.
하여, 옛부터 이 지역에 <백제군> 지명이 생긴듯.
삼국사기에는 백제 24 대 동성왕(479~501)10년
북위가 침입했으나 백제군에 의해 패퇴 되었다.
북위는 중국 남북조 시대 양자강 북쪽에 위치
양자강 남쪽 남조인 송, 제, 양, 진 등과 대치
당시 백제 동성왕은 상동반도 백제 서경에 도읍.
일본 황실.
나루히토 황태자와 마사코 황태자비 슬하에 딸 도시노미야
애칭 아이코사마를 두고 있을 뿐 아직 아들을 얻지 못했다.
'일본에 약 200년 만에 다시 여성 천황이 나올까?'
일본은 역사상 8명의 여성 천황이 10 대에 걸쳐 재위했다.
마지막 여성 천황은 1762년~ 1770년 재위한 고사쿠라마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황위 계승권자를 남성으로 한정.
일본의 황위 계승권자 7명 슬하에 37년간 여아만 9명 탄생.
이러다가 황실의 대가 끊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38년 경 일본에서는 불교의 발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의 신도는 고조선의 단군숭배(천신 신앙)가 그 원류
단군 후손인 고조선의 신도가 일본의 야요이 시대를 개막.
(BC 3년∼AD 3년)에 일본 열도로 단군숭배 신앙을 전파했다.
즉, 벼농사, 대장간, 철기문화, 금속공예, 베틀의 직조 등
한반도 문화가 일본으로 유입되며 신도(神道-풍류도)도 유입.
야금·금공 염색·피혁제조·베틀 직조·기와 제조·의학·역법·
천문학·조불(造佛)·사찰 건축·조탑 등등 모든 것을 가르쳤다.
하늘신의 자손들이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일본의 천손강림 신화도 단군신화에서 유래
'일본의 원주민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
인도네시아 원주민 '야요이인’
고조선에서 건너온 '이즈모(出雲)’
일본의 제1차 도래 민족으로 추정된다.
뒤를 이어 고조선 천손족(天孫族), 기마(騎馬)민족
이즈모 민족은 단군의 후손인 신라족을 가리키는 것
기마민족은 만주에 살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민족.
'야요이'시대에 조성된 북큐우슈우의 ‘고인돌’
똑같은 시기의 남한에서도 행해졌던 묘제(墓制)
이는 남한 계급사회의 지배자가 북큐우슈우로 이동
일본 고대 황실에서는 '신라어'로 된 축문을 외운다.
아지매 오게, 오, 오, 오, 오, 오게
阿知女, 於介, 於, 於, 於, 於, 於介
일본말 축문 한자어를 읽으면 경상도 말
'축문의 아지매(阿知女)’란 무슨 뜻일까?'
경상도 방언 아주머니란 신라어로 여신이란 뜻.
신라에서 신분이 귀한 여성, 신성한 여성의 호칭.
, 즉 ‘여신’을 존칭하던 대명사였다고 본다.
일본 고대사에서 귀족 처녀를 오미나(をみな)라 지칭.
오미나는 본래 우리나라의 '에미나’에서 나온 말이다.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등 동해권 지방에서 아직도 통용
경상도 방언에서는 어머니를 '어매'라고 하는데,
여기서 매(女)는 ‘아지매’의 매와 뜻이 통한다.
이 매에서 어미 모(母) 발음도 나왔다고도 보인다.
고대부터 일본 천황들이 왕궁에서 제사를 모신 최고의 신
신라신 원신(園神, そのかみ), 백제신 한신(韓神, からかみ)
신라인이 먼저 일본의 왕들이 되고 훗날 백제인들이 일본의 왕
아무튼, 한신은 천황 제사에 신라신과 함께 모시는 백제신
천황은 동경 천황궁 안에서 매년 11월 23일 신상제(新嘗祭)
이때 “아지매, 오게, 오, 오, 오, 오, 오게”축문을 외운다.
아지매는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신이자 신라어(경상도 말)이다.
백제불교가 들어오기 전 2세기경 일본에 유입된 신라신도
여기에는 신라 출신으로 왜의 지배자가 된 스진천황의 활약
스진 천황은 고구려계 기마민족의 후손으로 남하하여 가야인.
신라인 이즈모족 스진천황이 처음 다스린 국가가 '나라(奈良)’
백제가 패망한 후에야 비로소 '천황'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
일본이 그당시에 백제의 제후국(아래나라)이였다는 또 다른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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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본 국왕이 밝힌 일본 황실에 관한 베일.
한반도와 관련성을 이례적으로 밝혀 주목을 받았다.
"나로서는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것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 무령왕은 일본과 관계가 깊고 이 때 5경박사가 대대로 일본에 초빙됐다.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있다."
비류백제와 온조백제라는 두 개의 백제가 있었고
그 중 비류백제가 바다를 건너가 일본왕실의 뿌리.
비류 백제와 온조백제.
백제의 초기 도읍지는 중국의 발해만 지역.
백제 세력은 소서노를 위시한 '비류'와 '온조'
이들은 발해만에 있다가 고구려 공격으로 남하.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주하고
비류백제는 서해를 중심으로
서해안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
즉, 백제는 해양국가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라는 기마민족 계열국가로 출발한 듯.
백제 초기에는 연안을 따라 항해하는 근해 이동
그후 중국에서 활발한 해상활동을 전개해 나간듯.
비류백제 세력이 서해안에 퍼진 시기는 1세기 무렵.
비류백제는 아시아 최대 해상제국 기반이 마련.
비류백제는 초기부터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고
소서노가 고구려를 나와 대방 500리를 다스린 것
하여, 비류백제 지배층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다.
비류백제는 이주 초기에 마한의 눈치를 살피다가
결국 1세기에 마한을 붕괴시키고 가야세력을 흡수.
여기서 담로제라고 하는 지방정치 행정체제가 등장.
이것은 고조선이 중앙 집권국가가 아닌것과도 비슷.
담로는 다물(고토 회복)과 비슷한 명칭의 정치 체제
그것을 토대로 비류백제는 빠르게 세력을 확장한 것.
비류백제의 건국은 고구려보다 늦지만
비류백제는 온조백제보다 빠르게 성장.
그러한 비류백제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고
1세기 말 낙동강 유역까지 진출해 가야 합병.
가야는 비류백제 지원속에 일본의 북규수를 장악
일본 열도의 야마토 왜라고 불리는 세력이 곧 가야
야마토를 세운 숭신천황은 가야의 일본 정벌군 대장
중국 영토와 한반도 서부를 장악한 비류백제
가야를 영입해 한반도 남부와 대마도, 북규슈까지
하나의 안정적인 비류백제 세력권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 국력을 토대로 중국 혼란기에
비류백제는 대륙에서 영토를 더 확장
晉代에 백제가 요서, 진평 2군을 설치.
5호16국과 서진의 정치적인 혼란기에
비류백제는 대륙에서 세력확장을 시작
당시 고구려는 관구검의 침입으로
세력을 확장하지 못했던 시기이다.
하여, 비류백제 영토확장이 쉬웠다.
동남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까지 진출
비류백제는 난하의 요양지역에 요서군, 진평군을 설치
산동지역부터 복건성, 절강성 등지를 잇는 영역을 구축.
초기 가야세력이 있던 절강성을 차지해
양자강과 강남 교역권을 손아귀에 쥔다.
그후 담로가 담로를 건설하고
그 담로가 다시 담로를 건설해
비류백제 세력 지역이 늘어났고
비류백제는 환태평양 세력을 형성.
당시 비류백제의 영향권 아래 있던 전연의 모용황이
고구려를 공격해 고국원왕 고구려군을 패주시킨 사건.
고구려는 동천왕대에 관구검침입 후
미천왕대에 국력이 신장하였던 시기
비류백제는 요서를 차지하고 대륙을 장악했지만
고구려 성장을 막으려 전연을 이용하여 공격한 것.
고구려가 참패당한 배경에는 비류백제가 있었던 것.
그런 상황에서 비류백제가 성장하고
고구려는 국가발전 길이 막혀 버린다.
이 전쟁에서 전연의 패잔병이 서라벌로 들어가
<내물이사금>이라는 세력으로서 등장하게 된다.
그후 고구려는 소수림왕, 고국양왕때 국가체제 정비
광개토왕이 등장하자 비류백제는 커다란 위협에 직면.
이미 비류백제의 후국인 온조백제는
근초고왕과 근구수왕때 비류백제와
군사력을 합해 고구려를 침공하고
고구려의 침공도 격퇴했으며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상황.
하여 원수가 되는 백제와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의 역사적 기록
광개토왕때 고구려는 온조백제 북방을 침입
관미성을 함락하며 서라벌까지 복속시킨다.
서라벌은 원래 비류백제의 후국이었지만
전연의 패잔병이 남하해서 계림국을 창건.
비류백제에서 벗어나 고구려 그늘로 유입.
또한 고구려는 강한 국력으로 주변국을 정벌.
비류백제는 고구려와의 전면전을 예상해 준비.
그런 비류백제에게 고구려는 수군을 동원해
비류백제의 중심지인 거발성 상륙전을 감행
비류백제의 도성을 포함 수십개의 성을 함락.
비류백제 지배층은 일본열도로 피신하고
광개토왕은 겨울이 다가오자 회군을 시작
온조백제를 형식적으로 항복시키고 퇴각.
중국 한반도 왜 열도를 찾이한 비류백제
4세기 말경에 비류백제가 멸망하게 된다.
비류백제는 담로 지방체제로 운영되었기에
영산강유역(가야 계열 집단)은 살아 남았고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며 존재할 수 있었는데
그 세력이 바로 영산강유역의.. 옹관묘 세력.
이곳은 근초고왕때 정복당한 마한의 잔당이 있던 곳
영산강 유역은 오히려 그 시점 이후 더 발전을 거듭.
비류백제 멸망후 영산강 세력은 독자적으로 발전했고
비류백제 해외 담로국 경영권이 영산강세력으로 이동.
고구려에 패한 비류백제는 일본 경영에 국력을 집중
그 후 북위가 화북을 차지하며 요서 백제기지를 공략.
그러나 영산강세력은 북위의 대군을 무려 5번이나 대파.
장수왕때 고구려가 북위를 이용
대륙의 화북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비류백제 요서지역 담로국들이 저항
하여, 고구려의 화북지배 뜻은 꺾인다.
백제 동성왕 때 영산강세력을 흡수하며
비류백제 해외 식민지 통치권까지 흡수.
백제는 8성 대족 영산강세력들을
중앙정권에 적극 참여 시켰던 결과.
또한 무령왕 때 일본 열도를 정벌한다.
이후 백제는 일본열도와 한반도 서남부
요서와 산동을 비롯한 대륙의 동부 연안,
대만, 동남아의 해양 대국으로 다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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